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놈이 사람들을 사정없이 밀치고 기차 실내 안 복도를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그렇게 비싸다고 자랑을 늘어놓던 양복이
구겨지던 말던 놈의 몸은 땀에 흥건했으며, 눈은 죽일 듯 충혈되어
있었다. 놈이 탄 기차도 출발하려 가동되고 있었다.
놈의 커다란 몸집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썩이며 내 이름을
미친 듯 불러제낀다. 놈의 가래 끓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그때 앞을 가로막던 행인을 참지 못하고 순식간에 퍽, 하고 사정없이 쳤다.
이어 친구인 듯한 남자가 달려들었고 놈은 이젠 발길질까지 해대며
난동을 부려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었다.
기차 안은 놈에 의해 아수라장이었다.
제복 입은 건장한 두 남자가 급히 놈에게 다가갔지만 무지막지한
악력에 속수무책이었다. 어느누구도 놈을 제어할 수 없었다.
수초도 지나지 않아 제복입은 사내들이 무리지어 들어왔다.
강한 힘을 내뿜으며 포효하던 놈은 8명의 건장한 사내들에 의해
사지를 붙잡혔다.
"박병수! 박병수! 이 씨발 새끼! 아악..."
놈은 끌려가면서도 악을 쓰며 미친 듯 발버둥쳤다.
사지를 붙잡힌 채 지랄발광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힘을 발사하는 거구의 몸을 8명이 온전히 제어하기에
힘들었는지, 그들은 놈이 휘두르는 주먹과 발길질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씨발 새끼! 죽여버릴 꺼야! 박병수..."
놈의 분노에 찬 가래 끓는 목소리가 생생히 내 귓가를 파고든다.
탈출했다. 이번에야 말로 성공한 것이다.
다음역인 김천에 내렸다. 택시를 타고 그녀가 있는 대구로 갔다.
돈 오백만원을 들고.
-죽여 버릴 꺼야!
핫, 하고 잠이 깬다.
절규하 듯 내뱉는 놈의 악몽 같은 목소리가 뇌를 식게 만든다.
타닥타닥 창밖으로 비가 내리치고 있다. 몸이 으스스 춥다.
놈에게 벗어난지 한 달이 지났다.
지금 옆엔 명자가 새근새근 달콤한 잠에 빠져있다.
재철에겐 전화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놈에 의해 망가져 있을
친구의 원망이 들리는 듯 했다. 이내 고개를 흔든다.
절친한 친구의 목숨보다 그녀의 미소가 더할 수 없이 소중하다.
그녀 옆으로 바싹 몸을 붙는다. 따뜻하다.
이게 꿈은 아닌지. 모든 게 두렵다.
놈에게 벗어나 대구에 도착하자 마자 그녀가 불러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날 밤 그녀와 달콤한 재회를 만끽할 새 없이 그녀를 데리고
야밤도주를 감행했다. 여전히 티켓다방에서 몸을 굴리던 그녀의 빚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울산,
상주, 진해, 마산 등등으로 죽은 듯 숨어살았다.
서쪽 끝인 바다를 마주보며 민박집에 묵은지 이틀 째가 되고 있었다.
빗소리에 섞여 철썩, 하는 파도소리가 뜨뜻한 아랫목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느낌.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명자의 풍만한 하얀 젖가슴이 멀리서 울려퍼지는 파도소리를 잠재운다.
어느새 잠이 스르륵 든다.
"어디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 그녀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다.
그녀를 믿을 수 없다.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또 도망갈까. 날 버리고 사라질까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생각조차 끔찍하다. 놈에게서 갖고 온 돈을
야금야금 써대며 그녀가 빠져나갈 수 없는, 무인도 같은 곳을 찾으려
머리를 쥐어짜 고군분투할 뿐이다.
놈은 잠잠했다.
감옥에 있을지 모른다. 푸른 죄수복을 입고.
그렇게 난동을 피웠는데.
문제는 명자 빚을 받으러 쫓아다니는 깡패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놈과 달리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돈을 받기 위해서라면 살인이라도 서슴치 않을
존재들이다.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숨어 다녀도 그들은 명자와 날 찾아냈다.
그녀는 거의 한계에 다달은 듯 했다.
그녀 눈가에 칠해진 시퍼런 멍이 여실하다.
이곳 바닷가에 들어서기 전 그녀는 누군가에게 심히 맞아, 여관 옆에
쓰러져 있었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흑..미안해...흑흑...미안.."
무엇이 미안하다는 걸까. 날 사랑하지 않는 게,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게,
날 이용하는 게, 어느 게 미안하다는 거지. 돈이 없는 날 앞으로 버리고
갈 테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의미인가. 모르겠다.
무식한 난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저 명자만 옆에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는데.
그녀의 말 한마디에 돈이 절실해진다.
모든 게 두려워 죽겠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물어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리의 여자처럼 울기만 할 뿐이다.
이런 여자를 왜 사랑하게 된 걸까. 아무리 되뇌어 봐도 알 수 없다.
그저 심장이 말해준다. 그녀 옆에 있으면 숨쉬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절실히 확인해준다.
그리고 끝은 언제나 허무할 만큼 간단했다. 그녀가 사라진 것이다.
방안에 걸려 있는 거울 속 어눌함처럼.
-미안해.
단 한마디였다.
그녀가 늘 칠하고 다니던 연분홍 루즈로 쓴 글씨.
비는 그쳐 있다.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밥 먹으라고, 떠난 그녀와 나를 부른다.
가방안 남은 돈도 사라진 상태다.
그녀는 끝까지 잔인하다.
놈을 불러들인 것이다.
민박집으로.
눈앞에 놈이 있었다.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은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꿈은 깨졌다.
꿈은 꿈일 뿐이다.
그게 더욱 달콤할수록.
놈은 날 때리지 않았다.
욕도 하지 않았다.
놈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덥수룩한 수염으로 얼굴 반이상을
덮은 놈의 얼굴은 많이 홀쭉해져 있었다.
씻지도 않았는지 냄새도 고약했다.
완전 거리 부랑자의 모습, 지저분한 몰골이었다.
택시에 몸을 싣는다.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푸른 바다가 선명하니 보인다.
"삼천만원을 줬어"
감정 없는 탁한 저음이 택시 안을 울린다.
명자의 빚이 이천오백이다.
미안하다는 의미가 이거였구나.
"....호적도 깨끗해 질꺼다."
눈을 감았다. 스륵, 하고 창문을 열었다.
휘이잉, 하고 불어대는 바람 사이로 공기가 청명했다.
눈가가 축축해져 온다.
그녀는 항상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
그녀의 일상 자체가 거짓인 줄 알면서.
거짓이라도 좋았다.
내가 그렇게 큰 걸 원한 것일까.
그저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싶었을 뿐이다.
"넌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놈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둔 채 나즈막히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
"내겐 돈이 전부였다"
"......."
"너 때문에 삼천만원, 오백, 또 삼천이 나갔어. 그게 내게 있어
어떤 돈인지..."
"......"
".......벗어날 수 없어....내 꺼다..."
놈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연신 중얼거리 듯 읊조렸다.
꿈에 볼까 두려웠던,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놈의 집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날 삼킬 듯 기다리고 있었다.
놈의 몰골처럼 우현도 말이 아니었다.
술집 나가는 숙미도, 김씨아저씨 젊은 마누라도, 모두 얼굴 곳곳에
시퍼런 멍과 피딱지가 얹어져 있었다.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김씨아저씨가 불쌍하다.
나를 보는 그들의 눈이 씁쓸히 젖어있다.
세월은 때론 지독히도 느리게, 때론 끔찍이도 빠르게 흘러간다.
"..악..하아..헉..헉..읍..흐윽..학..읍..흑.."
무겁게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비오듯 땀이 흘러내린다.
물에 잠긴 이불처럼 온몸이 무겁게 저려온다.
등뒤로 쉴새없이 들락거리며 펌프질하는 놈은 지치지도
않는지 끝날 기미가 좀체 없다. 엉덩이만 하늘로 치솟은
채 놈이 움직이는대로 휩쓸릴 뿐이다.
엉덩이에 닿는 놈의 무성한 검은 음모가 철쑤세미 처럼
쓰라리기까지 하다.
땀을 얼마나 흘려대는지 등 뒤로 후두둑 소리가 날 지경이다.
항문 입구는 이미 얼얼하다 못해 감각이 없다.
깔아논 이불은 꾸겨져 저만치 사라진 상태다.
방바닥 장판에 자꾸 미끌어지는 내 몸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굵은 팔뚝으로 가슴아래를 받힌 채, 어깨를 솥뚜껑만한
두툼한 손으로 갈고리처럼 꽉 잡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뜨거운 여름에 뭐하는 짓인지.
연신 좁은 항문 안으로 박아대고 있다.
땀에 젖은 이마와 코를 등에 비벼대며 콧구멍을 벌렁벌렁 거린다.
짐승처럼 거친 숨을 킁킁 뿜어대며 허리를 하염없이 밀어붙인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놈의 역겨운 체액 냄새, 땀 냄새가 섞여 좁은
방안은 코가 썩을 지경이다.
"헉..윽..윽..학..흐읍..악..악..하악..흡...악.."
내 몸은 두 번의 정액을 밖으로 배출시켰음에도 놈의 저릿저릿한
포인트 공략에 또 분출시키려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있다.
감긴 눈 속마저 스파크가 인다. 놈의 밀어붙이는 움직임에
방바닥을 향해 달랑달랑 거리는 성기 끝으로 멀건 애액이
찔끔찔금 새어나온다. 놈의 움직임에 속도가 붙었다.
"흡..아악..헉..악.."
섬광처럼 머릿 속이 찌릿거리며 불꽃이 터진다. 낡은 장판에
정액을 흩뿌려대며 입안에선 침이 질질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는 것도 잊은 채다.
등 뒤로 우락부락한 놈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내안에 마지막
잔여물까지 쏟아내고 있었다.
변하는 건 없다.
"음...더워"
땀이 비오 듯 흘러내린다. 온몸이 끈적끈적하다.
탈탈탈,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아련하다.
잠을 잘 수가 없다. 한낮의 더위는 너무 뜨겁다. 놈과의 섹스처럼.
찍어누르 듯 엎어져 내 등뒤 찰싹 달라붙은 놈에게선 줄줄 땀이 흥건하다.
놈도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지만 나도 그러하다.
놈과 엉겨붙은 몸뚱아리엔 끈적한 땀범벅이다.
으음, 하고 탁한 신음소리를 흘리며 놈의 잠에 취한 몸이 더욱 비비적
거린 채 찰싹 달라붙는다. 줄줄 땀을 흘려대며 놈은 잘도 잔다.
놈의 몸 안에 갇혀 옴짝달싹 꼼짝할 수 없다. 몸을 빼내려 해도 놈의 힘에
짓눌려진 상태다.
"...더워...."
"..으음..."
놈의 얼굴이 내 머리카락 속을 파헤치며 비벼댄다. 열려진 문엔 치렁치렁한
누런색 발이 걸려져 방안 모습을 차단시켜준다.
장마가 끝나자 놈이 들고 온 것이다. 그 사이로 바람 한점 불어오지 않는다.
"더워"
점점 목소리가 높아진다.
"....어...뭐?"
갓 잠에 깬 탁한 목소리로 놈이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놈의 사타구니와 엉덩이가 밀착된 곳에선 땀띠가 날 지경이다.
두꺼운 다리를 내 허벅지에 척 올려놓은 채.
"덥다구.."
눈두덩 위로 땀이 흘러내린다. 놈은 더하다.
"우현...정우현..."
놈은 여전히 찰싹 붙은 채 우현을 불렀다. 부엌과 연결된 쪽문으로
우현이 얼굴을 디밀었다. 더위에 쪽문도 이미 열려져 있는 상태다.
벌거벗은 채 뒤엉켜있는 모습이 우현에게 적나라하다. 내 모습은 놈에게
가려져 우현에게 보이지 않는다. 엉덩이에도 근육이 붙어 움찔거리는
놈의 뒷모습이 우현의 눈을 찌른다.
놈의 시커먼 페니스가 엉덩이 사이로 적나라하다.
"가서 수건 좀 적셔와"
놈의 벌거벗은 육중한 몸에 침을 꿀꺽 삼키며 우현은 한참만에야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돗가에서 물을 적신 수건을 갖고 왔다.
착 달라붙은 놈이 손만 쭉 뻗어 수건을 가로챈 뒤 손짓으로 가보라고
풀죽은 우현을 내쫓는다.
축축한 수건이 내 얼굴을 지난다. 시원함이 물밀 듯 밀려온다.
목, 가슴, 허리, 거뭇한 음모를 쓸어낸 뒤 페니스를 들어 꼼꼼히 닦아낸다.
그리고 등을 따라 척추, 허리, 팔을 들어 겨드랑이 털 사이사이, 움푹 파인
엉덩이 골짜기까지 세심하게 마사지하 듯 닦아낸 뒤 놈은 자신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철푸덕, 하는 소리가 울리도록 젖은 수건이 방바닥에 처박혔다.
놈의 몸이 떨어져 시원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놈의 몸이 착하니
달라붙었다.
끼기긱, 하는 바닥을 긁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발로 놈이 선풍기를 옮긴
것이다. 발가락으로 한 단계 바람세기를 높였다. 발밑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선풍기가 탈탈탈 돌아가며 온몸을 훑는다. 놈의 손이 허리를
지근거리며 잠에 빠져든다.
서류상으로도 명자와의 관계가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빼도박도 못하게, 놈의 호적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놈은 여전히 노가다를 뛰었고 숙미는 술집에 나갔으며 우현도 놈의
뒷치닥꺼리를 하고 있다. 허물어 질 것 같은, 허물어 지지 않는
놈의 집 작은 방에선 놈의 땀냄새와 체액냄새를 지겹도록
맡으며 살아가는 내가 있다.
어제도 그렇듯, 오늘도 그렇게,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놈이 내 옆에서 숨을 쉬는 한...
-넌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내 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