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 남편을 돌려줬으면 해요.
점심시간이 막 지난 무렵.
노크와 함께 김 비서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준혁은 시선을 들어 상대를 살피곤 사무적인 목소리를 냈다.
“분점 부지 매수 문제가 정리되었다는 건 보고 받았습니다. 추가로 결재해야 될 사안 있으면 바로 보고 올리세요. 아, 지난번에 아웃렛 관련해서 지시한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별다른 호출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찾은 것이 그저 업무적인 문제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마침 모니터를 가득 채운 결재안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김 비서에게선 선뜻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준혁이 안경을 벗어내곤 의아한 얼굴로 김 비서를 바라보았다.
“분점 부지 매수는 보고 받으신 대로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곧 HN건설을 통해 시공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웃렛 추진 문제로 지시하신 내용은 아직 준비 중에 있지만, 곧 보고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어본 질문에 착실한 대답이었다. 원래라면 그걸 끝으로 김 비서가 고개를 숙여야 맞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다른 문제가 있기라도 한 건지, 마주한 김 비서의 낯빛이 심상치 않았다.
“얘기해요.”
“예?”
“다른 할 말이 있어서 들어온 거 아닙니까?”
준혁은 손에 쥐고 있던 펜도 내려놓고 양손을 깍지 꼈다. 그 위로 턱을 받친 채 오롯이 김 비서만을 바라보자 그의 안면근육이 잘게 균열하는 것이 보였다.
준혁은 잠자코 김 비서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선뜻 말을 잇지 못하는 게 연희와 관련한 일일 거란 예감이 밀려왔다. 더욱이 이렇게까지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 보니 심각한 사안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갈무리했지만,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곧 김 비서의 목소리가 대표실 안을 울렸다.
“연희 아가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말씀드린 보고가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 비서의 말은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준혁은 미간을 좁혔다. 그간 김 비서가 보고했던 많은 내용들을 떠올렸다.
전부 연희와 관련한 것들이었기에 준혁에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연희 아가씨와 윤세라 씨가 쌍둥이 자매인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하.”
준혁이 탄식을 내뱉었다.
아니길 바랐던 가설이 사실이 되자 머리부터 지끈거리고 아파 왔다.
준혁은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김 비서를 통해 들은 말은 길지 않은데, 그 말로 인한 여파는 작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밀려왔다.
혼란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김 비서의 말이 연이어 들려왔다.
“출산 당시 산부인과에서 일하던 간호사와 몇 차례 더 접촉했고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어제였는데…….”
말끝을 흐린 김 비서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준혁의 앞으로 내려놓았다.
“어제 이걸 주셨습니다.”
준혁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곤 앞에 놓인 봉투를 빤히 바라보았다.
봉투의 겉면엔 ‘성아 산부인과’라는 문구가 단정한 글씨체로 프린팅되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누렇게 바래긴 했지만, 산부인과의 상호명만큼은 또렷했다.
준혁은 지체 없이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 안엔 반듯하게 접힌 종이가 한 장 들어있었다.
그걸 손에 쥐는 것만으로 가슴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준혁이 이내 거침없이 종이를 활짝 펼쳤다.
그 위로 떨어진 눈길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
연희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무섭게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디뎠다.
준혁이 출근한 틈을 타 찾은 곳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 감금당하다시피 했던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