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집착 (4)화 (4/80)
  • 4. 내 남편, 마음에 들어요?

    마주 보고 앉은 식탁 주변으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다.

    연희는 기계처럼 숟가락만 계속해서 움직였다. 젓가락을 손에 쥘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먹어 봐. 좋아하던 거잖아.”

    준혁이 먹기 좋게 떼어낸 갈비 살점을 숟가락 위에 올려주었다.

    벌써 몇 번째였다.

    준혁은 제 앞에 놓인 밥그릇 위로 계속해서 반찬을 집어 나르고 있었다.

    “…….”

    “…….”

    연희는 대답 없이 양념이 잘 밴 고깃덩어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준혁의 말처럼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거였다.

    그땐 반찬 하나하나까지도 다 챙겨주던 그가 있어서 너무 행복했는데, 지금은 도무지 그때처럼 행복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고,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버렸다.

    그게 퍽 서글퍼 목이 메는데, 별안간 준혁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왔다.

    “직접 떠먹여 줘야 먹을 생각인가.”

    “…….”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면 그렇게 하고.”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옆자리로 건너올 작정인 듯했다.

    연희는 다급히 숟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그러곤 밥알과 함께 갈비를 꼭꼭 씹었다.

    그제야 준혁은 만족스럽다는 듯 입술을 휘어 올리며 제자리에 앉았다.

    “예전 기억 떠올리면서 한 건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

    “그때 이후로 처음 해보는 거야.”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연희의 턱이 일순 탁 멈추었다.

    10년 만에 다시 하는 음식이라기엔 맛이 그때와 비교해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연희는 아래로 내리고 있던 눈동자를 천천히 위로 들었다.

    준혁은 앞에 놓인 밥을 젓가락으로 깨작거리고 있었다.

    밥 생각이 없는 건지,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먹는 일엔 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곧 생기를 되찾곤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자신이 씹고 있던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긴 찰나였다.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관리인한테 시장 봐달라고 연락해 놓을 테니까.”

    준혁은 또 다른 반찬을 제 밥 위에 올려주며 말했다.

    탁하게 흐려졌던 눈동자에 어느덧 초점이 잡혀있었다.

    그게 뭐라고 연희는 자꾸만 마음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가 만든 음식은 물론, 자신을 향한 행동이나 눈빛. 하다못해 시선과 손길까지도.

    그는 10년 전의 정준혁 그대로였다.

    “계속 그러고 안 먹으면 이번엔 진짜 네 옆에 가서 그릇 다 비울 때까지 내가 먹여줄 생각이야.”

    “…….”

    “그렇게 할까?”

    부드러웠던 준혁의 목소리가 일순간 딱딱해졌다. 연희는 아무 말 없이 준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10년 만에 재회한 것이 무색하도록 연희는 준혁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아주 잠깐 그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어젯밤을 기점으로 그것 역시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0년 동안이나 그를 떠나야만 했던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신연희 씨는 물론 신연희 씨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까지 전부 다치게 될 겁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예요. 회장님은 당신께서 베푼 호의와 배려를 거절한 사람에게 절대 자비롭지 않으시거든요.’

    아무리 지우려고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 날의 일이 그와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이유였다.

    연희는 준혁이 올려준 반찬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젓가락을 들었다. 그러곤 그가 올려준 반찬을 고스란히 그의 밥 위로 올려주었다.

    “내가 먹을게. 신경 쓰지 마.”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한 말소리였다.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면 티는 내지 않을지언정 준혁이 상처받을 거란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희는 말을 정정하지도, 준혁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냉정한 척 구는 와중에도 준혁을 향해 가슴이 뛰어댔지만, 철모르는 아이처럼 감정에 휩쓸리기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러니 앞으로 1년간은 어떤 식으로든 신연희가 아닌 윤세라로 살아야 했다.

    연희는 마음을 다잡으며 식사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준혁을 바라보지 않았다.

    준혁이 집요할 정도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끝끝내 모르는 척했다.

    그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식사를 끝낸 연희가 설거지를 하려고 나섰을 때였다.

    별안간 연희의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혹 병원에 있을 연정의 간병인에게서 온 연락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연희는 서둘러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메시지를 보내온 사람은 세라였다.

    잠깐 통화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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