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나, 다녀올게.
“그러게요. 오랜만에 연락주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핸드폰 너머로 전한 목소리는 무척이나 일상적이었다.
연희는 준혁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렵게 되찾은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 반해 핸드폰 너머의 세라는 조금 전 뱉은 말 때문에 더욱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감정이 고스란히 실린 코웃음이 곧장 귀로 들어왔다.
-하, 기가 막히네, 정말. 지금 나한테 잘 지냈느냐고 물었어요? 신연희 씨가 나라면, 잘 지냈겠어요?
한껏 격양된 목소리였다.
기가 막힐 것이다.
그렇기도 하겠지.
잔뜩 약이 올라 전화를 걸어온 것일 텐데 너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니, 세라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연희의 입장에선 이렇게 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세라를 만난다는 걸 준혁에게 들켜선 안 되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한 번은 연락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 행세하고 다니더니 사람이 뻔뻔해졌네, 신연희 씨.
“그러게 말이에요. 오늘은 시간이 좀 늦긴 했는데, 혹시 내일은 따로 시간이 안 되세요?”
연희는 세라의 말을 빌려 뻔뻔하게 물었다.
줄곧 핸드폰만 보고 있던 준혁의 시선이 언제부턴가 제게 박혀 있다는 걸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기다렸다는 듯 세라의 말에 만나자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준혁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모르고 있을 세라로서는 자신의 말 안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역시나 세라가 흥분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당신이 하고 다닌 짓거리 때문에 얼마나 수치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알기나 해? 근데 나더러 지금 내일까지 기다리라고?
“아, 바쁘시구나……. 어쩔 수 없죠. 그럼 지금 잠깐 봬요. 한 시간 후, 어떠세요?”
-……당신 지금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하는 거 맞아?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한 건지, 한 템포 뜸을 들이던 세라가 한결 낮아진 톤으로 물어왔다.
연희는 그 말에 냉큼 대답했다.
“그럼요. 물론이죠. 한 시간 후에 뵙는 거 괜찮으시면 장소는 편한 데로 알려주세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하. 일단 좋아요. 옆에 정준혁 씨 있어서 이러는 것 같으니까, 전화는 이만 끊고 장소는 문자로 보내두죠. 신연희 씨가 말한 한 시간 후에, 내가 정한 장소에서 봐요.
다행히 세라가 늦게나마 눈치를 차린 모양이었다.
연희는 간략하게 대답하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메시지를 확인하는 척 준혁 몰래 ‘윤세라’라고 저장해둔 이름을 ‘간병인 아주머니’라고 바꾸었다.
준혁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눈치 빠른 그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고 완전하게 확신할 순 없었다.
필요하다면 통화목록이라도 보여주며 그를 안심시킬 생각이었다.
조금 전 통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길 바라는 건지, 준혁의 시선이 집요하게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연희는 모르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그러곤 침실과 연결된 드레스룸에 들어가 외투를 챙겼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차 키를 손에 쥐자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세라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