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마지막 여행지
결국, 영화는 반도 보지 못하고 두 사람은 요원이 말한 모텔을 찾았다.
두 사람이 대실한 이 모텔은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옹벽 끝에 돌아가지도 않는 풍차 장식을 매단, 아주 비밀스러운 정을 나눠야만 하는 중년의 불륜 남녀나 올 법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곳의 청소 상태가 깨끗할 리 없었지만, 무경은 아무렴 상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섹스를 했을지도 모를 침대에 여자를 눕히고 그녀를 안았다.
요원은 45분 내내 그의 아래에서 목이 타도록 신음했다.
그는 자꾸만 오므라드는 제 다리를 사정없이 벌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아…… 그만…… 이제 그만…….”
그가 하체를 들어 깊게 찔러올 때마다 질퍽하게 치대는 거친 움직임에 침대 끝까지 내몰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하아. 하. 으응. 그만…… 이제…… 힘들어요…….”
“하, 조금만 더.”
그가 팽배한 제 것을 입구에서 반쯤 빼내고 성감대를 찾아 살짝살짝 찌르며 감질나게 애태운다.
일부러 주변을 문지르며 들어올 듯 들어오질 않는다.
몸은 힘들면서도 마음은 애간장이 녹았다.
“빨리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만해달라고 사정하던 여자가 이젠 또, 빨리 넣어달라 애원한다.
그 아이러니함에 무경은 낮게 조소했다.
“얼른…….”
무경의 목을 끌어안으며 요원은 흐느끼듯 재촉했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은 두 사람 모두 같았다.
씨발, 죽겠네.
무경이 요원의 골반을 꽉 틀어쥐며 제 것을 우악스레 밀어 넣었다.
“!”
요원의 안을 터질 듯이 가득 채운 남자의 것에 요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제 어깨에 걸친 채로 무경은 빠르게 흘레붙었다.
“하아…… 하무경 씨…… 하무경 씨…….”
제 이름을 부르며 매달리는 요원의 흔들리는 모습이 홀릴 만큼 아름다워서 무경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던 것 같다.
눈물이 고인 눈동자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요원을 안아 들었다.
“아!”
아찔한 쾌감이 송두리째 몰려왔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문 것도 잠시, 요원의 몸이 순식간에 전환하여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하아, 아, 아!”
무경이 신음하는 요원의 골반을 잡으며 더 빠르게 움직였다.
퍽퍽 퍽 퍽! 강렬하고 확실한 쾌감에 온몸의 피가 한곳으로 몰려 타는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 아, 아.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쾌감과 전율에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남자의 큼지막한 손이 시트를 잡은 요원의 손등 위로 꽈악 겹쳐졌다.
“벌려.”
요원의 등을 가슴으로 누르며 그녀의 턱을 잡아 돌린 무경이 요원의 입술 사이를 혀로 비집고 들어가 음란하게 키스했다.
서로의 혀를 아프게 주고받는 절정에 다다른 두 심장이 색스러운 떨림으로 요동친다.
아직까지 몸에 남아있는 쾌락의 잔욕이다.
두 차례의 음란한 행위가 끝나고 개운하게 씻고 나온 두 사람은 침대에 동시에 늘어졌다.
“힘들었어?”
무경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잔뜩 묻어났다.
“힘들었지만 좋았어요.”
요원은 하얗게 웃었고 무경은 그녀를 품으로 당겨 안으며 여자의 동글한 콧방울에 입 맞췄다.
“30분만 잘까?”
“40분도 좋아요.”
“그래. 우리 조금만 자자. 오빠 코피 터지게 생겼다.”
능글맞게 능청을 떠는 무경이 재미있어 요원은 남자의 품에 안긴 채 쿡쿡 웃었다.
한 품에 안겨있는 요원의 발그레한 두 뺨이 꼭, 꽃잎이라도 떨어트린 것 같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을 즈음에.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무경의 요란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두 사람의 평온한 시간을 허락도 없이 멋대로 깨트렸다.
***
뚜벅뚜벅. VIP 병동 복도를 가르는 무경의 구둣발 소리가 사방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무경이 옆으로 팔을 뻗자 곁에서 함께 걷던 태호가 신속히 그의 손에 넥타이를 쥐여주었다.
무경은 깃을 세우고 넥타이를 둘러 빠르게 교차하여 매듭을 지었다.
‘꼭…… 다시 오셔야 해요.’
우리는 터미널에서 헤어졌다.
헤어지기 직전의 여자의 얼굴과 목소리의 잔상을 아직 잊지 못하겠다.
‘우리 여행 아직 안 끝났으니까…… 꼭 다시 백야마을로 돌아오셔야 해요.’
무경은 서울로 요원은 다시 백야로.
각자 다른 버스에 오르면서도 두 사람은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으론 서로를 놓지 못하였다.
하 회장이 입원해 있다는 특실 앞에 멈춰 선 무경이 넥타이를 좌우로 비틀어 중심을 맞추면서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마음의 준비를 끝마친 듯 보이는 무경을 확인한 태호가 병실 문을 열자, 하 회장의 곁엔 정연과 하태경, 하가경 그리고 하 회장의 법률고문인 박 변호사까지 함께였다.
무경의 등장에 특실 내엔 찬물을 뿌린 듯한 분위기가 삽시간에 형성되었다.
“좀 늦었습니다.”
하 회장과 정연을 향해 각 잡힌 자세로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무경이 허리를 바로 세우고 하 회장의 곁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이잉. 아주 째깐 숨쉬기가 힘들었는디 지금은 괜차네.”
“조금은 무슨 조금? 숨넘어가실 뻔했잖아요.”
정연이 말을 정정했고 하 회장은 더 지체할 것 없다는 듯이 손을 올려 박 변호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간단히 읽더라고.”
“예, 회장님.”
하 회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박 변호사가 큼, 목청을 한 번 가다듬으며 뻣뻣한 서류를 허공에 펼쳐 들었다.
“나 하해경의 지분 일부를 하태경, 하가경, 하무경에게 각각 증여해주려 한다.”
예상외의 서두가 시작되자 동녘 남매의 표정이 같은 듯 다른 형상으로 뒤바뀌었다.
“9.53%를 하태경에게.”
하태경의 현재 지분율 8.6%. 증여 후, 18.13%
“9.32%를 하가경에게.”
하가경의 현재 지분율 8.3%. 증여 후, 17.62%
“9.14%를 하무경에게.”
하무경의 현재 지분율 8.0%. 증여 후, 17.14%
하태경과 하무경의 차이 0.99%. 하가경과 하무경의 차이 0.48%.
물론 그룹사에선 지분 0.1%만으로도 웃고 운다지만, 생각보다 얼마 벌어지지 않은 격차에 세 사람의 표정이 또 다른 형상으로 뒤바뀌었다.
하태경과 하가경의 눈매가 급격히 찡그려져선 자신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 무경을 바라보았다.
0.99%만 쥐면 동녘 그룹의 최대주주가 된다.
그리고 현재 하해경 회장에게 남은 건 1%.
하 회장이 1%를 남긴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같은 생각을 한 건 마찬가지인지 하가경이 다리를 달달달달 떨기 시작했다.
하태경은 미간을 찡그리며 넥타이의 매듭을 살짝 밑으로 끌러 내렸다.
무경은 그런 제 형, 누나의 얼굴을 가만 살피다가 고개를 사선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생각했다.
어라라라. 저것들 표정 봐라?
세 사람을 고요히 관망하던 하 회장이 입술을 달싹였다.
“하무경 상무가 인도로 나가는 대로, 하태경 사장의 회장직 수임 관련하여 주총을 열 거시다.”
“그게 정확히 며칠입니까.”
무경의 맹랑한 발언에 하 회장이 코웃음 쳤다.
“그거슬 왜 묻는데? 좌천당하는 놈이 주총에 참석할라고? 하 상무는 참석 금지여. 챙겨갈 거시나 잘 챙겨 나가더라고.”
“마침 말씀 잘하셨어요. 무경이 인도 발령 건 말이에요.”
“어허. 서 여사는 빠지시요잉.”
정연을 향하는 장난스러운 어조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배어있었다.
한땐, 하 회장과의 황혼 이혼을 택한 제 어머니를 이해 못 하던 시기가 있었다. 황혼 이혼을 해주는 대신 동녘 그룹의 지분을 모두 다 내놓는 것이 조건이었음에도 정연의 결정은 서슴없었으니까.
그 당시엔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이, 눈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무경의 눈에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쑥 안 하던 행동을 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맨날 빠지라고만 하시니 어머니께서 회장님 인생에서 아예 빠져드린 것 아닙니까.”
“머시여?”
하 회장의 불쾌감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눈빛이 무경을 조였다.
“이제 회장님의 아내는 아닐지언정 여전히 제 어머니임엔 변함이 없습니다.”
무경은 그 눈을 피하지 않으며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니 제가 보는 앞에서 다신 어머니를 무시하지 마시죠.”
전엔 없던 일이다.
“무경아.”
정연이 무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다. 미안하게 건너다보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정연에겐 현재로선 무경을 도와줄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하 회장은 자식들 간의 서열 싸움엔 절대 그 누구도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개와 고양이들도 서열 싸움엔 관여를 하지 않는단 예시를 가뿐하게 들면서.
무경은 그런 정연을 모를 리 없었고 괜찮다는 듯이 어렴풋이 미소 지었다.
잠시 함묵한 채 시선을 주고받는 무경과 정연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하 회장이 갑자기 하하! 크게 웃었다.
점차 말라가는 몸에 비해 웃음소리 하나만큼은 여전히 호탕하다 생각했다.
“하 상무는 거까지만 하고 고만 나가보더라고.”
“네, 회장님. 부디 쾌차하십시오.”
깔끔하게 한발 뒤로 물러난 무경이 하 회장에게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가 세웠다.
병실을 나가기 전, 다시금 하태경과 하가경을 돌아보았다.
넝쿨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저들의 얼굴이, 무경에겐 절경처럼 느껴졌다.
“상무님.”
무경이 병실 밖으로 나오자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호가 다가왔다.
“여행에선 완전히 돌아오신 겁니까?”
무경은 대답 대신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면서 고단한 두 눈을 감았다.
저 1%를 갖고 한번 싸워 봐?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여전히 번아웃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모든 걸 내려두고 이제 조금은 쉬고 싶을 뿐이다.
그뿐이랴. 아버지가 반드시 꼭 나가라는데 뭐 어쩌겠나. 나가드려야지.
기회를 엿보던 태호가 태블릿 PC를 조용히 꺼내 들어 그간 쌓였던 업무 보고를 올렸다.
그러나, 무경의 귓가엔 아무런 소리도 남는 것이 없었고 요원과 보냈던 시간만이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았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그녀와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아직.”
더디게 눈꺼풀을 밀어 올린 무경이 넥타이를 좌우로 비틀어 매듭을 풀었고, 그것을 태호에게 넘기면서 마지막 음성과 함께 발을 떼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에게 다시 간다.
백야마을로 간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