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기적, 그리고…….
“어, 엄마!!”
연희는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여기까지 오는 길을 얼마나 헤맸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중환자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앞으로 갔지만, 그곳에 연정은 없었다.
급히 미영에게 전화를 걸고서야 연정이 기존의 VIP 병실로 옮겨졌단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급히 병실로 뛰어오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깨어나 일반 병실로 옮겨지다니.
과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이게 꿈은 아닐지, 연희는 이곳으로 오는 내내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꿈이 아니었다.
“연희야.”
반쯤 세워진 침대에 기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분명, 연정이 맞았다.
“엄마.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연희는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러자 연정의 옆에 앉아있던 미영이 퉁퉁 부은 얼굴로 재촉했다.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엄마 손 잡아드리지 않고!”
연희는 소리를 따라 미영을 한 번 바라보다가도 금세 연정에게 시선을 박아 넣었다.
미영의 성화에도 쉬이 다가설 수가 없었다.
보고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연정에게 가까이 다가서면 이 모든 일이 꿈이 되어 깨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도무지 겁이 나서 한 발짝도 내디딜 수가 없었다.
“연희야.”
그런데 다시금 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와, 연희야.”
그러곤 못 박힌 듯 멈추었던 걸음을 재촉했다.
뿐만 아니라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미영의 말처럼 어서 빨리 와서 손을 잡아달라는 듯이.
“하, 엄마…….”
목 끝에 걸렸던 말이 툭 새어 나왔다.
연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연정을 향해 달려갔다.
제게 내밀어진 연정의 손을 보고도 연정에게 다가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기적이 찾아온, 아주 감사한 저녁이었다.
***
밤 깊은 시각.
연희는 연정의 침대에 모로 누웠다. 그러곤 천장을 보고 있는 연정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연정과 보내는 밤인지 알 수 없었다.
늦은 저녁, 준혁이 사색이 된 얼굴로 병원을 찾아왔다.
놀란 마음에 핸드폰을 챙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걸 그의 얼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아 많이 놀란 모습이었다.
연희는 자신을 품에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준혁을 한참 만에야 떼어내곤 오늘은 병원에서 연정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이야기했다.
잠깐이지만 그의 얼굴 위로 불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보았다. 하지만 알은척하지 않았다.
오늘 밤은 꼭 연정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는 주치의의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행히 준혁은 이해한다는 대답과 함께 걸음을 돌려주었고, 덕분에 연정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연희는 팔을 고쳐 베곤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엄마…….”
“응?”
밤이 깊어가고 연정과 함께 시간을 보낸 지도 꽤 되었는데, 연정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미영과 함께 있었을 땐 물론, 미영이 돌아가고 단둘만이 남은 후에도 연정은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만 물을 뿐이었다.
“왜 아무것도 안 물어요?”
“…….”
“엄마도, 그 여자 봤잖아.”
연희는 그 말을 뱉으며 연정의 표정을 더욱 세심하게 살폈다.
연정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표정 변화랄 것도 없었다. 계속 그랬듯 규칙적으로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그게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연희의 마음을 더욱 불편해지게 만들었다.
연정이 연희의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운 건 한참이 지나고 난 후였다.
연희는 몸을 돌리는 연정을 보곤 혹여라도 그녀가 불편하기라도 할까 봐 몸을 뒤로 물렸다.
편안하게 서로를 마주 본 자세가 되어서야 연정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했다.
“결혼해보니까 어때?”
퍽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질문에 연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
“……그건 왜?”
“그냥.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췌장암이라는 거 알고 사는 동안 연희 네가 결혼하는 것까지 보는 건 욕심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었거든. 지금이라고 결혼한 모습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딸이 결혼을 했다니까 기분이 좀 묘하네.”
연정이 해맑기 그지없는 얼굴로 입술을 벙긋거렸다.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타박은커녕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라 연희는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당연히 이 말이 나오면 걱정이 가득한 연정을 마주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얼굴이라니, 기분이 오묘했다.
“음, 절반은 좋고, 나머지 절반은…….”
“…….”
“조금 힘들어.”
연희는 고심 끝에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연정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힘들어? 왜? 남편 되는 사람이 힘들게 해?”
내도록 보이지 않던 걱정의 빛이 그제야 조금은 연정의 얼굴 위로 스며들었다.
연희는 배시시 웃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막상 혼자서만 삭여온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조금쯤 속이 시원한 것도 같았다.
그게 기폭제가 되었는지,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술이 움직였다.
“아니. 너무 잘해줘. 그래서, 그래서 힘들어.”
“그게 왜 힘들어? 잘해주면 좋은 거지.”
“나는 언젠간 떠나줘야 하는 사람이잖아. 그 남자랑 결혼한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니까.”
말을 뱉고 나서야 너무 솔직한 대답이었나 하는 조바심이 밀려왔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연정이라면, 그녀를 배려한 거짓말보단 걱정스러울지언정 솔직한 대답을 해주길 바랄 것 같았다.
내내 해맑게 질문을 던져오던 연정이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연희는 묵묵히 기다렸다. 오늘만큼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짐을 잠깐이나마 내려놓은 채 어린아이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요 속에서 시간을 보내길 한참.
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희야.”
“응, 엄마…….”
연희는 대답을 하며 아이처럼 연정의 품에 파고들었다.
연정의 말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인데, 그 목소리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는 말이야. 네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
“엄마는 너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널 만나서 내내 기뻤고, 분에 넘치게 행복했어.”
그 말을 하며 연정이 연희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곤 연희의 머리카락을 정돈하듯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연희는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딸이 되어 온전하게 보살핌받는 기분을 느꼈다.
그게 그녀의 마음을 자꾸만 먹먹하게 했다.
평생 연정만을 가족이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진짜 가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진짜 가족이란 사람은 자신을 버린 거로도 모자라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부정하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이 제 행복을 바랄 리가 없었다.
진짜 가족도 제 행복을 바라지 않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연정이 진심으로 자신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넌 나한테 축복이자 행복인데, 엄만 널 너무 힘들게만 했던 거 같아.”
연희는 서글프게 흐느끼다 별안간 들려온 연정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니야, 엄마. 무슨 말이 그래요. 내가 왜 엄마 때문에 힘이 들어. 그런 거 아니야.”
연희는 연정의 말을 완강히 부정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연정이 짧은 사이 흠뻑 젖은 연희의 볼을 닦아주며 올곧이 시선을 마주해왔다.
“네가 행복한 삶을 살아. 뭘 하든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한 선택을 하고, 네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인생을.”
“…….”
“엄만 연희, 네가 꼭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는 언제나 응원할게.”
그 말끝에 연정은 눈이 부시도록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랑해, 연희야.”
그리고 이어진 진심이 가득한 엄마의 고백이 다시금 연희의 마음을 울리고 말았다.
“하, 엄마아, 흐윽.”
연희는 연정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동안 꾹꾹 눌러내었던 설움이 기다렸다는 듯 터져 올랐다.
그녀가 서러운 숨을 뱉을 때마다 연정이 부드러운 손길로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그간 무척이나 고되었을 딸의 시간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연희는 불현듯 무거운 수마가 덮쳐오는 걸 느꼈다.
머리 위로 느껴지는 연정의 손길이 그렇지 않아도 무섭게 밀려오는 수마를 더욱이나 재촉했다.
연희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까무룩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실로 오랜만에 이루는 단잠이었다.
***
새근새근 숨을 내쉬던 연희가 몸을 뒤척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잠으로 가득한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자 여명이 밝아오는 창밖 세상이 보였다.
그 옆에 걸린 시계를 슬쩍 살폈다. 새벽 여섯 시를 막 넘기고 있는 시곗바늘이 보였다.
준혁이 일어나 한창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저녁상에 올릴 찌개를 끓여두긴 했지만, 그걸 준혁이 알아서 챙겨 먹었을지는 미지수였다.
연희를 눈을 비비적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침 챙겨 먹고 출근하라고 준혁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몸을 반쯤 일으켰을 찰나, 제게 기대고 있던 연정의 몸이 스르르 움직이는가 싶더니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연희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연정을 바라보았다.
연정은 잠들기 직전 보았던 얼굴 그대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분명 똑같았다.
어느 한 곳도 연정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부분이 없는데.
그런데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린 연정의 얼굴이 왜인지 소름 끼치도록 낯설었다.
“엄마…….”
연희는 불길한 예감을 지우지 못한 채 조심스러운 손길로 연정을 흔들어 깨웠다.
“엄마……?”
조심스러웠던 손길은 금세 거칠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연정은 대답을 돌려주지도, 눈을 뜨지도 않았다.
“어, 엄마. 엄마!”
연희는 몸을 세우고 앉아 연정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축 늘어진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연희의 손이 미끄러지기 무섭게 연정의 몸은 맥없이 병실 침대로 쓰러지듯 널브러졌다.
그 모습을 본 연희의 눈동자로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엄마!!!”
고통으로 가득 찬 절규가 온 병원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