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녘과백야-41화 (41/116)
  • 41화. 2천만 원의 로열스위트룸

    “아…….”

    남자에게 몸을 맡긴 채 바라보고 있는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

    술 때문이 아니다. 한 곳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자 때문이었다.

    젖은 소리가 고요한 침실 내에 야릇하게 울려 퍼진다.

    이쯤 되니, 커닐링구스가 왜 최고의 애무라 불리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황홀감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몰려와 요원을 단숨에 덮쳤으니.

    “하아…….”

    쾌락에 젖은 신음이 자꾸만 의지와 달리 잇새를 비집고 흐른다.

    점차 커지려는 신음을 삼키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애꿎은 시트만 손에 꽉 틀어쥐고 있는데, 불쑥 다가온 남자의 손이 요원의 손목을 덥석 쥐고 시트 대신 제 머리칼을 대번에 쥐게 했다.

    “나 잡아요.”

    잠시 고개를 들어 올린 무경이 제 젖은 아랫입술을 엄지로 슥, 문지르면서 농염하게 웃는다.

    “뜯어버리면 더 좋고.”

    예전에 그런 말을 얼핏 들었던 적이 있다.

    여자가 잠자리하는 도중 의외로 가장 흥분하는 포인트는, 애무도 체위도 스킬도 그 무엇도 아닌 상대의 얼굴이라는 말.

    그 말이 꼭 틀린 말이 아님을 무경을 보자마자 자각했다.

    요원은, 그의 흐트러진 듯 흐트러지지 않은 저 오묘한 모습에서.

    아무런 감정 동요가 없어 보이던 미간이 갑자기 확 사납게 찌푸려질 때.

    혀를 츳 차며 성난 손길로 머리를 한번 쓸어올릴 때.

    평온한 듯 절제되지 않는 저 위태로운 모습을 보며.

    겨우 남자의 저 작은 표정 하나와 손짓 하나에, 일전엔 느껴본 적 없던 흥분의 최고점을 찍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으니.

    그리고, 그가 다시 제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을 때, 요원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애꿎은 무경의 머리칼만 더 꽉 쥐었다.

    그 손이 파르르 떨렸고 숨은 더 가빠오기 시작했다.

    그 행위가 십 분 넘게 이어졌을까?

    “이제 넣어도 되죠.”

    후, 흐트러진 숨과 함께 허리를 바로 세운 그가 제 배스 로브를 거칠게 젖히며 광기 어린 목소리를 꺼냈다.

    “존나 넣고 싶어.”

    야릇하고 음란한 밤의 시작이었다.

    ***

    삐리리릭. 삐리리릭. 삐리리릭!

    핸드폰 알람 소리에 요원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곤 실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가 온몸에 찌르르르 번져오는 근육통에 끙,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께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내려 아래를 내려다봤는데, 얼마나 지쳐 까무룩 잠이 들었던 건지 속옷도 못 입은 채였다.

    제 전라의 몸을 휘 한번 살펴보던 요원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온몸에 얼룩덜룩한 흔적이 가득했다.

    좋게 표현하면 붉은 꽃봉오리가 새겨졌고, 나쁘게 표현하면 남자에게 온통 씹힌 자국뿐이다.

    요원이 아직 졸린 눈을 감았다가 뜨며 빈 옆자리를 힐끗거렸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던 그 순간부터 요원은 알고 있었다.

    그는 가고 없다는 것을.

    침대 맡에 걸터앉은 요원이 바닥을 응시하며 아직도 잠이 덜 깬 두 눈을 끔뻑거렸다.

    휴지통 안에 대충 던져진 콘돔이 보인다.

    어제 분명 그가 바닥에 이리저리 던진 것 같았는데, 나가기 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한 모양이다.

    정확히 남자와 세 번 반의 관계를 가졌다.

    한 번은 침대에서. 한 번은 통창 앞에서 짐승처럼. 한 번은 거실 소파에서. 그리고 마지막은, 욕실 안에서.

    욕실 안에서 삽입은 없었다. 씻으면서 서로를 애무한 게 전부였다. 그래서 반으로 친 것이다.

    누군가 그와의 잠자리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요원은 말보다는 엄지를 들었을 것이다.

    남자의 모든 것은 무자비하고 음란했다. 크기도, 애무도, 심지어 체위마저도.

    여자가 느낄 만한,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딱딱 짚어내는 스킬. 그 누구와도 한번 해본 적 없던 다양한 체위. 그러나 상대가 거부감 없게끔 자연스레 끌고 가던 능숙함.

    좋았다. 아니. 좋았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그의 말을 빌려 존나 끝내줬지.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작게 웃은 요원이 침대에서 일어나며 소파에 그가 잘 개 놓고 간 배스 로브와 속옷을 쥐었다.

    그리고 눈동자를 들었을 땐, 확 트인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제는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겨 미처 보지 못했던 그 파노라마 시티뷰 말이다.

    통창 너머 360도로 펼쳐지는 서울의 새벽, 그리고 한강.

    그 아름다운 서울은 아주 잠시만 보였을 뿐.

    그다음부터 요원의 머릿속에 펼쳐진 것은 저 통창 앞에서 남자와 함께했던 온갖 음란한 짓들뿐이었다.

    저기에선 유독 짐승과도 같은 관계를 가졌던 것 같다.

    요원의 몸을 돌려 창문을 붙잡게 한 남자는 단숨에 요원을 자극적으로 꿰뚫었다.

    ‘하!’

    정욕에 잠긴 까만 시선으로 그녀의 등을 내려다보면서 무경은 이런 말을 짓씹었던 것 같다.

    ‘움직이지 마, 제발. 지금도 미치겠으니, 제발.’

    요원은 미약하게 떨리는 남자의 음성을 들은 그때야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여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안간힘으로 버텼을 뿐.

    하무경 씨는 이곳을 언제 떠났을까.

    관계가 끝나고 잠에 든 나를 확인하곤 곧바로 호텔을 나섰을까?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갔을까.

    아. 드디어 채 순경을 한번 안아봤구나. 생각보다 쉽구나.

    뭐, 그런 생각들을 하고 떠났을까?

    아무렴 어떤가 싶다. 서로 즐겼으면 그만이지.

    욕실로 향하던 요원이 다시 한번 ‘초호화’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호텔 방을 제대로 둘러봤다.

    못해도 몇백은 하겠구나, 돈을 언제 주면 되지, 한 달은 김밥만 먹으면 되겠네, 무경이 들으면 싫어할 만한 생각들만 골라 하면서 욕실로 아예 들어갔다.

    요원이 호텔 키 반납을 위해 프런트로 내려갔다.

    “체크아웃하십니까? 키는 저 주시면 됩니다.”

    요원이 직원에게 호텔 키를 건넸다.

    “미니바 이용하신 게 있으실까요?”

    “몇 개 있는 것 같은데요.”

    “네. 잘 알겠습니다. 확인한 후 등록하신 카드로 결제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저기, 그런데요.”

    “예, 손님.”

    친절한 낯빛의 직원을 응시하며 잠시 머뭇거리던 요원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머문 방이요. 얼마인지 정확히 좀 알 수 있을까요?”

    호텔비를 갑자기 물어본 이유는 궁상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다.

    “로열스위트룸 말씀입니까?”

    호기심도 아니다.

    “1박에 2천만 원입니다.”

    그저, 충동이었을 뿐이다.

    “2천…… 2천만 원이요?”

    “네, 손님.”

    “그러니까, 2백이 아니라 2천이요? 2천만 원? 제가 아는 그 2천만 원이요? 백만 원짜리 스무 장?”

    요원의 우스꽝스러운 질문에도 호텔 직원은 친절한 낯빛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맞습니다. 2천만 원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그걸 일시불로 결제했나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시스템을 확인하던 직원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상냥하게 웃었다.

    “네. 일시불로 결제하셨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잠시 입을 작게 떨어트리고 멍하니 서 있던 요원이 뒤늦게 고개를 저으며 미약한 미소를 애써 지어 보였다.

    “아니요. 잘 쉬다 갑니다.”

    찰나였다.

    ‘혹시, 하무경 상무님을 아시나요?’

    직원과 동시에 인사하며 뒤돌아선 요원의 뇌리로.

    ‘아니요. 요원 씨 동네에도 계신다는 그 하무경이 아니고요.’

    단 하루 만에 지워버렸던 민수의 목소리가.

    ‘동녘 그룹의 하무경 상무님.’

    파노라마처럼 촤르륵 빠르게 스쳐 지나간 것은.

    ***

    아침 햇살이 강하게 스며든 백운(白雲).

    오전 8시가 아직 안 되었음에도, 동녘 남매가 한자리에 모여 하 회장과 아침 식사를 같이했다.

    식기 도구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리는 적막한 공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살벌한 경계심이 고스란히 공기 속에 짙게 묻어나왔다.

    “태경아.”

    상석에 앉은 하 회장의 부름에 숟가락을 얼른 내려둔 하태경이 하 회장을 향해 고개를 45도 각도로 숙였다.

    “예, 회장님.”

    “취임식 준비는 잘 돼 가는가?”

    “준비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올바른 정신 하나만 가지고 올라가겠습니다.”

    킥, 어디선가 터져버린 가벼운 조소에 하태경이 싸늘한 시선을 한 곳으로 돌렸다.

    리넨 냅킨으로 입가를 조용히 닦는 무경에게로였다.

    “왜 웃나? 하무경 상무.”

    하태경이 하 회장 앞이라고 또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기뻐서요.”

    리넨 냅킨을 테이블 위로 집어 던진 무경이 하태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사장 자리에 오르심에 미리 축하드립니다.”

    “고맙구나, 하 상무.”

    하태경도 그와 같이 꾸며낸 미소로 화답했다.

    “오빠, 나도 축하해요?”

    “고맙다, 가경아.”

    하태경은 무경을 경계하던 태도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듯 하가경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렸다.

    큼, 헛기침과 함께 숟가락을 내려둔 하 회장이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녘 삼 남매 모두가 쥐고 있던 식기 도구를 동시에 내려두며 자리에서 일시에 일어났다.

    “하 상무는 나 쪼까 보드라고.”

    하 회장이 심 여사의 도움을 받아 서재로 들어갔다.

    “네, 회장님.”

    무경이 저를 살벌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태경과 하가경을 한 번씩 쳐다보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꼭 저렇게 형, 누님은 건너뛰고 나만 찾으신다니까. 사람 참 난처해지게.”

    일부러 곤혹스럽단 표정으로 눈썹을 긁어 보이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앉으세요. 식사는 마저들 하셔야지.”

    그들에게 앉으란 손짓을 가볍게 취하며 대리석 식탁 상판 위를 손가락으로 탕, 한번 여유롭게 튕긴 무경이 막 그들을 등지던 때였다.

    “넌 다른 생각 말고 그 자리라도 잘 지켜라.”

    급격하게 내려앉은 하태경의 목소리가 무경의 등을 매섭게 찌른 것은.

    “내가 사장 되고 회장님 돌아가시면. 그 자리도 지키기 어려워질 테니.”

    고개만 비스듬히 뒤로 기울인 무경이 하태경과 눈을 똑바로 맞추면서 저의 찡그려진 미간을 중지로 슬며시 긁어 올렸다.

    “저 싸가지 없는 새끼는 근데 위아래도 없나?!”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을 모를 리 없는 하가경이 자리에 앉았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야이 건방진 새끼야! 넌 눈에 뵈는 것도 없냐?”

    “자꾸 새끼 새끼 하지 말라니까, 이 썅년아.”

    “뭐?! 썅년?! 야 이 씹새끼야!!”

    하가경이 무경에게 튀어가려는 것을 하태경이 턱, 붙잡아 세웠다.

    “소란 만들지 마라. 아버지 들으신다.”

    씩씩거리는 하가경을 다시 자리에 무력으로 앉힌 하태경이 일순 어금니를 꽉 깨물며 무경을 질타했다.

    “하무경 상무. 오늘 말이 좀 심하네. 네 손위다.”

    “그러게요. 제가 오늘 좀 그랬네요.”

    후, 까칠한 한숨과 함께 제 슈트 베스트 단추를 정갈하게 걸어 잠근 무경이 각을 잡고 섰다.

    “제가 요즘 대가리가 존나게 복잡해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누님. 제 무례를 부디 용서하시지요.”

    하태경과 하가경을 향해 허리를 굽혀 깍듯하게 인사한 무경이 허리를 세우며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다시 반 바퀴 뒤돈 무경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진 건 순간이었고.

    차기 수장 앞에서 존나게들 깝치네. 내가 반드시 니들부터 쳐낸다, 빌어먹을 기생충 같은 것들.

    그들을 완벽하게 등지고 서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는 무경은 이를 와드득, 갈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