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16/16)
  • 죽도록 평범한 연애

    유진의 골동품 가게 앞에는 장식용 우편 배달함이 있다. 거기에 악의를 가진 누군가 수준 낮은 장난을 칠 거라곤 유진은 예상하지 못했다.

    “…….”

    망가진 배달함을 들여다보며 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그 안에는 CD 케이스가 들어있었다. 어떤 예감에 의해 유진은 그 CD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들고 왔다. 구석에 박혀 있던 노트북을 꺼내 CD를 재생시킨 유진은 기억 저편에 묻어뒀던 익숙한 배경을 보았다. 그리고 등장한 얼굴을 보고 정신이 박살났다. 오래전, 유진의 첫 섹스를 치러주는 남창 로메오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로메오와 아픈 첫 경험을 마치며 엉엉 우는 영상 속 자신을 보며 유진은 착잡해졌다. 그건 유진에게 치욕적인 과거였다기보다는 부끄러운 경험이었다. 비공개 영상도 아니고 암암리에 돌아다니고 있는 이 포르노를 구태여 유진의 가게 앞에 가져다 놓은 의도가 무엇일까. 유진은 꿀꿀하게 상념에 잠겼다. 그때 곤이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허둥대며 노트북을 껐다.

    ‘이거 어떻게 빼는 거지?’

    낡은 노트북은 CD를 다시 토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계와 거리가 먼 유진은 애꿎은 노트북만을 팡팡 쳤다. 곤이 곧 유진을 불렀다. 유진은 결국 오래된 노트북과 그 안에 갇힌 CD를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갔다.

    “서재에 있었어요?”

    유진이 서재에서 나오자 외출했다 돌아온 곤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유진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뭐 좀 찾느라.”

    곤은 의아하게 유진을 쳐다봤으나 다행히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유진은 속으로 큰 한숨을 쉬었다.

    *

    일을 보고 돌아왔을 때, 유진은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본 침실에서 유진은 까무러칠 뻔했다. 곤이 익숙한 노트북을 하나 들고 영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그 망측한 영상을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곤 앞에서 유진은 노트북을 낚아채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 어어, 그, 그러니까 이게.”

    “뭘 숨기고 있나 했더니.”

    곤이 부리부리한 시선으로 노트북을 엉거주춤 들고 있는 유진을 바라봤다. 그는 애초에 유진이 서재에서 나올 때부터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 연인이 최근 혼자 굴을 파고 있던 원인을 발견한 곤은 눈빛으로 유진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유진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그리고 들고 있던 노트북을 슬그머니 내려놨다. 어차피 이미 다 까발려진 상황에 이러고 있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뭐예요 이게?”

    “그게….”

    “제대로 말씀하시죠.”

    곤이 단호하게 날을 세워 유진을 몰았다. 영상의 내용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걸 두고 잔뜩 움츠러든 유진의 반응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누가 가게 앞에다 CD를 두고 가서….”

    유진은 곧 꼬리를 내리고 사실을 실토했다. 해괴한 이야길 듣고 곤의 표정 역시 어그러졌다.

    “유진 씨 영상이 담긴 CD를요?”

    “네.”

    “왜요?”

    곤은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되물었다. 그걸 유진이 어떻게 알겠는가. 당연히 당사자도 모른다. 유진은 억울하기도 하고, 속도 쓰렸다. 곤이 문제의 영상을 보고 화가 났다고 생각한 유진이 홧김에 말했다.

    “제가 싫어서겠죠.”

    “하아.”

    곤이 한심함을 담은 한숨을 흘렸다. 곤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자 유진은 속이 상했다. 물론 곤은 누군가 유진에게 악의를 갖고 유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화가 났을 뿐이었다.

    “이런 거, 처음 보셨죠.”

    겁을 먹은 유진이 어물어물 물었고 곤은 의외로 간단하게 그 질문을 받아쳤다.

    “이미 본 거예요.”

    “이미 봤다고요!?”

    유진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서 꽤액 소리를 질렀다. 속에서 비명을 지른 그가 다시 어질어질한 정신줄을 붙잡았다. 곤은 꽤나 덤덤하게 유진의 착각을 정정해주었다.

    “유진 씨 출연작은 유진 씨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전부 봤었습니다.”

    다만 곤은 그 사실을 유진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유진을 보면서, 곤은 심약한 애인이 혼자 앓았을 고민을 헤아리며 한숨을 쉬었다.

    “별로 좋았던 경험이 아니었나 보군요.”

    예의 영상에 대해 묻는 말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유진의 기억을 들춰본다는 건 곤에게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지 내공으로 기억을 여과했을 뿐이다.

    “저도 별생각이 있어서 본 건 아니에요. 유진 씨의 잘못도 아닐 테고요.”

    곤은 유진과 공유하는 장면 속에서 어린 유진을 해치는 남자들을 모두 머릿속으로 살해했다.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하고서도 곤은 반대로 과거의 편린들이 유진에겐 기억되지 않길 바랐다. 시간은 흐르고 망측한 후회란 건 결국 거슬리는 흉터에 불과할 뿐이니까 말이다.

    “유진 씨한테 속상한 일이라면 캐물을 생각 없어요.”

    “예….”

    “그런 게 약점이 될 만큼 약하지도 않고요.”

    곤은 연인의 아픈 과거를 쓸데없이 들춰내는 염치없는 남자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모럴 높은 고루한 남자도 아닌 그는 풀죽은 연인을 살살 달래며 유진이 맘 놓고 말할 기회를 줬다.

    “유진 씨가 원해서 하는 얘기라면 상관없어요. 다 들어줄 테니까.”

    “하지만 기분이 상할 수도….”

    “아까 말했잖아요. 전 괜찮다고.”

    유진은 꾸물거리다가 곤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전부 고백했다. 곤은 유진이 시원하게 털어내고 싶어 했을 자초지종을 모두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었군요.”

    “생각만 해도 부끄럽단 말입니다.”

    “이제부터 안 부끄러우면 되잖아요. 그렇죠?”

    곤은 방치된 노트북 영상을 다시 틀었다. 애먼 과거 영상을 맞닥뜨리고 유진은 얼굴이 다시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지금보다 훨씬 얇은 유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화면을 흘기며 곤은 유진의 옷을 벗겼다.

    왁왁거리는 비명 소리가 좋지 않은 음질에 묻혀 조악하게 흘러나왔다. 화면 안에선 로메오가 유진의 어린 몸을 들추고 있었다. 과거의 무뢰한이 유진의 다리를 벌리자 곤도 똑같이 유진의 다리를 벌렸다. 곤이 노트북의 영상을 흘기며 말했다.

    “여기도 만졌나요.”

    곤이 유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은 수줍은 성기를 매만졌다. 유진은 곤이 영상 속 로메오 얘기를 한다는 걸 알았다. 유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곤은 유진의 때깔 좋은 성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뭉툭한 살덩어리를 한가득 입에 물었다.

    “윽!”

    닥쳐온 감각에 유진이 숨을 죽였다. 곤이 유진의 성기를 물고 볼을 홀쭉하게 만들어 빨았다. 유진은 팔을 뻗어 그의 머리칼을 붙잡았다. 동굴 같은 입속에 담은 성기의 끝을 곤이 혀끝으로 핥았다. 유진이 파들 손가락을 튕겼다. 흡입하는 압력으로 유진은 연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여리고 둔감한 살에 송곳니를 내려 지난한 고통을 심은 곤이 입의 점막을 이용해 유진의 자지를 샅샅이 핥았다. 유진은 죽을 맛이었다.

    “곤 씨, 곤 씨.”

    유진이 서둘러 빠른 발음으로 내뱉는 말에 곤이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본다. 아래를 내다보던 유진의 눈과 마주쳤다. 곤은 발긋한 자지의 색상과 비슷한 색의 혀를 뻗어 유진의 기둥을 느긋하게 핥았다. 그게 아주 야했다. 곤의 장난스러운 눈동자가 악마처럼 힐긋 휘어졌다. 유진은 자신을 놀리는 곤에게 이를 갈았다.

    “기분 좋아요?”

    “아욱….”

    곤이 유진의 고환을 입에 물었다. 동시에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유진이 허리를 뒤틀었다. 곤은 반달처럼 웃으며 유진을 똑바로 앉혔다. 기가 보충된 유진은 유순하게 곤에게 들렸다. 곤이 그를 바라보며 자기 아래를 손가락으로 똑똑히 가리켰다.

    “저도 해주세요.”

    무릎으로 앉은 그가 허벅지를 벌렸다. 난폭한 자지가 곧추서 있었다. 유진은 눈가를 자욱하게 흐리며 붉게 서 있는 페니스를 응시했다. 유진의 앞에서 곤은 자신의 것을 문지르며 낮게 속삭였다.

    “싫으면 말고요.”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한발 빼기 전에 유진은 상체를 숙였다. 등허리를 내보이며 제 성기에 입을 맞추는 유진의 모습이 곤에게는 가혹한 광경이었다. 새초롬한 입술이 동굴을 벌려 굵은 것을 요령껏 삼켰다. 곤은 언젠가 그의 입안을 혹사시켜 맛을 보았던 걸 떠올렸다.

    유진에겐 죽었다 깨어나도 말하지 않을 테지만 그때 처음으로 유진에게 매료되었던 곤은, 아주 오랜만에 그 감각을 재회해 피가 끓었다. 동그란 머리통이 페니스를 체액으로 적시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걸 곤이 음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연인에겐 숨기고 있는 흉포한 음심이 마음속에 도사렸다. 남자는 인내심을 끌어올려 유진을 배려해 자신의 성기를 유진이 멋대로 맛보도록 놔두었다.

    “후우.”

    유진은 곤의 귀두를 보드라운 점막에 삼켜 물었다.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면서 유진은 스스로 흥분했다. 혀의 돌기에 닿는 뜨거운 피부가 여린 점막을 뚫을 듯이 더욱 솟구쳤다. 성이 난 핏줄의 박동이 신경 구석구석에 전율을 일게 만들었다.

    유진은 성의껏 목 안쪽까지 페니스를 담고 숨을 천천히 내쉬며 곤의 자지를 밖으로 왈칵 토했다. 고루 머금어진 타액을 두른 반질한 페니스가 유진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곤은 깊고 감탄 섞인 한숨을 쉬며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요.”

    곤이 유진을 눕혀 새에게 모이 주는 듯한 키스를 몸 구석구석에 쪼아주었다. 온기를 머금은 페니스가 서로의 배에서 맞부딪쳐 문질러졌다. 이제는 풀린 구멍에 곤의 성기를 삽입할 차례였다. 노트북에선 계속 질척이는 음질 좋지 않은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유진의 어린 시절 빼빼 마른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스피커를 울렸다. 동시에 곤이 유진의 항문 속으로 자지를 결합했다.

    “흐우, 앗!”

    -아아아아앗!

    괴로운 전자음이 귀를 뚫기 전에 곤은 유진의 안으로 세게 성기를 처박았다.

    “아앗, 흥, 으읏, 아아아…!”

    “유진 씨.”

    곤이 깊이 박힌 성기로 유진의 미개발된 지점을 내리눌러 빠르게 허리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미개척지를 개발당하는 감각에 유진이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두 사람이 외면한 화면 속에서도 어린 유진이 무자비한 파렴치한에게 꿰뚫리고 있었다.

    “아아아!”

    덜 마른 소년의 서글픈 애원이 유진의 고조된 목소리에 묻혔다. 곤은 진부한 기억이 슬슬 사멸될 타이밍임을 알았다.

    “이제 끌까요.”

    그는 그렇게 물으면서 영리하게 유진의 안에서 폭주하듯이 스퍼트를 올렸다. 당연히 유진은 곤의 목에 팔을 걸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곤은 손을 뻗어 노트북을 닫았다. 한층 조용해진 공기 속에서 삐걱이는 몸짓의 흔적만이 남았다.

    “하아.”

    “으, 으흣, 아.”

    곤은 유진의 등 아래로 손을 넣고 속살을 가로지르며 왕복운동을 했다. 평소보다 빠르고 급한 열에 잠긴 몸짓이었다. 유진은 곤의 속도에 따라 흥분을 삼켰다. 허우적거리며 과거의 상념 속에서 헤엄쳤다. 곤은 언제나 유진의 욕구에 봉사했다. 몸의 욕심을 채웠던 과거의 자락이 유진의 오판이든 기만이었든 지금 유진은 올곧이 곤을 누릴 수 있었다.

    “아아, 하아앗…!”

    곤이 유진의 내벽을 찔러 자지의 열기를 돋우는 순간, 유진은 쉽게 파정했다. 온몸이 노골노골 녹아서 그대로 긴장을 놓은 몸을 유진은 곤에게 기댔다. 모든 찌꺼기 같은 잔재를 잠재울 것 같은 다정함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부끄러운 이유는 유진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그러니 곤이 그의 편인 이상 마음가짐은 온전히 유진에게 달렸을 뿐이다. 그러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문제라는 걸 유진은 알았다.

    *

    “범인이 잡혔다니 다행이네.”

    조쉬가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얘길 했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대로였다. 가게 장식물을 박살내 놓은 범인이 무사히 잡혔다는 이야기다. CCTV가 제대로 역할을 해서 다행이었다. 유진은 가게 앞에서 또다시 해코지를 할 작정이었던 놈을 발견해 검거했다. 이상한 정신병자를 파출소에 넘긴 뒤에 유진은 그가 마음의 병이 깊은 안티 팬이라는 걸 전해 들었다. 뭐, 예상한 바였다.

    유진은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곤이 상당히 걱정을 했다. 결국 가게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고용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타협을 했다.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나 은퇴 준비 중이야.”

    “어, 정말로요?”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든.”

    유진을 불러낸 조쉬가 꺼낸 소식에 유진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곧 그의 말뜻을 알아차린 유진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인연. 사랑. 그리고 앞으로 그릴 행복한 길을 향한 도약. 순수한 마음으로 유진은 조쉬를 축하했다.

    “정말… 정말 축하드립니다.”

    조쉬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짓궂게 유진을 향해 물었다.

    “자기는 생각 없어?”

    유진은 조쉬의 기습공격에 얼굴이 빨개지더니 말을 못 잇고 한참 머뭇거렸다.

    “그, 잘….”

    그 순진한 반응에 조쉬는 무심코 웃었다.

    “그냥 물어본 거야.”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조급할 필요도 없지? 조쉬가 찡긋하며 유진에게 시그널을 줬다. 유진은 조쉬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조급해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퀘스트를 깨나가듯 발견하는 연애사를 둘이 아주 착실히 밟아나갈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돌아가는 길에서 유진은 곤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따라 일찍 일이 끝나 집에서 먼저 식사를 준비해 놓겠다는 전언이었다. 유진은 포슬포슬한 웃음을 흘리며 망설이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 일상은 다급하지 않게 흘러갔다. 막 시작하는 연인은 타오르면서도 잔잔한 균형을 맞췄다. 이게 다시없을 기회라는 확신이 유진에겐 있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진은 앞으로도 영영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데뷔하는 게이포르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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