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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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젠장... 빌어먹을..."

연신 입 속으로 중얼중얼 불만을 늘어놓는 완을 견디다 못한 윤세는 찌릿 뒤를 째려보았다. 순식간에 완은 입을 다물었지만 불만을 가득 품고 

툭 튀어나온 입은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그래도 저 정도는 안보면 된다고 생각한 윤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씹...'

터져나오는 불만을 속으로 삼키며 완은 품안의 물건을 다시 추슬렀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걸 들고 윤세를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놈의 선생은 만날 때마다 점점 사이코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며 완은 윤세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윤세의 잡은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완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거 내려놓으면 죽여버릴꺼야!"

스스로도 조금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소리를 들은 윤세의 얼굴에 슬쩍 웃음이 감돌았다.

"날 죽이기 전에 충분히 네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

"바이크에 이미 지문 다 묻었어! 경찰이 가만있을 거 같아?"

"아..."

윤세는 오토바이를 잡은 자신의 손을 한번보고 완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알려줘서 고맙군. 내 지문은 깨끗이 닦고 가지."

저놈의 선생이!

"자, 잘못했어!!"

윤세가 손을 슬슬 놓자 완은 다급하게 소리질렀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호오?"

슬쩍 눈썹을 치켜 떴지만 윤세는 오토바이를 끌어올리진 않았다. 그 무언의 압박 속에서 완은 다시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뭐?!"

고개를 숙이고 웅얼거리듯 말하던 완은 번쩍 고개를 들고 윤세를 노려보았다.

"당신, 정말..."

"선.생.님."

완은 이를 갈았다. 저놈의 선생은 자신의 유리한 위치는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이가는 소리가 상당히 귀에 거슬리긴 했으나 윤세는 일단 만족하고 바이크를 일으켰다.

"젠장! Shit!!"

자리에서 일어나 윤세에게 바이크를 넘겨받은 완은 곧장 그것을 팽개치고 거세게 발로 걷어찼다. 윤세는 시큰둥한 얼굴로 완을 쳐다보았다.

이 더운 여름에 기운도 좋지.

"다했냐?"

땀을 줄줄 흘리는 완은 찢어진 바지 사이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완은 윤세를 흘깃 보며 거칠게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다했으면 그거 챙겨라."

"......?"

무슨 뜻이지 몰라 멀뚱히 윤세를 쳐다보자 그는 친절히 손을 들어 지적해 주었다.

"저거. 네가 그랬으니 책임 져야지."

윤세가 가리킨 것은 마트 로고가 적힌 찢어진 비닐.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

.........저걸 어쩌라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완에게 윤세는 단호하게 말했다.

"주워."

윤세가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완은 조금 놀란 눈을 했다. 분명히 집으로 간다고 했었다. 이런 지하에도 집이 있나...? 

그런 완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는 듯 윤세는 반 지하의 철문 앞에서 봉지를 내려놓고 열쇠를 꺼냈다.

"......"

잠시 윤세의 행동을 지켜보던 완은 눈살을 찌푸렸다. 윤세는 벌써 5분 째 대문의 자물쇠와 씨름 중이었다. 눈이 나쁜 것도 알고, 

안경이 없다는 것도 알겠는데, 저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닌가.

"젠장, 현관 앞에서 날 새겠군. 이리 줘."

완은 열쇠를 빼앗아 문을 열었다. 한 소리 듣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행이 윤세는 별 말이 없었다.

원룸 형식의 윤세의 방은 각오했던 것보다 더 작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작은 개수대가 보이고 그 맞은 편에 책상과 막 빠져 나온 듯한 

어수선한 이부자리들이 보였다.

"화장실은 저기. 바지는 찢든지 벗든지 하고 상처는 씻고 나와."

구입한 물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식탁 대용으로 쓰는 거 아닌지 의심스럽다) 펼쳐진 이부자리를 척척 접어 구석으로 밀어놓은 윤세가 

개수대 옆에 나 있는 조그만 문을 가리켰다.

안으로 들어간 완은 운신하기도 힘들 정도의 공간에 질려 버렸다.

이거야 원, 폐소 공포증이 없는 게 다행이군.

바지를 상처가 보일 정도로 찢어 놓고 샤워기를 찾던 완의 눈에 욕실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쓰레기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더 정확히는

 쓰레기 봉투 속에 있는 피 뭍은 천뭉치에.

"......."

이 집으로 돌아와서 윤세는 또다시 피를 흘린 걸까. 그러고 보니 꽤 피곤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콕콕, 하고 다시 심장이 

조여오는 것을 느끼며 완은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천장 안 무너지니까 앉아라?"

하여간 말뽄새 하고는.

싱크대 위에 올려져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서는 정체 모를 무언가가 보글거리며 끓고 있었고, 개수대에는 몇몇 야채들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완은 대충 주위를 둘러보다 이불더미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앉았다. 그 앞에 윤세가 약통을 들고 앉았다.

"다리 내밀어."

"됐어. 필요 없...!!"

그러나 완은 말을 맺지 못했다. 윤세가 상처 위에 소독약을 들이부어 버렸기 때문이다.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하얀 거품만큼이나 상처는 지독하게 쓰렸다.

"으윽."

"사내새끼가 이 정도에 비명을 지르냐."

당신이 한 번 당해봐! 라고 소리치려던 완은 불과 며칠 전에 윤세가 당했던 일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현관 앞에서 열쇠와 

씨름하던 것과 다르게 윤세는 능숙하게 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였다.

"......잘하네."

"뭐, 익숙하니까."

윤세는 다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저 익숙하다는 말이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치료할 일이 잦았다는 건지, 그가 다치는 일이 잦았다는 건지 알 수 없어 완은 그저 침묵했다. 

둘 중 어느 것이든 기분 나쁘기는 매 한가지라고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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