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집착 (22)화 (22/80)

22. 이기적인 바람(1)

주차를 마친 준혁이 성급한 몸짓으로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과 연결된 건물 통로로 들어서고 엘리베이터에 오르기까지.

그는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급해 보였다.

숫자가 바뀌는 계기판을 응시하는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준혁은 시종일관 불편한 모습이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가 도어 록 위로 서둘러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있던 문이 입을 벌리자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코끝으로 훅 끼치는 익숙한 향기에 준혁은 망설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연희야, 나 왔어.”

퇴근을 알렸지만, 반겨주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래도 준혁은 불안하지 않았다.

연희의 체취로 가득한 온기가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게다가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그것만으로 연희가 이 집 안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이 밀려왔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매일 아침 출근 때마다 그를 괴롭혔다.

조바심으로 가득한 하루를 간신히 버텨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연희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 나면 뻐근하게 경직되었던 심장이 안온함을 되찾았다.

그게 오늘로 일주일째 유지되고 있는 루틴이었다.

준혁은 주방 입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

말없이 한 곳만 응시하는 준혁의 눈동자 위로 너무도 익숙한 인영이 콕 박혔다.

연희의 뒷모습이었다.

무엇을 그렇게도 열심히 만들고 있는 건지, 연희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준혁은 그녀의 뒤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자리에 서서 그녀의 허리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앗……!”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놀란 연희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준혁은 그런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입술이 닿는 자리마다 키스를 남겼다.

“간지러워, 바보야.”

한결 긴장이 풀어진 듯, 연희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투덜거렸다.

“뭐 하고 있었어?”

준혁은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연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가 지금껏 뭘 하고 있었을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냄비에서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그녀의 앞엔 도마와 달걀말이가 놓여 있었으니까.

시선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한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무얼 하느냐 물은 이유는 연희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누굴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저녁 하고 있었어. 너 올 때 다됐길래.”

충분히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도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시간을 멈춰버리고 싶을 만큼.

“맛있는 냄새 난다.”

“다 됐어. 씻고 와.”

“응.”

준혁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연희의 허리를 감은 팔에선 힘을 빼지 않았다.

“씻고 오라니까, 바보야.”

“응, 알겠어.”

연희의 채근이 이어졌지만, 준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놓고 싶지 않았다. 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연희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마치 꿈만 같았다. 이대로 그녀를 놓아버리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 같았다.

이렇게 힘주어 안고 있는데, 몇 번이고 들이마시는 그녀의 체취가 이렇게도 또렷한데.

그런데도 자꾸만 불안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불안이 잠재워질지 준혁 역시나 알고 싶었지만,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었다.

“준혁아.”

아이처럼 그녀에게 매달려있길 한참.

연희가 가까스로 몸을 돌리더니 눈을 맞춰왔다. 준혁은 그 잠깐도 참지 못하고 불그스름한 입술 위로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부딪쳤다 떨어지는 소리가 청아하게 공간을 울렸다.

집요한 준혁의 눈동자 위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는 연희의 얼굴이 비쳤다.

그 모습까지도 견딜 수 없게 자극적이었다.

가까스로 붙들고 있는 욕망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란 마음의 소리가 고막을 뎅뎅 울렸다.

그러나 준혁은 한 걸음 물러섰다.

어제까지도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쉴 틈 없이 괴롭혀온 참이었다.

오늘만큼은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자신을 위해 정성 들여 저녁을 준비했을 연희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씻고 올게.”

준혁은 입매를 위로 휘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곤 서둘러 걸음을 돌렸다.

저를 향한 연희의 눈길이 너무 아련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연희의 그 아련한 시선이 자신을 일주일째 해소할 수 없는 불안 속으로 밀어 넣은 건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걸음에 속도를 더욱 더해야 했다.

이렇게라도 빨리 그녀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면 오늘도 그녀를 실신 직전까지 괴롭히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추궁할 것 같았다.

연희와의 잠자리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싶진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찬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

“어머니는 만나 뵙고 왔어?”

막 된장찌개를 한 술 떠먹던 준혁이 연희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준혁의 반응쯤이나 기대하며 넋을 놓고 있던 연희의 낯빛이 일순 경직되었다.

찰나였다.

금세 표정을 갈무리한 연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녀왔지.”

“어디가 더 편찮으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연희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라를 만나고 온 이후, 연정을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준혁에겐 매일 연정을 핑계로 거짓말을 했다.

시시때때로 걸려 오는 전화를 피하기 위해선 그것만이 최선이었다.

도무지 준혁의 전화를 받을 자신이 없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그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역이었다.

그와의 시간은 너무나도 달콤한데,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꾸만 그날 세라가 했던 말들이 귓가에서 메아리를 쳐댔다.

더욱이 그날 이후 매일 세라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었다.

신연희 씨 짐은 정준혁 씨가 출근한 사이에 빼는 게 좋겠어요. 오전 중에 비워주면 그 후에 내가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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