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45)
  • 후루룩 후루룩 

    비빔국수 맛은 일품이었다. 특히 매콤한 양념은 우현의

    독보적인 솜씨를 뽐낸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낡은 툇마루에 앉아

    먹고 있자니, 맞은편에 앉은 우현이 일어났다. 처마끝에 걸린 전구를 켰다. 

    노란 전구빛이 방안 형광등 빛과 맞물려 시멘트로 덧발은 을씨년스러운

    마당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눅눅한 날씨는 비가 멈춘 후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에 날려갔다. 안채에서 촥, 하고 그릇 씻은 물 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뻘건 양념을 묻히며 먹고 있는데 녹슨 철제대문이 삐걱, 하고

    소리를 냈다. 놈인 줄 알고 우현이 황급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좁은 길을 밀고 들어오는 이들은 모르는 남자 셋이었다. 

    "...형님 계시나?..."

    척 봐도 건들거리는 깡패들이었다. 놈과 딱이다.

    "...아직..."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선 우현이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남자들

    손엔 소주와 안주거리가 잔뜩 들려있었다. 두꺼운 입술을 가진 놈이

    우현과 나를 한참 번갈아 보았다.

    "니가 형님 이거냐?..."

    껌을 짝짝 씹으며 두꺼운 입술은 우현을 향해 새끼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먹기 전 채널 바꾼 티브이에선 여자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뭘 고런 걸 물어싸...보면 모르겄냐...?..얼굴도 색스럽고 허리도 

    야들야들 한게 딱 형님 취향이구만..."

    팔뚝에 기다란 흉터 가진 놈이 우현 앞에서 그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밀고 품평하 듯 위에서부터 쫙 훑어보았다. 

    적나라한 눈빛, 우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완전 없는 사람 취급이다. 

    "고렇게 여자, 남자 안 가려도 살림은 여자랑 차릴 줄 알았는데....."

    "야...형수님 앞에서 무슨 말이냐...."

    "..흠..흠..."

    "........" 

    "근데 지금 저녁 잡수시는가 본데...."

    한쪽 팔뚝에 장미 문신 있는 놈이 맛있어 보이는 비빔국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네.....좀 드실래요...."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어리둥절하던 우현이 어눌하게 말을 마치기 

       

    무섭게, 쩝쩝 입맛을 다시며 깡패 세 명이 동시에 좁은 툇마루에 엉덩이를 

    끼고 앉았다. 

    부지불식간 놈의 엉덩이에 밀려 상 밖으로 밀려났다. 

    푸르륵 쩝 쩝 쩝 

    덩치 큰 남자 셋이 작은 상에 머리를 맞대고 우현이 

    한 소쿠리에 듬뿍 삶아온 국수를 게 눈 감추듯, 양념장을 듬뿍 넣고선 

    입안에 처넣고 있었다. 

    우현과 난 예전에 명자와 살던 방 앞 좁은 마루에 걸터앉아 상 없이 불은 

    국수를 먹었다.

    "맛있다...쩝쩝.."

    "겁나게 맛있구먼...후르륵...역시 형님 눈썰미는 알아줘야 한당께..."

    "밤일도 허벌나게 잘하게 생겼구먼...색기가 좔좔 흐르는게..."

    "당연하지...형님이 선택했는데..."

    "......"

    우현을 향한 그들의 음탕한 말에 우현의 볼이 붉어졌다. 

    "뭐하냐..?.."

    가래 끓는 놈의 저음이 들려왔다. 깡패 세 놈이 먹다말고 후다닥 

    형님, 하고 90도로 고개를 수그렸다. 철만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진다. 

    "해도 떨어진 야심한 시간에 뭔 일이야?..."

    "이 놈이 오늘 깜빵에서 나왔지 않습니까...하하..."

    "........"

    "그리고 형수님도 볼겸...."

    "미친...그런 말을 대놓고 하면 어떡허냐..."

    장미문신 놈이 팔뚝에 흉터 있는 놈의 등짝을 후려치며, 심기가 좋아 보이지 

    않는 철만의 눈치를 보며 멋 적은 듯 헤헤거렸다.     

    "아니...어디 가십니까..."

    순간 무거운 기운에 옳다구나, 하고 나가려는 우현을 장미문신이 붙잡았다. 

    "....국수가 떨어져서..."

    "이런 야심한 밤에....야!..너 일루와 봐...야!...그래 너...가서 국수 

    좀 사와...."

    흑인입술처럼 두꺼운 놈이 나를 불렀다. 

    "아니...제가...."

    우현이 손짓으로 제지했지만 들어먹을리 만무했다. 

    "얼릉...안와..."

    "됐어...순기, 니가 갔다와..."

    찬물을 끼얹 듯 내뿜어지는 차가운 철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옙!.."

    흉터가 우렁찬 대답을 마치며 잽싸게 뛰어나갔다. 

    철만이 내게 다가왔다. 눈썹은 여전히 찌푸려진 채다.

    "뭐하는 짓이야..?..볼썽사납게....니가 거지야..."

    놈에게서 역한 땀 냄새가 코끝을 후벼 판다.  

    허리가 아파 똥 누는 자세로 한쪽 팔꿈치를 마루에 걸친 채 국수를 

    먹고 있는데 그게 심히 언짢은가 보다.  

    "....아파서..."

    "......."

    "......"

    "....지랄..."

    굵은 팔뚝이 훤히 보이는 러닝셔츠만 입고선, 한 손에 잡고 있는 때 낀

    남방으로 얼굴을 살짝 때렸다. 

    "....유난은...입이나 닦고 처먹어 새꺄..."

    놈이 수돗가로 가 마지막 러닝셔츠를 벗어 제꼈다. 막노동과 싸움으로

    다져진 우락부락한 몸이 꿈틀거린다. 우현이 쪼르르 수돗가로 달려가

    수도꼭지를 틀었다. 등목을 하려 엎드린 놈의 등에다 우현이 바가지로

    물을 쏟아 부었다.   

    촤아악 촤아악

    "....으...시원하다..."

    까무잡잡한 놈의 등에다 매끄러운 자신의 손바닥을 슥슥 문지르며 

    만족스러운 듯 우현은 시원한 물을 계속 뿌려댔다. 

    "....여기 앉으세요...형수님..."

    형수님 소리가 잘도 나온다.   

    "...아니...저기..."

    두꺼운 입술이 팔을 끌어 놈의 옆에 앉히자 어쩔 줄 몰라하며 우현은

    철만의 눈치만 보고 있다. 놈은 우현이 갖고 온 국수에 양념을 묻히며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작은 상에 우현까지 끼자 두꺼운 입술과 흉터는 그릇을 손에 들고 

    세 그릇째 입안에 쑤셔 넣고 있었다. 나만이 동떨어져

    이끼 낀 담벼락을 보며 예전 명자와 살던 방 앞 좁은 마루에 걸터앉은 채다.

    불어터져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면발을 입안에 넘기고 있었다. 

    "역시...남편 사랑은 아내..아니..그 뭐시기냐...하여튼 열 여자 

    안 부럽겠습니다요..."

    철만의 옆에 앉아, 알아서 척척 다 비워낸 그릇을 소쿠리에 있는 면까지

    덜어 양념에 버무려주고, 물 떠다주고, 입에 묻은 양념자국마저 닦아주자 

    부러운 듯 두꺼운 입술이 혀를 놀렸다. 

    "얼굴도 여자 뺨치게 이쁘고 허리도 나긋나긋...켁켁...왜 또 그라시오.."

    장미문신이 철만의 눈치를 보며 등을 세게 치자 흉터가 발끈하며 물었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 얼굴로 쯥쯥,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놈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물이 떨어지자 우현이 먹고 있던 면발을 냉큼 끊고 일어났다. 

    "가만히 계시소...거기...야!..야!..너 이리와..."

    흉터가 또 나를 불렀다. 

    놈의 입에 구겨 넣던 국수가 잠시 흠칫 멈췄다.  

    불어터진 비빔국수를 내려놓고 어기적 어기적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미적

    거렸다. 

    "느려터지긴...후딱 못 뛰어와...저놈을 엇따 써먹는다냐....."

    "......"

    흉터가 두 눈을 번뜩이며 꿍얼댔다. 놈이 늘 하는 말이다. 

    철만의 한쪽 눈썹이 씰룩인다. 

    손등으로 양념 묻은 입술 주변을 훔치며 다가갔다. 

    "저놈 걷는 게 왜 저래...치질 걸렸나..?...더럽게.."

    흉터의 말에 철만이 탁, 하고 젓가락 놓는 게 보인다. 

    우현의 어깨가 경직된다. 다른 세 놈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낄낄거리며 

    내 걸음 모양새를 조롱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흉터가 그릇을

    던지듯 건넸다. 

    "물 떠와라..."

    "됐어!"

    시리도록 차가운 놈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장미문신과 두꺼운 

    입술도 그제서야 놈의 기운에 몸을 경직시켰다. 

    놈의 목소리가 접수되지 않은 건 흉터뿐이었다. 

    "이 등신 새끼...죽을래...빨리 떠와..."

    흉터가 신발 신은 발로 느닷없이 내 엉덩이를 찼다. 

    너무 놀라 기함을 했다. 

    그때 쿵 와장창창, 하고 밥상이 더러운 시멘트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이...씹새끼..."

    놈이 이를 으드득 갈며 흉터의 얼굴을 무지막지하게 가격했다.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흉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깜빵 또 들어가고 싶지...새끼...이 씨발놈..너나 죽어...."

    퍽 퍽 퍽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에 남은 두 깡패가 말리려 놈에게 다가갔다.

    오히려 더 맞고 나가 떨어졌다. 

    음식들과 그릇들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놈은 성이 차지 않는지 쌍코피가 

    흘러내리는 흉터를 때리고 발로 차고 짖이기고 있었다. 

    흉터새끼가 찬 엉덩이가 아파 마냥 쓰다듬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쪽문을 올라서 방에 엉금엉금 들어갔다. 

    이불 속에 쏙 파고들어 머리 위까지 덮어썼다.

    시끄러운 소리가 빨리 멎어 잠에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놈의 피 튀기는 소리가 한참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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