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41/45)
  • 7.

    깊은 어둠 저편 나락으로 떨어져 있던 의식이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빛도, 소리도 아닌 온기. 얼굴에 잠시

     와 닿았다 떨어진 온기는 아쉬워하는 사이 조금 더 따뜻하고 젖은 무언가와 함께 돌아왔다. 처음의 온기에 비해 뜨겁다 싶을 정도의 젖은

    그것은 얼굴을 꼭꼭 누르고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찰박거리는 물소리... 

    .....소리? 

    윤세는 촉감에서 청각으로 주의를 옮겼다. 머리맡 부근에서 찰랑찰랑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주루룩,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젖은 온기가 얼굴을 꼭꼭 누른다. 그때마다 왠지 얼굴이 쿡쿡 쑤시는 듯 했지만 상쾌함이 더 강했기에 윤세는 기분 좋게 그것을 받아 들였다.

     젖은 온기는 목덜미와 손까지 꼼꼼히 닦아내고는 사라졌다. 

    달그락거리는 인기척. 그래, 그건 확실히 인기척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윤세의 의식은 찬물을 뒤집어쓰듯 일시에 현실로 돌아왔다.

    여긴... 어디?

    의식은 돌아왔으나 눈을 뜨진 않았다. 아니, 뜰 수 없었다. 예전처럼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누워 있는 곳은 몸이 푹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폭신한 매트, 몸을 덮고 있는 것은 얇은 면 이불.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방 공기. 이것만 보아도 그가 있는 곳이 집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어디인가.

    실명의 두려움과는 또 다른 종류의 불안이 그를 덮쳤다. 눈을 뜰까말까 망설이던 사이에 인기척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가볍게 이마에 닿는 온기.

     이제는 뚜렷하게 느껴지는 그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한없이 다정하게만 느껴지는 그 온기에 윤세는 용기를 가지고 눈을 떴다.

    "........."

    눈을 뜨자마자 이마 위의 온기는 후다닥 사라졌다. 시야는 여전히 뿌연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몇 번을 깜박여보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시야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윤세는 손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그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고개를 돌리려는 간단한 행동에도 온 몸이

     비명을 질렀다.

    "으..."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절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 또한 거칠게 갈라졌다.

    어떻게 된 거야... 믿을 수 없는 몸 상태에 이를 악물며 일어나려고 하자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

    "당신 아직 환자야. 그냥 누워 있어."

    ".......!"

    정완?!!

    너무 놀라서 순간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너... 어떻........ 여..... 긴....."

    "기억 안나? 당신 내 앞에서 기절했잖아. 그래서 그냥 데려왔어. 여긴 내 집이고."

    "........."

    시야도 안 보이는데다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윤세는 잔뜩 인상을 쓰고 완을 바라보았다. 그걸 오해한 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그래? 또 아파?"

    "너......!"

    비로소 보인 완의 얼굴에 윤세는 입을 딱 벌렸다.

    "응? 왜? 목말라? 물줄까?"

    "너... 얼굴......"

    "아..."

    완은 머쓱한 듯 얼굴을 뒤로 물렸다. 금새 그 얼굴은 뿌연 안개 속에 묻혀 버렸지만 이미 윤세는 빨갛고 파랗게 부어오른 광대뼈와 밤탱이가 된 눈두덩이,

     찢어지고 부어 터진 입술을 똑똑히 보았다.

    "별거 아냐. 부딪혀서 그래."

    어떻게 부딪히면 그렇게 골고루 터질 수가 있냐... 윤세가 인상을 쓰며 쳐다보자 완은 짐짓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어주며 토닥거리기까지 했다.

    "좀 더 자."

    "......."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니... 자고 보자.

    윤세의 눈이 다시 감겼다.

    눈을 감자마자 이내 잠이 든 윤세를 보는 완의 얼굴 복잡했다. 대체 저 선생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처음 그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진짜 피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완전히 뚜껑이 열려, 

    당장 다친 윤세보다 그를 그렇게 만든 녀석들을 잡아 족쳐야 할 정도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손에 잡히는 데로 주먹을 날렸고 그만큼 얻어맞았다. 끓어오르는 흉폭한 감정 때문에 아픈 줄도 몰랐다. 

    결국 세 녀석 모두 바닥에 뻗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겨우 제정신이 들었다.

    윤세-!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을 윤세가 생각난 것은 그때였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맨 바닥에서 아픈 몸이 괜찮을 리 없다.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윤세의 집으로 갔다. 윤세는 완이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누워 있었다. 달라진 거라면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거. 완은 이불 째 윤세를 싸안고 그대로 집으로 와 버렸다.

    그리고 이틀. 

    때가 되면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깨끗이 닦고 약을 발라 주었다. 방학 시작할 무렵에 녀석들과 윤세를 강간한 뒤 집으로 

    데려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 때는 단순한 호기심과 변덕이었다면 지금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옷을 벗기고, 온 몸의 상처들을 확인할 때마다 완은 녀석들에 대한 살심(殺心)이 무럭무럭 솟아올라 주먹을 움켜쥐어야 했다.

    "이윤세..."

    완은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완의 말이 들리기라도 하는 듯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린다. 완은 요 이틀 간 그래왔듯이 

    가만히 윤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이다.

    "음..."

    작은 신음성에 완은 후다닥 손을 땠다. 잠을 깨워버렸나 했지만 윤세는 몸을 몇 번 뒤척이기는 했지만 눈을 뜨진 않았다.

     잠결이라 아픈 것도 모르는지 끙끙거리면서도 기어이 몸을 둥글게 말고야 만다. 저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낫긴 나았나 보다.

     가장 좋아하는 잠버릇을 하고도 끙끙거리는 윤세가 어쩐지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하며 완은 아프지 않도록 가만히 그의 몸을 주물러 주었다.

    뭔가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윤세는 눈을 떴다. 고소한 참기를 냄새에 섞여 희미하게 탄내가 난다. 뭐지?

    "아, 씨발..."

    윤세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움직임이 아까보다 훨씬 낫다. 몇 번 눈을 깜박이자 주방 쪽에서 서성이는 인형(人形)이 희미하게 보인다.

     탄내가 좀 더 심해졌다.

    "젠장..."

    벅벅 머리를 긁던 그가 신경질 적으로 돌아서다 윤세를 보고 몸을 굳혔다.

    "어..... 일어났어?"

    표정은 안보이지만 말투에는 상당히 민망함이 묻어 나온다.

    "......후드 틀어."

    "응?"

    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 가스렌지 위에 후드. 팬 말야."

    "아..... 이거?"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라는 듯 요리조리 기계를 살피던 완이 겨우 후드를 작동시키고 침대로 다가왔다.

    "배... 안고파?"

    ".......그다지."

    "그래도 든 게 없으니 뭐라도 먹어야 할텐데..."

    말을 흐리며 완은 흘깃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아줌마가 죽을 좀 끓여 놓고 가긴 했는데..."

    "......."

    아무래도 탄내의 정체는 죽이었나 보다.

    "됐어. 어차피 생각 없으니까...."

    윤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심하게 삐걱거리긴 했지만 전혀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뭐 하는 거야."

    끙, 하고 침대 밑으로 발을 내리자 완이 얼굴을 굳혔다.

    "그동안 신세졌다."

    "당신 아직 안 나았어. 그냥 누워."

    완의 목소리가 무섭도록 낮아졌지만 윤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맨 정신으로 남의 집에 계속 신세질 정도로 뻔뻔하진 않아."

    "그게 왜 신세야! 그건 전부-!"

    모든 시발점이 자신이라고는 완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윤세는 픽 웃어버렸다.

    "그래? 그럼 내가 신세진 건 네가 빚 갚은 거라고 하자. 됐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핑 돌았지만 비틀거릴 정도는 아니라 윤세는 태연하게 완을 스쳐 지나갔다.

    "이윤세..."

    등뒤에서 들린 음침한 목소리에 윤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냥... 몸이 다 나을 때까지만 있어 달라는 거야. 그것도 안 돼?"

    "말했잖아. 그 정도로 뻔뻔하진 않다고."

    서로 등을 돌린 채라 보일 리 없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부스럭거리며 완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맨 정신이 아니면 되겠군."

    "뭐-!?"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앗, 하는 사이에 윤세는 거칠게 어깨를 잡혀 침대위로 내동댕이쳐졌다.

    "윽..."

    몸이 크게 튀어 오르며 덜 풀린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다. 몸을 바로 잡을 겨를도 없이 완이 그 위를 타고 눌렀다.

    "뭐 하는 거야!"

    "맨정신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했지? 그럼 정신 없게 만들어 주지."

    좌악-, 잠옷 대용으로 입혀 놓았던 희색 면 티셔츠가 목덜미에서부터 찢어졌다. 채 아물지 않은 흔적이 보랏빛이 되어 

    윤세의 몸을 여전히 물들이고 있었다. 완은 윤세의 목덜미를 덥석 깨물었다. 애무의 수준이 아닌 그야말로 피가 나올 정도로.

    "아악-!"

    화끈한 통증에 이어 강한 압력으로 목살이 빨렸다. 빠는 건지 물어뜯는 건지 무지막지하게 목을 씹어대는 완의 행위에

     윤세의 몸은 고통과 혐오감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놨-!!"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 마구잡이로 휘두른 팔다리가 완의 몸을 내리쳤지만 완은 그저 목에 묻었던 머리를 들었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개새끼-! 뭐 하는 짓이야!"

    퍼억, 하고 팔꿈치가 완의 턱에 박혔다. 가뜩이나 울긋불긋한 곳에 정통으로 박혔으니 꽤나 아팠을 텐데도 완은

     내지른 방향으로 잠시 고개만 돌아갔을 뿐 윤세를 누르고 있는 힘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날뛰는 윤세의 팔을 잡아 머리위로 눌렀다.

    "놔앗-!!"

    팔다리가 눌려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나 윤세는 온 몸으로 반항했다. 아무리 작고 힘이 없다고 해도 성인남자.

     (게다가 윤세는 결코 작은 키도 아니다.) 그가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치자 힘으로 누르고 있는 완의 얼굴에도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기실 미친 듯이 날뛰는 윤세의 몸은 누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그것은 맨 처음 완이 녀석들을 시켜 윤세를 강간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었지만 둘 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이를 악물고 몸부림치는 윤세를 누르던 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커헉..."

    내장이 뒤집히는 충격에 윤세의 몸이 반으로 접혔다. 완이 잡고 있던 손을 풀었지만 배를 움켜쥐고 

    모로 누운 윤세는 컥컥 짧은 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런 윤세를 완은 손쉽게 뒤집어 잠옷 대용의 얇은 

    체육복을 속옷 째 끌어 내렸다. 뽀얀 엉덩이가 눈앞에 드러났다. 밑에서 미약한 저항이 계속 되었지만

     배에 손을 넣어 허리를 들어올리고 뒷통수를 침대에 누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저지했다.

    "으..."

    윤세의 입에서 정체 불명의 소리가 세어 나왔다. 몸에 아로새겨진 거친 흔적에 대한 기억은 처음에는 무감각으로, 

    다음에는 극심한 혐오감으로 다가왔다. 윤세의 머릿속에는 그저 '안 돼.'와 '싫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큭..."

    꼼짝도 할 수 없이 눌린 상황에서 윤세는 토할 것 같이 극심한 공포심과 혐오감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드러난 엉덩이가 서늘하다. 항문 근처에 뜨거운 열기가 와 닿았다.

    "놔아..."

    미약한 항의는 간단히 무시되었다. 무자비하게 입구를 열고 들어오는 뜨거운 불기둥을 끝으로 윤세의 의식은 백지가 되어 날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