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三장. 소란 (4/7)
  • 三장. 소란

    “점이라니……!”

    진홍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제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마마. 가랑이 안쪽에 세 개의 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어째, 점이라니…….”

    정 상궁의 말에 진홍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안절부절못하고 덜덜 떨었다.

    “갑자기 없는 점을 만들 수도 없고…….”

    가짜를 내세워 황제와 거짓 초야를 치르는 것에 성공했다.

    그 나인이 처녀 혈을 흘리는 것을 황제도 봤을 것이고 경사방의 상궁과 나인들도 전부 확인을 했을 것이니 이제 걸리적거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이후로는 자신이 황제와 교접을 하며 진짜 황제의 용종을 잉태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겼다.

    가랑이 사이의 점.

    그 나인의 가랑이 사이에 점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황제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니 분명 확실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진홍의 가랑이에는 점이 없다.

    “없는 점을 갑자기 어찌 만들어…….”

    이제 순탄대로만 걸을 줄 알았는데 이런 문제가 생길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당장 내일이라도 폐하께서 다시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루 만에 점이 사라졌다고 하면 믿겠느냐? 그렇다고 전날 폐하를 모셨는데 오늘은 모시지 못한다고 하면 뭐라고 하시겠느냐. 이젠 댈 핑계도 없는데.”

    “어쩔 수 없사옵니다, 마마. 방법은 하나뿐이옵니다.”

    “어떤 방법?”

    진홍이 의지하는 건 정 상궁뿐이다.

    “그 나인을 다시 불러들여야지요.”

    “죽이지 않고?”

    애초에 진홍은 연우에게 금은보화를 주고 출궁시켜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초야를 무사히 치르고 나면 연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입을 막으려고 했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살려 두면 후환이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없애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언제까지 말이냐?”

    “일단 그 가랑이의 점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을 하고 마마에게 똑같은 점을 만들어야지요.”

    “그리고?”

    “상처가 아물고 진짜 점처럼 보이려면 한 달은 더 걸릴 것이니, 그때까지는 그 나인을 대역으로 세워야지요.”

    “점이 똑같이 만들어질까?”

    “그러믄요. 당연히 똑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시간만 넉넉하면 문제없습니다, 마마.”

    “그러면 다행이고…….그래, 그 나인은 어떻게 했느냐?”

    “원래는 당장 죽여 궁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지만, 지금은 궁 안에 따로 마련한 처소에 보내 놓았습니다. 그곳에 가두어 뒀다가 폐하께서 마마를 찾으시는 때에만 불러오겠습니다.”

    “나는 정 상궁만 믿어.”

    “심려 놓으시옵소서.”

    정 상궁이 뱀처럼 웃으며 진홍을 달랬다.

    “고작 한 달이옵니다. 한 달만 참으시면 점이 예쁘게 완성될 것이옵니다.”

    “그래, 그래야지.”

    겨우 얻은 자리다.

    언니를 황후로 만들 거라는 부친의 말에 얼마나 부친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저도 황후가 되고 싶었는데 고작 언니라는 이유로 황후로 삼겠다니.

    그때부터 제 정혼자가 미웠다.

    정혼자가 죽어 버렸으면 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빌었었다.

    그랬더니 정말 죽었다.

    그리고 언니가 홍역에 걸리고 제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내심 홍역에 걸린 언니가 낫지 않기를 바랐었다.

    언니가 죽어야만 제가 언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 그걸 바라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하늘은 제 소원을 전부 들어줬다.

    정혼자도 죽었고, 언니도 죽었다.

    방해가 되는 배 속의 아이는 지웠다.

    그런데 고작 그런 점 따위가 방해를 하게 둘 수는 없다.

    점이야 몇 번이든 새로 그려 놓으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 * *

    ‘어떻게 된 일일까…….’

    연우가 방문을 살짝 열어 보고는 다시 닫았다.

    어젯밤 초야를 치른 후 연우는 그전까지 지내던 처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녀를 태운 가마가 황후의 처소인 모란궁에 이른 후에 그녀는 다시 흰 천을 뒤집어쓰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 왔다.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황궁 안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대체 왜 자신을 여기로 데려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기서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금 밖은 모란궁의 나인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제 여기로 온 직후, 정 상궁이 제 다리를 벌리고 가랑이의 점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정 상궁의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지금도 그 표정을 떠올리면 오싹해진다.

    ‘왜 바로 내보내 주지 않는 거지? 설마 내가 소리를 낸 것 때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점 때문에……?’

    아무도 이유를 말해 주지 않으니 연우로서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다.

    결국 다시 이불 위에 누운 연우가 눈을 감았다.

    어제 이곳으로 온 직후 정 상궁이 돌아가자마자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었다.

    그만큼 몸이 지쳤었다.

    어젯밤에는 악몽을 꿨다.

    태자였던 황제가 제게 숯을 던졌을 때의 그 꿈을 꿨다.

    꿈에서도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 보니 벌써 아침이 훤히 밝아 있었다.

    이제 정오가 지날 무렵인데, 아직도 몸은 나른하다.

    ‘아직도 몸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기분이야…….’

    어젯밤의 경험을 잊을 수 있을까.

    그런 것은 난생처음이었고 아마 다시 없을 것이다.

    또 그런 경험을 어찌 하겠는가.

    ‘잉태만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잉태를 한다 하더라도 귀한 씨를 제 안에서 어찌 키울까.

    ‘뜨겁고 아프고, 그런데 기분은…… 좋았는데…….’

    황제와의 초야는 첫 느낌은 고통이었지만 마지막은 황홀경으로 끝났었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그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꿈을 꿨을 수도 있다.

    초야가 너무 아파서 달콤한 꿈을 꾸고 그것이 실제인 것처럼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구나…….’

    황제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다.

    6년 전, 태자였던 그를 마지막으로 보고 6년 만에 처음으로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를 봤다.

    비록 주렴이 그와 자신의 사이를 가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사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황제의 얼굴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오래 전 처음 황제를 봤을 때, 그러니까 그때의 태자를 봤을 때 세상에 저렇게 잘난 사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눈을 의심했었다.

    다른 나인들도 그랬겠지만, 그때는 연우도 태자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훔쳐보며 가슴을 두근거리곤 했었다.

    아직 세답방으로 가기 전, 그러니까 얼굴에 화상을 입기 전 견습 나인으로 태자궁에도 잠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린 생각시들을 어전, 태자궁, 황후궁으로 돌리며 경험하게 했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태자궁의 견습 나인으로 있으며 몰래 태자를 훔쳐보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을 때도 있었다.

    황제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어느 눈 오는 날 밤, 밤늦게까지 책을 읽던 태자가 입이 심심하다며 간식을 들여보내라고 했을 때 그 간식이 담긴 그릇을 들여간 것이 연우였다.

    비록 얼굴은 들지 못했지만 그게 태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대했던 때였다.

    화상을 입었을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 이전의 기억은 거의 잊고 살았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사건 이전에 태자 가까이에 있었던 기억이 몇 개가 있는데, 그걸 전부 잊고 살았다는 걸 연우가 새삼 깨달았다.

    하나가 떠오르면 또 하나가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것일까.

    그 겨울밤의 간식을 들여갔을 때를 기억해 내자 그 이전의 일들도 하나둘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걸음이 무척이나 빠르셨는데…….’

    그런 기억도 있다.

    태자가 산책을 위해 황궁의 북쪽 뜰을 걸을 때면 견습 나인들을 포함해서 태자궁의 상궁 나인들이 전부 태자의 뒤를 따르곤 했었다.

    체격이 큰 태자는 보폭도 넓어서 그 걸음이 얼마나 빠르던지 따라가느라 숨이 차올랐던 기억이 떠오르자 연우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마냥 무섭다고 생각했던 황제도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덜 무서워진다.

    ‘그때 갑자기 멈춰 서시는 바람에 다들 당황했었지.’

    그때 갑자기 멈춰 선 태자가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 없이 그냥 서 있기만 해서 다들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그것까지 생각이 났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해서 따라가던 연우도 조금은 편해지긴 했었다.

    ‘아주 무서운 분은 아니었는데…… 그날은 왜 그러셨을까…….’

    기억 속의 황제는 그렇게 많이 무서웠던 성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그는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을 당할 정도로 실수한 일은 없었다.

    입술 한번 벙긋하지 않았고 다른 나인들처럼 그냥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숯은 갑자기 날아들었다.

    사고? 아니다.

    사고가 아니라 저를 향해 정확하게 집어 던졌었다.

    ‘내가 무슨 미운 짓을 했던 건지도…….’

    오래된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니까,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잊어버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출궁하면, 이제 이런 기억도 끝이겠지.’

    출궁하고 이삼 년만 지나면 지금의 기억도 희석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기억은 그런 거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방문이 확 열렸다.

    “에구머니.”

    들어오는 정 상궁을 보며 연우가 얼른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연우에게 있어서 정 상궁은 황후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야 할 것이다.”

    “네, 마마님.”

    “오늘 밤에도 네가 폐하를 모셔야 한다.”

    “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려던 연우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마마께서 오늘도 몸이 불편하시어 폐하를 모실 수가 없으시다. 마마의 몸이 워낙에 허약하신지라 당분간은 폐하를 모실 수가 없으니, 마마의 몸이 쾌차하실 때까지는 네가 마마를 모셔야 한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기한은 네가 알 바 아니고, 내가 끝났다고 하면 그때 끝난 것이다. 설마 한 달이야 넘기겠느냐.”

    “그러면 제 출궁은…… 한 달 동안은…….”

    “한 달 더 미뤄진다고 해서 무엇 큰일이라도 나겠느냐.”

    “네에…….”

    “그리고 어제는 네년이 겁도 없이 음탕한 소리를 내더구나.”

    “그것이…… 그것이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어디 오늘도 소리를 내보거라. 그랬다가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혀를 잘라 버릴 것이니.”

    “며, 명심하겠나이다.”

    혀를 잘라 버린다는 말에 연우가 화들짝 놀랐다.

    “잊지 마라. 일이 잘못되면 너만 죽는 것이 아니라 네 오라비라는 놈도 함께 죽을 것이니, 알아서 잘 처신하거라. 행여나 다른 마음 품지 말고.”

    “언감생심 다른 마음이라니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사옵니다.”

    연우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행동에 오라비 형우의 목숨까지 달렸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금은보화에 눈이 멀어 이런 일을 덥석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정말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해도 늦었다.

    * * *

    초야는 신방에서 치렀지만 두 번째 밤은 신방이 아닌 모란궁에서 치러졌다.

    밤의 어둠이 내리자 나인들 틈에 섞인 연우가 모란궁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황후의 옷으로 갈아입고 황후를 대신해서 금침 위에 앉았다.

    초야가 아니라 주렴으로 가리는 것은 할 수 없어서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핑곗거리는 정 상궁이 생각해 냈다.

    궁색하긴 했지만 황후의 얼굴에 화기가 올라 보기가 흉하여 가렸다는 핑계를 대기로 했다.

    ‘얼굴을 보자고 하시면 어쩌지…….’

    너울을 쓴 채로 황제를 기다리며 연우가 가슴을 졸였다.

    하룻밤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이틀 밤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한 달이 될 수도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얼굴의 화기 핑계도 하루 이틀인데……. 그런데 왜 황후마마는 폐하와의 잠자리를 피하시는 걸까…….’

    정 상궁은 황후의 몸이 허약하다는 말을 했지만 연우는 그 말이 곧이곧대로 믿어지지 않는다.

    어제 만난 황후는 병약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몸이 약해서 합방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황제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황후가 몸이 약해서 모실 수 없다고 하면 황제도 화를 낼 이유가 없다.

    ‘후궁을 들일까 봐 그러시는 걸까…….’

    황후가 몸이 약해 합궁을 못 한다는 것이 신하들에게 알려지면 후궁을 들이라는 상소가 빗발칠까 봐 그러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들인 후궁이 회임이라도 하는 날에는 황후의 자리가 흔들리니까, 그래서 후궁을 들이지 않기 위해서 일부로 대역을 내세우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황후의 자리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로구나……. 마냥 좋은 것이 아니었어.’

    황궁의 한낱 이름 없는 나인의 입장에서는 황후는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그런 자리다.

    말 한마디로 자신 같은 천한 것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 왔다.

    구름 위의 신선 같이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높으신 분.

    그런 존재가 황후였지만 지금 연우는 처음으로 황후라는 자리에 있어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높은 분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충과 괴로움도 있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다.

    ‘지아비를 나눠 갖는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

    연우의 부모도 그렇지만, 신분이 낮은 백성들은 전부 일부일처다.

    본처 외에 첩을 들이는 건 신분이 높거나 부자들의 경우다.

    그리고 황제는 부자나 높은 신분의 귀족들보다 훨씬 많은 후궁들을 거느린다.

    그건 여인의 입장에서는 지아비를 나눠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여인들과 한 사내를 공유한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리라.

    지아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것이 여인의 마음일 텐데, 제가 아닌 다른 여인들이 제 지아비와 잠자리를 가지고 그 씨를 받아 아이를 낳는 것이 어느 여인의 보기에 좋게 보이겠는가.

    황궁에서는 후궁들의 암투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의 황제가 즉위하며 선왕의 후궁들이 모두 출궁한 까닭에 지금 이 황궁에서는 후궁들의 암투가 없지만, 예전에는 후궁들끼리 암투가 벌어져 그 중에 목이 잘려 나가는 후궁도 본 기억이 난다.

    그때 어렸던 연우는 높으신 후궁마마들이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냉궁에 갇히고, 또 목이 잘려 나가는 걸 보며 유난히 겁을 먹었었다.

    그때는 그 부족할 것 없는 귀하신 분들이 왜 그렇게 더 가지려고 싸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욕심이든, 애정이든, 집착이든 지아비를 더 차지하려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밀어내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황후가 제게 이런 일을 시키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이해해 본다.

    ‘오라버니에게 아무 피해도 가지 않아야 하는데…….’

    오라비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오라비 형우는 그저 동생을 챙겨 주고 잘 되기를 바라서 이런 일을 주선해 줬을 뿐이다.

    최악의 사태에 자신은 잘못되어도 오라비는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 연우의 본심이다.

    오라비가 저를 걱정해 주듯이 연우도 오라비가 걱정이다.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황제의 도착을 알리는 경사방 상궁의 목소리에 연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얼굴에 화기가 올랐다더니, 많이 답답하겠군.”

    모란궁의 침전 안으로 들어선 황제는 너울을 얼굴에 쓰고 있는 연우를 향해 대뜸 그렇게 말했다.

    어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어제는 연우가 미리 벗고 알몸으로 누워 황제를 기다렸지만, 오늘 연우는 황후의 옷을 입고 금침 위에 앉아 있다.

    비단옷은 가벼울 줄 알았는데 황후의 옷은 의외로 무거웠다.

    그리고 머리에 주렁주렁 장식된 장신구들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그게 너무 무거워서 연우의 목이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황제 역시 검은 천에 붉은 자수가 놓인 의복을 입고 있었다.

    “화기가 목소리에도 오른 건가? 왜 대답을 하지 않지?”

    연우가 치맛단을 꾹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그래. 어제는 푹 잤느냐? 내가 좀 많이 괴롭혀서 오늘 하루는 몸이 무척이나 고단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황제의 말이 맞다.

    덕분에 연우는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잤었다.

    그렇게 자고도 아직 몸은 다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지? 오늘은 어제보다 더 괴롭혀 줄 작정인데.”

    황제의 으름장에 연우가 깜짝 놀랐다.

    ‘어, 어제보다 더? 그, 그러면 얼마나 심하게 하시려고…….’

    어제도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보다 더 심하게 한다면 오늘은 기어이 저를 죽이려는 걸까.

    교접 중에 죽으면 얼마나 보기 흉할까.

    “오늘은 옷을 벗기는 수고를 직접 해야겠군.”

    황제가 손을 뻗어 오자 연우가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왜? 새삼 무서워서 그러느냐?”

    어느새 바짝 다가온 황제의 목소리가 얼굴 바로 앞에서 울렸다.

    너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제 귓가에 닿는 숨결에 연우의 몸이 경직되었다.

    이 너울이 아니면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이걸 벗기면 어떻게 될까.”

    황제가 후, 하고 숨을 불자 너울이 흔들렸다.

    그 말 한마디에 연우의 등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이 너울을 벗기는 순간, 자신은 황제를 능멸한 죄로 목이 잘릴 거다.

    “나는 화기가 올라도 상관없는데 말이다. 본질이 중요하지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얼굴에 흉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황제가 뭐라고 물어 와도 연우는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황제의 말에는 조금 놀랐다.

    지금까지 연우를 주눅 들게 만들고 항상 신경 쓰이게 한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얼굴의 흉터 때문에 연우는 항상 고개를 숙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보기 흉한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다니다니. 뻔뻔하잖아.’

    예전에 같은 나인 중에 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얼굴을 숙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런데 황제는 얼굴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다.

    물론 그게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 아니라 얼굴에 화기가 올랐다는 황후를 향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도 마음은 조금 기쁘다.

    “아름다운 꽃도 지기 마련이고, 어여쁜 얼굴도 세월이 흐르면 주름이 생기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 버리기 마련인데 고운 얼굴에 연연하면 그 고운 얼굴이 시들어 갈 때 마음도 변하지 않겠느냐. 이미 부부로 연이 이어졌는데 얼굴이 시들었다고 마음이 변하면 그게 어찌 부부이겠느냐. 나는 내 부왕과는 다르다.”

    황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연우가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아니라 황후에게 하는 말인 것을 알아서 지금 황제가 하는 말이 너무 부럽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황후가 부럽다.

    “나는 후궁도 들이지 않을 것이고, 일생 다른 여인은 바라보지도 않을 거다. 여인에게만 정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내에게도 정조가 있는 법인데, 사내로 태어나 마음에 두 여인을 품으면 어찌 신의가 있다 하겠느냐. 마음 하나 지키지 못하고 마음에 두 여인을 두는 사내가 어찌 제대로 된 사내가 할 수 있으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찌 또 나라를 다스리겠느냐. 그러니, 안심하거라. 나는 두 여인은 품지 않을 것이니. 연을 맺고 초야를 함께 한 여인 한 명만을 일생 사랑할 것이니, 흉한 얼굴 때문에 주눅 들지 말아라.”

    꼭 자신에게 해 주는 말처럼 들린다.

    흉한 얼굴 때문에 주눅 들지 말라니. 이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황후는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좋은 집안과 아름다운 얼굴과 그리고 황제의 사랑까지.

    그런 황후의 대역을 하고 있는 자신은 이렇게 보잘것없고 황제 앞에 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데 말이다.

    “초야를 나눈 여인이 내 여인이다, 일생 동안.”

    속삭이며 황제가 연우의 저고리를 벌렸다.

    매듭이 풀리고 저고리가 양쪽으로 벌어지며 드러난 흰 목덜미에 황제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축축한 혀가 제 살결을 더듬기 시작하자 연우의 어깨가 떨려 왔다.

    벌써부터 귀가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주렴 때문에 어여쁜 가슴도 보지 못했고, 이 살결에 입도 맞추지 못했지. 너울을 걷고 네 고운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지만, 화기가 올랐다니 참아야겠지.”

    입을 맞추고 싶다는 말에 연우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으응…….”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지만 황제의 손에 떠밀려 몸이 금침 위로 쓰러지듯 누우며 연우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이 정도 신음이면 정 상궁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금침 위에 누운 연우의 위로 황제가 올라탔다.

    그 묵직한 체중에 연우가 바짝 긴장했다.

    황제의 손이 연우가 입은 것들을 하나씩 벗겨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버선, 그 다음에는 속곳이었다.

    버선을 벗긴 황제가 연우의 발을 손에 쥐고 그 발가락에 입을 맞췄다.

    “응…….”

    발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저릿함에 연우가 금침을 꽉 쥐었다.

    치마 안으로 손을 넣은 황제가 속곳을 끌어내리고 휙 던졌다.

    그리고 연우의 저고리를 벗겼다.

    어제는 하체만 드러냈지만, 저고리를 벗자 흰 젖가슴까지 드러났다.

    부끄러움에 가슴을 가리고 싶었지만 황제는 그걸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연우가 금침만 꾹 쥐었다.

    “탐스러운 가슴이구나.”

    황제의 손이 연우의 젖가슴을 밀어올렸다.

    그러곤 젖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하자 그 손 안에서 유두가 빳빳하게 솟았다.

    “으응, 응…….”

    유두를 쥐고 비트는 손길에 연우가 속수무책으로 신음했다.

    유두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전신으로 번져 나가는 이 쾌감을 억누를 수가 없다.

    유두가 비틀릴 때마다 연우의 등이 움찔거리고 허리가 흔들렸다.

    “하읏…….”

    젖은 혀끝이 유두를 핥아 올린 후, 뜨거운 입술이 그 유두를 머금었다.

    “아……!”

    유두를 머금은 입술이 그것을 입 안에 넣고 굴리기 시작하자 연우의 신음도 덩달아 커졌다.

    “아읏…….”

    뜨거운 혀끝이 유두를 휘감고 거센 입술이 제 살점을 빨아올리자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살 냄새가 좋구나.”

    황제는 머금었던 입술을 떼고 짓궂게 속삭였다.

    그가 속삭일 때마다 숨결이 젖은 살결 위를 기어 연우의 쾌감을 부추겼다.

    “아랫도리 냄새만 좋은 줄 알았더니, 젖살 냄새도 좋구나.”

    황제가 치맛단 안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중심으로 손을 뻗었다.

    속곳이 벗겨진 하초에 닿은 손가락이 그녀의 비지를 천천히 문질렀다.

    “하읏……. 아, 읏…….”

    혀끝으로 유두를 굴리며 손가락으로 속살을 문질러 대자 연우의 몸이 황제의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제 가랑이 사이가 젖기 시작하는 것을 연우도 선명하게 느꼈다.

    가랑이 사이가 눅진하게 젖어 황제의 손이 문지를 때마다 쩍쩍 소리를 냈다.

    “여기에 점이 있었지.”

    가슴에서 입술을 뗀 황제가 연우의 치마를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두 다리를 활짝 잡아 벌리고는 점이 있다는 가랑이에 얼굴을 내렸다.

    “하으읏…….”

    황제의 숨결이 제 젖은 가랑이에 닿자 연우가 파르르 떨었다.

    “여기에, 점이 있어.”

    황제가 손가락으로 연우의 가랑이 안쪽을 꾹 눌렀다.

    “귀여운 점이라니까.”

    그 말을 한 황제가 음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초야를 빨리 치를 것을. 이때까지 미룬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모르겠구나.”

    황제의 손이 연우의 다리를 위로 올렸다.

    양쪽으로 벌어진 그녀의 다리를 들어 올려 접자 연우의 허리가 덩달아 들려 올라갔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제 음부에 연우가 입술을 벌려 숨을 헐떡였다.

    “벌써부터 오물거리는구나. 내 음경을 먹여 달라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제 음부가 움찔거리는 것을 연우도 느꼈다.

    황제가 제 음부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구멍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마치 빨리 넣어 달라고 보채는 것처럼 움찔거리는 구멍이 연우 스스로도 부끄럽고 민망했다.

    하지만 제 몸이 제 마음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이 쾌감과 열기 앞에서는 전부 속수무책이다.

    “그것 아느냐? 밤새,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여기를 빨고 싶었다는 것을. 조정 대신들과 정무를 보는 내내 이곳만 생각이 났었지. 이 냄새와 이 열기 말이다.”

    “하윽!”

    황제의 젖은 혀가 연우의 음부를 핥아 올렸다.

    그리고는 이내 그 여린 속살을 잘근 씹었다.

    “아응!”

    달콤한 신음이 연우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자신의 신음이 어제와는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연우 스스로도 깨달았다.

    그때 문득 연우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연우가 아는 바로는 황후든 후궁이든 황제와 합방할 때는 알몸으로 이불에 싸인 채로 경사방 나인의 품에 안겨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고 들었다.

    그리고 경사방의 상궁 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합방을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자신은 모란궁에서 합방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지켜보는 경사방 상궁이나 나인들도 없다.

    ‘기령이가 잘못 알려 준 걸까?’

    누군가 잘못 알려 준 헛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다니, 그런 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수치심을 불러올 것이다.

    “하응, 아, 읏…….”

    황제의 혀가 계속해서 연우의 속살을 핥아 올렸다.

    그때마다 연우의 음부에서 꿀쩍거리며 애액이 흘러나왔다.

    “빨아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겠지?”

    애액이 흥건한 속살을 잘근잘근 씹던 황제가 입술을 떼고 혀 대신 그 굵고 긴 손가락을 눅진하게 젖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고 휘젓기 시작했다.

    “하아앙!”

    이미 달아오른 몸이 단단한 침입에 움찔하고 튀어 올랐다.

    “하응! 아! 아! 아흣! 흐읏!”

    안에서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질척한 물소리가 울렸다.

    안을 쑤셔 대는 손가락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날 때마다 연우가 느끼는 쾌감이 늘어났다.

    접힌 채로 허공에서 흔들리는 흰 다리가 발발 떨었다.

    “네 속은 어찌 이리 뜨거우냐.”

    애액으로 질척하게 젖은 손으로 연우의 음부를 쓰윽 쓸어올리며 황제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의복을 벗지 않은 황제는 남근만 꺼냈다.

    이번에는 연우의 눈에도 그 남근이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시퍼런 핏줄이 휘감고 있는 검붉은 남근을 본 연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도 잔뜩 승은을 내려 줄 것이니, 내 씨를 듬뿍 받거라. 이 황궁 안에서 내 씨를 받을 수 있는 건 너 하나뿐이다.”

    이 말을 황후가 들었다면 분명 기뻐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도 가슴이 설렐 정도이니, 당사자인 황후가 들었다면 분명 감격했을 것이다.

    한 여인만을 사랑하고, 한 여인과 일생을 함께하고, 한 여인에게만 정을 허락한다는 황제의 말에 누가 감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자신이 황후였다면 분명 가슴이 터질 정도로 기뻐하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잔뜩 넣어 주마.”

    그 말과 함께 황제의 남근이 연우의 음부에 닿았다.

    “하읏…….”

    황제가 연우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를 꽉 쥐고 남근을 밀어 넣었다.

    “아아아아!”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남근이 제 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이미 쾌감에 잔뜩 녹아내린 연우의 몸이 환희에 전율했다.

    어제 느꼈던 아픔이 꿈만 같다.

    이렇게 전율이 돌 정도로 지독한 쾌감인데 어제는 왜 그렇게 아팠던 걸까.

    “하응! 아, 아아!”

    뜨거운 덩어리가 밀려 들어오자 그 압박감에 연우가 허리를 휘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다리를 어깨에 걸고 황제가 남근을 퍽, 퍽, 쑤셔 박았다.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온 남근이 제 안을 찌를 때마다 연우의 몸이 물결쳤다.

    지독한 쾌감에 연우가 저절로 허리를 흔들었다.

    “새처럼 우는구나. 어여쁜 새처럼 말이다.”

    황제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조롱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조롱보다는 만족스런 웃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정했다.

    항상 무섭게만 느껴지던 황제에게서 이런 다정함을 발견할 줄은 몰랐다.

    아주 예전에는, 아직 황제가 태자이던 시절에는 이런 다정함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겨울밤 간식을 가지고 들어갔을 때, 태자가 간식을 다 먹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에 연우도 배가 고팠었다.

    뱃속에서 울리는 작은 꼬르륵 소리를 들은 태자가 웃으며 제게 간식을 내어 주던 것을 연우가 문득 떠올렸다.

    상처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먹거라. 내가 주는 것이니 편히 먹거라.’

    팥을 넣은 떡을 건네주며 태자는 무척이나 다정하게 저를 바라봤었다.

    그때의 다정함을 자신은 왜 잊고 있었던 걸까.

    그러나 지금의 다정함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황후를 향한 것이다.

    당연한 것인데, 이상하게 서글퍼지는 이유가 뭘까.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건데…….’

    오래전의 그 다정함이 아예 기억이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이럴 때 기억이 나 버렸다.

    그냥 계속 무서운 황제로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이렇게 서글프진 않을 텐데.

    “아아아!”

    연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의 음경이 그녀의 자궁까지 닿을 기세로 밀려 들어왔다.

    뜨겁게 부푼 남근이 제 안을 잔뜩 후비고 빠져나갈 때마다 연우가 소리를 질렀다.

    딱딱한 끝이 깊은 곳을 찔러 올렸다가 귀두만 남겨 두고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뜨겁게 쑤셔 박혔다.

    “아아앙! 아! 아아!”

    그 격렬한 허릿짓에 연우가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전신을 환희가 점령했다.

    쩌걱쩌걱 소리를 내며 남근이 제 안을 들락거릴 때마다 엉덩이를 타고 젖은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응! 아! 아아아!”

    연우의 숨이 가파르게 치달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가며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온몸을 뒤덮은 열기가 저를 송두리째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 죽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기는 뜨겁고 황제는 격렬했다.

    어제는 봐준 것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처럼 황제는 잠시도 숨을 돌릴 틈을 주지 않고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 격렬한 움직임에 맞춰서 연우의 몸도 함께 흔들렸다.

    “하응! 응! 응, 읏, 아읏!”

    황제의 열기가 연우를 숨 막히게 밀어붙였다.

    이 열기가 너무 뜨겁고 너무 다정해서 연우는 문득 이 열기가 제 것이었으면 하고 욕심을 품어 봤다.

    헛된 욕심이고 말도 안 되는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주제도 모르는 짓이라는 걸 잘 알지만, 이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아주 잠깐 이 사내가 제 것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절대로 제 것이 될 수 없는 사내인데, 그런 욕심을 품어 봤다.

    깨어나면 사라지는 하룻밤 꿈처럼, 그렇게 욕심을 품어 봤다.

    “아아아아!”

    욕심을 품어 괴로운 연우의 마음과는 달리 제 안에 뿌려지는 뜨거운 씨물에 그녀의 육체가 전율하며 기뻐했다.

    사내의 씨물이, 황제의 일부가 그녀의 안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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