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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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걸까?

혼란

혼돈

고뇌

좌절

'너는 누구니? 참 예쁘구나'

'나는 여우야'

'나랑 놀지 않겠니? 나는 지금 정말 슬프단다...'

'나는 너와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 지지 않았거든..'

'길들여진다 라는 말이 무슨뜻이지?'

'그건 사이좋게 된다 는 말이야'

'무슨말인지 알 것 같구나.. 꽃이 하나 있었어.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것 

같아..'

'만약 네가 나와 사이좋게 지내준다면, 나는 기분좋게 햇빛을 쬐는 듯한 

기분으로 살 수 있을거야. 다른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얼른 

굴속에 들어가 숨는다. 하지만 너의 발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음악이라

도 듣는 듯한 기분이 되어 굴 밖으로 뛰쳐 나올거야.'

여우는 계속 말했습니다.

'저 건너편에 보이는 보리밭말야, 나는 빵을 먹지 않는다. 그러니 보리따

위는 내게 필요가 없어. 그래서 보리밭을 바라보아도 생각나는 것은 아

무것도 없지, 뿐만아니라 나는 저것을 보면 공연히 마음이 우울해 진

다. 그러나 누렇게 익어 금빛을 띤 보리를 보면 너의 머리카락을 생각

하게 될거야... 보리밭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도 기쁘게 들리겠지....'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하는거

야.....'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어떤것을 잘 보기 위해서는 마음

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

지 않는 법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어린왕자는 잊지 않기 위해 되풀이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다그치는 카토..

토지는 묵묵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토지?"

"나갈거라고.... 인사하러 왔어."

"도....도대체......"

"그동안 고마웠어."

"왜.......왜 나가려는 거야!"

녀석이 또 더듬대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에 보잘것 없는 짐을 챙기다가

도 문득 손이 멈춰지는 것이었다.

"신경쓸 것 없잖아."

토지는 짜증스럽게 억눌린 말을 내뱉고는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토....토지!!"

"더듬대는 말투도 지겨워. 너따위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지, 생각하는 

것도 싫어. 짜증나. 니가 꺼지기 전에 내가 가버릴 거야..."

진심이었다.

정말 진심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멈춰지는 발길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카토녀석은 멈칫거리다가 토지를 향해 한발자국 다가왔다. 뒤에서 느껴

지는 카토의 숨소리.... 다가오는 팔.... 그 모든것을 뿌리칠 수가 없어

서.... 

토지는 재빨리 몸을 떼고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악마에게 쫓기듯......

녀석을 떠났다....

혼혈아

그 때의 일은 마치 한장의 사진처럼 토지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그 후로 2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가끔씩 그가 생각났다.

아니, 매일같이 녀석 생각을 떨궈버릴 수가 없었다.

토지는 뮌센을 떠나 도르트문트에 와 있다...

도르트문트는 독일 최대의 맥주 생산지고, 뢰벤브로이사의 공장들이 모

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뢰벤브로이는 독일 최고의 맥주 회사이다. 칼스버그, 하이네켄에 이어 

이번엔 체코의 버드와이저와도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윗사람들의 일이다. 토지는 맥주가 될 보리들을 나

르는 일만 주력할 뿐, 더이상 알고 싶지도, 알수도 없다.

길거리에서 누군가의 돈을 받고 하룻밤을 보내는 일에 스스로가 더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카토가 아닌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을 댄다는 사실이 못견딜 만큼 싫었

다.

덕분에 토지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도르트문트는 토지와 같은 

소년들이 많았다.

이젠 소년이라고 말 할 수 조차 없을만큼..... 토지는 많이 자랐다.

골격은 눈에띄게 발달했고, 빛나는 눈동자는 더더욱 그 빛을 발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이름모를 그리움에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생각에 잠기고 있

는 토지였다.

눈을 비비다가도.... 마치 옆에서 카토가 만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무심코 손을 내리는 토지였다.........

그럴 리 없겠지만....

토지는 카토의 생각으로 잠을 못 지새운 적도 많았던 것이다...

비록 토지를 이용해 먹었던 카토였지만, 토지는 카토의 하나하나를 아직

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못견디게 힘들었다...

"토지, 이것좀 압력탱크에 집어 넣어봐!"

인부 중 한명이 토지를 향해 소리쳤다.

더운 김이 뿜어져 나왔고, 토지의 이마는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

다.

참으로 더웠다.

그랬기에 주변이 시끄러워 지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는데만 열중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주일에 한번씩 회장내외들이 공장을 점검하러 왔다.

그것은 토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었기에, 토지는 별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

그 중에 아는 얼굴이 있다면.......

그것도 그것이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얼굴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맥즙을 집어넣고, 땀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을 때,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 

알 수 없는 그리움......

'토지....'

누군가 낮게 중얼거리는 듯 했다.

뒷통수가 따갑도록 시선이 느껴졌지만, 웬지 고개를 돌리면 안 될 듯 했

다.

엄청난 일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유혹에 못 이겨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카토였다.

놀라 서로 멍... 하니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카토는 무엇인가 달라져 있었다. 

말쑥히 빼 입은 양복과, 뭔가 달라진 단호한 얼굴...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토지는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는 포커 페이스로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심장은 미친듯이 두근거리고 있었지만, 녀석에게 그것을 들킬수는 없는 

일이었다.

"카토!"

미처 깨닫지 못했던 회장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카토를 부르고 있었다. 

아주 다정스런 목소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계속 되었다.

"어떠냐.. 본 소감이..."

듣기 싫어도, 자꾸만 들리는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 쪽을 향해 쫑긋 세워지는 귀는 막을길이 없었다...

녀석과 회장이 무슨 관계일까..

녀석은 이곳에 취직한 것일까?

하지만 녀석은 소설가다.. 그런 녀석이 왜 이곳에서 알짱거리는 것일까?

문득 손에 묻은 맥아 알갱이 들과, 땀 범벅이 된 얼굴, 흙투성이의 옷.... 

남루한 장화 모두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녀석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그 길로 공장 밖을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런 행동을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카토의 시선이 계속되어 느껴졌지만, 토지는 뒤를 돌아 보지 않았다.... 

그들이 공장 밖을 떠날 때 까지도... 토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녀석은 회장과 함께 나갔다.

2년만에 만난 것이었다.

토지는 공장 안쪽을 조금 더 들어가야 있는 압력탱크에 걸어들어갔다. 

그 쪽은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도 압력탱크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져 있

기에 남들 눈에 띄기가 쉽지 않다..

'바보 같은 게..... 병신 같은 게....'

토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말이나 더듬대는 새끼가...... 예전에 그렇게 날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굴

더니..........'

분노가 점점 커졌다.

녀석이 인사조차 하지 않고 나갔다는 것이 묘한 모순으로 토지를 열받

게 했다.

나는 도대체 카토녀석에게서 무얼 원하는 것일까....

"토지, 즙이 다 흘러내리고 있잖아!!"

공장장이 소스라치게 소리쳤다.

토지의 성격을 아는 공장 사람들은 토지를 어려워 한다. 

공장장에게 있어 토지는 눈의 가시다...

언제라도 잘라 버리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녀석은 토지를 갖고 싶어했고, 언젠가 토지가 주먹을 날렸을 때, 어찌 

할 바 모르고 벌벌 떨기만 했었다.

차마 자자는 말은 못하고 대신 토지가 사소한 실수를 할 때마다 약점을 

잡자는 심보 였다.

토지는 짜증이 치솟아 맥즙을 조금 더 떨구었다...

"토지!"

녀석이 펄펄뛰는 모습이 웃겨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카토에 대한 분노 탓에 충동적으로 공장장 녀석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토지의 손길에 공장장이 깜짝 놀라는 듯 했다.

스스로가 역겨운 자식으로 되돌아 가는 순간이었다......

그래, 난 이런놈이야... 뭣하러 내가 정조따위를 지키며 나를 생각지도 

않는 카토녀석 따위만................

'좋아해......'

토지는 귀를 막았다..

'좋아해.....토지......'

메아리 처럼, 카토의 낮은 그 목소리가 귓가를 멤돈다...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카토 따위에 이렇게 연연해 하느냔 말이다!!

토지의 갑작스런 행동에 공장장이 헤벨쭉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토

지는 이미 현실에서 멀어져 있었기에 공장장에게 신경따위 쓸 시간이 

없었다....

"토지..."

녀석이 토지의 몸을 더듬었다.

하지만 토지는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왜 카토를 이토록 잊지 

못하는지에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토지도, 공장장도...

깜짝놀라는 순간이었다.

"사..... 사장님!!"

사장이라니........

저 말더듬이가...........

카토녀석이..... 사장이란 말인가?

토지는 기가 막혔다.

녀석은 차가운 눈빛으로 공장장을 노려보고 있었고, 공장장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토지는 카토의 면전에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카토는 그 손길을 재빨리 피했고, 그 

탓에 토지는 바닥에 쓰러져야 하는 위기를 맞이했다.

"오랜만이야....... 토지...."

자신의 몸을 붙잡고 나직히 속삭이는 카토는 어딘지 모르게 예전과 달

라져 있었다. 

"이거...... 놔!"

토지는 고집스러게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전류를 타고 솟아오르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몸이..... 자신의 의

지를 배반하고 있었다.... 토지는 카토의 손길을 원했다... 녀석의 다정스

러운 밀어들을 원했다...

카토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의 연한 갈색 눈동자가, 조금 더 짙은 빛이 되어 이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명치 끝이 아려왔다.

"내버려 둬.."

"그렇게 할 순 없어...."

서로를 노려본다.

녀석은 조금 더 강압적으로 변했다.

말로 표현 할 순 없지만, 어떤 위압감이 토지를 짖누른다. 입을 열 수도, 

팔을 뿌리칠 수도 없다....

"꺼져!!"

마침내 토지는 소리쳤다.

매쾌한 보리내음이 토지의 코를 찔렀다.

"꺼지라고!! 꺼져!!"

발악하듯 소리치지만, 카토는 도무지 손을 놔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침을 뱉었다.

카토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토지를 이렇게 비참한 기분으로 몰아넣는 카토가 미웠다.

녀석은 천천히 얼굴에서 침을 닦아낸다.... 그리고는 토지의 얼굴을 움켜

쥔다...

"왜.... 떠난거야.... 그리고.... 왜.. 이곳에 있는거야...."

말더듬이 카토.

순진하기 그지 없던 카토...

토지만을 바라보던 카토.....

그는 어디 있는 거지?

"네가 싫어...."

"..................."

토지의 말에 카토는 씁쓸한 웃음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공허한 웃음을 

흘린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토지는... 흔들리는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내쏟는다....

어리석다.

태어나서 자신에게도 눈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토지는 

이 상황의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어 스스로를 원망한다...

"카토, 뭐하는......"

회장이었다.

토지는 재빨리 느슨해진 손아귀에서 벗어나 도전적인 눈빛으로 회장을 

바라보았다. 토지의 눈에는 아직도 투명한 액체가 고여있다....

회장은 잠시 얼어붙은 듯, 그대로 토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

이 싫어, 토지는 고개를 돌렸다.

"너......너는......."

회장은 그렇게 소리치고는 가만히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회장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노인네가 쓰러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고, 주위에서 그를 향해 

달려가는 소리마저 메아리 처럼 느껴진다...

카토의 마지막 눈빛도 아련하다....

원망 어린 눈길......

그것은......... 무엇일까............

왜 자신이 이곳에 와야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커다란 저택은 마치 음산한 성처럼 토지에게 다가왔다. 화려한 샹드리에

와 장식품들, 그림들.... 모든것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카토는 회장이 누워있는 방안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왜 자신이 여기

까지 쫓아와야 하는 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토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비볐다.

아무 생각도 없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모든것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토지는 마음을 가담을 수 없었다.

왜 회장이 토지를 보고 그렇게 놀란걸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들이 부산하게 방안을 왔다갔다 한다.

사람이 쓰러졌으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 정석 아닐까?

도대체 이 큰 집안에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그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카토의 아버지가 쓰러졌던 말던.... 내게는 알 바 아니다.

카토를 다시 만났다는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채, 이런일이 벌어진 것이

다.

내가 무슨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카토를 다시 본다면, 이번엔 그에게 

무너지듯 쓰러질 것 같았다.

그에게 의지하게 되다니.......

낄낄거리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하지만 마치 어린애 마냥 그에게 기대고 있다.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어디 가는 거야?"

일어서기가 무섭게, 카토의 음성이 들려온다.

"집"

"집? 네게 집이 있어?"

무시하는 건가?

토지는 뒤를 돌아 카토의 눈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눈빛엔 걱정하는 기

색만 보일 뿐이다.

"신경쓰지 마. 네가 걱정할 게 아냐."

"토지........ 잠깐만 들어와 봐... 아버지가... 널 찾으셔..."

토지는 어리둥절해 그를 바라보았다.

왜 회장이 날 찾는거지?

"날 왜?"

"들어와 봐....."

토지는 그 음성에 기가 눌려 쫓는다.

어린애 마냥 쫓아간다....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침실에 회장이 누워있었다.

백발의 노인네가 참으로도 복에 터졌군....

토지는 자신의 아버지라는 인간이 죽던 순간을 기억해 냈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신문지 바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에 비하면.....

저 노인은......

토지는 멍하니 회장을 바라보았다..

"토......지............"

회장이 손가락으로 토지를 불렀다. 

토지는 다가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죽음은 보기 싫다.

토지의 어머니도... 토지의 아버지도... 모두 저렇게 죽었다.... 그 영상이 

토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고, 토지는 다시 뒷걸음질 쳤다..

"어서 가봐... "

카토의 음성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지만, 토지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노인네의 침대맡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되었다.

"너구나...."

노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친숙한 눈매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카토의 아버지라 그런가?

그는 낯설지 않다....

전혀 낯설지 않다.........

"꼭 빼닮았군... 그래......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토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라니....

"토지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토지는 깜짝 놀라 카토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지? 

토지는 자신이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해준 적이 있는 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 노인이 어머니를 알고 있는 지, 그것이 더더

욱 궁금했다.

"그래.... 그렇군.... 그랬겠지....... 나는 그녀에게 몹쓸짓을 했어..... 너는.... 

몇살이지.......?"

"...................."

"이제 막 19살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카토가 말을 이었다.

"19살...... 그렇다면......"

노인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세는 모양이다.....

"나를 떠나고 곧장 다른 사람을 찾은건가?"

토지는 이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노인이 어머니를 알고 있으며, 카토가 나대신 나에 대해 말할 만

한 정보가 어떻게 있는지.....

어머니는... 이 남자의 애인이었단 말인가?

"아닙니다................. 토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뭐?

토지는 카토를 바라보았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손이 부들 부들 떨린다.... 그리고 노인역시 놀라는 눈이다.....

카토는 토지의 시선을 피해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투 속에 감춰진 떨림을, 토지도, 회장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 아들이라고?"

"네.. 토지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 한 채, 뮌센을 방황하고 있

었습니다. 그러다가 토지의 의붓아버지를 만난 거죠... 아니, 겁탈을 당했

다고나 할까....."

잔인한 말을 서슴치도 않고 잘도 내뱉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모두 나를 속였단 말인가?

"어쨌든간에 토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제 의붓동생이죠..........."

견딜 수 없어 토지는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부딪

혀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머,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그것은 키라였다..

"카토, 카토!! 얘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여전히 커다란 코트를 휘날리며 돌아다니는 키라의 눈에는 살기마저 느

껴졌다.

"토지.... 어딜 가려는 거야...."

"카토....."

"넌 어디도 갈 수 없어..."

"............."

"카토, 얘가 왜 여기 있냐니까...."

"토지, 가지마!"

토지는 무작정 저택을 뛰어나갔다. 뒤에서 쫓아오는 카토의 발소리가 미

칠듯이 토지의 머릿속을 울려 퍼졌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지만, 뛰는 것을 멈출수 없었다...

토지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을 당했다...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저주스러운 일들을...........

"토지!"

손이 잡히는 순간, 마치 한마리의 짐승처럼 포효했다.

"이거 놔!!!"

토지는 발버둥 쳤다.

카토를 때리고, 발로 차고... 주먹을 날렸지만, 카토는 꿈쩍도 하지 않았

다.

"토지....."

"내......내...... 의붓형?"

카토의 마음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토지가 사랑한다 느꼈던 그 감정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단지 장난감이 되어버린 듯, 토지의 기분은 공허하기만 했다......

난 형제와 사랑을 나누었다..........

"토지......."

"내버려 둬!!"

토지는 거세게 카토의 팔을 뿌리친 후 미친듯이 정원을 달려나갔다.....

더이상 카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웃기지....

어린왕자는 단지 동화일 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어린왕자를 믿고 있어...

어린왕자는 과연 행복했을까.....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았다 싶었을 때.....

어린왕자가 별에 돌아갔을 때......

장미꽃이 시들어져 있었다면......

이미 장미꽃이 죽고 없었다면.......

그랬다면 어린왕자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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