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45)

"그러니께 요놈이란 말이제...아까 그 예쁜 놈이 아니라..."

머리맡이 간질간질 거린다. 

"형님 방에 요로콤 자고 있는거 보면 모르겄소...아까 화나서 뒤짚어 엎는 거 

보소...송장 하나 치를 뻔 허지 않았소..."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고 있는 놈 머리까지 넘겨주며, 애새끼 대하 듯 

남사스럽게 가슴 토닥이는 거 보면 뻔하지...."

"그래도 영....형님 취향과 거리가 먼데....."

아, 시끄러워.

"그러니까 우리가 헷갈린 거 아뇨....아쒸 아파 죽겠네...오늘 깜빵 나온 놈

이렇게 패도 되는 거요...어금니 나갔단 말여..."

"미친....넌 맞을만 했어....근데 암만 생각해도 아까 그놈이 더 나은 것

같은데...너무 못생겼어....형님이 눈이 삐었나...."

"글쎄 말요...이런 놈 땜에 날 사정없이 패다니..."

중얼중얼 잠을 잘 수가 없다. 어, 내가 자고 있었나. 

"못생긴 건 아닌데.....그냥 평범한 거지...."

"그거나 이거나...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쉬기도 괴롭네...쒸..."

코 앞에서 역겨운 술 냄새가 폴폴 난다. 

"어...인상을 찡그리는데..쉿...깨는 것 같은데..."

아, 형광등 불빛이 눈부시다. 깜박깜박 거리며 눈을 떴다 감았다를 연신 

반복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광경. 헉, 하는 신음소리가 삼켜졌다. 

깡패 세 놈이 빙 둘러 코 앞까지 험악한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놈들이 숨쉴 때마다 술 냄새가 진동한다. 

"아까는 미안했...."

"이 새끼들 뭐하는 거야?..."

장미문신이 말을 끝맺기도 전 화장실 갔다왔는지 철만의 살기등등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니...우린 그저...악...살려주소..."

우당탕탕

세 놈들이 부지불식간 방밖으로 무참히 쫓겨났다. 

"이 새끼 누가 방에 들어오랬어...."

퍽 퍽 퍽, 하고 이어지는 구타소리.

간간히 우현의 방에서 에프엠 라디오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정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꿈은 아니지.

"...에...어..."

우현의 표정이 실수했다는 듯 일그러졌다.  

"병수! 어디가..!..곧 철만씨가 올텐데...."

정신없이 뛰어가는 등 뒤로 당황한 우현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좁은 골목 여기저기를 꺾어 가파른 길을 뛰어 내려갔다. 

구멍가게 누렁이가 혓바닥을 쭉 빼고 누워, 헥헥

거리고 있었다. 구멍가게 옆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흘러내리는 땀 위로

백조 세탁소란 후줄근한 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세탁소는 우현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열려있었다. 더러운 

유리문 너머 남자가 보였다. 거세게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깊은 심호흡을 반복적으로 내리쉬었다. 

세탁소 유리문을 끼익, 하고 열었다.

"어서 오..."

의자에 앉아 등을 굽혀 바느질을 하던 늙은 대머리총각이 경악스런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대머리 늙은 총각은 전보다 더 말라있었다.  

"명자는...."

"........"

"명자는 어딨어?"

"...켁켁...이것 좀 놓고..."

"명자는?"

비명에 가까운 간절함이 지저분한 옷들에 쌓여 입 밖으로 쩌렁 울렸다.

"컥..윽...나도...몰라...."

".....?..."

"나도 몰라...딴 놈이랑 도망갔어...콜록"

옷깃을 움켜 쥔 내 손을 억지스레 뿌리치며 한껏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속은 거야...."

"......"

억울함이 듬뿍 담긴 대머리의 한탄스런 목소리.

"속은 거라구...고년이 꼬리쳐서..."

"......"

"살살 눈웃음 치며...고 걸레같은 년이...윽.."

퍽, 하고 순식간에 넙적한 대머리 얼굴을 향해 주먹이 뻗어나갔다. 

"아야...씨...피나잖아...이ㅂ.."

대머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에 불을 키며 달겨들었다. 

대머리통이 내 얼굴을 정확히 쾅, 하고 박았다. 눈에 불이 번쩍했다. 

뜨뜻한 게 콧구멍 사이로 흘러내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손을 대어보니 역시 시뻘건 피가 묻어났다. 벙해진 눈으로 묻은 피를

마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 버릇 개 못준다고...고년이 딴 놈이랑 배 맞아 간 걸 나더러 

어쩌라구...."

씩씩거리는 대머리 눈의 흰자위가 핏줄이 터지 듯 처량 맞게 붉어 있었다. 

곧 눈물을 흘릴 기세였다.

그래. 

그게 명자였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모든 구박을 받으면서 자라온, 정에 몹시도 굶주린 여자.

그녀가 단란주점에 들어오게 된 것도 모두 남자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유부남과 도망쳐 한 달 만에 붙잡혀, 변두리 티켓다방으로 팔려가 

만난 것이 또한 지랄 맞은 제비였다. 돈만 뜯기고 버려진, 빚에 허덕이던

그녀를, 나를 보지 않던 그녀를 위로랍시고 다가간 건 나. 

쓸개 빠진 박병수였다.   

모든 걸 알면서도 7년 동안 악착 같이 번 돈을 그녀의 빚에 쏟아부었다.

알면서도 결혼했다. 알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그녀를 끔찍히도 

사랑했다. 

그녀의 종착지는 나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내 아내다.  

사람의 마음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쪼그려 앉아 눈물을 찔끔대는 대머리를 뒤로하고 열려진 유리문

밖으로 나섰다. 길어진 해는 내려갈 줄 모르고 뜨거운 김을 시멘트 

바닥 위로 뿜어댔다. 발바닥이 따끔거린다. 그제서야 맨발로 뛰쳐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코밑으로 투둑,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 손등으로

훔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멀리 구멍가게를 꺾어

누군가 씩씩거리며 뛰어오는 게 보였다. 놈이었다.

놈이 날 발견하자 뛰던 걸음을 뚝 멈췄다. 한참을 지글 끓는 시멘트

바닥을 밟고 서 있었다. 놈이 천천히 육중한 몸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올수록 페인트 섞인 시멘트 냄새와

역겨운 땀 냄새가 풍겨왔다. 놈의 구렛나루가 물기에 번쩍인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놈의 몸은 햇빛에

그을려 구릿빛 색을 띠고 있었다. 러닝셔츠 차림인 놈의 딱 벌어진

어깨와 울퉁불퉁한 팔뚝이 숨소리와 함께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때 탄 누리끼리한 러닝셔츠 위로 놈의 젖꼭지가 튀어나올 듯 솟아

있었다. 팔이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거뭇거뭇한 털이 겨드랑이 사이로

삐져나왔다. 점점 다가오는 놈의 얼굴 위로 두꺼운 짙은 눈썹이 찌푸려

지는 게 보였다. 

"이게 뭐야?"

놈의 두꺼운 엄지손가락이 내 코밑을 쓰윽 훔쳤다. 놈이 세탁소 문 너머

대머리를 흘낏 보았다. 나를 지나쳐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놈의 시선이

새까맣게 더러워진 맨발을 내려다본다. 놈의 인상이 더욱 찡그려졌다. 

놈의 거친 숨소리가 이마 가까이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씹..."

놈의 짜증스런 가래 끓는 목소리.

나를 밀치 듯 열려진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머리는 아직도 쪼그려 앉아

훌쩍거리며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 있었다. 

"...윽..."

밑창도 닳아 너덜너덜 때에 찌든 놈의 운동화가 사정없이 대머리의 구부러진 

등을 쳤다. 비명소리도 삼켜진 대머리의 몸이 옆으로 픽, 하고 쓰러졌다. 

퍽퍽 거리는 뼈에 부딪히는 소리가 세탁소 안을 울렸다.   

"...씹새끼..니까짓 게...나도 안때리는 걸..좆만한 대머리 새끼가..."

과한 놈의 발길질. 코뼈가 부러졌는지 피범벅이 된 대머리가 코를 

감싸 쥐고 몸을 말아댄 채였다. 

옷더미 속으로 털썩, 하고 처박히는 대머리의 널브러진 작태를 뒤로하고,

가슴을 들썩거리며 놈이 내게 다가왔다.

"미친...저딴 늙은 대머리 새끼한테 얻어터지기나 하고...덩치가 아깝다..

새꺄..."

"....."

"낄낄...싫다고...마누라 도망간 놈한테 할 소린 아니지..."

아프도록 팔목을 움켜쥔 놈의 손이 뜨거웠다. 저벅저벅. 앞장서서 나를 

질질 끌고 가는 놈의 두꺼운 목 뒤로 줄줄 땀이 흘러내렸다.    

멀리 낡은 십자가 사이로 뻘건 하늘이 강렬히 흩뿌려지고 있었다.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순간 놈의 발걸음이 멈춰 나를 보았다. 

놈의 눈은 더욱 찢어져 사납게 으르릉 거렸다. 

"넌 마누라 얘기만 나오면 우는군..."

"....."

"그렇게 도망간 마누라가 좋냐? 맨발로 뛰쳐나올 만큼...개새..끼..."

"......"

"등신새끼. 그래봤자 넌 나한테 도망갈 수 없어..."

"......"

"니 마누라는 물론...어떤 여자도 너 같은 놈한테 앵길 년 없으니까..."

"......"

놈의 성난 차가운 목소리가 가소롭다는 듯 골목을 울려댔다. 어딘가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코끝을 후벼팠다.

"낄낄...너 여자 안을 수나 있겠냐?"

돌에 짖눌리 듯 더디게 걷는 나를 질질 끌며 놈은 시니컬하게 비웃어대고

있었다. 

"박아달라고 똥구멍을 벌렁거리며....좋아서 쥐어짜는 새끼가..."

멍자국 나도록 움켜진 팔목이 쓰라려 욱씬욱씬 거린다. 

"계집보다 더한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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