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가수는 커피를 한 잔 시켰다. 맞은편에서 곤은 차를 주문했다. 어느덧 말을 놓은 남자가 곤에게 커피를 마시지 않을 거냐고 물었고 곤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확히 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졸작품을 최고라고 칭해주면서. 대가수로 명명되는 남자가 디렉터를 모집하기 위해 공모전을 개최했던 건 5년 전이었다. 자신이 타국으로 떠난 이유기도 한 남자를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마주한 채 곤은 스물아홉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똑똑히 기억해. 그 영상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니까.”
그러나 곤에게는 잊지 못할 인생의 쓴맛이었다. 열정을 갈아 영상을 만들었으나 당선자 목록에서 공석현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곤은 남자가 수많았던 출품작들 중에서 자신의 영상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하지만 전 거기서 낙선했는데요.”
“그럴 리가? 난 자네 영상에 최고점을 줬는데.”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곤은 갑자기 공기가 답답해졌다. 상대방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난처한 빛을 드리웠다. 곤 역시 알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함정을 들춰낸 기분이었다.
“미안하네. 결국 그랬던 거로군. 누가 내 뜻을 거스르고 내정자를 몰래 밀어줬는지 난 정말 몰라.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아뇨. 당신 잘못은 아니니까요.”
남자는 부아가 난 모양인지 커피를 전부 들이켰다. 곤은 미간을 짚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거야말로 곤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실이었다. 그는 피곤한 생각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도전이라고 믿었던 일이 사실은 전부 거짓되었다든가 하는.
“어차피 결국 형편없는 영상이었을 겁니다.”
“그리 생각하지 말게. 나도 기대를 많이 했네. 내 인생에 있어 다시없을 큰 이벤트였으니까. 다른 것보다도 난 자네의 영상이 애정이 있어서 좋았어.”
5년 전인데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모르겠나? 남자가 에두르게 웃으며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안 그래도 왜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걸까 생각했었어. 분명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거든.”
중년의 신사는 너그럽게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곤은 울컥했다. 다 부스러지고 만 줄 알았던 그 시절의 맹목이 목 끝에서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뭘 하고 지내나?”
곤은 다소 반항적인 기분으로 대꾸했다.
“성인물 찍습니다. 자회사로 있는 텐위에서요.”
“포르노? 핫핫핫, 좋지. 나도 간혹 봐.”
가수는 교포였지만 한국보다도 터전인 저쪽의 습관이 베여있는 사람이었다. 흔히 내보이지 않는 속내를 내어주며 그가 곤을 떠보았다.
“다시 음악 쪽에 발 들일 생각은 없는가? 잘할 것 같은데.”
“저는 지금도 잘하고 있습니다.”
곤은 남자와 함께 마지막으로 공연 리허설에 참여했다. 그렇게 존경하는 가수의 무대를 감상하고 곤은 호텔로 돌아왔다. 밤이 다 늦고서야 무거운 피로감이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당분간 그는 한국에 있으면서 가수와의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역시 대가수의 음악은 최고였다. 곤은 여운에 잠겼다.
곤은 남자의 마지막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어졌다. 겨우 첫 번째 실패에 도망치듯이 다른 길을 선택했단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맞았다. 5년 전 그때, 그는 자신이 노고를 다한 작품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후회도 없었어야 했다. 곤은 어렸고 자잘한 패배감을 떠안기 싫어했다. 그래서 다른 일을 제안받고 도망쳤다. 이제 와 어긋난 퍼즐을 알게 된 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혼자 채찍질하며 달려온 길이 사실 정답도 실패도 아니었으니. 그렇게 되자 모든 게 허무해졌다.
*
맨션의 문 앞으로 한 남자가 다가간다.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안에서 벌컥 문이 열리는 바람에 남자는 기겁하고 몇 발자국을 뒤로 물러섰다. 벨을 누른 건 레이였고 집 안에서 나타난 사람은 미국인 포르노 배우 조쉬였다. 조쉬는 집 앞으로 찾아온 손님을 보고 호기심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레이는 처음 만난 조쉬를 보고 긴장한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유진 씨요?”
조쉬가 곧바로 유진의 이름을 꺼냈다. 레이는 초면의 곱슬머리 남자가 준의 이름을 불러 당황했다. 조쉬는 아주 환영하는 태도로 그를 맞이했다.
“들어오세요.”
“예….”
레이는 조쉬가 문을 열어준 덕분에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신발장 안까지 들어오면서도 그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혹시나 방문 거부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고 오기 전까지 노심초사하고 있던 그가 등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긴장이 풀린 듯이 정장 안으로 땀을 흘렸다.
류가 알려준 정보를 받고 찾아온 집 주소는 레이에게 낯설었다. 텐위의 배우들이 주로 사는 동네도 아니었고 집 내부 인테리어도 꽤 고전적이었다. 유진과 친한 사이라는 포르노 배우의 집을 찾아온 레이는 집 안을 둘러보고 괜히 기분이 꺼림칙해졌다. 물론 그건 순전히 앤티크를 좋아하는 조쉬의 취향이었다.
“저, 준, 아니 유진 씨는 어디 있나요?”
“유진 씨는 집에 없어요.”
“예?”
아니, 그럼 왜 들어오게 한 거야? 레이가 어이없어하며 조쉬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담대한 곱슬머리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이상한 기구를 가지고 차를 끓이고 있었다.
“차는 됐습니다만….”
“유진 씨 잠깐 어디 나갔어요. 좀 있으면 들어올 거예요. 기다리세요.”
레이는 별수 없이 바로 보이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래도 준이 곧 돌아올 거란 말에 그는 안도하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곤을 한국으로 가게끔 떼를 쓴 죄가 있어서라도 레이는 빨리 유진을 복귀시켜놔야 했다. 그는 유진을 제대로 설득할 각오를 하고 오늘 여기에 왔다. 그 사이에 배우가 또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죽음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문득 레이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지만 모든 건 그의 눈먼 사랑 탓이었다.
“감사합니다.”
레이는 조쉬가 내어준 차를 건네받았다. 아직 두 사람은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조쉬를 보며 레이는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연륜이 있어 보이지만 그에 반비례해 당돌한 몸짓과 어려 보이는 얼굴. 류의 말에 따르면 분명 그는 포르노 배우라고 했고, 준과는 같은 출신지를 이유로 친해진 듯했다. 조금은 어눌한 그의 발음을 되새기며 레이가 조쉬의 이름을 물으려던 참이었다.
“당신이, 곤?”
푸웁. 조쉬가 뜬금없이 꺼낸 말에 레이는 마시고 있던 차를 뿜었다. 괜한 사람으로 착각당하기 전에 레이가 빠르게 정정을 시도했다.
“아, 아뇨. 저는 유진 씨 회사 직원입니다…. 레이라고 합니다.”
“뭐야, 꽤 괜찮게 생겼길래 곤인 줄 알았더니.”
“예에?”
레이는 재빨리 식탁 위로 흘린 차를 닦았다. 그로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대화였다. 레이는 머리를 굴리며 조쉬를 미심쩍게 쳐다봤다. 이상한 사람한테 잘못 걸린 거 아닐까 이거? 찾으러 온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능글맞은 게이 한 명만 자기를 눈요기 삼으며 아쉬워하고 있으니.
“어쩐지 기억이랑 좀 다르게 생겼더라.”
아래로 한숨을 푹 쉰 조쉬가 눈을 둥글게 휘었다. 레이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걱정 말아요. 유진 씨가 레이 씨 얘기를 해놨거든요.”
레이라는 남자가 찾아오면 문을 열어달라고, 유진이 조쉬에게 부탁했단 얘기를 듣고 레이는 마음이 찡해졌다. 원래 날 믿어주는 사람한테 싫은 마음 가지는 사람은 없다. 날 그래도 (어느 누구랑은 다르게) 신뢰해줬군요, 준 씨…. 매출을 위해 회사에서 준을 열심히 굴리고 있을 동안 그가 혼자 외지에서 의지할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하자 레이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필이면 조쉬가 비 맞은 강아지 같았던 유진의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더 그랬다. 레이는 대충 유진이 잠수 탄 이유 중에 향수병이 얽혀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전혀 아니었지만.
“아직 나이도 어린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예에…,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어 정말 면목 없습니다….”
감상에 젖어 들어가는 레이에게 조쉬는 유진이 갑자기 찾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열이 받았는지 찬물을 들이켰다. 그때쯤 슬슬 레이도 조쉬의 눈치가 보였다. 그는 빨리 유진과 재회하고픈 마음뿐이었다. 레이는 일단 면목 없게 고개를 숙였으나 이 엄청 기 세 보이는 남자에게 말 한마디 붙이기가 버거웠다. 그렇다고 그가 유진의 거처를 알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레이의 잘못은 아니긴 했어도 배우들을 관리하는 게 그의 몫이니 레이는 자존심 상할 일 없이 잘못을 시인했다. 그런데 별안간 조쉬가 고개 숙이는 레이를 보고 손가락질을 했다.
“아무튼 유진 씨한테 쓸데없는 짓 하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예? 저는 그런 짓 안 해요!”
조쉬가 레이에게 대뜸 열을 냈다. 레이는 억울했다. 그는 항변했지만 유진의 친한 지인이라는 사람이 성을 내고 있는데 적반하장을 하기도 멋쩍었다. 결국 레이는 혼자 속으로 곤을 욕했다. 그에게 하는 몇 번째 욕질인지 몰랐다.
레이는 조쉬가 떠벌거리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어주다가 지쳐버렸다. 속이 풀린 조쉬가 입을 다물 때까지 그는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유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는 이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조쉬가 문을 열어준 걸 보면 아주 돌아올 의향이 없다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때까지만 해도 레이는 일이 일사천리로 마무리될 줄로만 알았다.
“준 씨가 안 오는데….”
“으으음.”
레이의 중얼거림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조쉬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 여태 유진이 돌아오지 않는다. 창 밖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늘 기필코 유진을 보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던 레이는 조금 초조해졌다.
“이상해.”
두 사람은 슬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야 할 시점이란 걸 알았다. 여기서 레이는 다양한 가정을 떠올렸다. 유진이 조쉬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다시 도망을 쳤거나,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일이 생겼다든가 하는. 나름 유진의 보호자 입장이었던 조쉬는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앉힌 것처럼 말이 없어졌다. 몇 시간이 흐르고서야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오늘은 가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
레이는 우울한 낯빛으로 갈 채비를 했다. 떠나기 전에 그는 명함을 꺼내 조쉬에게 건넸다. 무슨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하는 채로 레이는 마지막으로 조쉬를 보며 말했다.
“저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조쉬가 명함을 보며 어둡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유진을 찾지 못했다.
*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느낀 불안한 심상과 코를 찌르는 냄새에 놀라 눈을 떴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건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낯선 방 안에서 눈을 뜨고 유진은 다시 눈을 감았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 코앞에 닥쳐 있었다. 유진은 지독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으나 꿈과 헷갈리기에는 뒷머리에 닿는 보드라운 이불의 감촉이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결국 또 눈을 뜨고 만 유진은 현실을 직시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은 알 수 없는 공간에 와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말이다.
둔해진 머리가 상황파악을 느리게 만들었다. 유진은 우선 상박 쪽의 팔을 조심히 움직여보았다. 그러나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천으로 된 소재에 두 팔이 단단히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굳어있던 몸이 격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유진은 이를 악물어야 했다. 온몸에 쥐가 나서 격통이 자글자글하게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유진은 조금씩 몸을 뒤척여 자신의 처지를 확인했다. 우스꽝스러운 상태로 결박돼 있는 몸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로 두 팔이 교차돼 있고, 허리 아래에 푹신한 무언가가 받쳐 있어 몸이 둥글게 말려져 있었다. 허리가 아치형으로 붕 뜬 자세가 괴이쩍었다. 편하게 다뤄지기 위한 자세로 만들어놓기라도 한 듯이.
굽혀진 다리를 펴고 유진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2차적으로 근육통이 일었다. 죽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지만 딱 혀 정도는 깨물고 싶은 아픔이 유진을 괴롭혔다. 유진은 몸을 모로 눕히고 아픔이 가실 때까지 숨을 골랐다. 불이 켜지지 않아 약간 어슴푸레한 방 안이 시간을 짐작케 했다. 이불이 덮이지 않은 몸이 보드라운 시트에 맨살에 부대끼며 새벽의 찬 기운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그 말은 즉 그가 맨몸이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멀쩡한 상황은 아니었다.
유진은 눈알을 굴려 괴물 같은 형상으로 자신을 향하는 유리 렌즈들을 바라봤다. 수 대의 카메라 기기들이 벽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기괴한 방 안의 풍경을 말이다. 유진은 헛구역질을 참다가 두려움과 공포로 작게 몸을 떨었다.
“일어났나 본데요?”
갑자기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여러 명이었다. 등진 방향으로 들어온 침입객들이 긴장으로 굳어져 있는 유진을 향해 다가왔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였다. 유진은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작게 떨고 있는 어깨를 누군가가 낚아챔과 동시에 방 안의 불이 밝혔다.
“준 군, 잘 잤어?”
제프. 그리고 옆으로 토비와, ST 감독까지. 그의 인사를 받자마자 유진은 겁에 질려 숨을 멈췄다. 점점 가빠지던 숨에 유진은 어지럼증과 울렁거림을 느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내려다보는 시선 아래서 유진이 머리를 저으며 결박된 몸을 꿈틀거렸다. 유진의 이상증세를 보고 제프가 눈썹을 들었다.
“나 참, 왜 이래.”
“약이 잘못 든 거 아냐?”
제정신으로 반항하지 못하는 유진을 보며 토비가 혀를 찼다. 그 옆에는 ST가 있다. 유진을 기절시켜 데리고 오기 위한 약의 제공자였던 제프는 납치를 담당했던 ST를 다그쳤다.
“내가 적당히 쓰라고 했잖아.”
제프의 질책을 듣고 ST는 실실 피식거리며 유진의 볼을 툭, 툭 건드렸다. 정신 못 차리는 유진이 힘없이 이리저리 머리를 저었다. 저열한 세 남자에게 납치된 포르노 배우가 현실을 깨닫고 괴롭게 웅얼거렸다.
“이, 이게 무슨….”
“자자, 진정해. 널 죽이거나 할 건 아니니까.”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ST가 유진의 어깨를 끌어 침대 등받이에 기대게 만들었다. 제프와 토비, ST 세 일당이 유진에게 모여들었다. 거구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유진이 공포에 질려 소리를 뱉었다.
“시, 싫어, 살려줘.”
“몸값 높은 배우님은 안 죽여.”
토비가 유진의 발목을 붙잡았다. 발목을 죄어 오는 강한 손아귀에 유진의 입에서 졸린 소리가 나왔다. 토비와 제프는 유진의 머리 위로 비치는 송신 패널을 확인했다. 천장에 박아놓은 카메라로 강제 포획한 미남 배우를 능욕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잘 나오지?”
“화질 좋은데.”
유진은 토비에게 붙잡힌 발목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약의 후유증으로 통 몸이 안 움직여지는 상태로는 그들에게 빠져나가기가 요원했다. ST는 반항하는 유진을 겨드랑이 아래로 단단히 포박해 무릎으로 척추를 가격했다. 꺾일 것 같은 통증에 유진이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튀어 오른 유진의 가슴팍을 토비가 주무르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만인의 포르노 스타께서.”
업계의 대선생이자 유진을 겁간하듯이 포르노 촬영을 한 적이 있던 토비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유진을 보며 즐거운 듯이 웃었다.
“이런 것도 즐길 줄도 알아야지. 그게 포르노 배우의 덕목 아니겠어.”
“으아악…!”
분명 유진은 볼일을 보러 가던 중이었다. 유진은 어지러운 머리로 수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밖으로 나간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조쉬의 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느라 잊고 있던 공과금이 생각났던 것이다. 청구서를 가지러 가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유진은 인적 드문 골목에서 그대로 뒤통수를 후려 맞고 쓰러졌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도중, 약품 냄새가 나던 천으로 입이 막혔던 것까지 유진은 기억이 났다. 기억을 더듬는 유진의 머리채를 제프가 쥐어 잡았다.
“감히 어딜 도망가려고 했어? 조금 유명해졌다고 기어오르기나 하고. 이런 것들은 혼쭐이 나봐야 해.”
진심으로 성질을 부리는 제프를 보고 토비와 ST가 킬킬거렸다. 그들은 순전히 유진과 한 판 뜰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ST는 유진의 동영상 촬영 감독을 하다가 그를 희롱한 전적이 있는 남자였다. 그가 힘없이 늘어지는 유진의 턱을 쥐어 잡고 입술을 삼켰다. 산적 같은 남자가 유진의 입을 벌려 지렁이 같은 혀를 유진의 입속에 욱여넣었다. 순간 유진이 그의 혀를 콱 물었다. ST는 재빨리 입술을 떼어내고 유진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을 못 차렸군.”
유진의 납작한 뺨가죽이 도톰하게 부어올랐다. 덩치만으로 유진의 배가 되는 ST가 거센 손바닥으로 뺨을 갈기니 당연히 유진은 반항할 엄두도 못 내고 비실거렸다. 세 사람은 유진을 도로 베개 위로 얹혔다. 안락함에 취해 나태했던 유진은 거구의 삼인방에게는 연약한 장난감처럼 다루어졌다. 겹겹이 쌓여놓은 베개더미가 유진의 몸을 다시 활처럼 구부리게 만들었다. 그때 ST가 침대 매트리스 틈바구니에서 기묘한 걸 꺼냈다. 고무줄로 된 단단한 고정체인을 꺼낸 그가 유진의 상체 위로 구속구를 가로질러 압박했다. 제프의 취향다운 비범한 기구였다.
“싫어, 싫어….”
유진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옴짝달싹못하게 되었다. 적나라한 그의 나체가 세 남자의 손에 놓였다. 유진은 서툰 음성으로 필사적인 거부를 한다. 그러나 진상된 유진의 몸을 둘러싸고 남자들은 하나둘씩 옷을 탈의해나갈 뿐이었다. 묵직한 무게들에 침대가 끼긱거렸다. 보기 흉한 살덩어리들이 유진의 나신으로 모여든다. ST가 다음 단계를 진행했다.
“이것 봐요.”
유진의 굴욕적인 치태를 향해 카메라가 들이밀어졌다. ST가 든 캠코더를 통해서다. 적나라한 빨간 불빛을 보고 유진은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밑바닥까지 끌어 내려지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촬영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이건 촬영이에요, 준 씨. 잘 찍히면 편집해서 DVD로 제작할 거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ST의 개소리를 들으며 유진은 열이 뻗쳤다. 그는 무시무시한 눈길로 끔찍한 강간마들을 노려봤다. 어차피 그는 결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유진이 거부하거나 말거나 남자들은 서로 저열한 소리를 지껄여갔다.
“맨날 하는 건데 왜 그러실까? 토비 선생님이랑은 이것저것 다 했잖아요.”
ST가 느글느글하게 웃었다. 유진과 접붙었던 적 있던 토비가 먼저 얼굴을 올려 그의 가슴에 입술을 붙였다. 유진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할짝할짝 제 가슴에 궤적을 그려나가는 늙은 남자에 유진이 영어로 무어라 소리쳤으나 그들은 저들끼리의 담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토비 선생은 괜찮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촬영은 괜찮지만 이런 건 또 싫다시는군. 어차피 포르노 찍는 걸레 주제에 깨끗한 척이 심하잖아, 준.”
제프가 유진의 한쪽 가슴을 솥뚜껑 같은 가슴으로 내리쳤다. 단단하고 말랑한 것이 빨개지며 흔들렸다. 유진의 가슴을 쥐어본 제프가 전보다 가슴살이 빠졌다고 질 낮은 농담을 주절거렸다. 자비 없이 주어지는 체벌에 유진의 다리가 절로 꿈틀거렸다. 꿈틀거리기만 할 뿐 오므릴 수도, 벌릴 수도 없는 어정쩡한 다리가 봉긋해진 허리 아래로 예각을 그리며 벌어져 있다. 그의 포르노 소속사 사장이자 유진을 가장 손에 넣어 주무르고 싶어 하던 장본인인 제프가 유진의 두 정강이를 잡았다.
“싫어, 제발 그만…!”
유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제프의 손에 유진의 음부가 활짝 벌려져 남자들에게 공개되었다.
“흐윽, 흐으으….”
세 남자가 유진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벌려 바라본다. 분노로 경악한 소리가 유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두 엉덩이가 닫아놓았던 빠끔한 비부가 긴장으로 땀에 젖어 살짝 반들거리고 있었다.
유진은 두꺼운 손아귀가 제 무릎 아래를 잡고 있는 걸 느끼며 비참함에 잠긴 신음소리를 흐느꼈다. 그러나 제프는 아랑곳없이 유진의 속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지퍼조차 제대로 잠기지 않는 벨트를 풀어 제프는 곧바로 자지를 꺼냈다. 징그러운 귀두가 속옷의 소변구 사이로 불룩 튀어나왔다. 유진의 구멍을 따먹기 위해 발기한 자지가 부담스럽게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제프가 자지 밑동을 잡고 토비에게 예의상 질문을 한 번 했다.
“토비 선생, 미안하게 됐어.”
“아아, 괜찮으니까 얼른 해보라구.”
욕심껏 ‘어르신 먼저’를 실천하지 못한 제프가 토비의 눈치를 보고 유진의 다리 사이로 다가갔다. 유진이 우악스럽게 벌려진 다리를 마구 발버둥 쳤다. 그걸 양옆에서 토비와 ST가 꼼짝 못하게 눌렀다. 유진은 악을 지르다가 힘이 빠져 늘어졌다. 자세 탓에 시선이 기울어진 유진은 차마 제프의 행세를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악…!”
풀어지지도 않은 구멍을 제프가 무턱대고 파고들었다. 어떤 전희도 없이 길을 내준 애널이 버티지 못하고 홧홧해진다. 유진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봤다. 이런 건 그가 버텨왔던 포르노 배우의 의무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었으므로.
유진은 억지로 고통을 삼키며 속으로 울었다. 그들이 벌이는 행각에 끔찍하게 질린 유진은 비참해졌다. 세 남자가 저열하게 그의 나신을 농락하고, 제프가 애널 속으로 성기를 점차 집어넣기 시작했을 때, 유진은 그 순간 곤을 생각했다. 무너지는 그가 떠올린 건 애석하게도 곤이었다.
제프는 유진의 비좁은 애널 안으로 꾸득꾸득 성기를 밀어 넣었다. 좀처럼 열리지 않았던 구멍을 파내어 길을 뚫자 당사자가 고통스럽게 신음을 질렀다. ST가 컥컥거리는 유진의 입을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다. 산소가 차단된 몸이 허우적거리며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제프는 기민한 쾌감에 더 힘을 내 돌진하기 시작했다. 메마른 장벽이 딱딱하게 침입한 자지를 조이고 굳었다. 조붓한 구멍 속으로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추악한 중년남은 물렁살 같은 피부를 흔들어 유진과 온전히 결합했다.
“으학!”
ST가 입을 막은 손을 풀었다. 유진은 숨을 들이켜며 비명을 질렀다. 제프가 왕복이 긴 추삽질을 하자 그의 페니스가 유진의 안으로 끝까지 들어갔다. 유진의 팔다리를 단단히 막아두고 제프가 물결치기 시작한 내벽을 쑤욱쑤욱 열어젖혔다. 구멍 속으로 자지가 처박힐 때마다 유진의 마른 치골에 흉한 살집이 처억 척 달라붙었다. 하얗고 빨개진 얼굴로 괴로워하던 유진은 본능적으로 몸의 은밀한 안쪽을 물렁하게 녹이기 시작했다. 자지를 감싸는 주름벽에 물기가 차자 제프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짓을 빨리했다.
“하아아아…!”
“헉, 헉, 좋잖아, 이 걸레 같은 것….”
제프가 눈을 기기하게 번득이며 유진의 유려한 나신을 농락했다. 튼실한 하체를 사선으로 성큼 들어 유진의 안으로 자지를 처박았다. 손이 뒤로 묶인 유진은 마치 꼬챙이에 꿰뚫린 물고기처럼 제프에게 퍼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제프는 이 잘 발달된 몸을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만 맛본 적이 있었다. 순진하게 음문을 열어주던 잠든 유진을 떠올리며 제프는 이제는 깨어있는 유진의 의식에 똑똑히 상황을 각인시켰다.
“그만…! 싫어, 그만해…! 아아!”
“이렇게 척척한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창놈 새끼야.”
제프가 다시 한번 귀두의 끄트머리를 그의 연약한 점막에 비집어 찍어 올렸다. 고집스러웠던 통로가 열리자 유진의 성감이 단숨에 개방됐다.
“으아악!”
유진은 소리를 지르며 희멀건한 정액을 다리 사이로 찍 싸냈다. 남자들이 그 꼴을 보고 와하하 웃어댔다. 배로부터 퍼지는 연기 같은 쾌감에 유진은 힘없이 공포를 맛보았다. 분명히 겁간당하고 있을 터인데, 정신은 이렇게 끔찍하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째서. 의식을 배반하는 음란한 육체가 성기를 발기시켜 불투명한 점액질을 끔뻑끔뻑 쏟게끔 만들고 있었다.
“왜, 왜, 어째서….”
유진은 기어코 참아내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믿고 싶지 않은 자신의 추락에 유진은 절망감을 느꼈다. 남자들에게 강제로 능욕당하며 의무적으로 반응하는 신체라니, 이런 건 정상이 아니다. 혼란스러워하는 유진에게 제프가 속삭였다.
“나와 섹스하니까 기분 좋아, 준 군?”
“너, 너 이 개자식….”
교태를 부리는 제프의 언사에 유진의 얼굴이 야차처럼 변했다. 그래봤자 제프의 눈에는 박아 넣는 페니스에 속절없이 야한 음성을 구겨 삼키는 포획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움찔움찔 묶인 채로 튀어 오르는 유진에게 제프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역시 준 군은 기억 못 하는 거 같네, 하하.”
“무, 무슨….”
“처음이 아니라고. 이거.”
유진은 처음에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유진과 한판 중인 제프를 두고 방 한쪽을 뒤지던 나머지 두 사람은 수상한 약봉지 같은 걸 들고 왔다. 유진은 제프가 자신에게 약이라도 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면 제 몸이 이렇게 익숙하게 그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거대한 성기를 삼켜 깊숙한 곳까지 끌고 들어오는 음란한 내벽을 유진은 믿고 싶지 않았다.
“첫 술자리에서 곯아떨어진 준 군을 데려간 게 나야.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후흐흐.”
유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의 눈이 혼란에 감겨 있다가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충격적인 진실을 알아차린 유진에게 제프는 모욕적인 언어들로 그날들의 기억을 묘사했다. 유진은 괴성을 지르며 제프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영어가 섞인 욕설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제프는 성기의 핏줄을 불뚝여 유진의 안에 다시금 제 모양을 새겨 넣었다. 쾌감을 선사했던 자지에 구멍은 착실하게 반응했다. 흉기 같은 요철이 감겨드는 주름을 일직선으로 마찰하는 순간, 유진은 벼락같이 몸이 뒤틀며 흰자위를 뒤집었다.
“끄아아악!”
사악한 흉기 같은 것이 유진의 전신을 꿰뚫었다. 악몽을 맛본 의식이 점차 늪에 빠지며 휘발되어 갔다. 유진은 자신이 지옥 같은 늪에 빠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절한다. 그 순간에도 세 사람이 유진을 강간하는 모습은 촬영되는 중이었다.
*
“아주 잘 생각했어.”
존경하는 가수 앞에서 곤은 마지막으로 답을 내놓고 후련한 마음이 되었다. 그는 막 이직을 위한 구두계약을 마친 참이었다. 가수는 공모전의 인연으로 기억에 남아있던 청년을 놓치기 아쉬워했다. 그는 곤에게 본인의 팀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고, 곤은 며칠 고민하다가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로서도 도전이나 다름없는 결정이었다. 대가수는 곧 새 출발을 할 남자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함께하게 된 걸 환영하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곤은 기회를 준 가수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진행된 건 구두뿐이고 앞으로 많은 절차가 남아있었다. 텐위 프로덕션에서의 일을 정리해야 했고, 이직 신청과 같은 여러 가지 것들. 곤은 줄곧 원하던 자리를 얻게 되었지만 한편으론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재능이 있으니까 잘할 거라고 믿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아냐, 그럴 리가. 나야말로 행운이지. 앞으로 잘 부탁하네.”
가수는 호방하게 곤과 악수를 했다. 곤은 멋쩍게 웃었다. 결정을 내리고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 미적거리는 미련이 남아있었다. 망설이기보다도 내키지 않아 하는 곤의 완벽주의자적 성질을 가수는 알아챘다. 그가 곤의 등을 주먹으로 툭 한 번 치고 눈을 찡긋했다.
“재능보다 썩히기 아까운 게 마음이야.”
연륜의 신사답게 남자는 아주 중요한 소리를 곤에게 던져주었다. 그와 헤어지고 곤은 심장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가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귀중한 기회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실수를 돌이켜 제자리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해도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양쪽 페이지처럼 긁어도 떨쳐낼 수 없는 아쉬움이 이성을 자극했다.
곤은 자신이 선택함으로써 또 잃게 될 것들을 생각했다. 유진을 말이다. 만약 텐위를 떠나게 된다면 그가 유진을 다시 볼 일은 좀체 없을 것이다. 아예 이대로 헤어질지도 모른다. 만약 유진이 곤을 지금처럼 용서할 생각이 없다면, 집 문 앞에서 모양 빠지던 사과를 한 걸 마지막으로 그렇게 끝이 날 것이다.
띠리리리. 상념에 잠겨있던 그때 멋없는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건물 벽에 기대있던 곤은 한 손을 주머니에 쑤셔 전화를 꺼냈다. 무려 레이로부터 걸려온 국제전화였다. 예의 없게 발신된 국제전화를 받아야 할지 곤은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스피커를 통해 레이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곤 씨.
“레이.”
중대한 결정을 막 끝낸 참이었던 곤은 우선 먼저 이 소식을 레이에게 알리려고 했다.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레이의 목소리가 묘하게 어둡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레이, 나 말인데.”
-준 씨가 사라졌어요.
곤이 채 말을 끝내기 전에 레이가 먼저 다급하게 결론을 꺼냈다. 난데없는 소식에 곤은 잠시 입을 벌렸다. 정지된 사고를 천천히 가동시키며 그가 되물었다.
“…사라졌다고?”
-네. 어디에도 연락이 닿질 않아요.
곤의 얼굴이 무섭도록 심각해졌다. 긴장으로 조급해진 발이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쳤다.
“행방불명인 게 확실해?”
-준 씨랑 같이 있던 친구 분께서 급하게 연락을 주셨어요. 유진 씨가 돌아오질 않는다고요. 일단 실종신고를 해놓은 상태예요.
곤은 앞머리를 한 번 쓸고 한숨을 쉬었다. 불안해하는 레이에게 날이 선 그가 신경질적으로 질문했다.
“넌 뭘 하고 있었어?”
-만나러 가긴 했는데요, 이미 그때 친구 분 집에 없어서….
“알았으니까 일단….”
곤은 입술을 물고 생각을 정리했다.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해올 정도면 보통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처음에 유진이 사라졌던 건 그의 충동적인 단독행동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언젠가 했던 가정이 사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곤을 엄습했다.
-포르노 배우니까요, 아무래도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거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레이의 말을 듣고 곤은 주먹을 꽉 쥐었다. AV배우들이 괴한들에게 습격당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포르노 배우에 대한 인식은 그런 것이다. 유진이 지금 어디 있는지, 누군가에게 붙잡혀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곤은 머릿속이 폭발 직전이 되었다. 레이가 초조해하며 곤에게 물었다.
-곤 씨,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곤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레이에게 큰소리를 치고 전화를 끊은 그가 당장에 밖으로 나갔다. 핸드폰으로 재빨리 비행기 표를 알아보던 곤은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오늘 그는 아티스트의 중요한 이벤트를 위해 작업에 참여하기로 되어있었다. 만약에 사라진 유진을 찾기 위해 가버린다면 겨우 잡은 기회가 전부 무산될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곤은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손가락을 바쁘게 눌러 에이전시들의 연락처를 핸드폰에서 찾은 그가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급한 일이 생겨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해대는 남자에게 관계자들은 항의의 말을 내뱉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자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그 누구도 제대로 따지질 못했다.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누구 하나라도 족칠 기세였으므로.
‘마음을 외면하는 게 더 아까운 법이라네.’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인생의 멘토였던 사람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받고 곤은 공항으로 향했다.
*
레이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운 뒤에, 또 녹아버린 발걸음으로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는 경찰서와 흥신소에 연락을 취하고 혼자 업무를 처리했다. 신임하는 일부 직원들에게만 사건을 알린 레이는 한마디로 조치를 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는 입들을 많이 만드는 건 좋지 않았다. GV배우의 실종사건이 미디어에 보도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루 종일 사무실 전화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레이는 주먹을 꽉 쥐고 긴장했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몸값 요구와 같은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다. 내심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레이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변태 매니아의 납치 행각일지도 모른다고 레이는 생각했다. 거의 정답에 가까운 추론이었다.
레이는 경찰한테 연락이 오면 연락이 오는 대로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경찰과 소득 없는 질의나 주고받다 서문을 나서는 게 고작이었다. 레이는 유진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유진이 GV배우치고는 상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유진은 놀랍도록 얌전한 사람이었고 생활반경도 넓지 않았다. 유진의 실종 소식으로 소환당한 건 정말 고작해야 그의 친구인 조쉬 정도였다. 조쉬 역시 서에서 나오는 레이와 함께 사무실로 향하다가 실의에 빠졌다.
“내가 나간다는 걸 말리기만 했었어도….”
“조쉬 씨의 잘못이 아니죠.”
레이는 전철 안에서 조쉬와 나란히 앉아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아무렴 조쉬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가출한 사람을 집에서 재워준 죄밖엔 없다. 그럼에도 조쉬는 죄책감 때문에 짧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레이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유능한 레이라도 그의 삼십 년 넘은 인생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자신들이 무능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좌절감에 빠져들어 갈 때 두 사람 앞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나 왔어.”
짧은 두 마디로 귀환을 알리는 곤을 보고 레이는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랬다. 사무실 안에 곤이 있었던 것이다. 먼지 두른 혜성처럼 등장한 남자는 머리가 흐트러져 있고 옷에도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급히 액셀을 밟고 온 흔적이 역력한 모습에 레이가 딸꾹질을 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해서 인사도 생략하고 물어버렸다.
“고, 곤 씨, 벌써 오셔도 되는 거예요?”
“어어. 일 다 끝났어.”
곤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쳤다.
“당신이 곤이야?”
레이와 함께 온 조쉬는 눈앞에 있는 게 곤인 걸 알고 적대적인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조쉬는 유진을 잃어버린 것에 자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일의 원흉인 곤에 대한 반감도 가지고 있었다. 자기한테 싸움을 거는 곱상한 남자를 보고 곤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그쪽은 누군데요.”
“그쪽? 하!”
조쉬가 어이없단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반응에 곤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레이는 두 사람의 대립을 보고 이마를 짚었다. 곤이 더러운 성질머리를 가졌다는 걸 잠시 까먹고 있었다. 그동안 좀 기가 죽었나 싶었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돌아와선 다시 낯짝 두꺼운 남자가 되어 있는 곤을 보고 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곤은 성가신 얼굴로 조쉬를 내려다봤다.
“너 없는 동안 내가 유진 씨 보호하고 있었다, 이 자식아!”
“오우.”
조쉬는 이빨 내미는 치와와처럼 곤에게 아르릉거렸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조쉬의 터프한 모습에 레이는 감탄했다. 곤은 곤대로 유진의 일로 마음고생을 좀 했던 터라 조쉬의 질타에 열이 받았다. 그러나 레이 역시 조쉬가 왜 곤에게 적대적인지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둘이 아는 사이던가?
“너만 아니었으면 유진이 가출할 일도 없었어!”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전 사람을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두 남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조쉬의 분노는 그의 다음 말로 인해 출처를 드러냈다.
“너는 애인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최저야!”
순식간에 사무실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조쉬가 떨어트린 폭탄에 레이는 차마 곤의 눈치를 보지도 못하고 바보처럼 말을 더듬었다.
“애, 애, 애.”
곤은 모든 사고가 정지된 채 폭탄이 떨어진 폐허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생에 있어 손에 꼽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순간에 처한 곤은 멍청한 얼굴로 얼어붙어 있다가 가까스로 물었다.
“…누가 그래요?”
“유진!”
물론 유진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제 기억을 조작해버린 조쉬가 유진이 한 적도 없는 말을 했다고 믿어버린 바람에 그게 곤과 레이, 두 사람에게 공표되었다. 조쉬는 아직까지 두 사람이 연인인 줄 알고 있었으니 곤이 가증스러울 법도 했다. 그럴 만도 하긴 했는데….
레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곤이 곧바로 부정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린 레이가 본 건 야수 같은 남자의 얼빠진 모습이었다.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
레이는 못 볼 걸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 원래라면 길길이 날뛰며 기분 나빠해야 할 남자가 멀뚱히 서서 조쉬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풀려서 무슨 생각씩에나 잠긴 채로! 혼란에 빠진 레이는 더 있다가는 끔찍한 상상을 해버리게 될 것만 같아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 아니니까…. 우리 얼른 유진 씨를 찾을 생각을….”
더듬더듬 말을 잇는 레이를 보고 그제야 곤도 정신을 차렸다.
“흐흠, …경찰은 뭐래.”
“…별말 없어요. 아무 실마리가 없으니까요. 주변인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우리라도 뭔가 생각을 해봐야 한단 말이에요.”
곤은 잠시 생각을 했다. 오는 내내 수많은 변수를 그렸을 그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회사에 별일은 없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회사 일을 갑자기 물을 줄은 몰랐던 레이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아직 다른 사람들한텐 알리지 않았어요.”
“그거 말고.”
곤은 한 가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었다. 유진의 주변에서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인물을 가려내는 것 말이다. 유진의 성정으로 볼 때 곤은 그가 스스로 이 소동을 벌였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진에게 위해를 가할 만한 사람. 용의자. 그 질문은 레이에게는 굉장히 뜬금없게 들리는 말이었다.
“제프 사장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제프 사장님이요?”
사장을 갑자기 왜…. 그때 갑자기 조쉬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출장 가셨을 텐데.”
“출장…. 그럼 류는?”
얼굴이 사색이 된 조쉬를 곁눈질하며 레이가 곤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정 담당자인 그는 머릿속에 일찍이 짜여 있던 이번 달 스케줄을 기계적으로 꺼낼 수 있었다.
“아마 지방 로케일걸요.”
“지방 로케라.”
곤이 입 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확인을 마친 그의 얼굴이 지옥처럼 어두웠다. 레이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졌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착착 맞아 들어갔다.
“하하하….”
곤이 불현듯 조소를 흘렸다. 레이는 난감한 얼굴로 곤과 조쉬를 번갈아 쳐다봤다. 곤은 아주 빠르게 판단을 끝내고 레이에게 지시를 하나 했다.
“소속 배우들 중에 찾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
“흐악!”
ST가 유진의 뒤에서 성기를 세게 처박았다. 여전히 팔이 뒤로 묶여있는 유진은 이제 저항할 힘도 없이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었다. 침대와 한 세트인 구속구는 일찍이 풀렸고, ST는 유진을 엎드리게 만들어 놨다. 유진은 턱을 바닥에 박은 채 사내에게 뒤쪽으로 삽입당했다.
“아흑! 악, 읏…!”
“성숙한 구멍은 이래서 좋다니까.”
ST가 신나게 추삽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중 그나마 나이가 어린 그는 제프와 토비의 차례가 끝나고 드디어 순번을 받았다. 지난 촬영 때 장난질을 좀 쳤다 할 뿐이지 ST는 유진과 섹스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기다란 기둥으로 유진의 안을 한번 휘저을 때마다 처음 맛보는 이 농익은 포르노 배우의 몸을 가늠했다. 두 늙은이의 정액을 질질 흘려대던 구멍을 세척기로 씻어낸 직후라 내벽은 불쾌한 느낌 없이 보들거렸다. 화장실 바닥에 앉혀두고 그의 허벅지를 벌려 세척기 주입구를 항문에 끼워 넣었을 때 유진은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ST는 동글 넓적한 유진의 엉덩이에 손을 얹고 마음대로 애널을 침범했다. 유진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ST는 포크레인 같은 움직임으로 유진의 안을 후볐다. 위로 휜 자지가 예민하고 여린 부위를 난폭하게 쑤시자 유진의 입에서 울먹이는 신음이 터졌다.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좋은 울림으로 남자의 가학심을 자극했다. 한편으론 반질한 애널이 삽입된 성기를 빈틈없이 조이니, 과연 제프 사장이든 토비 선생이든 눈이 돌아가서 탐할 만한 육체였다.
“이 몸을 쭉정이 같은 고글들한테만 대주려고 했단 말이야?”
“아앗…!”
ST가 채찍질을 하듯 연달아 유진의 튼실한 둔부를 내려쳤다. 벌을 받은 엉덩이가 바짝 조여들었다. ST는 탄력을 받아 자지를 직장 안에 쾅쾅 찍었다. 전기충격과 같은 아픔이 유진의 하반신을 통해 내달렸다. 유진은 끙끙 앓고, 짐승 같은 남자의 빽빽한 다리털은 매끈한 허벅지에 부딪치며 감각을 남겼다. 그때 침대 머리맡에서 슬며시 자리를 잡은 토비가 울며불며 액체 범벅이 된 유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젊은 친구가 입을 놀리면 쓰나.”
그리 말한 토비는 뜨끈한 손바닥으로 유진의 얼굴을 감싸 입을 벌리게 했다. 껌뻑이는 유진의 입안으로 바로 중년 남자의 자지가 쳐들어갔다. 막힌 입을 통해 울적한 콧소리가 새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의 추악한 자지는 벌게진 입을 꽉 차도록 침입했다. 불쾌한 냄새가 유진의 점막을 차지해 깊이깊이 안착했다. 어느새 기둥은 반이나 넘게 유진의 입으로 들어갔다. 코앞에 당도한 꿈틀거리는 핏줄을 보고 유진의 눈이 커졌다. 토비가 만족스럽게 그르렁거리며 유진의 목구멍을 칠 때였다.
“우우우웁!”
“젠장, 빠졌잖아.”
격한 움직임이 한 번에 이루어지자 두 사람의 자지가 버티지 못하고 모두 유진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지탱할 힘도 없던 유진이 벅찬 침입에 침대 위로 몸을 허물어트렸다. 두 남자가 시선을 돌리는 사이에 유진은 묶인 몸을 낑낑거리며 어깨와 무릎으로 침대 위를 기었다. 그 처절한 움직임을 보고 남자들이 킬킬거렸다.
“으악!”
유진이 다리를 일으켜 문 쪽으로 튀어나가려던 것을 남자들이 붙잡아 내동댕이쳤다. 내내 반쯤 죽은 인간처럼 늘어져 있던 유진은 갑자기 어디서 힘이 난 건지 마지막으로 발악을 했다. 발버둥치는 그를 토비가 붙잡았다. ST는 성가셔하는 얼굴로 유진의 따귀를 때린 뒤 침대 위로 깔아뭉갰다. 세 사람이 벌인 소란은 밖에 있던 제프를 안으로 불러들이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야!”
집주인인 제프가 소리를 듣고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동난 정력을 보충하러 밖에서 쉬던 중이었다. 두 거구한테 잡혀 푸드덕거리는 유진을 보고 상황을 읽은 제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포기를 못 했나?!”
“잠시 거칠게 다뤘더니… 하하. 어이, 좀 있으면 풀어 줄 테니까 얌전히 굴라고.”
제프에게 비루하게 말하던 ST가 유진에게는 표정을 바꿔 윽박질렀다. ST가 찌부러져 있는 유진의 등 위로 침을 뱉었다. 모욕적인 취급을 받고 유진이 울부짖었다. 제프가 다가가 그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네가 지금 도망친다고 무슨 수가 있을 거 같아? 포기해!”
제프는 포악한 얼굴로 유진에게 으르렁거렸다. 이럴 줄 몰랐던 변태 같은 사장의 얼굴을 마주하고 유진은 울먹거렸다. 공포로 수척해진 낯짝에 침을 뱉어주고 제프는 나머지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진에게 소소한 복수를 마친 제프가 말했다.
“반항이 심하면 약을 써.”
“그건 좀 아쉬운데요.”
“그게 나중에도 편할 거야.”
몸을 부들부들 떠는 유진을 제쳐두고 제프가 서랍 속에서 약을 꺼냈다. 부스럭거리는 봉지 소리를 듣고 유진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건장한 남자일지라도 질량감 있는 몸집들에는 당해낼 수 없었다. 토비와 ST는 유진을 침대 위에 앉혔다. 제프는 서로 다른 알약들을 단숨에 빻아 손에 한 움큼 쥐고 유진에게 다가갔다.
“벌려.”
제프의 명령에 유진 대신 토비와 ST가 그의 입을 벌리게 했다. 유진은 마지막까지 팔다리를 휘저으며 의미 없는 반항을 했다. 그러나 제프는 유진의 이마를 밀어 열린 입안으로 가루를 털어냈다. 수상한 가루들이 제프의 손끝에서 유진의 입 안으로 흩뿌려졌다. 제프는 제 손가락을 집어넣어 유진의 혀를 지그시 눌렀다. 그 목울대가 꿀럭이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그는 유진을 놓아줬다. 알 수 없는 가루를 먹어 삼킨 유진이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ST.”
“네?”
“저 녀석 약발 돌면 다시 카메라 켜.”
제프가 쌔액쌔액 숨만 내쉬는 유진을 보며 ST에게 명령했다. 옆에서 토비가 키득 웃었다. 침대에 기절한 듯이 누워 있던 유진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걸 느꼈다. 아니라고 믿고 싶어도 이상한 감각이 뇌에서부터 불쑥 치밀어 올랐다.
유진은 이를 갈며 작게 숨죽여 괴상한 소리를 냈다. 정신을 끌어내리는 강제적인 쾌감을 참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유진은 이미 맛이 가고 있는 사냥감이었다.
“약을 쓰면 확실히 다르지. 훨씬 재밌고 좋을 거야, 준.”
“아냐!”
유진이 처연하게 소리를 질렀다. 반대로 그의 성기가 둥글게 위로 발기하고 있을 때였다. ST는 슬슬 카메라를 가져와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혼자선 심심할 테니까 친구도 데려왔어.”
유진은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약 기운에 몰려드는 현기증이 그를 잠식하는 동안 유진의 옆에 쿵 하고 다른 무언가가 뉘어졌다. 침대 위로 떨어진 다른 무게에 유진이 가물가물 눈을 떴다. 온몸이 뜨거워지면서도 오한이 드는 촉각에 유진은 겨우 상대를 확인했다. 또 다른 나체의 남자가 그의 옆에 누워 있었다. 유진은 힘없이 허우적거리는 몸으로 허망하게 입을 열었다.
“류, 류 씨…?”
벌거벗은 류가 바로 그의 옆에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류를 보고 유진은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상체를 일으키려던 유진은 무릎을 헛디뎌 침대 위로 넘어졌다.
“류…?”
유진이 다시 한번 류를 불렀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류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미동도 없는 류를 보고 유진은 정말로 그가 죽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연해진 유진을 토비가 붙잡아 침대 위로 눕혔다. 약 기운에 유진이 제대로 몸을 가누질 못하는 걸 보고 토비가 묶인 팔을 풀어주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재밌잖아?”
즐거운 기색이 가득한 어조로 제프가 음침하게 말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ST가 손을 들어 누워있는 류의 성기를 매만졌다. 잠든 사람을 추행하는 행각에 유진이 하얗게 질려 외쳤다.
“뭐… 하, 하는 거야, 그만둬…!”
“저런, 준 군. 류는 오히려 이런 걸 좋아한다고.”
“그는 오래 전부터 우리들의 귀여운 펫이었으니까 말이야.”
알 수 없는 소릴 하던 제프가 별안간 류의 뺨을 쳤다. 통증으로 인해 류가 서서히 눈을 떴다. 유진은 아연실색한 눈으로 류를 쳐다봤다. 잠에서 깬 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별안간 얼굴이 약에 취한 사람마냥 헤벌레하게 풀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유진은 소름이 돋았다. 류는 깨어나서도 벙긋거리기만 할 뿐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를 인형으로 만든 남자들이 순진한 육체를 가지고 놀았다.
“네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고해바친 게 아직도 누군지 모르겠어?”
제프가 손을 내려 류의 입속으로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류는 헤실거리며 그 손가락을 빨았다. 아기처럼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이 깨어 있어도 인지능력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죄다 제정신이 아닌 공간 속에서 유진만이 오롯이 미쳐가고 있었다.
“꼬드기니까 순진하게 넘어와선 말이야, 네가 어디 있는지 술술 불어준 것도 류였다구.”
“아냐… 아냐….”
류가 꺄르르 웃으며 맨몸으로 ST의 허벅지에 엉겼다. ST가 류의 위로 올라타 벌건 혀를 내밀어 입을 맞췄다. 추적거리는 난잡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유진은 참담한 표정으로 얽히고설킨 나체들을 응시했다. 이제는 충격을 받을 힘도 없는 그가 기운 없이 눈물을 흘렸다. 토비가 히끅거리는 유진의 얼굴을 바로 세웠다.
“포르노 배우란 건 원래 다 이런 거야.”
터줏대감인 토비가 유진에게 현실을 이른다. 일개 포르노 배우에게 닥친 불행이 동료의 음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가여웠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다리를 벌리다가 널 사랑해주는 남자들에게 정착하는 거지.”
유진은 점점 숨이 가빠져왔다. 성기와 회음부를 비롯한 아래쪽의 피부가 긁어내고 싶을 정도로 가려웠다. 남자들의 폭언에도 제대로 반응할 수 없을 만큼 약에 잠식된 유진이 괴롭게 할딱거리기 시작했다. 제프가 무력해진 유진을 능멸했다.
“스타? 웃기고 있어. 조금 유명해졌다고 건방져선. 넌 그냥 변기행이다. 천천히 은퇴 수속을 밟고 나서는 얌전히 구멍 대기조나 되라구. 돈도 아깝지 않게 챙겨줄 테니까….”
숨겨진 진실에 당도한 유진이 울먹거리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 앞에서 모질고 험하게 굴려지더라도 그는 여태껏 참았다. 그것이 자신의 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말을 맞이하려고 그가 모든 수고로움을 견뎠던 게 아니었는데. 여태껏 남자들과 섹스를 치러온 이유를 유진은 알 수가 없어졌다.
“아아아!”
별안간 북받쳐온 착란에 유진은 목멘 소리로 울부짖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쾌감이 전신을 배회했다. 유진은 충동적으로 자기 성기를 만졌다. 자유로워진 팔을 들어 그가 배와 가슴을 긁었다. 마치 피부 아래로 자잘한 두드러기들이 퍼져있는 기분이었다. 괴로워하는 유진을 위해 토비가 하반신을 밀착해 올라탔다.
“하읏!”
허리에서부터 갈비뼈로 훑어 올라간 남자의 손이 유진의 가슴에 이르러 부은 유륜을 손가락으로 집어 눌렀다. 그러자 단숨에 유진의 입으로부터 달콤한 교성이 터져 나왔다. 유진은 몸의 반응에 혼동을 느끼며 토비가 만지는 대로 끊어지는 신음을 터뜨렸다. 허물어진 이성이 끔찍함을 호소하는데도 폭죽 터지듯 빗발치는 쾌감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토비가 유진을 유린하는 대로 바로 그 옆에서 제프와 ST는 류를 가지고 난교를 벌여댔다. 제프가 빠끔히 열린 류의 구멍으로 단번에 성기를 집어넣었고, ST는 엎드린 류의 앞으로 가서 자신의 자지를 물게 했다. 약으로 물렁해진 구강은 남자의 자지를 쪽쪽 잘도 빨았다. 짐승 같은 육신들이 제프 자택의 넓은 침대 위에서 추태를 부렸다. 렌즈가 그들의 부끄러운 치태를 찍는 줄을 까맣고 잊고.
“하응, 앙, 아응.”
“이거 참 절경이로군, 후후.”
ST는 허리를 움직이며 한 손으론 제프에게 교미당하고 있는 류의 마른 등허리를 캠코더로 촬영했다. 류는 보다 간드러지는 음성을 내며 둔부를 제프의 고간에 부볐다. 제프는 류의 엉덩이를 쥐어짜듯이 벌려 익숙한 구멍을 한계까지 늘어나게 했다.
“으응, 아우우….”
“류와 준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 테크닉이라든가 구멍 조임이라든가….”
류의 능란한 오랄을 즐기고 있던 ST가 구멍에다 대고 피스톤질을 하는 제프에게 물었다. 제프는 농담을 따먹으며 두 사람을 비교했다.
“류는 개걸레 같은 새끼지, 헉, 헉. 유진은 좀 더 얌전하지만 탄력이 있어… 그래봤자지만.”
“그렇습니까?”
솔깃해진 ST가 페니스를 꺼내 유진에게로 다가갔다. 입을 채우고 있던 자지가 사라지자마자 류는 풀린 눈으로 유진 쪽을 구경했다. 유진은 물러빠진 인형처럼 토비에게 안겨 있었다. 그는 끙끙거리며 따뜻한 체온을 찾아 토비의 목에 팔을 감았다. 이성이 사라진 그는 단단한 남자의 가슴팍에 흥분이 돋은 제 가슴을 맞대어 비비기 시작했다.
유진의 눈에 색정적인 기운이 감겼다. 방금 전까지 완강히 반항하던 유진이 완전히 매달리는 걸레가 되어버린 것에 ST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약의 성능을 눈으로 확인한 그가 안겨 있는 유진의 뒤에서 엉덩이를 들췄다. 남창이 되어버린 유진이 토비 선생에게 아양을 부리는 몰골을 ST는 적나라하게 렌즈로 담았다.
“준 군, 좋아?”
“아….”
ST가 유진의 항문을 찾아 손가락으로 쑤시며 물었다. 유진은 바보가 된 것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토비가 앞에서 그의 젖꼭지를 물었다. 유진은 소스라치며 토비에게 매달렸다. ST가 유진의 엉덩이를 벌려 자신의 성기를 삽입했다. 두꺼운 것이 밀고 들어오자 유진의 입에서 높은 교성이 터졌다.
불그스름해져 있는 입구를 ST는 귀두로 벌려 단숨에 전립선이 있는 부위까지 기둥을 안착시켰다. 직장에 꽉 찬 자지가 전립선을 툭툭 건드리며 곰실곰실 벽을 타고 오르는 감각에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ST는 유진의 뒤에서 자세를 잡고 못다 한 추삽질을 격렬히 이어갔다. 온몸이 불긋해진 유진이 쾌락에 잠겨 앙앙거렸다. 한 품은 조금 넘는 유진의 몸을 끌어안고 토비는 앞에서 탐스럽게 부푼 젖가슴을 물었다.
“으핫! 핫, 아아…, 으흐윽, 앗, 하응….”
“헉, 허억, 음탕하기는…!”
한도를 초과하는 쾌락에 미쳐 유진은 남자들에게 몸을 내맡겼다. 옆에서는 과격한 류의 신음소리가 귀를 타고 넘어왔다. 유진보다 약에 취해있는 류는 완전히 제프의 변기처럼 굴고 있었다. 제프가 남자들을 조종하기 위해 쓰는 악랄한 약물은 류의 정신과 육체를 함락시켰고, 어느 순간엔 유진 또한 류의 신세로 전락할 것임을 남자들은 알고 있었다.
“이거나 받아랏…!”
“하우우….”
커다란 피스톤질을 이어가던 ST가 한순간에 유진의 안으로 사출을 했다. 울컥하는 좁은 내벽의 압박감과 함께 유진은 힘없이 몸을 늘어뜨렸다. 남성기가 꽉 차게 비집고 있던 항문의 틈새로 정액이 점점이 떨어졌다.
남자의 씨물을 한 번 받고도 유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토비가 탈진한 유진을 눕혀 다리를 크게 벌렸기 때문이다. 진득한 늪의 심층에서 유진은 그대로 말려들어간 채 시간에 내맡겨졌다.
얼마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유진은 밀려드는 현실의 감각에 눈을 떴다. 다리에 무거운 무게가 느껴져 눈을 내리자 류가 그의 하반신에 올라타 있는 게 보였다. 꿈에서 깨 헐떡이는 유진을 보고 류는 싱긋 웃더니 바로 자기의 손가락 끝으로 유진의 은밀한 회음부를 누볐다.
“윽!”
방 안에 남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류 혼자만이 황홀한 눈빛으로 유진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문이 닿는 손가락 표면으로 유진의 회음부를 반질반질하게 문지르던 류는 그의 애널에까지 손을 댔다. 남자들은 약 기운이 사그라질라치면 다시금 둘에게 약을 먹였다. 유진보다 훨씬 약에 절어있는 류는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때마침 밖에 나가있던 남자들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들은 들러붙어 있는 두 사람을 떼어내고 유진과 류의 몸을 각기 붙잡았다. 지옥 같은 행위가 또 반복되고 있었다.
“뭐야?”
그때였다. 별안간 현관문 벨소리가 울렸다. 산통을 깨는 방문객의 출현에 제프가 ST를 바라봤다. 무언의 눈초리를 받은 ST가 남몰래 미미하게 표정을 구기고 주섬주섬 옷가지를 주워 들며 일어났다.
“젠장, 귀찮게.”
두 노인네의 눈치를 받은 ST가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ST가 현관을 확인하러 가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은 유진을 데리고 셋이 합체할 준비를 했다. 토비가 유진을 끌어안고 자지를 삽입하는 동시에 류가 유진의 아래서 손가락으로 애널을 넓혔다. 토비의 성기와 더불어 류의 손가락까지 구멍 안으로 들어오자 유진이 불분명한 소리를 질렀다. 두둑한 자지가 유진의 내벽을 추적추적 느리게 쑤시는 동안 류가 너무도 꼼꼼하게 그의 항문을 풀었다. 참다못한 제프가 류를 제치고 자리를 꿰찼다.
“읏차!”
“아, 아아….”
토비가 차지하고 있는 유진의 애널 안으로 제프의 귀두가 서서히 파고들었다. 한계를 넘어 벌어지는 장벽 안에 두 개의 페니스가 무리하게 위치했다.
버겁고 쎄한 통증은 유진을 아르르거리게 만들었다. 약으로 신경이 고장 나 있는 와중에도 찢어지게 확장되는 장벽의 격통에 유진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땀에 젖은 유진의 몸이 단단한 철근 프레스 사이로 끼어 들어가는 것처럼 앞뒤 두 덩치들에 의해 숨이 막히도록 찌그러졌다. 괴물 같은 거근을 두 개씩이나 집어넣고 있는 애널의 주름이 흉하게 벌려지고 있었다. 유진은 확 정신이 들어 소스라치게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세 명의 괴물들에게 굴려지면서 유진은 드문드문 약 기운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유진은 처연하게 생각했다. 슬픔과 후회로 가득 찬 울적함이 정신을 괴롭혔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걸.’
그놈의 사랑이 뭐라고. 그냥 혼자 짝사랑이나 하다가 방구석에 처박혀서 찔찔거리면 되었던 것을.
‘그냥 얌전히 집에 있을걸. 왜 가출을 해 가지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공포 속에서 유진은 머릿속으로 오만 것을 떠올렸다. 곤을 좋아했던 것, 잠수를 빙자해 도망을 쳤던 것,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들. 이제 와 의미 없는 후회였지만 유진은 나름대로 곤에게 항의를 한 것이다.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그는 자신한테 마음도 없다. 왜 그렇게 유난을 부렸을까. 괜히 기대한다고 그랬다. 유진에게는 과분한 기대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유진은 단숨에 울적해졌다. 왜 그렇게 곤을 좋아하는 거야? 하지만 마음이란 건 원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걸. 그래도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유진은 지금 곤이 보고 싶었다.
“흐엉엉….”
충실한 후회와 혹사된 몸이 받는 스트레스로 유진이 너절한 울음을 터뜨렸을 때였다.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침실로 향한 여러 명의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고 알 수 없는 소음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세 남자의 고약한 고함이 들렸다. 유진은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화끈한 비부를 참으며 침대 위로 쓰러진 유진이 고스란히 침입자들의 시선 속에 놓여졌다. 열이 펄펄 끓는 와중에도 벌거벗은 몸을 두려운 시선 속에 감추기 위해 유진은 몸을 웅크렸다.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누군가 조심스럽게 이불로 감쌌다. 이불에 감아 올려져 품에 안긴 몸이 그제야 안심을 했다. 유진은 자신이 구조됐다는 걸 깨닫고 눈물로 부르튼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