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저 혹시, 첸 준 아니에요?”
“네?”
새로 문을 연 골동품 가게에서 유진은 자신을 알아보는 여성 손님을 만났다. 유진은 조금 망설이다가 어물쩍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진짜로요!”
신이 난 손님은 유진과 사진을 찍었다. 그는 유진을 이런 곳에서 볼 줄 몰랐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유진은 멋쩍게 웃고 말았다. 이런 관광객이나 오는 골동품 샵에서 과거 팬을 만나게 될 줄은 그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유진은 작은 골동품 가게를 시작했다. 가게를 차린 지는 한 달이 지났다. 곤의 집 서재에 가득 쌓인 낡은 음반들을 구경하다가 시작된 일이었다. 유진이 꺼낸 발상에 곤은 뜬금없어했지만 그래도 그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문을 연 유진의 골동품 가게는 엉성했다. 유진은 나름대로 자신의 소박한 가게를 열심히 꾸렸다. 이리저리 발발거리며 물건을 구매했다. 한산한 가게를 부흥시키기 위해 손님들의 취향도 조사했다. 포르노 배우였던 유진을 알아보는 손님을 만나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기회였을 뿐이다. 그가 가게를 방문하고 며칠이 지나자, 하나둘씩 유진을 보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곧 유진의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그래서, 소문이 난 것 같습니다.”
“소문?”
벌거벗은 애인을 곤이 의아하게 올려다본다. 그 역시 알몸인 채 유진을 다리 위에 앉혀놓고 입을 맞추던 중이었다. 유진은 한 뼘 위에서 곤의 뽀득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신기한 듯이 지난 한 주간의 일을 조잘거렸다.
“소셜 미디어 같은 데에 제가 하는 가게가 알려졌나 봐요.”
“그래요?”
곤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인다. 가게에 손님들이 바글바글해지는 게 유진은 기분이 좋았다. 대부분은 유진이 준이었을 시절의 팬들이었다. 사라진 포르노 스타를 그리워하던 매니아들이 그의 소식을 찾기 위해 가게를 들르고 있었다.
“매일 매출도 늘고 있고요.”
“…집중할까요.”
신이 나 자랑하는 유진의 말을 잠시 멈추며, 곤은 긴 전희를 생략하고 곧바로 그의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뻐끔한 구멍 속으로 수직으로 선 자지를 꽂아 넣었다. 살짝 뜬 허리가 떨어지는 순간 급하게 파고드는 성기에 유진이 짧게 신음했다.
“하윽!”
곤은 무방비하던 항문을 급하게 열고 메마른 장벽에 귀두를 찍어 올렸다. 아직 경계를 풀지 못한 속살의 저항감을 헤치고 단단한 성기가 터질 듯이 솟구쳤다. 곤은 유진의 둔부를 붙잡고 아래에서 위로 허리를 연거푸 쳐올리기 시작했다. 유진은 곤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익숙한 내벽이 금세 열을 내려 자지를 오물거렸다. 곤의 것이 쉬지 않고 전립선을 강타하자 곤을 부르던 유진은 채 뒷말을 잇지 못했다.
“곤 씨,”
오늘따라 그가 여유 없이 허리를 움직이며 유진을 괴롭혔다. 곤이 각도를 바꿔 벌름거리는 입구를 굵은 심지로 꿰뚫는다. 성기가 된 장벽이 강하게 수축을 한다. 귀두의 두꺼운 부분이 전립선을 일직선으로 자극하자 유진이 입을 벌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곤이 유진의 목을 콰득 깨무는 것과 동시에 유진의 안으로 농후한 정액이 왈칵 쏟아져 들어왔다.
“하아….”
두 사람 분의 호흡이 공기를 채우고, 곤은 유진의 안에서 성기를 뽑아냈다. 통통하게 부은 애널로부터 투명한 선액이 귀두의 선단으로 주욱 늘어났고, 곧이어 입을 벌린 입구에서 희뿌연 정액이 떨어졌다.
*
새벽에 눈을 뜬 유진은 잠시 옆에 누운 곤을 바라봤다. 곤은 최근에 아주 바빴다. 스케줄이 불규칙했고 자주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잠시의 여유라도 있으면 둘은 살을 맞대고 뒹굴었다. 여유 없이 뜨겁게 불탔다. 죽은 듯이 잠든 그의 얼굴을 보며 유진이 생각했다.
‘진짜 내 취향이다.’
베개 위로 뻗친 결 좋은 머리는 뼈대가 짙은 눈썹과 어울려 야수 같은 분위기를 그에게 선사한다. 곤을 처음 볼 때부터 심장이 놀랐던 건 별수 없는 반사작용이었단 걸 유진은 인정했다. 가지런히 눈을 감고 있던 곤이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을 구경 중이던 유진이 깜짝 놀라 물었다.
“깼어요?”
“…….”
곤이 진한 눈가를 가물거리며 유진을 쳐다본다. 오늘은 오후에 일이 있는 그가 아침부터 일찍 눈을 뜨자 유진은 걱정이 들었다. 더 자라는 유진의 말에 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요기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갔다. 곤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참 있다 젖은 상태로 나오는 곤을 보고 유진이 물었다.
“전 빵 먹을 건데요. 곤 씨는요?”
“제가 할게요.”
유진을 식탁에 앉힌 그가 커피를 타고 유진 몫의 토스트를 가져왔다. 그는 턱을 괸 채 유진을 마주 보며 나란히 앉았다. 식빵을 한입 베어 물며, 유진은 늦은 아침에 그와 둘이 이러고 있는 게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아직 산발이면서도 가볍게 입은 면 티가 구김 없이 단정한 게 유진은 그답다고 생각했다. 감상에 젖어있는 유진을 역시 물끄러미 마주 보던 곤이 문득 이런 얘길 꺼냈다.
“유진 씨.”
“네.”
“제 이름 불러 봐요.”
유진이 빵을 먹다가 시선을 회피하고 접시에 코를 박았다.
“그렇게 말하기 어려워요?”
“으음….”
곤의 이름이 공석현이라는 것은, 그가 유진에게 서재를 구경시키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때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그를 본명으로 부르려고 하면 도저히 입이 안 떨어졌다. 감독님이란 소리를 집어넣기까지도 오래 걸렸는데.
“설마 핸드폰에도 곤이라고 저장돼 있는 건 아니죠?”
곤이 문득 생각이 났는지 유진을 보고 물었다. 유진은 움찔했다. 한참 정적이 흐르자 곤은 웃으며 불평 없이 한 발짝 물러선다.
“그냥 해본 소리예요.”
“…….”
곤은 커피를 다 마신 뒤에 나갈 준비를 마쳤다. 신발을 신는 곤 앞에서 유진은 얌전하게 그를 배웅했다. 강아지처럼 온순한 유진을 보고 곤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까 진짜 신혼 같네.’
별말 없이 유진의 머리를 한 번 매만져준 곤이 곧 밖으로 나갔다. 유진은 곤이 사라진 현관을 지켜보다 다시 조용해진 집 안으로 어기적 들어왔다. 어젯밤의 정사로 뻐근한 몸을 소파에 드리우며 유진이 핸드폰을 켜고 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메시지로 보냈다.
‘잘 다녀와요.’
무심히 적어 보내는 상대방의 메신저에는 낯간지러운 별명이 적혀있다. 오래전에 곤이 유진에게서 듣고 실소를 터뜨린 ‘멋쟁이’라는 단어를 유진은 그의 연락처에 붙여 놨다. 유진이 마음에 들어서 내키는 대로 적어뒀을 뿐이다. 이런 부끄러운 짓을 곤이 안다고 생각하면 유진은 민망했다.
유진은 최근 부쩍 흥하고 있는 자신의 가게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를 보러 찾아오는 손님들의 소박한 호의가 유진은 순수하게 기뻤다. 이 낯선 타지에서 그가 남긴 게 부끄러운 스캔들뿐이라면 아무리 곤이 곁에 있더라도 힘들었을 텐데. 치졸하고 저열한 행적의 끝에서 아직 그를 순수하게 좋아해주는 팬들이 남아있었단 것에 유진은 감동을 느꼈다. 미국에서만 활동했더라면 이런 건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서 유진은 곤의 속마음도 모르고 조잘조잘 일을 떠벌렸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곤이 유진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가게는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집으로 돌아온 곤이 한 말에 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옆에 서 있는 유진에게 시선을 돌려 곤은 외출복을 벗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저기 너무 많이 알려지는 것도 그렇고, 유진 씨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전 괜찮은데요.”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른 걸 찾아보는 건 어때요. 공부도 괜찮고요.”
유진은 충격을 받고 아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유진은 언젠가 곤이 미국으로 가라는 식으로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 말은 꼭 유진이 이곳에 있을 당위성을 없애는 것처럼 만든다. 고향도, 부모의 나라도 아닌 이 이상한 땅에서. 하지만 유진이 소소한 성과들에 기뻐하는 건 다름이 아니다. 그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
“전 노력하는 겁니다….”
유진은 이 무심한 남자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음울함이 뚝뚝 떨어지는 유진의 목소리에서 곤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태세를 고쳤다.
“알아요, 유진 씨. 오해하지 마요.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에요.”
“뭐가 아닌데요.”
잔뜩 삐진 유진을 끌어안으며 곤은 그의 화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아까 한 말 다 취소할게요. 진짜로.”
그가 유진을 달래려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바람에, 결국 분위기가 달아올라서 두 사람은 침대로 직행했다. 틈만 생기면 이렇게 붙어먹었다. 흐트러진 몸으로 곤의 허리짓을 받으며 유진은 멍하니 생각했다.
‘내가 너무 피곤하게 하는 건가?’
곤의 성기가 기분 좋을 곳을 찔러왔다. 유진이 앙다물어 신음을 삼키자 곤이 더 기둥을 세워 유진의 여린 직장을 침범했다. 오늘따라 숨을 죽이는 유진에게 곤이 속삭인다.
“제 이름 불러 봐요.”
유진은 고집스레 입을 다물었다. 기대 없이 유진을 골릴 뿐이던 곤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단 한 마디로 몰아세운다.
“유진아.”
“흐읏.”
유진이 곧바로 신음을 내뱉는다. 신경을 두드리는 촉감으로 곤의 목소리가 성감대에 명중해 발목 뒤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그의 한마디에 속절없이 당하면서 유진은 곤이 치사하다고 느꼈다. 구멍의 주름들이 봉오리처럼 오므라들어 성기를 살뜰히 조이는 걸 느끼고 곤이 유진을 놀렸다.
“더 조이는 거 같은데.”
“…….”
유진의 반응을 알아챈 그가 귓가에 더 입술을 바짝 붙여 낯 뜨거운 소리를 불어넣었다.
“응? 유진아.”
“아이씨…!”
유진은 참지 못하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러자 더 치고 들어온 그에게 꿰뚫려 바들바들 허리를 떨어야 했다. 곤의 말이 기폭제가 된 것처럼 유진의 장벽이 야금야금 성기에 격렬하게 달라붙는다. 성기를 끊을 듯이 조이는 유진을 보고 곤은 희열에 차서 그대로 성심성의껏 유진의 안을 괴롭혔다. 유진은 울부짖으며 그의 등에 손가락 끝을 보드득 문질렀다. 절정에 이른 순간 유진은 벙긋거리며 곤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차마 큰소리로 내지 못한 이름을, 아쉽게도 곤은 듣지 못했다.
*
한밤중에 곤은 웬일로 눈이 떠져서 옆에 뻗은 유진을 구경했다.
‘내가 너무 속을 몰라줬나.’
곤 역시 스스로 사람 속을 헤아리는 것에 무디다는 자각은 있었다. 물론 유진에 한해서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유진의 눈썹을 간지럽히다 협탁 위에 있는 핸드폰으로 눈길이 갔다. 유진이 올려놨을 것에 곤은 호기심이 생긴다. 어차피 둘은 서로 숨기는 것도 없는 사이였고, 그 역시 죄책감 없이 유진의 핸드폰을 멋대로 살폈다.
‘대체 뭐라고 저장돼 있길래.’
한번 신경을 쓰니까 괜히 궁금해졌다. 마음에 안 들면 바꿔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그는 유진의 메신저에 저장돼 있을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익숙한 번호를 찾아 화면을 내리던 곤은 눈을 의심하게 하는 글자를 발견하고 풉, 웃어버렸다. 연인이 숨기려고 안절부절못하던 귀여운 명칭의 정체를 알아차린 그가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유진이 깰까 봐 숨죽여 웃음을 참은 그가 고개를 들어 옆자리에 얌전히 잠든 유진을 바라봤다. 몸은 격렬한 주제에 머리는 순수해서, 이러니까 그가 유진의 패턴대로 말려들 수밖에 없다고 곤은 생각한다. 유진의 이마에 작게 입을 맞대며 곤은 밤새 기분 좋은 웃음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