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45)
  • 쾅, 하는 문소리에 슬며시 잠이 깬다. 차가운 바람이 다가오다 이내

    사라졌다. 얼마나 잔 것일까. 그로부터 계속 죽음 같은 잠만 잤다. 

    우현이 중간중간 깨워 넘겨주는 밥도 넘어가지 않아 언젠가부터 죽으로 

    바뀌었다. 어두운 좁은 방안 우람한 놈의 체격이 천장을 뚫을 듯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숨소리도 없이 자는 척 했다.

    한참을 소리 없이 내려다보던 놈은 부스럭 부스럭 옷을 벗어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방 밖을 나선다. 

    "밥 먹었나?..."

    "예...좀 전에 죽 먹였어요...식사는..?"

    "먹었어"

    "......."

    저벅저벅 수돗가로 다가가는 놈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살얼음 같은 추위 속에 촤아악 촤아악, 언제나처럼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팬티도 걸치지 않고 추리닝바지를 꿰찬 놈은 누워있는 내 옆에 앉았다.

    발언저리에서 이불이 걷혀진다. 입고 있던 고무줄 바지가 내려가며 

    엉덩이가 시원해졌다. 차가운 물로 막 샤워를 끝낸 놈의 손이 시렸다.

    놈에 의해 허리가 살짝 돌아갔다. 엉덩이가 놈의 앞에 확연히 드러났다.

    곧 놈의 두꺼운 손가락이 너덜해진 항문 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얕은 고통의 신음이 튀어나왔다. 놈이 멈칫하더니 다시 살살 항문 안을

    유영하며 곳곳에 미끌 거리는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빠져나가는 손가락

    에 안심할 새도 없이 연고를 듬뿍 발린 솜뭉치가 항문에 쏙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놈의 손가락이 항문 언저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연고를 듬뿍

    묻힌 채 허벅지께에 내려간 바지로 튀어나온 성기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쪽, 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리며 입술을 붙인 채 한참을 코로 

    킁킁거렸다. 놈의 뜨거운 김이 내 성기와 음모를 적셨다.

    잠시 후 놈의 얼굴이 허리를 지나 목을 문대며 콧구멍을 씰룩거렸다.

    "다신 이러지마. 다음엔 정말 니 꼬추 썰어버려 아작아작 씹어

    먹을 꺼야..."

    놈의 한숨 섞인 걸걸한 낮은 저음이 귓속을 메아리치며 뇌를 마비시켰다. 

    등 뒤로 어깨와 목을 잘근거리던 놈은 커다란 손으로 내 몸을 돌려

    세웠다. 자신의 두꺼운 목에 내 얼굴을 갖다붙이고 정수리에 고개를 

    파묻었다. 허리에 걸린 놈의 손이 복근에 착 붙도록 내 배를

    밀착시킨 뒤 가슴과 배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동작을 음미하며, 만족한 듯

    갸르릉 거렸다. 곧이어 피곤했던지 놈은 코까지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자세가 불편해 몸을 돌리려해도 놈의 꽉 누르고 있던 손 안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기나긴 밤이 반복되었다.

    몸이 회복되자마자 내가 한 것은 마당 한구석 내팽개쳐져 있는 티브이를

    방안에 끌어들인 것이었다. 모서리가 찌그러지긴 했지만 화면은 잘

    나왔다. 올려둘만한 곳이 없어 방바닥에 놓아둔 채 어정쩡한 자세로 

    티브이를 보고 있자 놈이 다음날 어디서 구했는지 작은 나무탁자를 

    갖고 왔다. 

    단잠에 빠져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릿한 허리를 들고 엉금엉금 

    기어 문을 여니 김씨아저씨 젊은 마누라였다. 

    "전화 왔어"

    그녀는 퉁명스레 말을 내뱉으며 휙, 하고 등을 돌려 사라졌다. 

    그녀는 날 좋아하지 않는다. 놈의 방에서 놈과 뒹굴고 있는 날 언젠간 

    뽑아버려야 할 눈엣가시처럼 여길 뿐이다. 놈과 자기위해 돈을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숙미도, 경혜도, 우현조차 그러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슬픈 우현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전화!"

    그녀가 앙칼지게 소리를 드높였다. 여름용 슬리퍼를 질질 끌고 

    비어있는 개집을 지나 안채로 꺾어 들어갔다. 

    놈의 방에 들어가고부터 지금껏 한 번도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

    놈의 보이지 않는 감시는 철저했다. 

    누구지. 

    누구길래 전화를 바꿔주는 것일까. 

    어기적거리는 걸음을 보이지 않기 위해 힘을 실어 허리를 폈다. 

    끊기는 아릿함에 임신한 여자처럼 허리 쪽으로 손이 갔다. 허리를 슬쩍 

    쓰다듬는 손에 그녀의 살벌한 눈이 머물렀다. 

    수화기를 쾅, 하고 바닥에 거칠게 내려놓더니 팽돌아 앉았다. 

    씁쓸함이 배어져 나온다. 허리를 구부려 전화기를 들었다. 

    읍, 하고 얕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몸에 너무 힘을 줬나보다.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린다. 

    "칫...같은 남자에게 뒤나 대주는 주제에...."

    그녀의 낮은 중얼거림이 귓가를 때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후, 하고 깊은 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들리는 음성은 늙은 여자였다. 누구. 친할머닌가. 

    그녀는 치매에 걸려 행방불명됐는데. 

    잠시 후 이어지는 또 다른 목소리.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수화기를 잡은 손가락이 덜덜 떨려왔다.

    그녀였다. 

    명자. 

    김씨아저씨 젊은 마누라가 이상했던지 나를 본다. 

    놈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 헛기침을 한번 한 후 두 손으로 수화기를 

    움켜잡고 귀에 바싹 들이대었다. 

    "네...할머니...아프신데 없으시죠..."

    높낮음 없이 내뱉는 평상시 말투. 그 속에 물기가 젖어있다. 

    -보고 싶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외로워 죽을 듯한 그녀의 음성.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전화 왔다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놈은 스쳐가 듯 말했다. 콩나물무침에 젓가락 

    가는 게 일순 멈췄다. 

    "어!"

    "누군데!"

    "....친할머니"

    "너에게 핏줄이 있었나?"

    "......어"

    콩나물이 입안에서 버석거렸다. 진짜 친할머니는 얼굴도 본 적 없다. 

    아버지는 첩의 아들이었다. 치매 걸려 행방불명된 서류상 친할머니도 

    고작 두 번 봤을 뿐이다. 

    "무슨 일로 왔는데...."

    콩나물 사이로 침이 고여든다. 

    "....돈...꿀꺽...돈이 필요하대"

    킥, 하고 놈이 한쪽 입술끝을 올리며 비웃었다. 

    "돈 한 푼 못버는 너보고?"

    "......"

    우현이 뜨끈한 숭늉을 갖고 왔다.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안에 든 

    누룽지를 퍼먹었다. 뱃속이 따끈해진다. 

    "얼마?"

    "....."

    "......"

    "...오백"

    "지랄...노인네가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해! 구라 까는 거 아냐?"

    "......"

    "하여튼 늙으면 뒈져야 돼....."

    "....."

    "......."

    "....하나뿐인 핏줄이니까..."

    "하나 뿐은 무슨...옘병하고 자빠졌네. 그딴 노인네 없는 게 나"

    "........"

    "...씨버럴"

    "........"

    쾅, 하고 놈이 숟가락으로 밥상 위를 쳤다. 놈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놈은 주전자에 있는 보리차를 주둥이 채 벌컥 마셔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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