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녘과백야-40화 (40/116)
  • 40화. 죽여줘, 부디 나를

    혀를 깨문 사람처럼 흠칫 놀란 요원이 벨트 버클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얼른 매트리스 위로 뚝 떨어트렸다.

    “전 아무것도 안 봤는데요?”

    “에이. 봤잖아요.”

    “그건 그냥, 버클 디자인이 예뻐서요. 어디에서 사셨나 하고. 어디에서 사셨어요?”

    “그래서 풀고 싶었나? 예뻐서?”

    반복되는 질문에 하마터면 네, 맞아요, 라고 대답할 뻔했다. 부끄러움에 이 자리에서 타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가온 손 하나가 상념에 잠긴 요원의 하관을 잡아 위로 홱, 조금 성난 손길로 젖혔다.

    “오늘은 내가 존나 더럽게 굴 수도 있겠구나.”

    낮게 읊조리며 요원의 오밀조밀한 얼굴을 뜯어보는 무경의 검은 시선에 또 한 번의 강렬한 섬광이 스친 듯 보인다.

    “물론, 남녀 간의 스킨십이라는 게 원래부터 깨끗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난 상상 그 이상으로 더럽게 놀 것 같거든요.”

    살벌한 예고에 요원이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그래서 조용히 가려고 했어요. 채 순경을 위해 가드리려고 했지. 나도 오늘은 내가 도저히 예측이 안 돼서.”

    바짝 타들어 가는 목이 메마른 사막처럼 갈증을 호소한다.

    “그래도. 풀고 싶어?”

    무경은 요원의 시선이 잘게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여자가 지닌 특유의 분위기에 무경의 심장이 또 욱신거린다.

    나는 언젠가 이 여자 때문에 정말 죽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 숙녀분이신데 말로 하기 좀 그런가?”

    애써 그런 복잡한 감정을 무시하면서 상냥한 얼굴로 웃어 보인 무경이 붙잡고 있던 요원의 하관을 스르륵, 손에서 놓았다.

    “그럼 내게 직접 보여줘요.”

    대신, 요원의 손목을 부드럽게 그러쥐고 위로 끌어올려 제 벨트 버클을 붙잡게 했다.

    “풀면.”

    잠시 숨을 끊어 내쉰 남자가 대단한 말을 덧붙인다.

    “너 오늘 나랑 자는 거야.”

    다시 시선을 버클 위로 고정한 요원이 한참을 머뭇대다가 손에 미약한 힘을 주었다.

    미약하나 망설임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손짓이었다.

    철컹. 묵직한 금속성이 고요한 침실 내에 쟁쟁이 울려 퍼지고.

    뚝. 남자의 무언가가 완전하게 끊기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경고음처럼 들리면서.

    “흡!”

    요원의 두 뺨을 거칠게 위로 잡아 올린 무경이 성난 기세로 입술을 부딪쳤다.

    무경은 눈을 감지 않은 채로 그녀의 입술을 혀로 강제로 벌렸다.

    요원 역시 놀란 눈을 감지 않은 채로 제 입안으로 불쑥 침범한 그의 물컹한 것을 온전히 다 받아들였다.

    무경이 무릎으로 매트리스 위를 꾹 누르면서 고개의 각도를 사선으로 더욱 비틀었다.

    요원의 입안으로 틈 하나 없이 깊숙이 침범하면서 요원의 몸을 뒤로 밀쳤다.

    요원은 유려한 움직임을 뽐내듯 침대 위에 스르륵, 비단처럼 곱게 누웠다.

    요원의 입술을 물고 빨던 무경의 입술이 요원에게서 잠시 떨어져 나가고.

    “우리 오늘 밤 같이.”

    앞으로의 행위를 예고하듯, 중지와 검지를 입안에 넣고 진득하게 빨아올린 남자가 그 손을 밑으로 서서히 내리면서 웃는다.

    “존나 더럽게 망가집시다.”

    뱉어지는 말과는 달리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미소로.

    시간이 지나면 무경은 이 밤을, 그리고 이 순간을, 가장 후회할지도 모른다.

    처음 다짐과 같이 본능을 억누르고 이 방에서 무조건 나갔어야 했다. 여자를 절대로 안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오늘 밤은.

    그럼에도 오늘 밤은.

    죽여줘.

    부디 나를 죽여줘, 채 순경.

    ***

    남자 나이 서른넷.

    이 나이 먹도록 동정이면 그건 등신이다. 이 나이 먹도록 연애 한 번 못 해봤으면 어디에 문제가 있어도 있는 거다.

    동정이 아니다. 연애도 해볼 만큼 해봤다. 그렇다고 여자관계가 복잡한 건 또 아니었다.

    무경은 누군가와 연애를 하게 되면 연애를 하는 기간만큼은 그 여자에게만 충실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재벌가의 사람에겐 이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부와 명예와 권력.

    덧붙여 무경에겐 잘생긴 얼굴과 시원하게 뻗은 신장과 기가 막힌 비율과 남자다운 체격과 좋은 목소리와 강한 성격과 능력까지 모든 걸 다 주었는데.

    이런 남자 옆에 별의별 여자가 다 꼬이는 건 당연지사다.

    그렇기에, 무경에게 ‘연애’란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일처럼 아주 쉬운 일이었다.

    눈앞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다. 그럼 무경은 그 여자와 눈을 맞추고 웃어주면 끝이었다. 그 여자는 그 날 바로 제 것이 되는 거다.

    그게 바로, 무경이 34년간 누리던 위치이자 인생이다. 이처럼 모든 게 다 쉬운.

    그런데 제 눈앞의 이 여자와는 그게 잘 안 된다.

    처음부터 그랬다. 쉽지가 않고 모든 게 다 어렵다.

    지금도 그렇다.

    처음 스킨십의 시작은 핑거링이었는데 무경은 행위 도중 몇 번이나 이를 꽉 씹고 멈춰야 했다.

    평소와는 달리 조절이 잘 안 됐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남자의 흥분이 최고점을 찍었을 땐 넣자마자 끝나기도 한다.

    조루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것보단 그만큼 그 여자 때문에 흥분해서 그러는 거다.

    그러니, 속된 말로 남자가 관계 도중 금방 싼다면 여자는 그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만큼, 남자의 자제력과 절제력을 동시에 잃게 했다는 뜻이 될 테니.

    물론, 자주 그러는 건 병이니 병원에 한번 가볼 것을 추천하지만.

    지금 무경의 상태가 딱 그랬다.

    물론 삽입을 하진 않았는데 끝날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낀 것이다.

    이건 조루도 아니고, 씨발.

    단연코, 이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무경은 미간을 팍 좁히면서 그녀의 안을 헤집던 손가락을 불시에 쑥 빼냈다.

    찡그린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반쯤 돌리고 있던 요원이 그 눈꺼풀을 사르륵 밀어 올려 그를 곁눈질하듯 조심스레 쳐다봤다.

    “하무경 씨……?”

    얼굴은 수줍은 사과 같은데 또 어딘지 모르게 계속해달라 재촉하는 듯한 여자의 이중적인 모습에 무경은 하, 차게 웃었다.

    이야, 이 여자는 진짜 고단수구나. 감탄을 했던 것 같기도.

    후, 차가운 한숨을 뱉은 무경이 갑자기 그 손가락의 마디를 야릇하게 한번 핥아 올렸다.

    “그, 그걸 왜!”

    요원이 기함한 얼굴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고 그 손가락을 아예 보란 듯 제 입안에 집어넣고 쭉쭉, 빨아올리던 무경이 뻔뻔스럽게 웃으며 대답한다.

    “음.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어서?”

    핑거링 이후 무경은 제 페이스를 완벽히 되찾은 듯 보였다.

    원래 살색이 더 야한 거라 믿었으나 아무것도 벗지 않은 요원을 보고 있자니 그 생각이 아예 바뀌고 있었다.

    여자의 팬티는 허벅지 춤에 걸쳐져 있고, 붉은 원피스와 브래지어는 가슴 위까지 젖혀진 상태였는데, 아예 벗은 것보다 시각을 강하게 자극해서 머리가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지경이었다.

    무경은 모를 것이다.

    지금 제 모습이 요원의 시각 또한 얼마나 자극하고 있는지를.

    무경 역시 아무것도 벗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셔츠 소매 단추만 풀어 팔뚝까지 대충 걷어붙인 상태였는데, 요원은 남자의 저 전완근만 보면 심장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날뛰었다.

    그리고, 바지를 벗은 것도 아니고 지퍼를 내린 것도 아닌데, 그저 허리춤에 걸린 벨트의 버클만 연 상태였는데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야해 보이는지는 의문이었다.

    요원의 탐스러운 가슴을 한입 베어 물며 주무르던 무경은 제 왼쪽 손목에서 걸리적거리는 검은 메탈 시계를 잘그락, 빠르게 풀어 침대 밑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요원의 꼿꼿하게 선 분홍빛 열매를 본격적으로 빨아올렸는데, 요원은 그 아찔한 쾌감에 아, 신음하며 무경의 어깨를 잡는 대신 새하얀 시트를 손에 꽉 움켜쥐었다.

    요원의 가슴을 혀로 괴롭히던 무경이 피식 웃은 것도 잠시, 남자의 혀가 점차 더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에서 잘록한 허리, 허리에서 배, 배에서 배꼽, 배꼽에서 허벅지, 허벅지에서 가랑이.

    그리고…….

    그가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려 할 때.

    “하무경 씨!”

    소스라치게 놀란 요원이 무경의 어깨를 발로 걷어차려 했지만, 반사신경이 남다른 무경이 요원의 발목을 한 손으로 턱, 방어하듯 빠르게 붙잡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왜 폭력을 쓰고 그래요. 그쪽이 취향이야? 맞아줄까?”

    “그게 아니라요!”

    요원이 벌어진 다리를 수줍은 듯 콱 다물면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게 아니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요원의 눈동자가 눈앞에서 해일이라도 마주한 듯 크게 떨렸다.

    무경의 견고한 눈동자는 요원의 적갈색 눈동자를 탐스러운 것 바라보듯 쳐다보며 상냥한 빛으로 웃었다.

    “왜요. 커닐은 싫어요?”

    “커닐이요?”

    “아. 용어를 모르는구나. 지금 내가 하려던 거. 그걸 커닐이라고 하는데. 커닐링구스의 준말.”

    무경이 검지로 제 아래를 적나라하게 가리키며 또 말을 덧붙인다.

    “여자가 남자 해주는 건 펠라. 펠라치오의 준말. 이것도 몰라?”

    성교육보다 더 센 무경의 발언에 요원의 얼굴에 뜨거운 열감이 몰려들었다. 특유의 돌직구 화법이 사람을 자꾸만 부끄럽게 만든다.

    “한번 받아봐요.”

    무슨 마사지도 아니고.

    요원은 벙찐 얼굴로 헛웃음 쳤다.

    매트리스 위에 무릎을 꿇고 자세를 잡은 무경이 또 능청스레 웃으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나 잘해.”

    거부하지도 못하게, 아주 매혹적으로 웃으면서.

    “…….”

    요원은 대답을 쉬이 하지 못했다.

    방금 무경이 말한 그것을 해주겠다는 남자는 과거에도 분명 있었지만, 성적으로 소극적인 요원은 늘 그 행위를 거부했었다. 별로 원하지도 않았고.

    이번에도 분명 거절하려고 했었는데, 그랬는데, 이상하게 이 남자와는 별의별 짓을 다 해보고 싶단 생각이 마음에 꽉 들어찼다.

    이 남자와는 오늘 밤. 그래. 그가 말한 것처럼 함께 더럽게 놀고 싶으니까.

    그래서, 머뭇거리던 요원이 시선을 꼿꼿하게 세우며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 씻고 제대로 해요.”

    두 사람은 각자 샤워를 했고 새하얀 순면 배스 로브를 입었다.

    무경보다 뒤늦게 나온 사람은 요원이었는데,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아직 물기가 남은 뒷머리를 여유롭게 문지르는 남자의 매끄러운 옆태를 보자니 또 한 번 심장이 쿵쿵, 쿵쿵, 제 것이 아닌 양 멋대로 날뛰었다.

    “채 순경. 이리 와요.”

    요원을 발견한 무경이 활짝 웃으면서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린다.

    “지금은 채 순경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왜?”

    “이상해요.”

    요원이 한 발, 두 발, 그에게 조심스레 걸어가 침대 맡에 몸을 앉히자마자 무경이 기다렸단 듯 몸을 움직였다.

    매트리스가 출렁였고 요원의 마음도 함께 덜컹거렸다.

    “그래요. 채요원 씨.”

    손을 뻗은 그가 요원이 꽁꽁 묶은 배스 로브의 끈을 풀며 픽, 웃었다.

    “뭘 또 리본으로 이리도 정성스레 묶었어. 금방 풀 것을.”

    “습관, 이랄까.”

    “그래요, 채요원 씨. 누워요.”

    진짜 마사지라도 해주려는 사람처럼 무경이 침대 위를 무심하게 턱짓했다.

    요원이 머뭇거리다가 누우니, 요원의 얇은 발목을 양손에 하나씩 가뿐하게 잡아챈 그가 요원의 몸을 제게로 휙, 단숨에 끌어내렸다.

    헉, 여자의 놀란 눈동자가 무경을 올려다본다.

    “무릎 세워요.”

    무경이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제법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다리는 아까처럼 벌리고. 더. 그래.”

    그의 말대로 무릎을 세우고 M자로 벌린 새하얀 다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벌벌 떨렸다.

    무경이 상체를 낮춰 그 사이에 자리를 잘 잡았고.

    “버티기 힘들면 말해요. 언제든 멈춰줄 테니. 좋아도 말해요. 더 열과 성을 다할 테니.”

    입술을 혀로 슬쩍 훑어 적신 무경이 음란한 얼굴을 한곳에 그대로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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