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27/45)
  • 며칠동안 하루종일 호수가를 맴돌았다.....

    손에 쥔 님펜브루크 성이 땀에 축축히 젖어 있었다.

    카토가 준 것이었다....

    카토가 준 하나의 선물.... 

    호수에 빠뜨리고 싶은 욕망과, 그것을 붙잡는 무엇인가 때문에 벌써 수

    십번도 쥐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었다..

    "흥.. 여기서 뭐하는 거지? 토지?"

    여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키라가 그곳에 서 있었다.

    토지는 아무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기분 나쁜 인물이다.........

    "카토가 미친듯이 널 찾던데....... 여기 있을 줄은 몰랐겠지..."

    "...................."

    "네가 카토의 동생이라며? 의붓동생..."

    "..............."

    "히틀러라고? 어른을 놀리다니..."

    ".............."

    "벙어리도 아니면서 이만 입을 떼시지......"

    토지는 텅 빈 눈으로 고요한 호수를 바라다 보았다. 이 여자의 향수냄새

    가 싫다. 비꼬는 듯한 말투도 싫다..

    "시끄러."

    "뭐야?"

    "..............."

    "너, 재수가 좋은걸.. 카토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널 봤으니까 말야.. 이

    것도 계획인가? 재산을 한몫 잡으려는?"

    토지는 벌떡 일어났다. 더이상 역겨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을 가치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두고 봐.. 더이상 카토에게 가까이 가면 내가 두 눈을 파 버리겠어.."

    그 사나운 말투에 토지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잠시 키라는 움찔 하더니면 재수없는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나는 너와 친척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이쯤에서 그만두지.... 

    난 카토와 결혼할 몸이라구....."

    자기 할 말이 끝났다 느꼈는지 곧장 그 또각거리는 하이힐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풀썩 잔디에 주저 앉았다.

    몸을 벌러덩 뒤집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은.... 아무 의미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 크게 다가오는 그 형상에 토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

    다..

    복잡하다. 

    뭐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카토가 나의 형이라고....?

    그렇다면 나와 섹스를 하던 그것은 누구란 말인가.....

    이제야 조금 이해할 듯 싶었다.

    카토는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숙한 미소는 모두 거짓이었고, 순진하다고 느꼈던 그는 가짜였다..

    그가 자신과의 섹스를 겁내는 척 했던것은, 단지 피가섞인 형제와의 잠

    자리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토지를 덮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카토라는 것을 알았다.

    "토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한참을 찾았잖아....."

    ".................."

    "아버지가 널 찾으셔....."

    녀석의 가증스러운 목소리도 이젠 지겹다.

    그래, 네가 날 갖고 놀았다면, 나도 널 갖고 놀아주지...... 키라와 결혼을 

    할 거라고? 못하게 해 주겠어..... 마음으론 어쩔 진 몰라도, 몸은 토지를

    원하니까......

    좋아한다고 속삭이던 그 목소리가 또다시 토지의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이젠 견딜만 하다.

    비록 가슴은 찢어지지만, 세상이 끝난건 아니다...

    "널 원해."

    "토지.......?"

    토지는 카토에게 다가가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토....토지....."

    그의 입술을 열고 따스한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그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한순간, 카토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듯 싶었다. 하지만 곧 포기했는지, 

    격렬하게 토지입술에 대응했다.

    그래.... 카토..... 넌 이런 놈이야..... 더러운 자식..!!

    토지는 수없이 머리속으로 되뇌였지만, 입술에 와 닿는 그의 달콤함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의 혀는 농밀하게 토지의 입속을 더듬었고, 토

    지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토지....... 토지............ 널 원해................"

    뜨거운 입김이 토지의 입술 사이로 들어왔고, 토지는 그의 향취를 깊게 

    들이마셨다....

    카토를 원했다.

    하지만 쓰라린 배신감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거친 몸이 토지에게 맞닿아.... 둘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 순간 만큼은 모든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뜨겁다..........  

    열기가 얼굴을 화악 뒤덮고, 토지는 나락이 어느만큼 깊은 곳인지를 알

    게된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옆에서는 카토가 토지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다...

    뜨거운 손길에.. 토지는 한숨을 내뱉는다.....

    카토는 토지가 아는 카토가 아니었다.  거칠고, 차갑기 그지 없는 놈이

    다....

    무심코 토지를 쓰다듬는 카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깨끗한 

    손가락이다...

    "토지..........."

    ".............."

    "미안..........."

    ".............."

    "도대체 왜 날 떠난거야......."

    "..............."

    "너를 이토록 원하는데..........."

    토지는 참을 수 없어 귀를 틀어막았다....

    "안돼.. 들어.... 들어야 해....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 지.... 내가 널 얼마

    나.........."

    "잠이나 자...."

    더이상 듣기 싫어, 애써 심드렁한 목소리를 자아내며 이불을 푹 뒤집어 

    썼다.

    카토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만 토지를 안락한 품으로 끌어당겼을 뿐이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나를 어루만지는 이것들이 카토의 진심이라면..........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카토는 토지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에 잠긴 듯한 눈은 오로지 토지만을 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베스트 셀러 작가에서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을 후계자로 변신해 있었

    다.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일이다...

    하지만 더이상 글을 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토지.........

    카토는 토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인 줄 알고 있었다.

    처음엔 게이들의 생활을 소설로 담고자 토지에게 접근했다....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태어난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토지를 경멸했었다.

    쓰레기나 다름없다고.... 무시하고 싶었다......

    비둘기 사이로 손가락을 내뻗으며 무심하게 머리를 휘날리는 토지에게 

    매혹당해 버렸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래서라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정당화 시켰으

    나.... 그것은 변명일 뿐이었다....

    토지에게 빠져버린 것이다....

    창 밖으로 어스름하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카토를 짖누르는 압박감이 카토의 목을 죄여왔다.

    키라는 어려서 부터 옆집에서 산 친구로서, 카토의 모든것을 낱낱이 알

    고 있다.... 그런 키라는 자신이 당연히 카토의 신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

    하고, 아버지 역시 그렇다....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어머니는 토지를 아직 모른다.

    만약 어머니가 토지를 아는 날엔.... 그렇다면.....

    머리속에 혼돈만 가득찰 뿐이다.

    "너는 누구지?"

    토지는 슬며시 눈을 떴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자신의 침실맡에 서서는 소리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여자는 누구지?

    "토지."

    토지는 짜증스럽게 내뱉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할망구가 시끄럽게 떠들고 난리야... 

    "뭐라고? 카토!! 카토오!!!!"

    여자가 시끄럽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카토를 불러댄다.

    그러고 보니, 침대에 있어야 할 카토가 없다.

    "카토오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카토가 들어왔다.

    "도대체 이 더러운 자식은 누구냐?"

    더러운....? 

    그 말에 기분이 상해 여자를 노려보았지만, 상관도 하지 않는 눈치이다.

    "어머니...."

    아하, 

    이 고약한 심보의 여자가 카토의 어머니군.... 

    토지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몸을 옮겼다.. 시트가 벗겨지고 벌거벗은 나

    체가 드러났다....

    기지개를 쭉 펴고는 나른하게 욕실로 걸어가자 카토의 눈이 순간 번쩍 

    한 듯 싶었다....

    "맙소사!! 카토!!"

    "제 친구 입니다..."

    "뭐라고?"

    토지는 욕실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친구 좋아하네....

    그리고는 휙 뒤를 돌아 말한다..

    "난 카토의 동생이야. 이복동생."

    충격에 멍하니 서 있는 둘을 무시한 채 토지는 욕실로 들어가서 차가운 

    샤워를 했다.

    무엇인가 부서지고 고함소리가 들려왔지만, 알 바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그 둘은 아직도 시끄럽게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망할 자식!! 죽여버리겠어!!"

    카토의 어머니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토지는 유유히 옷을 입을 뿐이었다.

    "더러운 매춘부의 튀기 같으니!!"

    그 말에 멈칫한다.

    그리고는 새까만 눈을 들어 여자를 노려보았다.

    "엄마를 욕하면 죽여버리겠어."

    토지의 사나운 말에 여자가 잠시 머뭇 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어 지저분한 욕설이 끊임없이 계속 된다...

    옷을 다 갈아입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토지!!"

    "카토!!"

    웃기지 않은가?

    카토는 토지를 외치고, 카토의 어머니는 카토를 외친다...

    그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왔을 때 토지는 차가운 벽에 얼굴을 맞

    대었다.... 뜨거운 열기를 벽돌이 식힌다..

    조금만 더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도 토지는 카토 어머니의 목을 졸라

    버렸을 터이다.....

    숨을 몰아쉬고는 가만히 주저앉았다.

    카토를 만나고 부터다.

    카토를 만나고 부터 토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모든것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카토는.... 토지를 힘들게 한다.

    다시 짐을 싸서 저택을 나왔다. 더이상 카토 곁에 있다가는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공장도 그만두고 근처의 게이들이 오가는 보호시설로 들어갔다.

    토지는 밤마다 녀석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까만 눈동자에 투명한 피부...... 그런 토지를 건들이지 않는 놈들은 한명

    도 없었다.

    물론 녀석들과 섹스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행여 누군가가 토지의 몸에 손이라도 댈라치면, 토지는 날카로운 고함소

    리와 함께 주먹을 날렸다.

    예전엔 느끼지 못한 감정이 토지에게 생겨났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카토가 그리워졌다.

    녀석과 자신은 형제라는것을 매번 잊고, 매번 깨달았다.

    잔잔한 하늘은 토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그곳 어딘가엔 어머니가 있

    을 것만 같았다.

    토지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어머니가 이렇게도 원망스러웠던 것은 처음이다..........

    방황하는 어린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린시절의 토지처럼, 이리저리 헤메고 있었다.

    이런감정인가........?

    카토가 나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이런것이란 말인가?

    단지 동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무척이나 차가운 그 감정....

    토지는 땅바닥에 고개를 떨구고는 킥킥거렸다..

    스스로가 비참할 지경이었다.

    "토지!!!"

    환청인가 싶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애타게 찾는듯한 카토의 음성이....

    환청인가보다...

    하지만 환청이 아니었다.

    카토가 거기 서 있었다.

    녀석은 두 팔을 벌리고는 토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저렇게 서 있으면 토지가 달려가서 반기기라도 할 줄 아는가보다..

    그런 착각은 버리라구....

    토지는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리를 빠져나왔다.

    "토지!!"

    손목을 잡는 카토... 그리고는 어느새 카토의 품속에 들어가 있다.

    형.........

    그는 형이다.........

    안타까운 영혼이라는 것이 딱 들어맞는 듯 싶다.

    카토와 토지는 금지된 감정을 서로에게 갖게 된 것이다......... 아니...... 적

    어도 토지는.............

    멍하니 품에 안겨 머리카락에 와 닿는 카토의 입술을 느끼게 된다... 그 

    뜨거운 입맞춤에 나부끼는 머리카락마저 뜨거워진다.....

    눈을 꼭 감았다.

    카토를.... 사랑한다.....

    "토지........"

    카토는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별장으로 토지를 이끌었다.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이끌려 간다.

    녀석이 거짓이라도, 녀석이 자신의 형제라도....

    토지는 어찌할 수 없다.

    그를 향한 감정은 이미 뼛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되어, 도망갈 수 조차 

    없다...

    "토지. 너의 흑옥같은 눈동자가 좋아...."

    연거푸 입술을 부딪히며 가만히 속삭이는 카토를 보노라면, 가슴 한구석

    이 지끈거린다........

    어찌할 수 없다....

    둘은 미친듯이 서로를 탐험했다.

    알고, 또 알아도..... 점점 그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다.

    카토가 귓속에 속삭이는 말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지

    만, 토지는 그를 막을 수 없다.....

    뜨거운 입맞춤과 함께 카토가 토지의 안에서 요동쳤다....

    낮은 신음소리와 간헐적으로 비틀대는 심장박동.....

    이렇게 서로를 꼭 껴안고 있어도..... 카토가 그립다.... 그의 숨결이 그리

    워 미칠 지경이다.....

    "토지....아.....으......"

    "....하아....... 앗.....읏......아......"

    절정에 다다른 순간,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

    다.. 그것은 환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