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집착 (7)화 (7/80)

7. 비틀린 집착(2)

“도대체 너…… 무슨 생각인 거야.”

연희의 미간이 속절없이 구겨졌다.

감정을 드러내 봐야 그가 원하는 일을 해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숨기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또 해도 준혁의 의중이 가늠되질 않았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어쩌자고 일이 이렇게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둔 것일까.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한 것인데도, 준혁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자그마치 10년을 이 순간만 꿈꾸고 기다려왔어.”

별안간 준혁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거리를 단숨에 좁혀왔다.

연희는 준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연희야.”

그가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왔다. 무섭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야.”

“…….”

“날 버리고 떠난 너를 다시 손에 쥐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

“아주 최선을 다해 했을 뿐이라고.”

연희는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그가 내뱉은 말 전부가 너무나도 위험했다.

자신이 사라진 10년 동안 그는 도대체 어떤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

직접 본 것이 없으니 무엇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없던 지난 10년 동안에도 정준혁은 아주 잠깐의 시간도 자신을 놓은 적이 없다는 것.

“하아…….”

한숨을 내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연정의 치료를 위해 윤세라의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 것?

남편으로 지내야 할 사람이 정준혁이란 걸 알고도 도망치지 못한 것?

그것도 아니라면 10년 전, 정준혁을 사랑한 것부터가 잘못됐던 것일까.

“혹시 나한테 사과를 바랐어? 10년 전에 내가 HN그룹의 아들이란 걸 말하지 않아서.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사라진 너를 찾기 위해서 10년간 사람을 붙여 너에 대해 알아봐서 미안하다고. 설마 그런 말을 원했던 거야?”

한껏 비틀린 목소리가 연희의 고막을 아프게 할퀴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을 뿐인데, 준혁에겐 다른 의미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연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서늘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런 거라면 미안.”

준혁은 코앞까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곤 미치도록 달콤한 손길로 새하얀 연희의 손을 감싸 쥐었다.

“난 어느 쪽으로도 너한테 사과할 생각이 없어.”

잠깐도 흐트러지는 법 없는 흑연 같은 눈동자가 연희의 동공을 파고들 듯 집요하게 응시했다. 그러곤 고통을 울부짖는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네가 없던 10년이, 나한텐 뭐든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지옥이었거든.”

그가 새하얀 손등 위로 입술을 눌러 붙였다.

쪽.

피부 위로 내려앉은 입술이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청아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든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연희의 눈동자로 일그러진 준혁의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널 되찾게 될 날만 기다리면서 엿 같은 상황도 전부 참고 이 악물고 버텼는데.”

“…….”

“근데 네가 날 그런 눈으로 보면 어떡해.”

그의 잇새를 타고 새어 나오는 모든 말이 싸늘했다. 그러나 그걸 제외한 모든 것이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손등을 지분거리는 손길이나, 잠깐도 떨어질 줄 모르는 시선까지.

그런데 그런 와중에 그의 입술만큼은 감정 없이 웃고 있었다.

“준혁아…….”

연희는 10년 만에야 그토록 사랑하던 이름을 불러놓고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장장 10년이란 시간을 말도 없이 사라진 여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을 남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이리 와, 연희야.”

준혁이 애틋하게 부여잡은 연희의 손을 살살 달래며 잡아당겼다.

연희는 그 별거 아닌 힘에 속절없이 끌려가듯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키스하고 싶어.”

허락을 구하는 말이지만, 진짜 허락을 구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 아니란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입술이 맞붙었다.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입술 사이로 살덩이가 거칠게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연희는 눈을 감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뜨여있는 준혁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안으로 10년 전에 사랑했던, 그 시절의 정준혁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그에게서 도망치기 직전 보았던 얼굴이 자신을 피하지도 않고 직시하며 원망하고 있었다.

‘왜 날 버리고 떠났어?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조금 전까지도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나를 버리고 사라질 수가 있어, 어떻게.’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죄책감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만 같았다.

파고든 혀가 치열을 훑고 빈틈없이 입안을 메울수록 연희는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앗……!”

감정의 파동을 온몸으로 맞으며 어쩔 줄 모르던 그때, 연희의 잇새로 아찔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별안간 두 다리가 허공에 붕 뜬 탓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엉덩이가 테라스 난간에 걸쳐진 채였다.

연희는 놀란 얼굴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나 모르게 우리 집안 사람 중 누군가를 만났겠지. 널 만나 협박을 했을 거고, 그래서 갑자기 사라졌을 거야. 그렇지?”

준혁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성마르게 물었다.

원망으로 가득한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연희의 심장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네가 사라지고 수도 없이 생각했어. 어디로 간 걸까. 왜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진 걸까.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던 건 다 거짓이었나.”

그의 동공이 아프게 흔들렸다.

연희는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 역시 쩍쩍 갈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시종일관 제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까이 붙어있으면서도 더욱 가깝게 닿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을 또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조바심 내는 것처럼.

그는 이렇게 코앞에 두고도 자신을 갈망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그거 하나더라고. 내 아버지가 직접 나섰을 리는 없고, 누군가를 시켜 너를 만나게 했겠구나.”

“…….”

“그 빌어먹을 HN그룹을 운운하면서.”

“…….”

“너한테 겁을 줬겠구나.”

뭐라고든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연희는 도리어 입술을 꽉 맞붙였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다간 그날의 설움을 토해낼 것 같았다.

HN그룹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고.

오히려 발에 채는 돌멩이보다도 못한 저 같은 존재에겐 HN그룹의 ‘H’도 꺼낼 필요 없다는 듯 굴었다고.

하지만 이제 와 그런 말은 준혁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후벼팔 뿐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연희야, 너 하나 찾으려고 내 발로 뛰쳐나온 엿 같은 집구석에 다시 들어가 10년을 버텼어.”

“…….”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너를 찾을 수가 없겠더라고.”

연희는 밀려 올라오는 한숨을 꾹 눌러 삼켰다.

그랬을 것이다.

10년 전, 자신을 찾아온 변호사의 협박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거였으니까.

‘준혁이가 어떤 식으로도 제 행방에 대해 알 수 없게 해주세요. 처음부터 세상에 없던 사람인 것처럼.’

‘…….’

‘다 버리고 떠나는 건데, 한 사람 인생 망치는 대가로 그 정도 일은 해주실 수 있겠죠?’

제 입으로 그렇게 요구했다.

그것까지도 치기 어린 자존심에 한 말이었다.

도저히 이성적인 사고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모질게 말했다.

그 말을 하던 순간엔 제 마음 어디에도 준혁은 없었다.

오로지 다친 제 마음만이 중요했으니까.

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 준혁의 10년을 괴롭게 만들 거라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0년을 눈멀고 귀먹은 사람으로 빌어먹을 노인네들 비위 맞추면서 사니까 그제야 네 흔적이 조금씩 찾아지더라.”

“…….”

“너 하나 찾겠다고 그렇게 살았어, 나.”

연희는 숨을 멈추었다.

구구절절하게 듣지 않아도 그의 지난 10년을 알 것만 같아서 숨 쉬는 것도 죄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입가에 스며 있는 미소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연희의 가슴은 더욱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가 마침내 준비한 말의 클라이맥스를 전하려는 듯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니까 연희야.”

“…….”

“제발 예전처럼 다시 날 사랑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서걱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애원하는 걸까.

자신이 뭐라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이 남자가 왜.

“난 기어이 다시 손에 쥔 너를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으니까, 제발.”

준혁이 연희의 목덜미로 머리를 묻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면서도 간절하게 부여잡은 그녀의 손을 더욱 힘주어 움켜쥐었다.

연희는 차마 그런 준혁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안고 싶어, 너.”

하나 보잘것없는 자신을 이토록 간절하게 갈망하는 그를.

“제발 밀어내지 마.”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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