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45)
  • "야..! 정신 좀 차려봐..썅..왜 이리 흐느적거려.."

    싸구려 파카를 입히며 놈이 중얼댄다. 

    "야.."

    찰싹찰싹

    찰싹..

    볼이 따끔거린다. 

    "씹..왜 이리 열이 높아..!"

    신경질 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몸이 뜬다. 놈의 등에 

    업혀졌다. 

    "끙차...무겁긴 또 엄청 무겁네...씨벌.."

    머리 위로 두꺼운 잠바가 씌어졌다. 

    지독한 땀 냄새가 확, 하고 코를 쑤신다. 

    쿠다당탕, 하는 거친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는 마루를 내려와 

    신을 신었다. 옆방에 사는 우현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세요..?.."

    "방 청소 좀 해 놔라.."

    서둘러 삐걱거리는 철제문을 나선다. 

    우락부락한 거대한 몸답게 발소리도 쿵쿵 거리며 좁은 비탈진

    길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다. 한발한발 뛰듯

    걸을 때마다 내 얼굴이 쿵쿵, 놈의 등을 찧는다. 

    "썅..왜이리 택시가 안 잡혀..!.."

    놈은 멈추지 않고 계속 뛰듯 걸으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들의 소음이 들려왔다. 

    "이..씹..이게 뭐하는 짓인지..젠장.."

    땀에 젖어가는 놈의 등이 얼굴을 식혀준다. 

    "...짜증나..씨발.."

    황급히 뛰어다니고 있는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경적소리에

    섞여들고 있었다. 

    "감기 몸살로 병원에 입원한 놈은 너 밖에 없을 꺼다.."

    "......"

    "땡전 한 푼 못버는 게...입원비가 얼만지 알아..?.."

    22시간 만에 깨어나자마자 쏟아부은 말이었다. 

    놈은 입만 열면 욕이요. 돈타령이다. 

    "몸은 산만한 게...빨리 처먹어.."

    병원에서 나온 흰죽을 숟가락에 떠 억지로

    입술을 비틀어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 나이에 빚도 못 갚는 놈 병 수발 들다니..환장하겠구만...씹.."

    그릇이 비어질 때까지 흰죽을 입안에 쑤셔 넣으며 놈은 

    연신 투덜거렸다. 땀을 많이 흘리는 놈 답게 씻지도 않은 놈의 

    짧은 머리카락이 떡이져 뭉쳐 있었다. 

    깨어나고나서 이틀을 더 입원한 뒤 퇴원했다. 

    놈은 나 때문에 일도 못나가고 잠도 무릎 아래 닿지도 않는 

    간이침대에 덜렁거리며 잔다고, 주절주절 말도 우라지게 많았다.

    돈 아깝다고 사발면만 곱배기로 이틀 내내 사먹은 

    놈이었다.

    음식이 밥으로 바뀌고 스스로 움직이는 걸 보며, 하루 더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싹 무시하고 퇴원을

    강행했다. 지하에 있는 약국에서 삼일치의 약을 사들고 약 기운에

    졸고 있는 날 억지로 등에 업어 병원 문을 나섰다. 

    병원에 들어올 때처럼 머리 위엔 놈의 냄새나는 잠바가 덮어져 

    있었다. 돈 아까워 절대 타지 않는 놈이 집에 올 땐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 안은 빵빵한 히터로 따뜻했다. 냄새나는 놈의 

    잠바를 덮어쓰지 않아 더욱 다행스러웠다. 

    잠이 쏟아져온다.   

    택시에 내려 날 등에 업고 냄새나는 두꺼운 잠바를 싫다고 

    밀어내는데도, 면도칼 씹은 입 모양을 번득이며 무시했다. 

    "어딜 갔다 오는 거야?.."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덮어씌우고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놈의 발걸음이 정지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언짢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퍼져나간다. 

    "..뭐야?"

    "며칠 동안 안 보이길래...죽었나 하고..돈이라면 환장하는 인간이.."

    철만의 고아원 여자친구, 한때는 애인이었고 지금도 의미불분명한

    경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쓸데없이 주둥이 놀리지 말고...가서 호빵 좀 사와!"

    놈이 턱으로 다 쓰러져가는 구멍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호빵..?"

    "야채하고 단팥, 둘 다.."

    "...."

    무덤덤하게 앞질러가는 놈을 보며 구멍가게로 그녀는 들어갔다.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호빵 먹을 생각하니 아프고 쑤시던 몸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나도 모르게 끄응, 하는 얕은 신음소리와 함께

    놈의 등에다 이마를 살짝 비볐다. 순간 걸음이 멈추었다. 

    놈의 몸이 경직되었다. 

    "새끼..죽을래..?"

    "....윽.."

    엉덩이 부근에 둔 두툼한 손으로 우악스레 내 살덩이를 

    꽉 집었다. 

    "꼼지락 대지마...도착하자마자 방바닥에 엎어 놓고 뚫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

    하루라도 아랫도리를 휘두르지 않으면 욕구불만에 휩싸이는 놈.

    양쪽 엉덩이를 한 웅큼씩 집고 있던 손이 풀려나갔다. 

    엉덩이가 쪼그라든 것처럼 얼얼하다.  

    "그건 뭐야?.."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그녀가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는, 놈 등에 업혀진 나를 이제서야 발견했다는 듯 눈짓으로 

    가리켰다.

    "뭐긴 뭐냐? 웬수 덩어리지..!"

    놈은 허벅지 근육이 불뚝불뚝 튀어나올 정도로 가파른 길을 

    성큼성큼 올라가며 으르릉 거렸다. 

    "어디 아파?"

    "...."

    호빵 두 봉지가 든, 검은비닐을 한 손으로 들고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쫓아왔다. 

    "썅..뭐하는 거야?"

    "아유..놀래라.."

    그녀가 놈의 냄새나는 잠바를 들추려다 급히 손을 내렸다.

    "아주 기분 언짢으니까...알아서 기어라.."

    "왜 그리 저기압이야..?욕구불만이야..?"

    "하..그래 쌓이고 쌓인...욕구불만....이 새끼 땜에 돈 나갈 생각하니 

    끔찍하다 왜..?.."

    "....그렇게 싫으면 갖다버리면 되잖아.."

    내 말이...

    "..뭐?"

    "버리라구..! 돈 받기 글렀잖아.."

    "누가 그래..?"

    놈이 희번득 거렸다. 

    "돈 받긴 받을 거야..? 일도 못하게 맨날 방구석에 처박혀 놓고선..."

    맞아..일을 하게 해야 빚을 갚지..

    "누가..?"

    "누구긴...도망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빤히 보여.."

    "..너...죽고 싶지..?"

    시리도록 툭툭 내뱉는 놈의 목소리가 섬뜩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너답지 않아..차라리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려..."

    놈의 기에 눌려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나왔지만 말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새우잡이 배가 낫겠다. 

    "아니면 몸이라도 팔게 나한테 넘기든지..얼굴이나 몸은 그닥 좋은 건

    아니지만..니가 굴렸으니 테크닉은 꽤 할거 아냐..!..돈 넉넉하게 

    쳐줄게...니가 꿰차고 있을 정도면 펠라도 환상적일 테고..

    구멍 맛도 좋을테...악.."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쿵, 하고 곤두박질쳤다. 

    "요즘 오냐오냐 했더니..끝간데 없이 기어올..으..씹.."

    놈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뻗은 순간 등 뒤에 있던 내 몸이 

    흔들거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놈의

    어깨에 걸치려했지만 늦었다. 놈이 내 몸을 잡으려 허리를

    뒤튼 순간 놈의 몸 앞으로 원숭이처럼 미끄러졌다. 

    다행히 바닥으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놈의 사타구니에 정확히

    내 얼굴이 명중했다. 놈의 손이 내 한쪽 팔목을 잡고 나머지 한손으로 

    어깨와 목을 감싸잡은 채 대롱거린 자세였다. 신발도 신지 않은

    발에 차가운 바닥이 닿았다. 

    "하아...하아.."

    "....씹.."

    바지에 감싸인 놈의 사타구니가 코를 쑤셨다. 입으로 숨을 거칠게 

    쉬었다 내뱉었다를 반복했다.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자 오한이 나

    몸을 살짝 부르르 떨었다. 머리도 다시 지끈거려 온다. 

    내 따뜻한 입김에 바지가 눅눅해지자 고개를 살짝 틀었다. 

    "..읍.."

    반쯤 서버린 놈의 성기가 질긴 바지를 뚫을 듯 팽팽해지는 것이

    한쪽 볼에 여실히 느껴졌다. 

    "씹..미치고..환장하겠구만.."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번쩍 몸을 들어 가슴께에 안고서 쿵쿵

    소리를 내며 집을 향해 뛰어가 듯 놈이 걸어갔다. 놈의 등 뒤로 반쯤 일어선

    채 흘러내리는 피를 쓸쓸히 훔치는 그녀가 보였다. 

    검은비닐봉지에서 튀어나와 널브러진 호빵 봉다리가 보인다.

    먹고 싶었는데...머리가 더 지끈거려온다. 

    방에 도착하자 방바닥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놈은 내 몸에 걸쳐진 옷가지들을 무지막지하게 벗겨냈다.

    속에서 게어낸 토사물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 향긋한 

    꽃내음이 가득한 폭신한 이불에 구겨 넣었다.

    "너..몸 낫고 보자.."

    귓속으로 으르릉 거리는 것도 잊지 않고 황급히 일어나 

    뒷쪽에 있는 우현을 끌고 옆방으로 사라졌다. 

    쾅, 하고 방문 닫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얼마지나지 않아 고통스러운 우현의 비명 같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젤은 바르지 않은 채 콘돔만 끼고 삽입한 것 같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놈.  

    곧이어 우현의 쾌락에 달뜬 고양이 울음 소리가

    한동안 지속되어 울려 퍼졌다. 

    내 목소리는 어떨까, 하고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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