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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과백야-83화 (83/116)
  • 83화. 떡집 새끼

    오후 2시경, 백야파출소 앞에서 요원과 성준은 취객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선생님. 우선은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근처에서 음주 운전을 하다가 잡힌 20대의 젊은 관광객 때문이었는데,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는 요원과 성준의 손길을 다 뿌리치며 자기가 누군지 아느냐고 웃통을 벗으려는 행패가 끊이지 않았다.

    “니들 울 아빠가 누군지 아냐? 앙?! 나 딱 한 잔밖에 안 마셨다고오!”

    어쩜 멘트가 이렇게 다들 한결같으신지. 좀 색다르고 신선한 건 없나?

    생각하며 요원은 제 앞의 취객을 냉한 눈동자로 되받아쳤다.

    “한 잔은 술이 아닙니까?”

    “야이씨이, 니드을, 국민 세금 씨이,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그음!! 니들 씨이 울 아빠가 누군지 알며언 니드을 내 앞에서 싹 다!!”

    “그 대단한 아버지가 누구신데요.”

    요원의 강한 어조에 흠칫 놀란 성준이 그녀의 옆태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웬만해선 좋게좋게 해결하려는 보통 때의 모습과는 달랐으니 말이다.

    “뭐어? 누구신데요오?”

    “네. 대체 누구십니까? 어느 귀한 댁의 자제분이시기에 이깟 한 잔은 음주 운전이 아니란 가정 교육을 받으신 건지 진심으로 궁금해 여쭙습니다.”

    “아놔,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년이?”

    “방금 제게 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녀언!”

    소리를 빼액 내지른 취객이 요원을 한 대 칠 것처럼 다가섰다.

    요원은 자신보다 키가 큰 남자를 꼿꼿하게 올려다보며 사무적인 어조를 뱉었다.

    “잘 생각하고 저지르세요. 저지르고 후회하지 마시고.”

    “이년이 진짜 처돌았나? 예쁘장해서 봐주려고 했더니 진짜 씨이바알 눈빛 뭣 같네.”

    “아아. 그만하시고요.”

    주먹을 들어 올리는 취객을 제지한 사람은 성준이었다.

    “우선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아아악! 진짜 이것들이 사람을 개호구로 보나?!”

    입고 있는 회색 티셔츠를 잡아 뜯어버릴 듯 머리 위로 끌어올려 냅다 벗어던진 취객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니네 씨바알 이 짭새들아, 내가 참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울 아빠한테 내가 다 이야기해서! 니들 이름이 뭐야?”

    취객이 검지를 뻗어 성준의 가슴팍을 콕 찌르며 이름을 확인한다.

    “임성준. 오케이. 넌 또 이름이 뭐냐?”

    이제 취객의 검지가 봉긋한 요원의 가슴팍을 찌르려던 순간, 그보다 더 빨랐던 요원의 손이 취객의 손목을 단숨에 휘어잡아 대번에 뒤로 꺾었다.

    “아아악!! 내 손목!! 내 손모옥!! 아프다고 이 미친년아!! 짭새 년이 막 시민 이렇게 제압해도 되는 거야?! 니들이 짭새지 깡패냐?! 국민 세금으로 월급 처받아 먹는 것들이!! 니네 울 아빠한테 말하면 진짜 다 디진다고!! 안 놔?! 놓으라고!! 손목 부러진다고오!”

    요원과 성준이 서로를 피로하게 바라보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무력으로라도 제압해서 파출소로 데려가려 마음을 먹고 행동을 취하려는 그때.

    대형 고급 세단 한 대가 위용을 자랑하듯 그들의 옆에 매끄럽게 멈춰 선 건 불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와씨, 성준의 잇새에서 절로 그런 탄성이 나왔다.

    시계에 이어 차에도 관심이 많은 성준은, 지금 자신들의 옆에 멈추어 선 세단의 가격이 정확히 얼마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

    같은 세단을 바라보는 요원의 표정은 성준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빛깔을 띠었다.

    한번 타본 적이 있으니 그 또한 그럴 만했다.

    “헉?”

    뒷좌석 창문이 고요하게 내려간 시점에,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성준의 눈동자가 귀신이라도 본 듯 커다랗게 벌어졌다.

    “도와줄까.”

    창틈에 느른하게 턱을 괴어 미소 짓는 무경의 화려한 얼굴 때문이었다.

    “뭐…… 뭐냐? 저거 하무경 씨 아니야?”

    문이 덜컥 열리며 무경이 여유롭게 세단에서 내렸다.

    세련된 쓰리피스의 슈트를 빼입은 남자의 자태는, 어느 때보다 고고해서 그가 자신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세 사람 모두 반사적으로 뒤로 한 발 주춤거릴 정도였다.

    “내가 방금 짭새 년, 뭐 그런 상스러운 단어를 얼핏 들은 것 같은데. 맞아?”

    요원에게 붙잡혀있는 취객을 비딱하게 내려다보면서 무경은 물었다.

    “가세요. 하무경 씨가 상관할 일 아닙니다.”

    “왜 아니야. 맞지. 감히 우리 채 순경을 건드렸는데.”

    취객이 무경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욱 살펴 내리다가 그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세단까지 확인하곤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딜 봐. 날 봐야지.”

    그대로 뻗어진 무경의 큼지막한 손이 취객의 하관을 덥석 붙잡았다.

    “헉.”

    취객의 벌어진 잇새에서 절로 그런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 정도로 굉장한 악력이었기 때문이다.

    “하무경 씨! 이러시면 안 돼요!”

    “아아. 잠시만.”

    무경이 자신을 말리려는 요원을 저지하며 생글 웃는다.

    “점잖게 말로만 할게.”

    그렇게 말한 무경이 다시 취객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내가 짭새를 만나봐서 좀 아는데. 이분은 짭새가 아니야. 이분은 있잖아.”

    취객의 하관을 그러쥐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이 요원의 등 위에 얹어지니 요원은 무의식중에 몸을 움찔 떨었다.

    “20억 포기하고 저깟 마을 하나 지키겠다고 동녘 그룹 상대하시는 그런 대단한 분이거든. 그런 정의의 사도에게 감히 짭새라고 표현하면 실례지.”

    무경이 취객의 하관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고, 취객은 이러다 진짜 턱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낯빛이 점차 새하얗게 탈색되고 있었다.

    “대, 댁은 또 먼데에!!”

    그래도 마지막 배짱을 부려본다.

    “갈 길이나 그냥 가세요오!! 당신도 울 아빠한테 좆되기 싫으며언!!”

    기선 제압 당한 것을 들키기 싫은 같잖은 발악이다.

    “네 아빠?”

    제 귀를 의심하듯 되물었던 무경이 갑자기 하하 경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나이 처먹고 아빠라는 단어가 웬 말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취객의 하관을 놓은 무경은 슈트 재킷 안쪽을 뒤적거려 명함 지갑을 꺼냈다.

    그 안에서 명함 한 장을 잡아챈 무경이 그 명함을 취객의 면상을 향해 대강 툭 던졌다.

    취객의 미간을 맞고 떨어진 명함으로 취객과 성준의 눈동자가 동시에 뚝 떨어졌다.

    동녘 그룹이란 회사 이름이 가장 먼저 보였고, 그다음으로 회장이란 타이틀을 본 네 개의 벌어진 눈동자가 무경을 창백한 낯빛으로 바라본다.

    “우리 아버지는 이런 사람인데.”

    던져진 것은 무경의 명함이 아닌 하 회장의 명함이었다.

    “네 아빤 누군데?”

    자신보다 키가 작은 취객과 시선을 얼추 맞추기 위해 허리를 슬쩍 굽힌 무경이 남자와 눈을 맞추며 다시금 묻는다.

    “응? 누군데.”

    “……네?”

    잔뜩 움츠린 취객을 시선으로 제압하면서 무경은 다시 명함 지갑에서 한 장의 명함을 더 꺼냈다.

    “이거 내 명함이거든? 네 아빠한테 이리로 연락하라고 할래?”

    취객의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에 제 명함을 물려준 무경이 친절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누굴지 참, 기대가 되네.”

    취객처럼 목소리 높일 필요 없다. 욕을 섞어 상대를 위협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긋하게 웃으며 명함 한 장 건네주면 게임은 끝이다.

    진정한 간지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뽐내듯.

    ***

    파출소 앞 벤치에 앉아 멘톨 캔디를 와드득 씹는 무경의 앞으로, 요원이 냉수 한잔을 내밀었다.

    하무경의 정체를 알게 된 성준과 소장은, 자신들이 그간 뭐 실수한 게 없었는가에 대해 파출소 안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여긴 또 왜 오셨어요?”

    요원이 무경과 일정 거리 떨어져 앉으며 물었고, 무경은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그녀의 옆으로 이동하며 대답했다.

    “볼일이 좀 있어서.”

    먹을래? 하며 무경이 요원의 앞에 멘톨 캔디를 내민다.

    요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가만 바라보았고, 무경은 민망해진 손을 거두며 정면을 응시했다.

    “내가 달갑지 않은 건 아는데. 그래도 좀 반겨주지?”

    “안 반가운데 어떻게 반겨주죠?”

    거짓이다. 사실은 이 남자가 매번 공기처럼 제 곁을 맴도는 중이었으니.

    “하무경 씨가 우리 마을에 오면요. 제 가슴부터 울렁거려요.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왔나 하고요.”

    개수작, 그 말을 되씹으며 틴케이스를 주머니에 욱여넣은 무경이 낮게 웃었다.

    “아. 잠시만.”

    그렇게 말하면서 무경이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고, 자신을 기다리는 세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석에 이끌리듯이 요원의 눈동자는 남자만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그가 뒷좌석에서 무슨 쇼핑백 하나를 꺼내왔고, 요원은 그를 보고 있던 것을 들키지 않으려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허공을 가만 응시했다.

    “어울릴 것 같아서 하나 샀는데.”

    그가 쇼핑백을 벌려 빨간색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얼리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케이스 위엔 누구나 알 법한 명품 브랜드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케이스를 열자 다이아몬드가 박힌 로즈 골드 색깔의 팔찌가 나왔다.

    소탈한 요원도 결국엔 여자였다.

    눈이 부신 디자인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어느덧 요원의 손목을 그러쥔 무경은 그녀의 새하얀 손목 위에 팔찌를 채우고 있었다.

    요원이 남자를 가만 바라보았다.

    시선을 비스듬히 내리깔아 팔찌를 채우고 있는 남자의 날렵한 콧날이 깎아놓은 듯 예술이란 생각을 무의식중에 잠시 했던 것도 같다.

    “예쁘네. 잘 어울려.”

    빛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팔찌를 가만 바라보던 요원이 입을 열었다.

    “순경이 이런 비싼 팔찌 차고 다니면 욕먹어요.”

    “짭이라고 해요.”

    간단한 해결책에 웃음이 터졌다.

    “그건 더 욕먹죠.”

    웃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요원이 얼른 손등으로 제 입가를 가렸지만, 무경은 이미 그 웃음을 듣고 만족스러워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요원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이 팔찌, 안 받는 게 맞는데. 돌려줘야 하는 건 아는데. 너무나 잘 아는데. 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꾸만 생긴다.

    비싼 팔찌라서가 아니라. 평생 간직하고 싶어서.

    하무경 씨가 내게 처음으로 준 선물이니까. 단지 그 이유뿐.

    “…….”

    무경은 깊은 생각에 잠긴 여자의 새하얀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완전히 여자에게 영혼을 빼앗겨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한동안 넋을 놓고 요원을 응시했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잠시 벤치에 내려두었던 요원의 핸드폰이 울렸고 액정을 먼저 확인한 건 무경이었다.

    [서태하]라는 그 이름에 무경의 미간이 급격하게 찡그려졌다.

    떡집 새끼로구나.

    요원이 핸드폰으로 손을 가져가기도 전에, 먼저 잡아채 간 무경이 통화 버튼을 즉각 누르고 핸드폰을 귓가에 밀착시키며 상대에게 모진 음성을 던졌다.

    “그 떡집이 대체 서울 어디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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