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집착 (24)화 (24/80)

24. 선물

“후우…….”

준혁의 잇새로 묵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사실을 어떻게 연희에게 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바란 거라곤 연희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하나뿐이었는데, 행복으로 가는 길에 놓인 걸림돌이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일주일째 연희의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윤세라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김 비서에게도 관련한 일을 지시할 수가 없었다.

연희와 관련된 일 중 중요하지 않은 건 무엇도 없으나, 윤세라와의 관계를 주시하는 것보다 연희의 출생과 관련한 일을 파고드는 것이 현재로선 우선이었다.

그러니 연희와 윤세라 사이에 벌어질 만한 일은 자신이 눈여겨봐야 하는 것이 맞는데, 제 부친인 정 회장의 눈 밖으로 나지 않으며 그것까지 신경 쓰려니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빈틈이 생겼다. 회사 일은 물론이고, 연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지금처럼 행동을 하는 것인지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제발 네 과거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할 때까지만, 연희야…….”

그때까지만 제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 달라고.

준혁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빌었다.

***

새벽이 깊도록 세라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쿠션감이 좋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놓고도 잔뜩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앞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 위였다.

새까만 액정 화면이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세라의 심기를 못내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될 텐데, 신연희.”

비틀린 입술 사이로 표독스러운 음성이 새어 나왔다.

세라는 소파 팔걸이를 탁탁 내리치던 손가락을 힘주어 말아쥐었다.

단순히 정략결혼이란 제도가 싫었을 뿐이었다. 더불어 결혼이란 것에 아직 얽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기엔 아직 해보지 못한 것도 너무 많았고, 하고 싶은 것이 셀 수 없이 많았다.

1년쯤 자유를 얻고 싶었을 뿐인데, 그 대가가 너무 잔혹했다.

제 자리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빼앗길지도 모를 지경이었으니.

“하, 미치겠네, 진짜.”

세라는 지칠 줄도 모르고 밀려오는 신경질에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조바심이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일에 정준혁까지 개입된 이상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제 자리를 되찾아야 하는데, 돈으로 산 대리인이 연락조차 받질 않으니 초조함에 잠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액정 위를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이내 멈춘 건, 할머니라고 저장된 글자 위에서였다.

“눈 한 번 딱 감고 말씀드리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어.”

말은 쉬웠지만, 손가락은 생각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지금까지 벌인 모든 일들을 토로했다가 당장 마주하게 될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건 어디까지나 제 조모인 최숙희 여사의 성정이 어떠한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돌겠다, 정말.”

세라가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맞은편 소파로 패대기치듯 핸드폰을 던지곤 머리카락을 쥐어뜯듯 잡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할머니는 최후에 선택해야 하는 카드였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걸 더 해보자고 그렇게 되뇌었다.

고층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네온사인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세라는 집어던졌던 핸드폰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러곤 이전과 달리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

이른 아침.

연희는 새벽 동안 세라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곤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집 계약 마무리됐고, 신연희 씨 어머니 병원도 그 근처 대학 병원으로 이송하는 쪽으로 조치 취해보려고 해요. 아무래도 그편이 신연희 씨도 편할 테니. 그러려면 어머니께도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내가 하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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