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뜨거운 첫날 밤
“하아, 읏……!”
연희의 잇새로 날카로운 교성이 새어 나왔다.
아무도 없는 데로 데려갈 거라고, 침실 밖으론 한 발짝도 내보내지 않을 거라고 했던 경고는 착실하게 이행되었다.
연희는 어떻게든 준혁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식장에서부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줄곧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게 신기할 정도로 준혁은 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완벽하게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줄곧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별장 출입문이 닫히기 무섭게 맹수로 돌변한 채 자신에게 달려들 순 없는 거니까.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어깨 위로 내려앉은 입술 사이로 뜨겁게 달아오른 숨이 흩어졌다.
연희는 몸을 비틀었다. 고작 몇 마디 되지 않는 말과 함께 숨결이 쏟아진 것뿐인데, 그것만으로 몸이 자지러지게 반응했다.
“여전히 너무 달아, 넌.”
연희가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떨었다.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온몸이 전율했다.
“하읏, 제,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연희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는 잠깐도 쉬는 법 없었다. 온몸 구석구석을 훑었고, 지분거렸다.
그 행위가 반복될 때마다 10년 전, 정준혁에게 길들었던 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실하게 젖어 들어갔다.
수치심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열렬한 환영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의지를 배반한 몸은 순식간에 그와 하나 될 준비를 마쳐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생각들로 복잡하게 돌아갔다.
돈 5억에 제 인생의 1년을 윤세라에게 주었다. 그러니 윤세라가 값을 지불한 1년의 시간 동안은 그녀인 척 살아야 하는 게 맞았다.
남편 될 사람이 정준혁이란 걸 알고 계약한 게 아니긴 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 약속한 일이었다.
이제 와 무를 수도 없었고,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췌장암입니다. 2기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이라도 발견한 게 천운이에요. 당장 항암치료 시작해야 합니다.’
1년 전, 연정과 함께 찾은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당장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오로지 돈이었다. 치료비는 자신이 어떻게든 해결하겠으니 치료를 받자고 했지만, 연정은 말을 듣지 않았고 치료는 지지부진했다.
연정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갔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건 연정의 치료를 강권할 수 없는 제 처지였다.
이 말도 안 되는 결혼을 하겠다고 결정한 건 전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연정은 제게 유일한 가족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세상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연정을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잃을 순 없었다.
그 이유 때문에라도 세라와의 계약을, 그녀가 약속한 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에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데, 줄곧 목 언저리를 지분거리던 그가 봉긋하게 솟아오른 살덩이를 한 입 집어삼켰다.
연희는 본능처럼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삼키기 위해 아랫입술을 거세게 물었다. 척추를 타고 전기가 찌르르 통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꾸 그와 뜨겁게 사랑했던 과거가 상기되었다. 동시에 위험 신호가 새빨갛게 머릿속을 물들였다.
이런 식으로는 세라와의 계약을 충실하게 이행할 자신이 없었다.
연희는 준혁의 어깨를 잡아 힘주어 밀어내었다.
“그, 그만! 너랑 난 10년 전에 끝난 사이야. 이제 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다. 그 말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말을 완성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 입.”
“…….”
“다물어, 연희야.”
무섭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연희의 숨통을 조여왔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만 하던 몸짓은 거짓말처럼 멈추었고, 준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순식간에 뒤얽힌 시선 사이로 스파크가 튀었다.
연희는 숨을 멈추었다. 준혁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뜩였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내가 어디까지 돌아버릴 수 있는지, 그게 보고 싶은 거라면 더 얘기하고.”
정말 한마디만 더 덧붙여도 준혁이 회까닥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무섭게 집착하는 정준혁은 겪어봤어도, 반쯤 돌아버린 그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은 언제나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연희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건, 무섭게 느껴지던 그의 눈빛이나 표정과는 달리 애절할 정도로 자신을 붙잡는 그의 손길이었다.
연희는 차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깨를 부여잡은 준혁의 손끝이 위태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만족스럽기라도 한 건지, 딱딱하게 굳었던 준혁의 안면근육이 천천히 풀어지는 게 보였다.
“잘 알고 있잖아.”
“…….”
“네 말 한마디면 발밑에 납작 엎드려 뭐든 할 수 있는 게 나라는 거.”
그가 다시 한번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줄곧 긴장을 하게 만들었던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내 눈앞에서 또 사라지지만 마.”
“…….”
“나한테 그만하라는 개소리만 지껄이지 마.”
그러나 연희는 더 이상 그런 준혁의 모습에 긴장이 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화염에 일렁이는 듯한 눈동자마저도 안쓰럽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거면 돼.”
“…….”
“그럼 난 또 신연희의 충실한 개가 되어서 뭐든 할 거야.”
연희는 여전히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아랫입술만 꾹 깨물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거칠기 짝이 없는 말을 뱉으면서도 준혁은 간곡하게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또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미친 듯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고 말았을까.
엉망이었다. 준혁도 자신도.
분명 예쁘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아름답던 그 모든 순간들이 산산이 깨부숴지고 말았다.
연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렇게 눈이라도 감아 현실을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더는 망가지고 싶지 않았다.
더는 준혁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오늘 밤 해야 하는 일이 그의 아래에 깔려 신음을 내지르는 일뿐이라고 하더라도.
연희는 이보다 더한 최악으로는 향하고 싶지 않았다.
***
눈꺼풀이 무거웠다.
눅진한 피로에 잠식당한 몸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기어이 눈꺼풀을 들썩였다.
향긋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으으.”
연희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창문으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분명 새벽이 깊어가던 중에 격정적인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까무룩 잠이 든 것 같은데, 어느덧 낮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불현듯 머릿속으로 새벽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하아, 달아. 혀가 닿는 곳마다 너무 달아서 혓바닥이 아릴 지경이야.’
준혁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제 몸 구석구석을 전부 핥아 내리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마다 뇌를 거치지 않은 듯한 날 것 그대로의 표현들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게 자신을 괴롭히는 준혁만의 방식이란 걸, 연희는 잘 알고 있었다.
적나라한 그의 표현에 알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고 몸부림치지만, 결국엔 견디지 못하고 절정에 오르는 것.
지난밤에도 그 과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죄책감에 준혁을 말릴 수 없었고, 준혁은 끊임없이 자신을 안고 또 안았다는 것이다.
더는 버틸 수 없어 까무룩 정신을 놓을 것 같을 때쯤, 그는 본능에 충실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하. 넌,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날 미치게 만들어.’
‘…….’
‘눈 뜨고 있다 등신처럼 잃어버리는 거, 두 번 다신 안 해. 다시는, 너 안 잃어버려. 절대, 절대로, 다시는. 아윽.’
준혁은 흥분에 취한 채 축축하게 젖은 제 안을 거침없이 휘저었다.
그러면서도 혹여나 조절하지 못한 힘에 다치기라도 할까 봐 시시각각 살피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절정의 순간이 연달아 이어졌는데, 새로운 절정은 지치지도 않고 찾아왔다.
견딜 수 없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같은 순간 준혁 역시 정제되지 않은 쾌감에 한참이나 행위의 결과물을 쏟아내어야 했다.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아주 잠깐 정신을 놓았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준혁의 품 안이었다.
땀에 절여졌던 몸에선 향긋한 바디 워시 냄새가 났다.
그사이 그가 샤워라도 시켜 준 모양이었다.
미동이라도 했다간 다시 그의 아래에 깔리게 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는 눈꺼풀을 들고 있을 힘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
연희는 알맞게 닫혀있는 방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문 너머로 이런저런 소리가 울렸다.
아마 밥이라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10년 전에도 준혁은 그랬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미친 듯이 자신을 몰아붙이곤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식사를 챙겼다.
영양가까지 따져가며 만든 정성스러운 상이 완성되고 나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연희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다정한 음성이 귓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과거에 들었던 말소리를 떠올린 그 순간, 굳게 닫혀있던 방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연희는 열린 문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옛날 과거보다 훨씬 더 남자다워진 준혁이 멀끔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일어났네.”
이전과 같이 이름을 불러주는 건 아니지만, 달콤하기만 한 음색은 변함이 없었다.
“옷부터 입는 게 어때? 계속 그러고 있으면…….”
시선을 얽고 있는 것만으로 금세 정염에 휩싸여 탁해지던 눈동자는 물론.
“내가 또 미친놈이 돼버릴 것 같은데.”
거칠 것 없이 진심을 내뱉는 모습까지.
연희는 서둘러 이불로 몸을 가렸다.
눈을 뜨자마자 그에게 범해지고 싶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침대 아래에 가지런히 정리된 옷가지를 주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차렸어. 밥 먹자.”
준혁이 자신을 향해 다정히 손을 내밀었다.
그것까지 완벽하게 과거의 준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리 와, 연희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그가, 어느덧 아름다웠던 과거의 그를 완벽히 상기하게 했다.
연희는 말없이 눈꺼풀을 들썩거렸다.
속절없이, 가슴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