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6)
  • 08.

    “안녕하세요.”

    유진의 옆으로 다가온 남자가 말을 걸었다. 유진은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유진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유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유진은 벗은 몸에 수건만 두른 채로 침대에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제 차례네요.”

    유진의 촬영 상대가 될 남자가 웃으면서 손을 건넸다. 유진은 그의 친구와 막 몸을 섞은 뒤였다. 수건 안에 감춰져 있던 팔을 빼내고 유진이 남자의 손을 잡았다. 큰 타올이 들리면서 발가벗겨져 있던 유진의 나체가 남자의 시선 속에 들어왔다.

    “지치신 건 아니죠?”

    “아뇨.”

    방금 전 전반 촬영을 끝내고 잠시 쉬는 타이밍이었다. 이 사람은 유진의 두 번째 상대다. 마치 두 사람밖에 없을 것 같은 좁은 공간 안엔 몇 명 정도 촬영 스태프도 자리했다. 낡고, 비좁고, 먼지가 날리는 작은 방에는 실제 거주지라는 생활감이 묻어 있다.

    “저는 자지 빨아주실 수 있나요?”

    그와 섹스할 일에 들뜬 남자애가 혈기 띤 눈으로 유진을 졸랐다. 남자는 유진의 벗은 몸을 훑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새파란 청년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은 변두리의 숙사였다. 이 기이한 촬영 장소로 차를 타고 오기까지 유진이 볼 수 있는 광경은 논과 푸른 들판뿐이었다. 지금쯤 밖에 나가 있을 첫 번째 촬영 상대는 나무들 틈에서 쭈그리고 있을 것이다.

    운동을 한다는 상대남은 건장한 신체를 갖고 있었다. 체육대학의 기숙사 룸에 사는 이 청년들은 첸 준의 ‘팬’으로서 유진의 포르노에 낙점된 일반인들이다. 기숙사의 남대생이라는 컨셉으로, 2인실에 묵는 혈기왕성한 대학생들과 한꺼번에 촬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모두 곤의 기획이었다.

    정작 곤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리에 없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유진은 상대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첫 번째 섹스를 마친 뒤에 몸은 들떠 있었지만 얼굴은 생기가 없었다. 아양을 떠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목석같이 앉아있는 유진을 보고 남자애가 웃었다. 그는 유진의 팔을 잡아당겨 재촉했다.

    “그만 쉬고 빨리요.”

    유진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휴식시간을 가지는 것도 남자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굴었다. 유진이 스태프들을 바라봤다. 그들도 유진에게 촬영을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건방지게 직접 곤을 지목한 대가로 어느 때보다 열악한 제작 환경에 놓이게 된 유진은 별수 없이 쉬고 있던 몸을 풀어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오늘 촬영은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았다.

    “펠라치오 해 줘요.”

    남자는 침대에 앉아 무릎을 꿇은 유진 앞에서 다리를 벌렸다. 유진은 얇은 브리프 한 장만 걸친 남자의 고간 앞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낯 뜨거운 광경을 카메라맨이 다시금 촬영하기 시작했다. 섹스로 달궈진 유진의 몸만큼이나 남자의 몸 역시 뜨거웠다. 불뚝 튀어나온 팬티의 윤곽을 손으로 덧그리던 유진은 시선을 올려 남자를 보았다.

    “우와.”

    그는 유명한 인기 포르노 배우를 앞에 두고 잔뜩 달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꽤 보기 좋은 남자의 얼굴을 보며 유진이 상대의 속옷에서 페니스를 살짝 꺼냈다.

    “빨, 리.”

    참지 못한 남자가 말을 더듬었다. 유진은 그런 상대의 성기를 모두 꺼내고 한가득 입에 머금었다. 성기가 유진의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남자는 턱을 들었다. 그의 자지가 축축한 목구멍에 깊이 빨려 들어간다. 가위바위보에 져 순서가 밀리는 바람에 남자는 친구가 준의 구멍에 절제 없는 짓거리를 저지르는 걸 옆에서 손가락을 빨며 지켜보기만 했더랬다.

    준은 입안 점막에 닿아오는 쿰쿰한 자지를 허투루 빨지 않고 꼼꼼히 혀를 썼다. 빠르게 중심부가 달아올랐다. 화면으로만 보던 포르노 배우와 직접 몸을 섞게 된 행운에 남자는 순순히 원초적인 욕망을 즐겼다.

    “아, 좋아.”

    남자는 탄성을 뱉고는 저도 모르게 이불보 위에서 골반을 앞뒤로 흔들었다. 질척한 페니스가 준의 촘촘한 흡입에 건드려져 갔다. 돈 주고 받아본 어떤 오랄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노련한 배우의 스킬에 사로잡힌 남성의 추한 움직임을 카메라맨이 적나라하게 촬영하는 중이었다. 기숙사가 좁은 바람에 삼각대나 부피가 있는 장비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유진은 긴 다리를 애써 접어 스태프들과 접촉되지 않도록 몸을 움츠려야 했다. 극악한 촬영현장이었다.

    “아, 너무 좋아, 큭, 쌀 것 같아, 아아, 그만…!”

    신음 소리를 들으며 유진은 처음 남자들을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청년들은 처음부터 들떠 있었다. 직접 텐위 홈페이지의 공모에 신청을 한 시골 대학생들은 둘 다 유진을 탐할 생각에 멍청이처럼 신이 나 있었다. 첸 준에게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그들에게 유진 또한 장단을 맞췄다.

    사정을 늦추고자 애원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진은 더 입 공간을 줄여 그의 페니스를 조였다. 다소 까무잡잡한 자지는 물이 많아 오랄을 하는 중에도 유진의 입안으로 쿠퍼액을 쏟아냈다. 입안이 그의 액으로 가득 차는 걸 느끼며 유진은 남자의 솔직한 욕구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싸, 싼다! 윽!”

    갓 성인이 된 남대생의 굵직한 정액 줄기가 유진의 꺾어 지른 목구멍을 강타했다. 유진은 간신히 목 아래서 올라오는 울림을 가라앉혔다. 입이 순식간에 물컹한 정액으로 가득 찼다. 입안에 가득 찬 정액의 처리를 고민하며 유진은 입술이 열리지 않도록 다물고 있다가 상대방과 눈이 마주쳤다. 기대를 머금은 욕망 가득한 눈이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은 성욕에 사로잡힌 시선을 마주하다가 남자의 정액을 소리 내어 목으로 삼켜주었다.

    꿀꺽. 미끄덩한 점액질이 좁은 구멍을 통해 식도로 넘어간다. 유진이 제 정액을 삼키는 걸 본 남대생이 들뜬 숨을 코로 들이쉬었다. 사정한 자지는 다시 발기할 힘을 얻고 있었다. 유진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하아아….”

    본격적인 섹스에 들어가기 위해 자세를 바꾸는 동안에도 청년은 유진의 뒤에서 계속해서 흥분한 숨소리를 내쉬었다. 침대 위에 드러눕자 유진의 예쁜 상체가 도드라진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예쁘다.”

    여유 있는 가슴과 탄력적인 상체가 남자의 눈앞에 훤히 드러났다. 유진을 잡아 눕힌 남자가 그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아 문질렀다. 유진을 향해 줄곧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남대생의 감탄에 유진은 허리께에서 간지러움을 느꼈다. 그가 보고 있는 게 유진이 아닌 포르노 스타 준일지라도. 대학생인 그는 줄곧 자위로만 빼던 화면 속의 가슴을 입에 머금었다.

    “으응….”

    살점이 이빨에 따끔하게 물리는 감각에 유진이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물렁한 탄력이 잡힌 가슴을 애무하던 남자는 손을 내려 유진의 성기를 쥐었다. 물기가 휘발돼 다소 말라버린 성기를, 이미 축축한 제 자지의 물기를 손에다 훔쳐 흔들어주었다. 남자의 체액에 질척해진 유진의 자지가 위아래로 마찰을 받으며 주인 역시 능숙하게 간드러지는 교성을 내뱉었다. 피부가 깨끗한 준의 몸은 남자의 기대 이상으로 실물이 좋았다. 남자는 이 행운의 기회와 다름없는 촬영을 고대하며 정력적으로 준을 파헤칠 준비를 했다.

    “응, 큭.”

    고분하게 성기를 흔들어주던 손이 어느 틈엔가 유진의 구멍으로 쑥 파고들었다. 빠끔거리는 다홍빛 내벽으로 성급한 손가락이 들어온다. 짧은 손톱으로 장벽을 긁는 감촉에 유진이 눈썹을 내렸다. 그동안 남자는 뜨겁고 좁은 속살을 손끝으로 탐험하며 감탄했다. 그의 친구에게 박혀 이미 한 차례 풀린 항문을 어루만지며, 남자는 그 안으로 자지를 들이밀면 어떤 극상의 쾌감이 미칠지 예상한다.

    매끌거리는 틈 속의 주름들이 벌름거리며 수축하고 있었다. 고작 중지 하나를 밀어 넣었을 뿐인데 음탕한 내벽이 손가락을 오밀조밀하게 꽉 물어 손가락 밑둥살을 조였다. 덕분에 남대생의 튼실한 자지가 단숨에 벌떡 서고 말았다. 상대의 신호를 눈치챈 유진도 몸을 일으켰다.

    “콘돔 씌워줄게요.”

    유혹적인 창남처럼 굴어야 하는 포르노 배우들의 행태에 맞게 유진은 준비된 콘돔을 상대의 자지에 씌워주었다. 유진은 카메라 쪽과 남자의 상태를 살피며 슬슬 페이스를 맞출 준비를 했다. 따로 호흡을 지시해줄 사람이 없으니 촬영을 조절하는 건 노련한 배우의 몫이다. 유진은 티 안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콘돔을 씌워주는 동안 남대생은 능숙한 준의 손길을 받으며 허벅지를 구부렸다 폈다 했다. 흥분한 나머지 아랫도리에 더 피가 몰려 고무를 덮어쓰면서 자지가 꺼덕거렸다. 그는 준이 자신의 늠름한 자지를 봐주었으면 했으나 유진은 심드렁하니 침대에 몸을 누일 뿐이었다. 팬들과 관계하는 영상에서 다른 배우들은 그들의 팬들에게 헌신하며 구멍을 대주고 있던지라, 남자는 유진의 태도가 조금 의아하긴 해도 어쨌든 침대를 채운 기다란 나신을 보며 다시 발기했다.

    화면보다 탄력이 돋보이는 날씬한 육체가 진상된 먹잇감처럼 청년의 눈앞에 드러났다. 핫한 인기 게이 배우는 일반인 상대 아래에 깔려 있다. 남자는 유진의 허벅다리를 구부려 제 허리를 감게 했다. 손가락을 넣어 녹진녹진한 동굴을 미리 가늠해 본 남자가 단박에 구멍 속으로 성기를 박아 넣었다.

    “크윽!”

    유진이 거친 신음을 토하며 목을 뒤로 넘겼다. 남자는 저항을 무시하며 성급하게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빤질한 콘돔이 두 사람의 결합부에 맞대 뿌직거리는 소음을 냈다. 남자의 격한 움직임에 부끄러움도 잠시, 그가 대각선 방향으로 허리를 곧추세워 안을 내려찍기 시작하자 유진은 참지 못하고 탁한 신음을 터뜨렸다.

    “하악, 악! 흐아아!”

    “준, 준 씨, 좋아, 기분 좋아, 헉.”

    뾰족한 선단이 뭉툭한 움직임으로 구멍 속의 자글자글한 돌기를 쿡쿡 찍었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욕정은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공처럼 폭주했다. 일반인이라 배우의 눈치를 읽지 못하는 초짜는 길든 삽입로를 찾지 못하고 유진의 내벽 이곳저곳을 쑤셨다. 여린 점막이 무두질하듯 기둥으로 때려지자 유진은 공기 중으로 탁성을 가쁘게 뱉어냈다.

    무식하게 힘이 좋은 남자는 온몸이 덜컹거릴 정도로 유진을 몰아붙였다. 유진은 골이 울리는 움직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크윽!”

    근육이 유연하게 잘 풀어진 체육인은 사지의 움직임에 제약 없이 현란하게 유진의 내벽을 공략했다. 남자는 유진의 흉부 아래를 잡고는 삽입 박자에 맞춰 그의 몸을 곧추선 페니스에 찔러 내렸다. 덕분에 끔찍하리만큼 자지러지는 건 유진의 몫이었다.

    “아아아!”

    커다란 부피를 가진 남근이 내벽의 요동치는 점막을 쑤실 때 유진은 입 밖으로 왈칵 투명한 타액을 흘렸다. 반질해진 입술과 목덜미를 보고 남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직전에 스태프들로부터 배우에게 키스하지 말아달라고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남자는 입맛만 다셨다.

    그 부탁을 꺼낸 유진에게 먼저 당황한 건 촬영진 쪽이었다. 포르노를 찍는 현장에서 얼토당토않은 조건이었으나 감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몇 명으로는 회사 간판의 고집을 거스를 수 없어 스태프들은 유진의 요청을 수락했다. 유진으로서는 거의 하지 않았을 진상 짓이었다. 이유는 곤이 없는 자리에서는 모든 요구사항에 순순히 어울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촬영 직전 유진은 회사에다 대고 다음 작품을 곤이 맡지 않으면 찍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시골 대학교의 기숙사는 좁고 낡았다. 소음 없는 고요한 촌의 방 안에서 유진은 팬인 대학생과의 섹스를 촬영당하고 있었다. 전문 배우가 아닌 상대는 요령도 없이 유진의 안을 쑤셔 벌렸다. 지끈한 쾌감에 울며 소리를 지르면서도 유진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유진의 강한 어필로 회사 정치에서 그의 차기작을 다시 맡을 기회를 얻은 곤은 유진을 도심 바깥의 좁은 대학 기숙사에 몇 명의 촬영 요원과 함께 박아두고 나타나지 않았다. 유진은 무심한 곤을 속으로 원망했다.

    유진이 자신의 촬영에 대한 요구사항을 내놓은 건 그게 처음이었다.

    ‘곤 씨가 제 감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촬영 내용을 전달받은 미팅실 안에서 유진은 그렇게 말했다. 레이는 그때 의외라는 눈길로 유진을 쳐다봤다.

    ‘준 씨가 원한 거라고 전달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유진은 주저 없이 말했다. 곤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납득이 안 가는 요구는 아니었으므로 레이는 그 자리에서 유진의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거기에 노골적으로 반발한 건 제프였다.

    ‘감독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줄 알아?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마라고 생각해?’

    제프는 당장에 유진을 호출해서 면담에 들어갔다. 미간에는 도깨비 같은 억센 주름이 지어져 있었다.

    ‘저는 곤 감독님과 작업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봐. 그건 섣부른 판단이야.’

    제프가 책상 위를 팔로 한 번 휘젓고 유진과 마주 보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그는 이번에도 유진의 기획물을 ST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준의 팬 포르노는 그의 팬은 물론이고 포르노 매니아들에게도 기대를 모을 화제작이었다. 포르노 포럼에도 말을 흘려놨고 참가자도 물색을 해 놓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계획과 수고를 전부 수포로 만들 통보가 배우에게서 터지다니. 곤을 정치질해서 다졌던 입지를 다시 수성하기 위해선 절대로 놓쳐선 안 될 기획이었다.

    ‘곤은 무난해. 너무 딱딱하다고. 녀석이 맡은 작품보다 ST의 것이 더 판매량이 좋았던 건 알고 있지? 난 이 일을 한 지 몇십 년이나 되었어. 어떤 게 히트를 치는지는 내가 더 잘 알아.’

    윽박을 지르던 제프는 급기야 말을 옮겨줄 직원을 옆에 붙여놓고 두 사람분을 합세해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제발 회사 입장도 생각해줘. 회사에 준 군만큼 계약금을 받은 배우도 없는걸. 무슨 뜻인지 아는 거야? 사장인 나는 아무래도 성적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단 말이야. 판매량이 더 뛰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나?’

    ‘아니면 찍을 생각 없습니다.’

    그러나 유진은 단호하게 제프의 말을 무시했다. 뻔뻔하게 구는 태도는 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가 당당하게 나오자 제프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세워뒀던 계획이 전부 날아가게 생겼으니 제프는 안절부절못하며 유진을 설득하려고 했다. 승자는 결국 유진이었다. 배우의 고집에 손쓸 도리가 없던 제프가 두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짜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제프를 보면서 유진은 자기가 텐위에 원하는 걸 요구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은 유진의 뜻대로 곤에게 작품이 돌아가게 되었다. 온전히 유진의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진을 낡은 시골 대학교에 박아둔 곤은 두 번째 촬영 때 홀가분하게 나타났다. 스태프는 한 명이었다. 황당해하는 유진에게 ‘촬영장소가 협소해서 그렇다’라는 변명을 댄 곤은 따라 온 직원에게는 운전만 맡기고 정작 본인 혼자 캠코더를 들고 촬영장 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유진이 뭐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팬의 집이 정말 좁았기 때문이다.

    준과 섹스하고 싶다고 응모를 한 많은 팬들 가운데 곤이 고른 일반인 남성은 원룸에 사는 취업준비생이었다. 협소한 방은 유진까지 합해 겨우 세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유진의 팬은 첸 준을 봤다는 사실에 감격한 눈치였다. 그는 좁은 원룸 방 안의 매트리스 위에서 유진과 나란히 앉아 끈덕지게 악수를 했다. 피부가 붉은 편이고 웃을 때마다 치아가 많이 보였는데, 포르노 배우와 촬영하고 싶어 하는 괴상한 사람이기는 했어도 멀끔하게 생긴 편이었다.

    “만화가 지망생이라 출판사에 이것저것 원고를 넣고 있습니다만… 쉽지 않아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부터 알아봐야 했거든요. 오늘 당신을 만난 건 제게 큰 행운이에요.”

    서글프게 웃는 그에게서 유진은 조금 동변상련의 심정을 느꼈다. 돈을 위해 포르노를 찍는 건 그나 자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섹스를 하는 동안 유진은 최대한 상대를 배려해가며 움직였다. 1인용 매트리스에 남자를 눕히고 상대의 성기를 삽입한 채 허리를 움직이던 유진은 어느 순간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좁은 방 안에서 일반인 상대자를 제외하면 곤뿐이었으므로 유진은 그게 곤의 시선이라는 걸 쉽게 알았다. 유진은 따끔거리는 뒤통수를 애써 무시하다 자세를 바꿀 때 슬쩍 곤 쪽을 바라봤다.

    ‘왜 저래?’

    혼자 핸디캠을 쥐고 두 사람의 성교를 촬영하는 곤은 왜인지 몰두한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은 곤을 무시하고 남성 팬과의 섹스에 집중했다. 남자가 사정하고 유진은 성기를 몸속에서 빼낸 뒤에 벽에 등을 기댔다. 무사히 섹스를 마친 두 사람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비좁은 원룸 안에서 둘뿐이었다. 곤은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도 유진은 그에게 남은 앙금이 있었으므로 애써 신경 쓰지 않았다.

    관계를 치른 몸이 땀으로 끈끈했다. 시시껄렁한 촬영을 끝낸 후, 유진은 얼른 몸을 씻고 싶었다. 남자가 없는 틈을 타 유진이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캠코더를 들고 있던 곤이 돌연 유진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올라가려던 유진의 어깨가 곤의 의해 막혔다. 유진은 고개를 들어 곤을 바라봤다. 몇 뼘 위에서 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유진의 얼굴을 직시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쳐다보는 높이에서 낡은 전등을 뒤로 한 곤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할 게 남아있어요.”

    곤이 때를 기다려온 사람처럼 나직하게 고했다. 유진은 기묘한 의아함이 몸을 관통하는 걸 느꼈다. 그럴 리가 없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어깨에 위치한 손의 압력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긴장한 기색으로 유진의 어깨를 토닥이고 불쑥 자신의 바지 버클로 손을 향하는 곤. 유진의 눈동자가 길을 잃고 흔들렸다. 곤이 자신의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유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지하지 못했다.

    “빨아요.”

    벌어진 지퍼 틈새로 성기가 나타났다. 열을 받은 묵직한 그것은 누가 봐도 남자의 성기였다.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상황에 유진은 얼어붙었다. 익숙한 손가락과 동작이었어도 전혀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의 자지였다. 튀어나온 성기를 꼼짝도 못 하고 응시하는 유진에게 곤이 말 한마디를 걸었다.

    “항상 하는 거잖아요.”

    이건 촬영의 연장선이다. 곤은 간사하게도 유진의 긴장을 눈치채고 그를 어르기 시작했다. 다분히 착하고 다정한 말투로. 마치 그가 당연히 해야 할 행위라는 듯이.

    곤은 유진의 정수리 위로 캠코더를 들었다. 유진의 표정은 아주 잠깐 일그러졌다. 화면 너머로 갈등을 참고 있는 유진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걸 유심히 응시하면서 곤은 유진의 머리를 잡아챘다. 두 번째 재촉은 말도 필요 없었다. 곤은 유진의 머리칼을 당겨 조붓이 잡았을 뿐이다. 유진은 그의 손에 잡혀 고간 앞으로 끌려갔다.

    왜지? 갑자기 왜? 곤의 중심을 눈앞에 두고 유진은 혼란스런 생각에 잠긴다. 불긋한 색채와 묵직한 부피를 가진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훌륭한 물건이었다. 바라마지 않던 상상 속에서도 유진이 이런 식으로 그와 육체적 접촉을 갖고 싶어 한 적은 없었다. 곤이 별안간 자신의 신체 일부를 촬영에 노출시키고 있는 경위에 대해 유진은 고민했다. 고민한다 해도 그의 무심하고 일 외골수인 성정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바, 유진은 체념하고 곤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우웁.”

    유진은 얼마든지 그를 깨물거나 밀쳐버리는 돌발적인 거부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진의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박힌 낮은 모럴이 그를 또다시 옭아매었다.

    ‘내가 포르노 배우니까.’

    준이 카메라맨의 요구에 강제로 당한다. 토비가 게릴라로 그를 덮칠 때에도 유진은 몸을 열어주었다. 돈 때문에 포르노에 얼굴을 판 그의 팬과 다를 것도 없다. 레코딩이 켜지는 순간에는 얼마든지 굴려져도 되는 삼류인간. 그렇게 합리화하면서도 유진은 수치로 얼룩진 신음 소리까지는 참지 못했다.

    “흐으윽.”

    곤은 이제 막 팬과의 성교를 끝낸 포르노 배우 준이 감독에게까지 성적인 응대를 요구받는 리얼한 상황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유진은 곤의 페니스를 더 깊게 입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발끝을 세웠다. 끝을 모르고 들어오는 긴 자지를 삼켜 유진의 목은 벌겋게 물들었다.

    “흑, 우, 우웁.”

    점막을 가득 채우는 수컷의 향. 유진의 머릿속으로 고장 난 깜짝 상자가 터지기 시작했다. 유진은 꿈에 그리던 곤의 자지를 빨면서 흥분하고 말았다. 굴욕적인 상황에서 대책 없이 반응하는 신체에 유진은 죽고 싶었다.

    “춥, 츠읍, 쯔읍.”

    “하아….”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눈을 유진이 질끈 감았다. 혹시 곤이 언제나처럼 뻔뻔하게 무감동해하고 있진 않을지 유진은 불안했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유진의 애무를 받는 곤도 미간 사이에 깊은 주름을 새기고 있었다. 고집스레 화면에 집중하던 곤은 무심코 카메라 아래의 유진을 바라본다. 눈가가 잘 익은 자두처럼 빨개진 유진. 싫은 기색이 가득한 홍조 깃든 얼굴을 보고 그때 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유진은 알지 못한다.

    “윽.”

    고집스레 입술을 물던 곤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유진도 입에서 불안한 소리를 냈다. 입에 담겨진 성기는 따뜻한 촉감 속에서 흉흉하게 크기를 키웠다. 곤은 조심히 다루려고 했던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유진의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조용한 방 안에 두 사람의 은밀한 성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집주인이 집 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끝내야 했다. 곤은 현관문에 시선을 두면서 남자가 언제 올지를 가늠했다. 유진은 온 힘을 다해 간신히 곤의 자지를 애무했다. 거기에 애증이 깃들어있는지, 좌절된 마음이 들어있는지는 곤은 알지 못할 노릇이었다.

    마침내 곤이 유진의 입에 사출을 했다. 깊은 독 같은 한숨을 흘린 그가 유진의 입에서 자신의 페니스를 느릿하게 뽑아낸다. 긴 성기가 몸속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동안 유진의 부드러운 입안이 그의 남근을 조였다. 곤의 등 근육이 바짝 굳어졌다.

    유진은 성기가 입 밖으로 나가자마자 줄 잃은 인형처럼 얼굴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낙심한 사람 같은 형상에 마음이 덜컥인 건 곤 쪽이었다. 입안에 담긴 정액을 카메라에 대고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잊고 유진은 힘없이 열린 입 틈으로 끈적한 백탁액을 주르르 전부 흘려냈다. 레코딩은 종료되었다.

    3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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