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녘과백야-89화 (89/116)

89화. 사랑이었다

두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무경의 레지던스였다.

쿵.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무경은 요원의 허리를 바짝 당겨 안아 키스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셔츠 단추를 옆으로 후두둑 벌리는 손길이, 그녀가 입고 있는 청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아래를 문지르는 손길이 어느 때보다도 조급했다.

품위 있는 모습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복도를 거닐고, 카드 키를 대고 하던 남자의 모습은 문이 닫히던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불 하나 켜지 않았지만, 통창 너머로 들어오는 야경에 그다지 시야는 어둡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얽혀있는 몸이 집 안 곳곳과 충돌한다.

무경은 요원의 입술을 빨며 앞으로 나아갔고, 요원은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그에게 제 입술을 맡긴 채로 뒷걸음질 쳤다.

한 걸음엔 무경이 재킷을 벗어 던지고, 두 걸음엔 요원의 가방이 던져지고, 세 걸음엔 무경의 넥타이가, 네 걸음째엔 무경의 베스트와 요원의 셔츠가 한꺼번에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요원은 S극 무경은 N극.

끌어당기면, 끌어당기는 그 힘보다 더한 힘으로 끌려와 버린다.

요원이 몇 번이고 뒤로 넘어갈 뻔한 것을, 무경의 큼직한 손이 그녀의 등을 단단히 받쳐 지탱했다.

제 입을 최대한으로 벌려 혀를 깊숙이 밀어 넣는 남자의 키스는, 몸에는 좋지 않으나 먹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디저트와도 같았다.

먹을수록 중독적이고, 달콤하고, 자극적인.

“하아…… 씻고요…….”

“응. 씻겨줄게.”

요원이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떼어내면, 무경은 인내심이 바닥 친 얼굴을 하고서 요원의 목덜미를 잡아끌어 다시 갈급한 모양새로 키스했다.

츄웁. 쪼옥.

달콤한 설탕 맛이 감도는 타액이 섞여든다.

아무리 머금고 있어도 부족해서 서로의 입술을 찾아 물고 빨고 핥아 올리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혀를 섞어도, 어딘지 모르게 해갈되지 않는 서로에 대한 갈증은 참으로 위대했다.

걸림돌 하나가 없어 계속해서 나아가던 두 사람이 멈춘 곳은, 요원의 허벅지와 아일랜드 식탁이 맞닥트린 순간이었다.

요원은 자연스레 뒤로 몸을 눕히면서 끌어안고 있는 무경의 목을 제게로 더 당겼다.

요원의 몸이 뒤로 무너지는 순간, 무경의 몸은 앞으로 쏠렸다.

등에 닿는 대리석의 스산한 기운에 요원이 몸을 흠칫거렸다.

무경은 그녀의 늘씬한 한쪽 다리를 잡아 제 허리에 자연스레 두르게 하면서 고개의 각도를 사선으로 비스듬히 틀어 그녀와 더욱 깊숙이 입 맞췄다.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몸이 아우성친다.

요원의 청바지와 속옷을 적당하게 아래로 끌어내린 무경의 손이 이젠 자신의 벨트 버클을 풀었다.

“하, 휴가 낼 수 있어? 며칠 가능해?”

맞물렸던 입술이 떨어지고 무경은 그녀의 귓불을 아프지 않게 잘근 깨물며 속삭였다.

“여행 가자. 어디로 가고 싶어? 해외로 나갈까?”

“갑자기, 하아, 해외요?”

무경의 셔츠 단추를 하나둘 풀어내리는 요원의 손길 또한 조급하긴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곳으로 갈까? 홍콩은 어때? 오키나와? 아니면 조금 더 멀리 나갈까? 미국? 호주? 하와이? 스위스? 영국? 브라질? 멕시코? 가고 싶은 곳 있어?”

무경이 허리를 세우며 손을 뒤로 하여 빠르게 지갑을 찾았다.

“국내도 괜찮고. 제주도? 울릉도? 말만 해.”

목소리는 침착하였으나 남자의 눈빛은 그렇지 못했다.

씨발, 왜 이렇게 안 나와.

욕을 짓씹으며 지갑에서 콘돔을 꺼내는 손길이 한없이 급했으니.

무경은 요원을 알게 되고 언젠가부터 콘돔을 늘 몸에 소지하고 다녔는데 이게 참 우습기도 했다.

“씻고 해요, 우리…….”

또, 또, 또, 저 맥 빠지는 소리.

그럼 달아오르게라도 하지를 말든가.

남자의 흥분을 최고치로 끌어올릴 땐 언제고, 막상 중요한 순간에 한발 뒤로 빼는 건 정말 선수급이지 않은가.

그래도, 청결에 집착하는 요원이 마냥 귀여운 무경은 이마 위로 흘러내려 온 몇 가닥의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킥 웃었다.

“알았어. 넣고 세 번만 왔다 갔다 할게. 그리고 씻자.”

“그건 대체 또 무슨 신박한…….”

어쩜 저런 고귀한 얼굴로 저런 변태 같은 음담패설을 계속할 수가 있지?

요원이 질겁한 사이에 콘돔을 찾아 제 것에 끼운 남자가 농염하게 웃으며 요원의 골반을 잡아 자세를 취했다.

“요원아.”

대리석 상판 위에 흩어진 요원의 머리칼을 마치, 고운 비단을 만지듯 그렇게 어루만지며 무경은 그녀의 안에 다소 과격하게 밀려들었다.

깊숙이 퍼억 찔러넣는 몸짓에 요원이 아! 소리를 내며 무경의 옷깃을 손에 꽈악 틀어쥐었다.

“하아, 아.”

제 움직임에 따라 위로 밀려 올라가는 여자의 허리를 단단히 지탱해주면서 무경은 단숨에 스퍼트를 올렸다.

쾅. 쾅. 쾅.

능란하고도 음란한 격정적인 움직임에 몸도 마음도 흔들린다. 모든 게 다 흔들린다.

“요원아. 내가 뭐 사줄까. 하, 뭐 해줄까.”

앞뒤로 사납게 치받아 올리던 허리를 굽힌 무경이 요원의 턱을 올려 진득하게 키스했다.

아, 응, 아.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을 떠올리는 여자의 신음은 무경의 입안으로 죄다 집어 삼켜졌다.

닫혀있는 눈꺼풀을 서서히 밀어 올린 무경이 여자의 찡그린 얼굴을 음미하듯 바라봤다.

“으응…….”

잠시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져서 요원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것인지, 요원도 스르륵 감겨있던 눈꺼풀을 밀어 올려 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녀와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을 때.

“…….”

반쯤 혼몽하게 풀려 자신을 올려다보는 적갈색의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대리석 위에 주단처럼 곱게 헝클어진 머리칼이, 새하얀 살결에서 유독 돋보이는 쇄골 라인이, 발그스레해진 복숭앗빛 뺨이, 그녀의 모든 것을 다 눈으로 되새겼을 때.

그래. 바로 그때 말이다.

내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런 기억도,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경의 머리와 몸은 온통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점점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랑이었다.

너는 내가 최초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

1인에 70만 원이 훌쩍 넘는 「워프 53」이라는 레스토랑에 무경을 주축으로 태호, 이준, 방 기사까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식사했다.

물론, 무경을 제외하고 세 사람의 낯빛은 상당히 어두웠고 비싼 음식을 앞에 두고도 그들은 입맛이 없어 보였다.

인도로 나가기 전까지 좀 쉬어야겠다며, 회사의 모든 것들을 단 이틀 만에 정리를 끝낸 무경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커피잔을 탕, 짜증스럽게 내려둔 무경이 랍스터 살을 능숙하게 발라 그들의 접시 위에 내려주며 혀를 찼다.

“팍팍 좀 드세요. 이게 한 끼에 얼마짜리입니까. 아무리 재벌이라도 한 끼에 70짜리를 매번 먹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이거 다 내 사비로 사는 건데.”

뒤늦게 젓가락을 쥐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본 무경의 잇새에서 기가 찬 웃음이 터졌다.

“내가 꼭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왜 자꾸 사람을 쪼잔한 새끼 만들지? 대체 왜들 그래요?”

“……죄송합니다.”

츳. 다시금 혀를 찬 무경이 킹크랩과 두툼한 회와 토시살과 대게찜 등을 세 사람 쪽으로 한꺼번에 밀치며 말을 이었다.

“당분간 서울에 없을 겁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닐 계획이에요. 급한 일 아니면 전화하지 마세요.”

“어디…… 여행이라도 가십니까?”

“네. 가네요.”

“누구랑 가시는지…….”

무경이 잠시 태호를 찌릿 쳐다봤다.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인가 생각한 태호가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 숙이려던 때였다.

“애인이랑 갑니다.”

무던하게 대꾸한 무경이 재킷 안쪽을 뒤적거렸다.

그 순경이랑 가는구나,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태호는 직감했고 무경은 준비해온 봉투 한 개씩을 세 사람의 앞에 차례대로 내려두었다.

“그간 수고들 많았어요.”

이 또한 사비로 준비한 감사의 표시였고, 세 사람이 봉투를 열어본다면 아마, 놀라 뒤로 나자빠질지도 모를 액수가 담겨있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말로 해서 또 뭐하나 싶어 준비한 게 바로 이 봉투였으니.

담배를 태우지는 못하니 아스파라거스를 앞니로 까딱거리며 물고 있는데 지잉 지잉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뜨는 심 여사의 번호에 무경이 아스파라거스를 퉤 뱉어내며 전화에 응답했다.

“네, 여사님.”

[회장님 호출입니다. 백운으로 들어오시지요.]

“알겠습니다.”

단답형으로 통화를 마친 무경이 벗어둔 재킷을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들 하시고 오세요.”

“백운 호출입니까?”

“택시 타고 이동하겠습니다. 식사 마저 하세요.”

“아닙니다!”

놀란 세 사람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여기에서 헤어집시다.”

재킷을 입고 단추를 잘 걸어 잠그는 무경을 바라보는 여섯 개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자신들이 맞는다면, 이것이 하무경 상무와의 마지막 식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부터 곧바로 여행길에 오를 겁니다. 급한 건 전화로 합시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세련된 차림을 한 무경이 세 사람과 눈을 한 번씩 맞추며 고요하게 미소 지었다.

“잘들 지내세요. 특히 차태호 실장님.”

무경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무심한 투로 말을 이어갔다.

“집에 일찍 일찍 좀 들어가시고. 그러다 진짜 이혼이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고. 애들도 아직 어린데. 곁에서 크는 것도 지켜보셔야지?”

말하다 보니 궤변이라 생각했다.

그간 태호가 누구 때문에 집에를 가지 못했던가.

“식사하세요.”

무경이 손가락을 까딱거렸으나 세 사람은 급하게 자신들의 짐을 챙겨 들었다.

“모시겠습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상무님을 혼자.”

“따라오지 마세요.”

무경이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단숨에 저지했다.

“내가 아까도 말했는데 굉장히 비싼 한 끼입니다. 배불리 드시고 가세요.”

“하지만!”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딱 떨어지는 냉담한 목소리와 표정을 알아차린 세 사람이 동시에 동작을 멈췄다.

“앉으세요.”

무경이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다시금 까딱거렸다.

“나중에 공항에서 봅시다.”

무경이 그들을 등지고 막 앞을 향하여 한 걸음 떼던 찰나.

“모시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남자의 넓은 등을 향해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문득, 무경 혼자만을 백야마을에 남겨두고 떠나던 세 사람의 같은 기억이, 추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도 그들은 남자의 넓은 등에 대고 인사했었다.

한 사람은 동녘의 수장이 될 생각에, 세 사람은 그런 수장을 모실 생각에 모두가 들떠 있었던 때가 있었다.

“…….”

무경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러 있다가 미련 없이 발을 떼어 그들에게서 멀어졌을 뿐이다.

이래서 사람끼리 마음을 나누면 힘든 법이다.

그만치 이별은 어려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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