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녘과백야-47화 (47/116)
  • 47화. 나 오늘은 진짜, 안 줄 거지

    무경은 오늘 밤도 요원과 키스 그 이상을 원했다.

    그녀의 두 뺨을 꽉 붙잡고 입술을 거칠게 빨면서 요원을 저의 집 대문 너머로 에스코트하려 하였으나, 뒷걸음질 치며 대문을 넘으려던 요원의 발걸음은 강경했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사람처럼, 양손으로 철제문을 아예 꽉 붙잡은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면 키스라도 응해주질 말든가. 사람 돌아버리게 키스는 또 존나게 응해주는 거다.

    혀를 넣으면 정성스레 빨아주고. 혀를 빼면 또 제 입안으로 들어오고.

    아무래도, 채 순경은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는데.

    그래. 아무렴 어떤가. 채 순경이 오늘 밤 한 번만 더 넣게만 해준다면, 네 손에 백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기꺼이 죽어줄게.

    “하, 씹.”

    점점 마음은 급해지고 아래는 터질 듯 아파 오고 더는 인내할 수 없던 무경이 아예 요원의 두 다리를 번쩍 안아 올렸다.

    “!”

    커다랗게 벌어진 여자의 당황한 눈빛이 좋아서 무경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요원을 올려다보며 씨익, 짓궂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내려주세요, 하무경 씨.”

    “자고 갈래요?”

    “집이 바로 코 앞인데 제가 왜 여기에서 자요.”

    “코 앞이니까 자고 가요. 어르신들 깨기 전에 들어가면 되잖아.”

    “저희 할머니 걱정하세요. 얼른 내려주세요.”

    무경은 그 말을 비웃듯, 요원의 두 다리를 제 허리춤에 두르게 하면서 대문을 넘어 마당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내려 달라니까요?”

    “나랑 자기 싫어요?”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내가 못 했나? 나 존나 잘하지 않았어요? 채 순경도 좋았잖아. 그날, 내가 말은 안 했는데요. 내가 싼 만큼 채 순경도,”

    “진짜 미친놈!”

    읍. 무경은 음담패설을 차마 이어갈 수 없었다.

    요원의 손이 그의 입술을 다급하게 꽉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무경은 요원의 손에 입술이 틀어막힌 채로 눈을 휘어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생글생글, 웃었다.

    “내려주세요, 빨리.”

    무경이 어깨를 으쓱거렸고 요원은 경고성 짙은 발언을 던졌다.

    “걷어차서 터트리기 전에요.”

    무경이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슬며시 올렸고, 요원은 제 시선을 슬쩍 내리깔아 그의 팽팽해진 앞섶을 가리켰다.

    “…….”

    창백한 얼굴로 요원을 몇 초간 더 바라보던 무경이 낮게 헛웃음 쳤다.

    이야, 세다 세.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그가 제 입술을 여전히 틀어막고 있는 요원의 손바닥을 혀로 야릇하게 핥아 올렸다.

    흠칫, 놀란 요원이 그의 입에서 얼른 제 손을 떼어냈고 무경은 그제야 요원의 깃털처럼 가벼운 몸을 바닥 위에 사뿐히 내렸다.

    “내 앞에선 다 쉽던데.”

    구겨진 바지를 툭툭 털며 무경은 말했다.

    “채 순경은 늘 어렵네.”

    “하무경 씨는 점점 더 사람이 쉬워지고요.”

    킥, 무경의 잇새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비집고 흘렀다.

    하무경이 쉽단다. 나, 하무경이.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네. 이 여자에겐 더 쉬워지고 싶기도 하고.

    “그럼 쉬세요, 하무경 씨.”

    “채 순경.”

    제게 인사하며 지나치려는 요원의 손목을 덥석, 붙잡아 다시 제게로 돌린 무경이 애타는 감정을 숨기듯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나 오늘은 진짜, 안 줄 거지.”

    물어보고 본인이 더 놀랐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이 정도로 찌질해질 수가 있나 싶어서.

    “주긴 뭘 줘요?”

    못 알아듣는 척하는 여자가 하도 답답해서 무경은 특유의 돌직구 화법을 구사했다.

    “오늘은 진짜 넣으면 안 되겠어요? 넣고 싶은데.”

    여자의 귓가에 거침없이 때려 박은 거나 진배없다.

    “이봐요, 하무경 씨.”

    제 손목을 붙잡고 있는 무경의 손을 미련 없이 탁, 쳐낸 요원이 고운 얼굴을 구겼다.

    “넣긴 뭘 넣어요. 어디 저금통에 동전이라도 넣나?”

    요원의 비유법이 신선해서 무경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표현 거슬려요?”

    “안 거슬리겠어요? 점잖은 표현도 많잖아요.”

    무경은 달콤한 작업 멘트 따위 모른다.

    굳이 입을 털며 작업 걸지 않아도 상대는 이미 제게 넘어와 있었으니.

    “점잖은 표현이라.”

    일부러 흐음, 하는 소리를 크게 내면서 턱을 어루만졌다.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점잖지를 않은데 점잖은 표현이라.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은근히 비아냥거리며 느른하게 뒷짐 진 무경이, 백야마을을 훤히 비추는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시조를 읊조리는 양반과도 같이 점잖게 중얼거렸다.

    “오늘 밤, 달빛이 끝내주는 이 밤, 나의 것을 그대의 것에 잘 맞춰 넣어도 되겠소. 뭐, 이런 걸 원하시나?”

    달을 바라보던 시선을 슬쩍 내려 저를 보며 환하게 웃는 남자의 얼굴에 요원의 입술이 잠시 작게 떨어졌다.

    벌어진 입을 차마 다물지 못하다가 결국, 헛웃음이 터졌다.

    푸흡,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제 입술을 손등으로 꾹 한번 누른 요원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됐어요. 잠이나 주무세요.”

    존나 예쁘게 웃으면서.

    웃고 있던 무경의 눈매가 불시에 아주 엉망으로 찡그려졌다.

    안 줄 거면 웃어주지라도 말든가, 하는 치졸한 생각 때문에.

    ***

    타타타타타타탁. 저것은 고양이, 톰이고.

    타타타타타타탁. 저것은 쥐, 제리이며.

    투타타타타타탁. 저것은 망할 놈의 고물 선풍기다.

    그리고…….

    저것들과 비슷한 소리가, 아니, 저것들보다는 조금 더 둔탁한 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야릇하게 메웠다.

    요원이 만약, 지금 무경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뭐 이런 변태 같은 새끼가 다 있냐며 진저리칠 수도 있겠지만.

    무경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에 풀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은데 뭐 어떡해.

    서론이 장황했는데, 무경은 지금 이 폐가 수준의 다 무너져 가는 집에서 홀로 처량 맞게 마스터베이션 중이었다.

    씨발, 내가 진짜 이 나이 처먹고 존나 딸이나 치고 앉았고. 씨발, 이 하무경이. 동녘의 이 하무경이 모양 빠지게.

    아래턱에 힘을 꽉 주면서 무경은 후, 짜증스레 바람을 불어 이마를 뒤덮고 있는 앞머리를 흩날렸다.

    점점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지 무경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후, 무경이 짜증으로 범벅이 된 눈가를 조용히 닫았다.

    눈 감은 무경의 머릿속에 쉬이, 요원의 달빛을 닮은 말간 얼굴이 그려진다.

    예쁜 눈. 예쁜 코. 예쁜 입. 청초한 얼굴과 꼭꼭 숨기고 있는 굴곡진 몸매.

    회사 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당장 어딘가에 해소가 필요할 때에, 출장 중 술 한잔 걸치고 호텔로 돌아와 무료한 감정을 느끼던 때, 그럴 때만 혼자 좀 했었지. 그것도 기계적으로, 별생각 없이,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 짓을 하는 건 정말, 어른이 되곤 처음이었다.

    “하아…….”

    쾌락에 젖은 남자의 숨소리가 유연하게 흐른다.

    타타타타탁. 남자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미야아아아오오옹!’ ‘찍찍찍찍찍!’ 톰과 제리가 쉬지 않고 천장을 뛰어다녀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거다.

    “저 씨발.”

    어금니를 꽉 깨문 무경이 날렵한 눈을 치켜떠 천장을 노려보듯 올려다봤다.

    그러다가 다시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고 현재 행위에 몰두하려는데, 쉬지 않고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던 손짓이 이내 점차 느려지더니만.

    느려지고 느려지고 느려지고 또 느려지더니만…….

    어느 순간, 무경의 손이 아예 멈춰버리면서 야릇한 행위 또한 미련 없이 중단됐다.

    아마, 이 뭣 같은 현실을 자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 이러한 상황을 두고 ‘현자 타임’이라 하던가?

    “…….”

    제 것을 쥐고 있던 손바닥을 펼쳐 한참을 내려다보던 무경이 곧, 바닥에 굴러다니는 물티슈 캡 안에서 물티슈 한 장을 조용히 꺼내 손을 닦았다.

    조금 전까지 한껏 찡그렸던 얼굴이 이젠, 조금의 균열도 보이지 않는 무던함을 드러낸다.

    만약, 지금 무경이 슈트만 입고 있었더라면, 딸을 친 게 아니라 본인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나왔다 해도 믿을 법한 얼굴이었다.

    무경은 자기가 언제 그따위 저질스러운 행위를 했냐는 듯, 고고한 자태로 이불 위에 기다란 몸을 뉘었다.

    “…….”

    풀지 못한 찝찝함을 느끼면서 한 팔을 이마 위에 얹은 무경은, 고양이와 쥐 새끼들이 하도 뛰어다녀 언젠가 무너져도 무너질 법한 천장을 말없이 올려다보다가 곧, 피식 자조적으로 한번 웃었다.

    지독한 열병의 시작이었다.

    한편, 같은 시각 요원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뒤척거렸다.

    아까 먹었던 탕수육이 얹혔나?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질러보던 요원은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자, 벽에 아예 등을 기대고 앉아 땅거미가 짙게 깔린 창밖의 어둠을 보며 그대로 있었다.

    모든 심증은 한곳을 향하는데, 요원은 더는 그에 대해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믿을 거다. 믿어볼 거다. 본인의 입으로 내 눈을 보며 직접 말해줬으니까.

    그래서 나는, 사람을 먼저 믿을 거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 연기처럼 꽉 들어찬, 그 남자를 말이다.

    ***

    두 시간 정도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난 무경은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뛰었다.

    어제 풀지 못한 에너지를 운동에 모두 쏟기 위함이다.

    숨을 헐떡이며 작은 언덕에 올라 백야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다가 또 달렸다.

    무너져 가는 시골집으로 돌아온 무경은 마당에서 옷을 훌러덩 전부 다 벗어 던지고, 욕실도 없는 곳에서 샤워라 하기도 뭣한 냉수 샤워를 마쳤다.

    이놈의 환경은 아무리 있어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아서 무경은 몇 번이고 홀로 욕을 짓씹었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 백야마을에도 새벽이 떠나고 아침이 방문했다.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세팅을 한 무경은, 정갈한 복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건들거리는 자세로 대청마루 위에 누워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까딱거리고 있었다.

    저 하늘 위 새하얀 구름이 꼭, 채요원 순경의 뽀얀 살결과도 같구나.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비스듬하게 문 채로 시인 행세를 하던 때에, 누군가가 녹슨 철제문을 끼익 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만 슬며시 틀어 마당 안으로 걸어들어온 상대를 확인한 무경의 평온하던 눈썹이 그 모양을 찰나에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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