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참았던 욕망
“하아, 읏……!”
연희는 거칠게 신음을 내뱉었다. 뒤에서 몰아붙이는 준혁의 힘이 너무도 거셌다.
준혁은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귓불을 물고 핥으며 이따금 귓속으로 혓바닥을 밀어 넣었다.
그럴 때마다 연희는 견딜 수 없는 쾌감에 온몸을 비틀었다.
“하아, 준혁아. 제발, 읏! 천, 천히…….”
연희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나 준혁은 몰아붙이는 힘을 빼기는커녕 가볍게 걸치고 있던 티 안으로 손을 밀어 넣을 뿐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익숙한 손길로 평평한 배를 훑었고, 봉긋한 살덩이를 채우고 있던 브래지어를 위로 밀어버렸다.
속옷에 고정돼 있던 풍만한 가슴이 준혁의 손길 한 번에 출렁이며 흔들렸다.
연희는 숨을 홉 들이마셨다.
와이어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즐길 새도 없이 그의 손에 짓이기듯 가슴을 내주어야 했다.
“준혁아,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다시금 그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그러나 대답 대신 돌아온 건 아찔하게 귓불을 깨무는 행위뿐이었다.
연희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통유리 창에 기댄 채 간신히 중심을 유지했다.
그때 욕망에 젖은 그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왔다.
“지금도, 자제하려고, 하…….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그는 거칠게 그르렁거렸다.
이게 어떻게 최선을 다해 자제하는 중인 거냐고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내 입술을 꾹 붙였다.
생각해 보면 테라스에서 여기 별장 안으로 들어오기까지도 여의치 않았다.
그는 그 짧은 순간조차도 견디기 힘들다는 듯 고작 몇 걸음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맞붙인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와 뜨겁게 연애했던 시간을 미루어보건대 여기서 그에게 더욱 바랐다간 그나마 남아 있는 자제력까지도 깡그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연희는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그를 받아내는 일뿐이었다.
그 생각으로 다리에 힘을 바짝 주는데, 그때 아찔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하읏!”
속절없이 신음을 내뱉었다.
그가 꼿꼿하게 선 분홍빛 알맹이를 꼬집듯 비틀었다.
잠깐도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너무 그리웠어, 네 향기.”
준혁이 연희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은 채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연희는 몸을 비틀었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의 몸은 물론, 그가 말을 뱉을 때마다 어깨 위로 간간이 흩어지는 숨결까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견디기 힘든 자극에 준혁의 어깨를 힘주어 붙잡았다. 그럴수록 그는 허리와 가슴을 감싼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매일 밤마다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야한 숨결로 가득한 준혁의 말소리가 귓속을 뚫고 들어왔다.
자제하는 중이라고 한 것이 무색하게 그의 손길은 점점 더 집요해졌다.
목덜미를 시작으로 어깨선은 물론 날개뼈가 있는 등까지.
그의 입술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으읏.”
연희는 몸을 배배 꼬면서도 착실하게 신음을 뱉었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그의 혀가 움직이는 자리를 따라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감각들이 빠르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온몸이 간지러웠다.
밀려오는 쾌감만으로도 이미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들려오는 준혁의 목소리는 자꾸만 펑펑 터지는 감각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밖에 되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어.”
그가 가슴을 한껏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속삭여왔다.
“네 눈빛, 네 목소리에 섞인 숨소리.”
“…….”
“네 몸에서 나는 단내까지, 전부.”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몸이 돌아갔다. 탁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연희는 숨을 멈추었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초리로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여전히 네가 아니면 안 되나 봐, 연희야.”
정준혁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 말이 아니라면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뱉은 게 정준혁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귓속에 꿀이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때 집요하게 시선을 뒤섞던 그가 별안간 고개를 내려 봉긋하게 차오른 살점을 크게 베어 물었다.
“앗, 주, 준혁아……!”
연희가 새된 목소리로 준혁의 이름을 불렀다. 본능이나 다름없이 고개를 뒤로 젖히자, 선정적이기만 한 혀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빙빙 돌던 머릿속이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배 속이 부글부글 끓고 좀 전부터 느껴지던 헛헛함이 점점 더 진해졌다.
연희는 미칠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공허함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그걸 채워주길 바라는 갈망이 자꾸만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견딜 수 없는 감각이 풍선처럼 펑 터진 건, 허리와 배를 쓸어내리던 그의 손이 트레이닝복 바지 안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어온 후부터였다.
“흡!”
연희는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전함과 공허함이 밀집된 자리를 찾아 손가락을 움직였다.
지난밤 그에게 지독하리만치 괴롭힘을 당했으면서도 자극이 전해질 때마다 온몸이 환호했다.
터질 듯 터지지 않아 괴롭기만 하던 감각이 짜릿한 전류가 되어 온몸 구석구석까지 찔러 나갔다.
“하, 준혁아. 나, 나…….”
연희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한 차례 진한 쾌감을 느꼈는데도 지독한 갈망은 쉬이 지워질 줄을 몰랐다.
그래서 애원이라도 할 참이었다.
더는 견딜 수가 없다고. 이대로는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다고.
그러나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야릇한 준혁의 목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걱정 마. 너보다 더 참기 힘든 게 나니까.”
그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연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한참 전부터 딱딱하게 부풀어 오른 그의 바지춤 위로 잡아당겼다.
연희의 동공이 크게 팽창하며 놀란 듯 흔들렸다. 그럴수록 준혁의 미소는 더욱 진해져만 갔다.
마치 놀라는 그녀가 귀엽다는 듯.
“뭐 하고 있어. 달래줘야지.”
능글맞은 목소리로 타박했다.
“내가 난폭하지 않게 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네가 직접.”
연희는 본능이나 다름없이 그의 바지를 아래로 당겨 내렸다. 그러곤 제 몸을 탐하던 준혁만큼이나 익숙한 손길로 잔뜩 성이 난 물건을 어루만졌다.
작은 손길에도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럴 때면 연희는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겁먹은 얼굴로 움직임을 멈췄다.
“하, 달래라니까 더 화나게 하면 어떡해.”
준혁이 들끓는 욕망을 입 밖으로 씹어뱉으며 연희의 한쪽 다리를 단숨에 들어 올렸다. 그러곤 이미 한참 전부터 준비된 그녀의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아읏!”
“하…….”
날카로운 교성과 진한 여운의 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연희는 준혁에게 몸을 기댄 채 몸을 바르르 떨었다.
불시에 찾아온 절정은 얕은 강도임에도 그녀의 혼을 빼놓기엔 충분했다.
준혁은 연희가 여운을 즐길 수 있도록 가만 멈춘 상태로 그녀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남겼다.
본격적인 사랑의 행위가 시작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후였다.
한껏 달아오른 연희의 몸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들바들 진동했다. 금세 찾아온 절정에 몇 번이고 허리를 들썩여야만 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있던 한쪽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자 준혁이 연희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게 뭐라고 연희는 마음이 아린 기분이었다.
욕정에 눈이 먼 것처럼 무섭게 몰아붙이더니, 역시 정준혁은 정준혁이었다. 그런 순간에조차 신연희가 불편해 보인다면 최선을 다해 배려를 하는 것.
준혁은 그런 남자였다.
함께 보낸 모든 시간 동안, 준혁은 단 한 번도 나빴던 적이 없었다. 부족했던 적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최고로 만족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신연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연희는 준혁의 목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세라와의 계약을 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그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준혁을 밀어낼 자신이 없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였다.
적어도 신연희에게 정준혁은 그랬다.
준혁을 다시 마주 보게 된 건 그녀의 등이 침대 시트에 닿고 나서였다.
“연희야.”
여전히 그녀의 안을 꽉 채우고 있던 그가 느닷없이 그녀를 불렀다.
“말해.”
“…….”
“다시는 말없이 사라지지 않겠다고.”
강압적인 요구였다. 그러나 연희의 귀에는 그저 간절하게 애원하는 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다시는 네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10년 만에 느끼는 그의 모든 것이 새삼 너무나도 달콤해서.
그가 이렇듯 요구하지 않아도 연희는 그의 곁을 떠날 자신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1년만 결혼 생활을 지속해주면 된다고 했던 세라의 말이 떠올랐고, 자신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엉망으로 만들 거란 변호사의 협박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상충하는 두 가지 생각이 연희를 너무나도 괴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차마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연희는 준혁을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대답을 기다리며 감정을 억누르긴 마찬가지인지, 진작부터 불거진 듯한 턱이 도드라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연희는 조용히 눈을 꼭 감았다. 그게 준혁에게 어떤 대답으로 전해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멈추었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연희는 마음 편히 신음을 뱉을 수도 없었다.
그저 그에게 무섭게 집어삼켜지며 이 밤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간절하게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