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일어난 놈은 찬물로 샤워를 하고
바싹 깎은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일어나. 새끼..누가 잠보 아니랄까봐"
"...으음..."
두려움과 설레임에 새벽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바지 밑으로 놈의 차가운 손이 들어왔다.
"오줌 마렵다고 꼬추가 요렇게 커졌는데...잠이 오냐"
내 페니스를 조물딱 거리며 고무줄바지를 내리고선 자기얼굴로 그곳에
얼굴을 부비부비 거렸다. 쭉쭉 짜듯이 주물러대는 놈 때문에 쌀 것 같아
안 떠지는 눈두덩을 들어 몸을 일으켰다.
놈이 사다준 옷을 입고 방밖을 나서니 검은색 캐쥬얼 구두가 보였다.
얼마만에 제대로 된 신발을 신어본 것인지 모르겠다.
겨울에도 화장실용 슬리퍼만 내리 신고 다녔는데.
놈도 옆에서 우현이 건네준 구두주걱을 건네받아 삐까번쩍 광나는
구두를 신었다. 놈의 다른 한손엔 꿀이 들어간 쇼핑백과 현금 오백만원이
들어있는 책 한권 크기만한 수첩용 지갑이 들려있다.
대문 밖을 나설 때까지 우현은, 놈의 양복에 묻지 않은 먼지를 털어내며
놈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으며 그제서야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놈을 보는 것이었다.
양복이 무척 잘 어울렸다. 지하철을 타자 그것은 더 심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놈을 향해 있었다. 얼굴을 붉힌 채 힐끔거리며
보는 여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신들은 속고 있는 거다.
그때 새끼손가락이 간질거렸다.
간질간질 거리는 느낌이 하나, 둘, 셋....천천히 놈의 손가락이
휘감겨왔다. 깍지를 끼듯.
지하철 어두운 창만을 바라보던 놈의 시선은 그곳에 비치는
나를 뚫어버릴 듯 했다. 놈의 눈빛은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그런 느낌의 것이었다.
늘 그렇듯 많은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은 아랑곳없이 기차 안 들어갈
때까지 깎지 낀 손가락을 풀지 않았다.
꽉 맞물린 손가락 사이사이 땀이 흥건하게 차올랐다.
"풀지마. 젖꼭지 보여"
안이 답답해 자켓을 벗으려 했더니 놈이 푼 단추를 다시 잠그기
시작했다. 놈의 모습에 넋을 잃고 보았던 맞은편 임신한 여자가
순간 괴상한 눈으로 놈과 나를 쳐다보았다.
배가 많이 불거졌다.
저 정도면 몇 개월이지. 7개월..8개월...명자랑 지금껏 계속 살고
있었다면 그녀도 저렇게 배가 나왔겠지. 아니 애가 태어나 아빠, 하고
말을 했을지 모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눈깔 치워라. 똥구멍에 정액 한 사발 들이붓기 전에"
놈의 가래 끓는 말에 놈 맞은편에 앉으려 가방을 풀던 젊은 여자의
동작이 일순 정지했다. 임신한 여자와 마찬가지로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똥 밟았다.
황급히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꾹 감았다.
진절머리난다.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탈출할 계획에 잠도 제대로 못잤다.
놈은 아침을 그렇게 먹고도 배고팠는지 우현이 싸준 삶은계란 껍질을
까고 있었다.
"먹어"
내 입 앞으로 하얀 속살이 내비치는 따뜻한 계란을 들이밀었다.
".....됐어"
츳, 하고 놈이 혀를 찬다.
"먹으랄 때 처먹어라. 아침도 부실하게 먹은 게...노인네가
좋아하겠다...껍질이 묻어서 그러냐?...새끼 유난은"
혼자 멋대로 궁시렁대더니 계란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혓바닥으로
낼름, 하얀 계란을 핥았다. 퉷, 하고 놈의 혓바닥에 묻은 작은 계란껍질
이 복도를 향해 날아갔다.
"자..."
혓바닥으로 핥은 계란을 다시 내 입술에 들이민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냥 받아먹었다. 하긴 내가 언제 반항한 적 있던가.
반쯤 베어 물은 노른자가 입술 아래로 흘러내렸다. 놈이 얼른 다가와
윗입술로 내 아랫입술을 누른 채 후릅, 하고 핥아먹었다.
물러가면서 쪽 소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놈의 손에 들린 반쯤 먹은
계란을 자신의 입속에 처넣더니 맛있게도 우물거린다.
세 번을 그렇게 먹고선 베지밀까지 사서 내게 먹으라고 디밀었다.
임신한 여자는 애에게 해롭다는 듯 아예 눈을 감아버렸고 젊은 여자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힐끔거렸다.
"어디가"
"......."
귀신 같은 놈.
"화장실"
눈을 감고 자고 있던 놈이 내가 일어서자마자 손을 잡고 탁한
저음으로 중얼거렸다. 놈이 따라 일어선다.
쇼핑백과 지갑을 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덜커덩, 흔들리는 기차 위 망연히 서 있다.
흔들흔들. 화장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온다.
"꼬추 잘 털고 나와라"
열려진 문 안으로 들어서는 등뒤 놈의 장난 섞인 역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나선 남자가 놀란 얼굴로 놈을 보자
면도칼 씹는 표정으로 윽박지른다.
"뭘 봐. 씹쌔꺄..."
쾅, 하고 문을 닫았다. 두 시간이 지나간다. 조급함이 인다.
덜커덩 덜커덩, 흔들림 사이로 바람 냄새가 향기롭다. 명자를
만난 것도 이맘 때 쯤이다.
흔들거리며 서 있는 등 뒤 놈의 얼굴이 어깨에 걸쳐진다.
엉덩이 사이로 사타구니를 비벼대며 기지바지 위로 내 사타구니를
손가락 끝으로 슬슬 문지른다.
기회는 의외로 놈에 의해 찾아왔다.
하늘이 주신 기회다.
곧 있으면 열차가 멈춘다.
빨리 빨리.
놈과의 거리를 넓히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돈 오백만원이 든 검은색 수첩용 지갑이 내 손에 들려있다.
등뒤로, 이마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자리에 앉아 5분도 채 되지 않아 놈은 씹,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은 뒤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갔다.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놔둘 정도로 놈은 긴박해 보였다.
기회가 왔다, 고 머릿속 종이 울려댔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뇌가 빠싹 타는 느낌으로 화장실을 지나쳤다.
뿌지직, 하고 놈이 배출하는 대포 터지는 소리가 화장실 밖까지 울려퍼졌다.
기차의 속도가 느려진다. 기차가 끼이익, 하고 거친 쇳소리를 내며
멈추기 전, 정신없이 뛰어내렸다.
돌조각이 발바닥을 경련시켰다.
어디로 가지.
무작정 뛰었다.
기차가 거친 쇳소리를 부딪치며 걸쭉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출발하기 시작하는 건너편 기차를 향해.
마지막 희망이다.
전력을 다해
올라탔다.
헉헉, 숨을 들이킨다. 무섭게 들썩이는 심장소리, 귀가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