소설리스트

1화 (1/7)
  • 1.

    자박자박.

    달도 없는 어두운 숲길을 걷는 여자 아이의 얼굴에는 온통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엄마…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여자 아이는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계속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엄마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엄마아….”

    바스락.

    “엄마아아아!”

    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호랑이야! 호랑이야!”

    어두운 숲에는 호랑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던 차라 아이의 귀에는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꼭 호랑이 발자국 소리처럼 들린 탓이다.

    “엄마아아! 호랑이야아아!”

    엄마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걸까.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저도 잡아먹으려고 온 것일까.

    “엄마아아아아!”

    아이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뛰던 아이의 발이 돌부리에 걸렸다.

    “아악!”

    넘어진 아이가 더 큰 울음을 터트렸다.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수풀이 커다랗게 흔들리더니 그 너머에서 거대한 것이 불쑥 뛰쳐나왔다.

    얼룩무늬에 시퍼런 인광을 가진 그것은 틀림없는 호랑이였다.

    “꺄아아악!”

    아이가 혼비백산해서 비명을 질렀다.

    공포에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사,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작은 손을 휘저으며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때 호랑이가 아이를 향해 덤벼들었다.

    “꺄아아아아!”

    잡아먹힌다.

    호랑이의 커다란 발이 저를 찢고 그 입이 저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릴 거라고 생각하며 비명을 지르던 아이가 이상한 것을 느낀 것은 잠시 후였다.

    호랑이의 발이 제게 닿지 않은 것이다.

    ‘엄마가 왔나?’

    아이가 살며시 눈을 떴다.

    겁을 먹어 눈물로 가득한 눈 안에 들어온 것은 땅에 납작 엎드린 호랑이와 그 호랑이의 등을 밟고 있는 커다란 사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를 한입에 삼켜버릴 것처럼 사납게 덤벼들던 호랑이가 사내의 발아래 밟혀 끙끙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산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저런 작은 아이를 노려.”

    사내가 호랑이에게 훈계를 하듯 말하는 것을 아이가 눈물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쳐다봤다.

    대체 저 사내는 누구길래 호랑이를 저리 밟고 있는 것일까.

    “다친 곳은 없느냐?”

    아이가, 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너는 그만 가 보거라.”

    사내가 밟고 있던 발을 떼자 호랑이가 그 길로 수풀 너머로 달아났다.

    더는 그 얼룩무늬 꼬리가 보이지 않자 동이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디 보자….”

    다가온 사내가 동이의 앞에 무릎을 내리고 앉았다.

    커다랗고 낯선 사내지만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다.

    “피 냄새가 나는데….”

    사내가 동이의 치마를 살짝 걷어 무릎을 확인했다.

    넘어지며 살갗이 벗겨진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쳤는데 왜 다치지 않았다고 그러는 것이냐.”

    “아프지 않아서….”

    너무 무섭고 겁을 먹어서 아픈 것도 몰랐다.

    “몇 살이냐?”

    “이, 일곱 살….”

    “이렇게 어린 아이가 왜 이 한밤중에 산에 있는 것이냐. 밤에 산에서 호랑이가 나온다는 것을 네 부모가 얘기해주지 않더냐? 네 아비 어미는 어디 있느냐?”

    “엄마가… 안 보여요….”

    “어미와 함께 왔느냐?”

    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린 것을 두고 어미는 어딜 갔을까….”

    사내가 손목의 천을 풀어 그것으로 동이의 무릎을 싸맸다.

    그러고는 동이에게 등을 내보였다.

    “업히거라.”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

    사내가 피식 웃었다.

    돌아보며 웃는 사내의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뾰족한 송곳니를 본 동이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저씨 이빨이….”

    “나는 도깨비란다. 엄마가 말해주지 않던? 산에는 도깨비가 산다고.”

    동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뭔가를 꺼내 사내에게 내밀었다.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도토리였다.

    저를 향해 내민 도토리를 사내가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상수리나무 아래에 잔뜩 떨어진 도토리를 몇 개 주워 주머니 안에 넣어뒀던 동이가 사내에게 그걸 내민 것은 [도깨비는 도토리묵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걸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이거 드릴게요.”

    “고맙구나.”

    사내가 동이의 손에서 도토리를 집어 들어 그것을 입 안에 넣고 와드득 와드득 씹었다.

    사실 이 사내는 도토리의 쓴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물범벅인 얼굴을 한 일곱 살짜리 사람의 여자 아이가 제게 주는 것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이제 업히거라.”

    도토리를 씹어 삼킨 사내가 등을 내밀자 동이가 그 등에 얼른 업혔다.

    동이를 업은 사내가 다리를 쭉 펴고 일어섰다.

    “꽉 잡고 있거라.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네 어미를 찾아볼 것이니.”

    그 말에 동이가 사내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움켰다.

    “꺄악!”

    동이를 업은 사내의 몸이 바람처럼 위로 올라갔다.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딛고 이리저리 나뭇가지 위를 밟고 계속 위로 올라간 사내가 숲의 가장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 발을 딛고 섰다.

    그곳에 서니 온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달이 없는 어두운 밤이지만 사내의 눈은 어둠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없군.’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의 기척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미가 아이를 버린 건가?’

    조금 전에 쫓아 보낸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은 기미는 없었다.

    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냄새가 바람결에 희미하게 전해져 오기는 하지만 그 냄새가 흐릿한 것을 보니 한참 전에 숲을 빠져나간 것이 분명하다.

    이 아이만 두고 혼자 빠져나갔다는 것은 아이를 버렸다는 뜻이다.

    “엄마는요? 엄마가 보이나요?”

    등에 업힌 아이는 아직 어미가 저를 버린 것을 모르고 있다.

    “집이 어딘지 알고 있느냐?”

    “숲에서 나가면 숲 어귀에서부터는 길을 알아요.”

    “똑똑한 아이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내는 알고 있다.

    “그러면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 터이니, 집이 어딘지 내게 가르쳐 주는 거다.”

    “엄마는요?”

    “엄마는 먼저 집으로 돌아간 것 같구나.”

    “나만 두고요?”

    “집에서 기다리지 않을까?”

    “정말 그럴까요?”

    “아비는 집에 있느냐?”

    “아빠는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다른 가족은 있느냐? 어미 말고.”

    “없어요.”

    알 만하다.

    지금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흉년이다.

    인간들의 땅에 흉년이 들면 인간들은 산으로 들어와서 나무껍질을 벗기고 산의 열매를 주워간다.

    그렇게 하면 산짐승들이 배를 곯는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산짐승들은 산을 떠나고, 산짐승들이 산을 떠나면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들이 민가로 내려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흉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식을 버린다.

    짐승도 자식을 버리지 않건만 사람은 자식을 버린다.

    흉년이 드는 해에는 산에 어린 아이들을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 아이 또한 그런 경우일 것이다.

    사내가 아이를 업고 나무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숲을 벗어났다.

    아이는 어느새 눈물을 그쳤고 겁을 먹고 제 어깨를 꽉 쥐고 있던 손에서는 조금씩 힘이 풀렸다.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집이에요. 밤은 하나도 열리지 않았는데 나무가 엄청 커요. 울타리에는 등롱초가 울긋불긋 예쁘구요.]

    그렇게 집에 대해 설명해주던 아이는 어느새 등에서 잠이 들었는지 사내의 등이 따뜻한 숨으로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쌔액, 쌔액,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긴장이 풀리며 잠이 든 것이 분명하다.

    숲을 벗어난 사내의 눈에 아이가 설명한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작은 초가집이 들어왔다.

    울타리 아래, 아이의 말처럼 울긋불긋한 등롱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초가집의 방문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군.’

    아비는 죽었고, 다른 형제는 없고, 어미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다.

    울타리를 열고 들어간 사내가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집 안의 방문을 열었다.

    작고 어두운 방 안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그 방에 이불을 깔고 잠든 아이를 눕힌 사내가 깊이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호랑이에게서는 살아났지만 이 아이는 이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흉년을 혼자 견뎌야 한다.

    이 작은 사람의 아이가 혼자서 흉년을 날 수 있을까.

    이제 곧 겨울인데 이 어린 사람 아이는 혼자서 무서운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입 안이 쓰다.

    도토리를 생으로 씹어 삼킨 탓이다.

    실은 사내는 도토리를 좋아하지도, 도토리묵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아이는 틀렸다.

    도깨비는 도토리묵이 아니라 메밀묵을 좋아한다고 인간들 세상에서 소문이 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물론 사내는 도토리묵만큼이나 메밀묵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말 피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인간들과 씨름을 한 적도 없다.

    당연히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도 없고, 머리에는 뿔도 없다.

    사내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사내는 숲의 유일한 도깨비다.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켜 도깨비라고 부르고, 숲의 짐승들이 자신을 도깨비라고 부르기 때문에 자신이 그저 도깨비려니 하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굳이 세어보지 않았지만, 인간들의 시간으로 따져보면 대략 천 년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천 년을 살면 기억도 바래지기 마련이다.

    아마 오래 전에는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기억하는 게 없다.

    기억해도 무의미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수도 있다.

    사내에게 있어서 천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동일한 계절이 천 번 동안 흐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내는 고인 물속의 달그림자처럼 그렇게 조용히 지내왔다.

    그런데 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지듯이 사내의 고여 있던 물과 같은 시간에 이 작은 인간의 아이가 떨어졌다.

    꼭 도토리 같은 아이다.

    도토리는 땅에 떨어진 후에 아주 오래 지나야 그럴 듯한 참나무가 된다.

    작은 도토리가 참나무가 될 때까지 누가 이 작은 도토리 같은 아이를 보살펴줄까.

    작게 바람이 불어 잎이 무성한 밤나무의 가지가 사락사락 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며 사내가 잠든 아이의 뺨에 묻은 눈물자국을 손가락 끝으로 닦아줬다.

    사람의 아이는 빨리 자라니까, 이 작은 아이가 혼자서 겨울을 나고 혼자서 흉년을 날 수 있게 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도깨비의 시간은 길고, 도깨비의 시간은 무료하니 말이다.

    * * *

    “으응….”

    동이가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다.

    “엄마?”

    동이가 방 안을 둘러봤다.

    아랫목에 밥상이 차려져 있다.

    “엄마야?”

    그러나 밥상을 쳐다보지도 않고 동이가 얼른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엄마, 어젯밤에 도깨비가….”

    그러나 울타리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낯선 사내였다.

    “누구세요?”

    “일어났느냐?”

    처음 보는 사내인데 꼭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다.

    “엄마는요?”

    “네 엄마 부탁을 받고 왔단다.”

    “엄마는 어디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온다고, 그때까지 너를 잘 돌봐주라고 내게 부탁을 하더구나.”

    “아저씨가 누군데요?”

    “나는….”

    사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등에 메고 있던 지게를 내려놓고 동이에게로 걸어왔다.

    그리고 방문 앞의 마루에 앉아 동이의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져주며 말했다.

    “네 먼 친척이란다.”

    “친척이요?”

    “그래. 먼 친척. 밥은 먹었니?”

    “아니요.”

    “그럼 같이 먹을까?”

    “엄마는 언제 와요?”

    “백 밤쯤 자고 나면?”

    “백 밤….”

    동이가 열 손가락을 펴서 하나 둘 헤아리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때까지 아저씨는 여기서 살 거예요?”

    “그래야지.”

    “혹시 도깨비님을 보셨어요?”

    “도깨비?”

    “어젯밤에 도깨비님을 만났어요.”

    “꿈을 꿨나 보구나.”

    “엄마와 산에 갔는데 엄마는 보이지 않고, 호랑이가 날 잡아 먹으려고 했는데 도깨비님이 호랑이를 쫓아줬어요.”

    “그래?”

    “그리고 도깨비님이 날 집까지 업어서 데려와줬어요.”

    “그게 도깨비라는 건 어찌 아니?”

    “이빨이 이렇게….”

    동이가 제 이에 손을 대고 앙, 하고 시늉을 했다.

    “이빨이 뾰족했어요.”

    “뿔은 없었니?”

    “뿔은….”

    동이가 곰곰이 생각했다.

    뿔이 있었나?

    하지만 뿔을 보지 못했다고 하면 도깨비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니 뿔이 있었다고 하자.

    “당연히 있었죠.”

    “그래? 그러면 도깨비 방망이도 있었니?”

    “그럼요. 이만한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었어요.”

    두 팔을 들어 한 아름 정도 되는 크기라는 듯 시늉을 하는 동이를 보며 사내가 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또?”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토리를 주니까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

    “도토리를 좋아한대요.”

    “메밀이 아니라?”

    “도토리를 좋아한대요.”

    사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두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도깨비에 대해 설명하는 동이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났다.

    이 작은 사람의 아이가 혼자서 살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기로 이미 결심을 내렸다.

    도깨비의 모습으로는 곁에 있어줄 수 없으니 일부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먼 친척이라고 하면 이 작고 순진한 아이는 믿을 것이다.

    어쩌다가 근방에 사는 다른 이들이 지나가다 누구냐고 물어도 먼 친척이라고 하면 둘러대기에도 좋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아이의 곁에 머물 건지는 생각해놓지 않았다.

    적어도 이 아이가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아니면 아이를 버리고 도망친 어미가 돌아와서 이 아이를 다시 거둘 때까지는 곁에 있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도깨비가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도깨비님께 고맙다는 말을 못했어요….”

    “다 알 거다. 그 도깨비도.”

    “정말 그럴까요?”

    “그렇고말고.”

    “숲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건 모르지. 하지만 숲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

    “왜요?”

    “호랑이가 나오니까.”

    “호랑이는 무섭지만….”

    동이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보며 사내가 조용히 웃었다.

    아마 이 작은 아이는 지금 무서운 호랑이와 고마운 도깨비 사이에서 무척이나 갈등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아침밥이나 먹으며 생각해보렴.”

    사내가 마루로 올라서서 방으로 들어와 아랫목에 차려놓은 밥상을 끌어당겼다.

    사내는 사람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사내가 먹는 것은 인간의 정기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정기를 빼앗지는 않는다.

    사내는 숲으로 나무를 하러 오거나 숲에서 길을 잃은 이들의 주위를 보이지 않게 맴돌며 그들의 정기를 취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내가 일부러 수저를 들어 사람의 음식을 먹었다.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맛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사람의 흉내를 내며 살아야 하니 이 모래알 같은 음식에도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밥을 크게 한 술 떠서 맛있게 먹는 동이를 보며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래 살아오며 이렇게 웃어본 것이 오랜만이라 사내는 제 입에 밥 넣는 것도 잊고 오물오물 잘도 먹는 동이를 그저 쳐다만 봤다.

    열어놓은 방문 너머에서 마당의 밤나무가 사락사락,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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