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45)

거품이 잘 나지 않는다. 비스듬히 세운 빨래판 얹혀진 니트를 

따뜻한 물에 담갔다 꺼내 다시 비누칠을 하면서 비비기 시작했다. 

우현이 일하러 나간 틈에 끝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팬티까지

우현의 몫이 되는 것이다. 

숨을 내뿜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공기 중에 부유한다. 빨갛게 시려지는

손을 따뜻한 물에 담갔다 빼내 쓱싹쓱싹, 빨래를 주물거렸다. 

팔이 움직일 때마다 두꺼운 폴라티 안에 있는 젖꼭지가 따끔거린다. 

얼어버릴까 스티로폼에 감싸인 수도가 빵빵 불어있다. 수도 주둥아리에

연결된 녹색호스에선 물이 찔끔찔끔 고무통에 떨어지고 있다.

흘러내리는 콧물이 얼어버리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 허벌라게 추운

날씨다. 콧물을 삼키며 뻘겋게 변해버린 시린 손으로 연신 빨래를

주물거리고 있는데 성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놈이 벌컥 문을 열었다. 

"박병수. 박병...거기서 뭐하냐? 씹.."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빨래 빨고 있는 날 향해 짜증스럽다는 듯 내뱉았다. 

한쪽 눈썹이 휘어지 듯 한껏 올라가, 찢어진 눈을 희번득 거렸다. 

"씹. 거기서 뭐해? 얼릉 안 기어들어와! 미친..."

"...아직 덜 끝났어"

낮게 중얼거리며 멈칫한 손을 다시 움직였다. 자던 잠이나 마저 

잘 것이지.

"누가 너보고 빨래하랬어. 들어와!....숙미! 야, 이년아!"

쾅, 하고 숙미 방문에 무언가 부딪쳐 떨어졌다. 

챙그랑, 때구르르, 구르는 것을 보니 주전자 주둥아리에 꽂혀 있던

플라스틱 컵이었다. 놈이 던진 것이다. 저 더러운 성격. 

드르륵, 하고 숙미 방문이 열렸다. 갑자기 들려온 굉장한 마찰음에

휘둥그레진 얼굴이다. 새벽 늦게 들어온 그녀의 몰골은 막 잠에

깬 듯 머리가 까치집이었다. 

"너 뭐하는데 아직까지 퍼질러 자고 있어!"

지금까지 자고 있던 놈이 할 말은 아니다. 그녀가 분위기를 금새

눈치 채고 후다닥, 수돗가로 다가왔다. 

"내가 할 테니...들어가"

"........"

"어서"

"......"

눈깜짝할 새 숙미가 내 자리를 밀치 듯 앉으며 날 놈의 방 앞으로 떠밀었다. 

놈은 방문 앞에 앉아 찢어진 눈을 희번득이며 노려보고 있다. 

빨래판 위엔 내 팬티가 물에 젖어 구겨져 있었다. 

"내 빨랜데..."

"....나 맞는 꼴 보기 싫으면 어서 들어가..."

부시시한 얼굴로 팬티를 쓱싹 비비며 숙미가 말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루를 올라 방문 안으로 들어가자 놈이 문을 쾅, 닫는다. 

"악"

무지막지한 힘으로 날 끌어당기며 뜨끈한 방바닥을 뒹굴었다. 

"아...씹. 엄청 차갑네"

얼굴을 부벼대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지껄였다. 

"으...이 손좀 봐..씹새끼. 누가 청승맞게 너보고 빨래하래"

시뻘겋게 언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대놓고 마구 비비면서 차가운 감촉에

오줌누고 난 뒤처럼 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또 쓸데없는 짓하면 방 밖을 못나가게 해줄테니.....빨래할 힘 있으면 

내 어깨나 주물러 봐라. 새꺄..."

"....."

"먹여주고 입혀주고 하는 게 누군데"

놈은 내 폴라티와 바지를 훌러덩 벗기며 연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씨부렁거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따끈하게 덮혀진 이불이

감싸인다. 쓱쓱, 하고 내 몸을 이불과 함께 주물거리며 놈의 벌거벗은

몸뚱아리가 위에서 내리눌렀다. 

놈의 사타구니가 내 페니스를 짜브라뜨릴 기세로 내리누르고 있다.  

"야..씹탱아 나 왔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며 놈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문 사이로 들어오는 찬공기가 얼굴을 간지럽힌다. 

어깨까지 덮은 이불을 입까지 끌어올렸다. 

우현이 김치찌개를 하는지 보글거리는 신김치 냄새가

코끝을 떠돈다. 

"뭐야? 왜 이리 골골대..?"

"......"

싸구려 가죽자켓을 거칠게 벗으며 언짢은 듯 한쪽

눈을 희번득인 채 놈이 말했다. 

"또 아프냐?"

"....."

벗은 옷들을 한쪽 벽에 붙어있는 옷걸이에 

아무렇게 툭 하니 걸쳐놓는다. 무식하게 앉아

두꺼운 손바닥으로 내 이마에 척하니 올려놓고 이죽

댄다.

"씨버럴...돈도 한 푼 못버는 게...껄떡하면 아프고

지랄이야..."

"......"

"쌩돈 나가게 생겼네...씹.."

"......."

"우현...정우현"

좁은 방안이 떠나가라 불러제낀다.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골이 다 흔들릴 지경이다.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린다. 

"상만 차리면 되거든요.."

오른손에 뻘건 국물이 묻은 숟가락을 쥐고서 우현이 말했다. 

배고프면 더 사나워지는 철만이기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너 약 좀 사와.."

"...?.."

"감기에 아주 잘 듣는 걸로 사와라.."

놈이 아까 벗어놓은 바지 호주머니를 뒤적거려 꼬깃꼬깃한 

오천원짜리 지폐를 우현에게 내밀었다. 

"병수..아파요..?"

"사오기나 해.."

"...아..."

손에 돈을 든 우현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빌어먹을 놈이 우현이 보는 정면에다가 마지막 남은 팬티를 

훌렁 벗은 것이었다. 

놈의 우락부락한 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지막지한 

커다란 성기가 흔들거렸다. 엉덩이 굴곡 아래로 불그죽죽한

시꺼먼 성기가 슬쩍, 한다. 재빨리 눈을 돌렸다. 

눈만 더렵혔다. 우현은 못박은 듯 서 있다. 

놈은 우현을 스쳐 밖에 있는 수돗가로 가 찬물을 

들이부었다. 

촤아-촤아-

"으...시원하다.."

미친...공기가 얼마나 차가운지 놈의 몸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해? 후딱 갔다 와.."

"아..네.."

정신을 놓고 있던 우현이 시뻘개진 얼굴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숟가락을 들고서.

"일어나..안 일어나..!.."

"....."

"아가리에 쑤셔넣기 전에 빨리와서 처먹어.."

"이...씨..."

"뭐..?"

지끈거리는 머리와 여기저기 열에 쑤시는 몸을 반쯤 일으켜

상 앞으로 다가가 우걱우걱, 놈의 희번득이며 노려보는 시선을

무시한 채 억지로 입안에 밥을 쑤셔넣었다. 

밥알이 돌처럼 혓바닥에 굴러다닌다. 맛있는 김치찌개도 

목안을 까칠하게 할 뿐이다. 저절로 떨어대는 숟가락이

몸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후루룩 물을 들이키고 음식을

억지로 넘겼다. 옆에선 우현이 눈치를 보며 

밥을 깨작거리고 있다. 

죽일 듯 노려보는 놈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우현이 사온 약을 

먹고 자리에 누었다. 

"이..씨?..개새끼...아픈 게 유세야...? 개기긴 엇따 개겨..!.."

씨부렁거리는 놈을 남겨둔 채 눈을 감았다. 속이 더부룩하니

죽을 맛이다. 

결국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불 위에 다 토해 버렸다.

하나 밖에 없는 이불인데...

"씨발..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웩..웩.."

소화되지 않은 밥알들이 보였다. 시큼한 위액이 넘어올 때까지

토했다. 

"냄새 한번 지독하네.."

눈썹을 찌푸린 채 놈이 코를 싸쥐며 말했다. 

방안엔 토사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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