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외전) (14/16)
  • 외전.

    라이더의 회상

    벽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촬영장을 공유하는 대형 스튜디오 안에서 라이더는 벗은 몸인 채로 쉬고 있었다. 바로 옆방에서 섹스하는 배우들의 신음소리가 난무했다. 촬영이 끝났는데도 별 볼일 없어진 남자들이 자리를 떠나가질 않고 있었다. 요 근래 라이더는 계속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최근의 라이징 스타와 한번 어울려보려고 얼쩡거렸다. 촬영 중이 아니어도 아랫도리가 심심해 상대에게 달라붙는 남자들은 많았다.

    “지미, 오늘 좋아 보이던데. 다음엔 나랑 찍는 거 어때.”

    “그의 파트너는 나였어. 순서를 지켜.”

    라이더의 옆자리를 차지한 남자들이 그를 놔두고 멋대로 아웅다웅했다. 라이더는 담배를 피우며 찾아온 어중이떠중이들을 흘겼다. 놈들은 발기한 아랫도리 윤곽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라이더는 땀에 젖은 블론드를 무심히 쓸어 넘겼다. 끝내주는 얼굴을 과시하자 한 놈이 홀린 듯이 라이더의 아랫도리에 손을 뻗었다. 라이더는 담배를 빼들고 놈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꺼져.”

    험악한 독가시치 같은 세 치 혀에 모두가 사색이 되어 도망갔다. 얼굴은 예뻐도 포르노 스타를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라이더는 입술을 갈기갈기 짓씹었다. 촬영이 한창인 옆 스테이지에선 짐승 우는 듯 들끓는 소리가 들렸다. 휴식을 취하다가 귀가 따가워 라이더는 몸을 일으켰다. 샤워실로 가는 길에 뭘 하고 있는 건지 구경이나 할 심산이었다.

    바로 옆의 조악한 간이 촬영장 안에선 한 사람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둘러싼 채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높게 들어 올려진 바텀의 허리로 대여섯 명의 탑들이 번갈아 사타구니를 맞붙였다. 건장한 탑 하나가 위에서 망치질하듯 자지를 박아 넣자 바텀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이봐. 저래도 되는 거야?”

    처박혀 삽입당하고 있는 녀석의 팔이 후들거린다. 바텀의 상태가 영 좋질 않아 보여서 라이더가 무심코 스태프한테 물었다.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자기한테 질문하는 건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갱뱅 촬영이라서요.”

    “저 사람, 상태가 안 좋잖아. 큰일 나는 거 아니야?”

    뭣보다 그걸 당하고 있는 게 보기 드문 동양계 배우여서 라이더는 더 위화감이 들었다.

    “괜찮아요. 그는 프로입니다.”

    스태프는 무책임하게 대답하고 다시 현장을 돌아봤다. 몇 미터 떨어진 스튜디오에선 여전히 난투 현장 같은 광기에 찬 소리가 들렸다. 경과된 시간의 흔적은 바텀의 꼬리뼈로 흘러내린 크림 같은 정액뭉텅이로 알 수 있었다. 꽤 튼튼해 보이긴 해도 아시안 배우와 다른 남자들은 체격 차가 있어서, 무식한 무게를 받으며 바텀은 희멀건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악!”

    돌덩이 같은 근육질 남성이 애써 추켜세운 둔부에 폭투를 가하듯 페니스를 삽입했다. 단단한 치골이 찰진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벌려진 장벽을 저 흉기들이 돌아가며 빠른 속도로 긁어, 바텀 배우는 긴장을 놓칠 새도 없이 애널을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노콘에 갱뱅, 삽입하는 놈들도 제정신이 아니다.

    하드코어 포르노의 제물인 동양인 바텀. 라이더는 신음하고 있는 배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죄다 핀트가 엇나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현실과 유리된 광경 속에서 오직 그만이 처절했기 때문이다. 그게 조셉 카버라는 한국계 배우라는 걸 라이더는 나중에 알았다.

    “꺼져. 안 해.”

    촬영 당일, 상대 배우 두 명을 데려놓고 말도 없던 플레이를 제안하는 감독에게 라이더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뇌까렸다.

    “그러면 찍는 척만 하자. 카메라 돌려서 정말 하는 것처럼 보이게.”

    “아니. 이거 안 찍는다고. 귓구멍 틀어 막혔어? 말도 없이 후장에 두 개를 처박으라는 게 말이 돼? 나 기분 잡쳤어. 오늘 아예 안 찍을 거니까 그리 알아.”

    감독이 돌연 원 홀 투 스틱 같은 걸 제안하는 바람에 라이더는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감독 쪽에서 꼬리를 내렸지만 라이더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당당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단 자세를 취하자 누구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코 높은 배우를 현장에서 깔아뭉갤 심산이었던 감독은 본전도 찾고 혼이 났다. 촬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골머리를 앓았다.

    그때 한쪽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나온 유진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유진은 이 여러 촬영장으로 이루어진 대형 스튜디오 안에서 따로 촬영을 마치고 탈의실로 가던 중이었다. 만만한 아시안 보이를 때마침 발견하고 감독이 눈을 반짝였다.

    “조셉!”

    타올을 허리에 두르고 있던 유진이 감독을 쳐다봤다. 불편한 기색으로 한쪽 의자에 앉아있던 라이더의 시선 역시 그쪽으로 향했다. 감독은 프로덕션 소속이었기 때문에 유진은 대충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회사의 유일한 아시안 배우를 꼬드기기 위해 감독이 혀를 놀렸다.

    “지금 대타 촬영할 수 있을까?”

    “지금이요?”

    유진이 마뜩찮은 얼굴로 감독을 쳐다봤다. 당연히 무리한 요구였다. 유진은 방금 막 촬영을 끝내고 나온 길이다. 엉덩이 사이의 항문은 삽입의 영향으로 부어있고 기력도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루에 두 탕을 아예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그건 정말 빈곤한 유진으로서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방금 촬영 끝났는데.”

    “괜찮아. 수당도 아쉽지 않게 지급해줄게.”

    감독이 손가락을 펴서 숫자를 셌다. 유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이걸로 어때.”

    감독이 평소 유진이 받는 개런티보다 몇 배 많은 수당을 제시한다. 유진의 몸 상태를 알 텐데도 ‘까라면 까라’는 식이다. 유진은 불쾌한 속내를 숨기며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을 어깨너머로 흘겼다. 프로덕션의 인기 배우인 그를 유진도 잘 알고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그와 감독 사이에 트러블이 일어난 듯하다. 감독에겐 유진의 컨디션보다 펑크를 채우는 게 더 중요했고, 유진의 머릿속엔 이번 달에 지급해야 할 렌트비나, 아직 갚아 나가야 할 빚 따위가 맴돌았다.

    “그래요, 뭐.”

    “뭐? 할 거야?”

    “네.”

    결국 유진이 승낙하자 감독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감독이 연신 고맙다며 유진에게 인사를 했다. 유진은 조금 떨떠름해진 기분으로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세트가 갖춰진 침대 위에는 탑 역할의 배우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단단히 애널 섹스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짝 열 오른 눈길들을 받으며 유진은 구렁텅이로 밀려들어 갔다.

    ‘새로운 애가 왔네.’

    새롭게 시작되는 촬영을 라이더가 스태프 틈에 섞여 지켜봤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남자들은 인사도 생략한 채 새롭게 들어온 배우에게 페니스를 들이댔다. 유진이 그들의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가 몰래 한숨을 쉬는 것을 라이더는 카메라 뒤편에서 구경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녀석이잖아.’

    라이더의 동공이 수축한 채로 허리를 굽힌 유진을 응시했다. 유진은 의무적으로 남자 배우들의 성기를 물고 두툼한 기둥을 적시고 있었다. 성기가 어느 정도 젖고 나면 후장으로 자지가 들이밀어질 차례였다. 막 끝낸 촬영의 여파로 그의 구멍은 너절했다. 얼핏 보기에도 복숭앗빛의 애널이 볼록하게 융기되어 있었다. 무리한 항문 안으로 남자 배우는 콘돔도 쓰지 않은 맨 살갗의 자지를 그대로 쑤셔 넣었다.

    “으그윽!”

    조셉 카버에게서 영 매력적이지 않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남자는 유진을 들어 앉히고 아래에서 성기를 꽂아 넣었다. 어차피 막 쑤셔지고 난 뒤의 풀린 헐렁한 구멍, 조금 험하게 쓴다고 문제될 것도 없었다. 감독은 유진을 보며 원래 하려던 그의 플레이 계획을 그대로 지시했다.

    두 번째 남자가 그의 뒤에 앉고, 구멍 안으로 또 다른 성기가 한 차례가 삽입되었다. 유진의 입에서 거꾸러질 것 같은 울부짖는 소리가 터졌다.

    ‘윽.’

    라이더는 속이 안 좋아졌다. 찢어질 듯 벌어진 애널로 두 개의 페니스를 받아내면서도 유진은 목 졸린 숨소리를 새액새액 내쉴 뿐 아무 저항이 없었다. 예정돼 있지도 않았을 촬영에서 저런 짓을 당해야 한다니. 아무리 자기 고집으로 미룬 촬영이래도 그쯤 하면 라이더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아니, 그런데 왜 거부하질 않는 거야? 혹시 영어를 못 하나?

    “안녕.”

    “아, 안녕.”

    라이더는 스튜디오 안에서 우연하게 본 유진을 충동적으로 붙잡았다. 라이더가 인사를 하자 유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화 한번 나눠본 적 없던 인기인이 갑자기 말을 거니 유진은 의아하다는 눈치다. 그런 그가 상당히 온순하다고 생각하며 라이더는 유들하게 말을 이었다.

    “나 알아?”

    “응.”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꽤 듣기 좋았다. 그의 미국식 악센트를 들으며 라이더는 유진이 영어를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오해를 한 걸 속으로 사과했다.

    “그때 고마웠어.”

    유진이 멍청하게 라이더를 바라본다. 라이더는 나름대로 생각해두었던 변명을 그에게 늘어놨다.

    “몸이 정말 좋지 않았거든.”

    “그래?”

    어째선지 유진은 시큰둥하다. 그는 라이더를 앞에 두고도 그가 수고롭게 하는 변명에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단지 제대로 대가를 받고 한 촬영에 사과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라이더는 유진을 아주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주 처음 만난 순간에, 라이더는 유진에게 빠졌다.

    *

    라이더가 벌이는 광란의 파티에서 유진은 한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유진에게는 넓은 집 안에서 조명과 음악을 틀어놓고 나체로 뒹구는 난교 현장이 아주 별세계였다. 도저히 끼질 못하는 유진을 라이더가 구석에서 꺼내주었다. 주제 안 맞게 위축되어 있는 동양인을 노리는 탑들은 많았다. 많은 남자들의 숭배 속에서 라이더는 유진을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먼저 그에게 키스했다. 주변에서 야유가 터졌다.

    “아으.”

    라이더는 피하려는 유진의 턱을 억지로 낚아채 그의 혀를 아플 만큼 빨아 당겼다. 번쩍이는 조명과 어두침침한 불빛 속에서 유진은 숨을 삼키며 라이더를 멍하니 바라봤다. 꿈에 나올 듯이 잘생긴 얼굴이 빙긋 웃으며 유진의 순진한 뺨에 뽀뽀했다.

    “귀엽긴.”

    “으….”

    “여기가 벌써 콩알만큼 부풀어 올랐잖아.”

    라이더가 발기한 유진의 가슴 돌기를 튕겼다. 유진이 혼이 빠져 바르작거렸다. 난교에 참여한 남자들은 두 귀여운 게이를 둘러쌌다. 그들은 먹음직스러운 유진에게 듬직한 팔들을 몇 개씩 걸쳤다. 잘 빠지고 거시기 큰 제물들이 달려들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할래?”

    “뭐?”

    “기분 좋은 거.”

    라이더는 고조되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는 천국으로 향하기 위한 약을 꺼내들었다. 그때까지 라이더의 주도에 고분고분 입술을 쪼아주던 유진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아니. 난 약 안 해.”

    유진이 뒤집어진 목소리로 질겁했다. 그는 약을 보자마자 혐오스러운 걸 본 듯이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에 라이더는 유진이 거짓말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상황 파악 못 하고 라이더가 슬금슬금 뻗은 팔을 유진이 거세게 쳐냈다.

    “뭐야?”

    라이더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유진을 쳐다봤다. 유진은 어둠 속에서도 다채롭게 낯빛이 질리더니 그대로 꽁무니를 내뺐다. 둘러싼 남자들을 제치고 유진은 마치 레이싱 카처럼 달려 나갔다. 열심히 도망가는 유진을 라이더는 아연히 바라봐야 했다.

    유진은 이상한 녀석이었다. 윤락이나 유희와도 거리가 멀어 보였고, 결국엔 자신의 비관을 택할 사람이었다. 포르노 배우들의 정신 나간 환락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외려 우울한 편이었다. 긴 속눈썹 때문에 그늘이 진 눈가가 꼭 우수에 젖은 사람 같았다. 그래서 라이더는 유진을 더욱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런 멜랑꼴리한 녀석은 포르노 배우와 맞지 않는다고. 언젠가 라이더는 참지 못하고 유진에게 물었다.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였다.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뭐.”

    그리고 유진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라이더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 확실히 별로 좋아서 하는 것 같진 않더라.”

    “뭐?”

    라이더는 별생각 없이 말했을 뿐이다. 그런 거야 그간 유진의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게 무슨 역린을 건드렸는지, 유진은 보기 드물게 씩씩거리며 라이더의 말에 반박했다.

    “싫은 일을 어떻게 해? 좋으니까 하는 거지.”

    “그런 거였어?”

    보기 드문 그의 반응에 라이더는 놀랐다. 그는 줄곧 봐온 친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라이더는 유진의 착각을 정정해주기 위해 그와 입씨름을 했다.

    “너 별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니까.”

    “나 원래 여러 명이서 하는 거 안 좋아해.”

    정곡을 찔린 유진이 부랴부랴 변명을 했다. 그때 그 시무룩해 보이는 유진의 표정을 보며 라이더는 깨달았다.

    ‘그건 그냥 사랑이 고픈 거 아냐?’

    어느 순간 라이더는 유진을 친구 이상으로 봤었다. 그러나 유진이 그를 연애 상대로 보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타이밍이 지나갔기 때문에 라이더의 마음도 빠르게 식어갔다. 그동안 유진은 짧고 엉망인 연애를 반복했다. 라이더는 유진이 인터널칵스 같은 곳과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란 걸 알아차렸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듯했지만.

    ‘불쌍한 친구. 여기선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거야.’

    고픔을 성욕으로 착각하는 부류도 더러 있는 법이다. 이 바보 같은 친구는 아무래도 좀 더 정상적인 정욕을 나눌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때 라이더는 그 상대가 자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라이더는 순순히 인정했다. 아무래도 그게 자신은 아닐 것 같다는 것을.

    ‘네 사랑이 절대 아깝지 않을 사람을 만나라구.’

    그러나 유진이 언제까지 그런 전선에 말려들 것 같지도 않은 예감 역시 라이더에겐 있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기회가 오는 법이다. 그래도 한때 라이더의 짝사랑 상대였지 않은가. 별 볼일 없는 녀석에게 절절맨다면 자신이 기필코 그 개자식의 엉덩이를 차주겠다고 라이더는 줄곧 생각했었다. 그건 짧은 짝사랑 상대에게 빌어주는 라이더의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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