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2권) (5/16)
  • 2권

    05.

    그게 유진이 GV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였다. 캐스팅을 받은 유진은 성인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포르노를 찍기 시작했다. 시작은 최악이었지만 천성이 밝히는 몸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적성에 잘 맞았다. 이미 집안은 일찍이 망가져 있었고 혼자 남은 유진은 스스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만족스러운 수입을 얻기 시작하면서 유진은 미성숙했던 시절의 방황을 끝냈다.

    원래 좀 반반했던 얼굴은 나이를 먹고 가다듬어지면서 묘한 분위기가 생겼다. 눈매가 깊어지고 어린 신체가 정비되었다. 이전의 삐죽했던 얼굴이 사라진 뒤 어른으로서 완성된 얼굴은 확연한 미남이었다. 정작 본인의 고민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가슴. 가슴이 커져버렸다. 늑골을 벗어나는 무던히 탐스러운 곡선으로. 유두는 손톱만 한 크기로 자랐다. 유진은 그런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했다. 친구 라이더는 게이 섹스를 하다 보면 원래 남자들의 구미에 당기는 몸으로 변하는 거라고 철없는 농담을 지껄였다.

    ‘이런 몸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읏, 라이더!’

    라이더가 유진의 가슴을 깨물었다. 유진은 자신의 벗은 몸을 가지고 노는 친구를 발로 차주었다. 그때쯤 유진은 가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유진이 다시 웃통을 벗고 가슴을 자세히 살폈다. 거울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유진을 보면서 라이더는 낄낄거렸다.

    ‘그런 먹음직스러운 가슴을 가지고 고민하는 남자가 있단 말이야?’

    ‘라이더, 제발!’

    그 앞에서 손으로 저질스러운 모양을 만드는 친구를 보며 유진은 울상을 지었다. 유진은 라이더가 무척 얄미웠다. 태어나길 백인인 그가 유진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유진도 원래부터 그런 식으로 발육이 좋았던 건 아니다. 로메오와 처음 했을 때만 해도 그는 평범한 동양인 소년이었다. 그런데 점점 가슴이 커지더니 어느덧 미국 포르노 단체가 주최하는 ‘가슴이 섹시한 포르노 스타’ 후보에 오르락내리락할 정도가 되었다. 당사자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유진은 자신의 몸이 부끄러웠다. 촬영 때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게 진지한 관계로 이어지면 문제가 된다. 그럭저럭 괜찮은 외향을 지닌 유진에게 대쉬하는 남자들은 많았다. 전부 짧게 만나다 헤어졌다. 직업이 포르노 배우다 보니 오래된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많이 하면 성감이 죽는다던데 이상하게 유진은 반대였다. 섹스할수록 몸은 민감하게 변했고, 유진은 연인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느끼는 스스로를 창피해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연애였다.

    세라복을 좋아하는 괴상한 취향을 가진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유진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허전한 가슴을 침대 위에 대고 엎드려 눕는다. 이름 모를 남자와 애틋한 척 스킨십을 하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 또 미팅이 있고, 촬영을 하면서 이쪽 배우들과 섹스를 하게 될 것이다. 타고난 욕정을 채우기에 아쉬울 거 없는 삶인데 왜인지 옆구리가 시렸다. 허전한 가슴을 달래며 유진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

    어느덧 유진의 데뷔작 발매일이 며칠 뒤로 다가왔다. 그는 회사에서 두 번째 비디오의 촬영 컨셉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휴일이 눈 깜짝할 새에 끝나갔다. 아쉬워도 쉬면 뭐 하나. 열심히 일하고 여유자금 마련하고. 포르노 배우의 인생 목표도 남들이랑 똑같다. 단지 유진이 지금 놀란 건 그의 옆에 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발매 후에 두 번째 촬영분을 바로 찍을 겁니다.”

    곤이 유진의 옆에 앉아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여태까진 레이가 사항을 전달하고 유진이 그대로 움직이는 게 전부였는데. 그가 직접 행차해서 회의까지 참여하는 게 지금까지 중에선 처음이었다.

    “웬일로 곤 씨가 일정 미팅에 다 참여하네.”

    그런 유진의 생각을 마치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맞은편에 앉아있던 레이가 무심히 말을 던졌다. 자기가 생각한 거랑 똑같은 걸 말하니 유진은 흠칫했다. 곤은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받아친다.

    “유진 씨는 여기 말이 서투니까 내가 와준 거야.”

    “흐음. 바쁜 사람을 여기서 보는 게 신기하달까.”

    미팅실 소파에 제집처럼 편하게 앉아있는 곤을 레이가 미심쩍게 훑었다. 그는 여기서 곤을 보는 게 굉장히 의외란 듯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일정에 관해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남자다. 그런 레이의 비꼼 아닌 비꼼에도 곤은 눈 깜짝 안 하고 여상하게 대꾸했다.

    “배우 본인도 의견을 내는 편이 좋을 테니까.”

    곤이 와주어서 유진이 내용을 수월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건 사실이었다. 유진은 그 편의를 십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작품 컨셉 아이디어로 나온 건 학교 기획물이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선생과 학생 간의 야한 상황을 찍는다. 동양 GV의 기본 중 기본다운 내용이었다.

    “준 씨는 어려 보이는 얼굴이니까 교복 잘 어울리겠지.”

    레이가 유진을 바라보면서 부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의 뉘앙스를 알아듣고 유진이 끼어들었다. 순간 유진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제가 선생인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왜요? 준 씨 정도면 학생 복장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안 어울립니다.”

    유진은 단호했다. 레이가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요? 마치 입어본 것처럼 얘기하시네.”

    “…….”

    레이는 별 뜻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유진은 괜히 뜨끔했다. 곤은 고개를 끄덕여 유진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진짜?”

    “유진 씨 타입을 보면 그쪽이 더 정도인 거 같으니까. 본인 의사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 교복 차림을 하게 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유진은 곤이 의견을 받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향했다. 눈에 익은 스태프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제프 사장님이 부르시는데요.”

    그녀는 곤과 유진을 보고 얘기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유진이 곤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도 딱히 아는 눈치는 아니었다. 대충 회의를 마무리하고 두 사람은 스태프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제프라니. 거북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진은 한숨이 나왔다. 유진은 곤의 등을 흘긋 쳐다봤다. 어디서든 꼿꼿할 것 같은 단단한 등이다. 곧 도착할 사장실 안에서 곤과 함께 무슨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유진은 걱정이 됐다.

    “사장님.”

    곤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서 누군가 곤에게 달려들었다.

    “곤 씨!”

    “류?”

    달려온 류를 보고 곤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유진도 사장실에 있는 류를 보고 놀랐다. 제프의 부름을 받고 온 사장실에 류가 같이 있었고, 사장은 문 맞은편 책상에 앉아 있었다. 류는 곤에게 곧장 팔짱을 꼈다. 곤은 짐을 진 사람처럼 류를 매달고 소파로 가 앉았다. 유진도 따라 옆에 자리했다.

    “준 군의 데뷔작 예약 세일즈 봤나?”

    제프가 의자에 앉아 거들먹거리며 화두를 던졌다. 곤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봤습니다.”

    “이야, 기대 이상이지? 첸 준은 그래 봤자 아직 프로필만 나온 상태인데 나도 깜짝 놀랐어. 고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다음 작품도 중요할 거야.”

    “안 그래도 방금까지 컨셉 회의를 했는데요.”

    “그래? 뭐 하기로 했는데?”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눴다. 유진은 알 수 없는 말이 오가는 걸 가만히 들어야 했다. 방 안에 있는 모두가 말을 알아듣고 때때로 반응을 바꾸는데 유진 혼자 알아듣지 못한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불편한 자리를 지키는 건 무척 어색하고 갑갑한 일이다. 곤이 뭐라 말을 했고 이어 제프 사장이 대답했다.

    “학교물인가…. 그건 너무 약하지 않아?”

    “스테디인 거죠.”

    “하하. 곤 자네는 예전부터 한마디를 지지 않았다니까.”

    제프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못 이기겠다며 애써 유쾌함을 표하는 얼굴 속에 담긴 속내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제프는 표정을 바꿔 화제를 전환했다. 그제야 둘을 부른 목적을 드러낸 제프가 한 말은 아주 뜬금없고, 또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부터 준 군의 담당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게 어떤가?”

    “예?”

    곤이 반문했다. 그가 아주 빠르게 반응했기 때문에 유진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았다. 곤은 꽤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진은 슬슬 좌불안석하며 그 짧은 순간에 들린 자신의 이름을 곱씹었다.

    “다른 곳에서 영입해 온 신인 감독이 있어. 충성스러운 고객층이 있는 녀석이야.”

    “신인 감독?”

    “그래. 텐위의 차세대 기대주이지. 첸 준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고, 유망주끼리 붙여서 시너지를 내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야. 넌 앞으로 류만을 전담해. 류 같은 간판스타면 네 실적도 안정적일 테고. 담당이 줄어든 만큼 생긴 여유엔 네 개인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지.”

    제프의 유들거리는 입에서 류와 첸 준의 이름이 동시에 나왔다. 감독 교체. 류는 자신의 이름이 나왔을 때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제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무슨 소리야. 일을 줄여주겠다는데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사장님.”

    곤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제프의 심보를 눈치챘다. 류의 팔에 붙들려 있던 팔을 빼낸 그가 소파에 팔을 얹고 굉장히 거만한 자세로 다리를 꼬며 제프의 말을 비꼬았다.

    “지금 실적 나눠먹기를 하자 이겁니까?”

    “내 말이 그런 뜻으로 들리나?”

    “저한텐 고참 배우 하나 던져주고 새로운 건 운영진이 전부 챙기겠단 뜻으로 들리는데요.”

    곤의 빈정거림에 제프가 표정을 굳힌다. 느슨한 줄다리기를 하는 성정이 아닌 곤은 대번에 제프의 입발림에 날카롭게 굴었다.

    “어이, 곤.”

    “하긴 요즘 보니까 감이 떨어지신 것 같긴 했습니다. 이번에 감독 맡으신 거 다 판매량이 저조하잖아요. 슬슬 자기 라인 챙기실 때죠.”

    “너 말 다 했냐?”

    유진은 무거워진 공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기분이 상한 제프가 책상에 앉아서 부들거린다. 곤은 고개를 돌려 빈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적잖이 불쾌해진 상태다. 제프는 분했지만 체통 때문에 차마 화를 내진 못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상대는 회사 간판이다. 간신히 분기를 참은 제프가 얼굴을 바꿔 미소를 지었다. 본론은 따로 있었다.

    “그 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곤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고 제프를 쳐다봤다. 제프는 곤의 도발에 지지 않고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모회사 쪽에서 유명 아티스트의 신보 뮤직비디오 찍는 거 알고 있지?”

    그 말이 나오자마자 곤의 표정이 단박에 굳어졌다. 유진은 귀를 쫑긋 세웠다. 가까이 몸을 맞대고 앉은 옆 사람에게서 긴장이 느껴진다.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는데 유진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귀에 꽂힌 알 수 없는 단어가 왜인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촬영팀에 널 꽂을 수 있을지도 몰라.”

    “무슨….”

    “그쪽에서 괜찮은 인재를 찾고 있거든.”

    제프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는 미끼를 문 사냥감을 보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네 꿈을 찾을 기회 아닌가?”

    “…….”

    “원래는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 했으니까 말이야.”

    파르르. 담뱃대에 붙인 불이 조각조각 공기로 흩어졌다. 분위기는 마치 뭐랄까, 거의 꿈에 대한 희망과 좌절을 논하는 고전 드라마 같았다. 기세등등하던 곤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류가 기회를 물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요, 곤 씨. 인사이동이 쉬운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사장님은 기회를 주는 거라고요.”

    유진은 알 수 없는 얘기에 불안해하며 곤을 쳐다봤다. 곤은 표정을 굳힌 채 그대로 아무 말이 없었다.

    *

    유진은 TV로만 봤던 다른 나라의 교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실제 학교는 아니었다. 교실처럼 꾸며진 촬영 세트장이었고, 그 안에서 곤은 장비를 세팅하고 있었다.

    “유진 씨.”

    곤이 유진을 불렀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낮은 목소리였다.

    “카메라는 이쪽에 설치될 겁니다. 그리고 일단 점검은 했지만 책상 튼튼한지 한번 올라가서 확인해 보세요.”

    곤이 유진에게 설명했다. 지금 두 사람은 촬영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지난번에 나왔던 이야기대로 유진의 두 번째 작품을 찍게 되었다. 담당은 곤이었다. 바뀐 건 없었다.

    하지만 분명 바뀔 수도 있었다. 지난번 대담에서 그와 제프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유진은 뒤늦게야 대충 알았다.

    “사장님 제안… 왜 거절하신 건가요?”

    유진은 내내 마음에 걸렸던 일을 곤에게 질문했다. 화제를 벗어난 이야기에 곤이 잠시 유진을 돌아봤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십니까. 감정 없는 유리 같은 얼굴로요. 딴에는 생각해서 용기 내어 물어봤는데 유진은 소심해졌다. 아무래도 그에게 중요한 기회였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왜 그랬을까.’

    왜 곤은 괜찮은 기회를 거절한 걸까. 지금 그는 유진과 같이 있다. 촬영장에서 특별할 거 없이 헐벗는 포르노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일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유진의 마음을 계속 어수선하게 했다.

    “옆에 있어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예?”

    “아닙니까?”

    “그, 그렇긴 한데.”

    “그럼 됐습니다.”

    곤은 그 이상 더 말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어리광을 기억하고 있어 유진은 당황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좋아할 만큼 유진은 어리지 않았다. 곤은 네가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뭘 내주지는 않는 주제에 본래가 참 다정한 게 서글펐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유진도 이 이상 묻지 않는다.

    그어진 선 안에서 유진은 잠자코 기다리는 역할이다. 원래 먼저 반한 쪽이 지는 법이라고. 넘어가지는 못하지만 이쪽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까 심심하면 와달라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기대나 유진은 하고 있었다.

    “유진 씨.”

    곤이 유진을 부른다. 촉각을 세우고 있던 유진이 깜짝 놀라며 곤에게 다가갔다.

    “촬영 전에 테스트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촬영용 장치 하나를 살피는 곤을 보며 유진은 멍하니 생각했다.

    ‘역시 이 일을 좋아해서 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러니까 곤은 언제든지 이 일을 그만둘 수 있다. 제프가 곤에게 다른 곳에서 일할 기회를 제안했다는 걸 알고서 유진은 마음이 부대꼈다. 그에게 포르노를 촬영하는 일이란 그 정도의 일이었다.

    곤은 손에 밧줄을 하나 쥐고 있었다. 밧줄은 세트장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여러 가닥으로 나뉘었다. 그건 AV 촬영에 걸맞은 결박용 리프트였다. 유진은 오늘 저 밧줄에 몸이 매달린 채 입에 담지 못할 여러 일들을 당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몸을 공중에 띄울 밧줄을 살피며 유진이 곤에게 물었다.

    “테스트요? 제가 매달려 보면 되나요?”

    “네. 수고롭겠지만 안전을 위해서니까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촬영을 위해선 협조하는 게 도리였다. 유진이 팔을 내밀었다. 곤은 밧줄의 고정용 보호대를 유진의 팔뚝에 덧대었다. 유진은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부드럽게 마감된 재질은 피부에 큰 자극 없이 유진의 팔에 감겼다. 몇 년 전인가, 미국에서 SM기획 포르노를 찍었을 때 무작정 노끈으로 몸을 묶었다가 소재에 쓸려 큰 상처가 난 적이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구나, 생각하며 유진은 곤이 자신을 묶는 걸 지켜봤다. 유진의 팔에 구속구를 채운 곤이 이번엔 발목을 묶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아, 그건 제가.”

    “됐습니다.”

    곤은 그대로 유진의 발목에 손을 댔다. 반바지 밑의 맨다리에 거친 손바닥이 스륵스륵 닿았다. 닭살이 일려던 차에 피부를 꽉 잡아당기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행여 구속구가 풀리지 않도록 곤은 벨트로 된 조임을 꽉 동여맨다. 유진의 팔다리에 보호대를 전부 고정하고 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줄에 매달린 유진의 팔다리는 마치 수갑을 찬 것처럼 보였다.

    “리프트 조작하도록 엎드려 있으세요. 서서히 몸이 뜰 거예요. 이상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요.”

    곤이 내린 지시에 유진은 바닥에 엎드린다. 완전히 수그린 자세는 굴종의 자세와도 비슷하다. 그제야 유진은 이 시범이 슬슬 수치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깨달았다.

    곤이 리프트를 조작시켰다. 그러자 천장의 밧줄과 이어져 있던 팔다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몸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중심을 잃은 유진이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불안해 보이는 유진을 보며 곤이 물었다.

    “괜찮아요?”

    “괘, 괜찮습니다.”

    곤은 계속 테스트를 재개했다. 천장에 매달린 리프트는 점점 더 밧줄을 당겨 유진의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마침내 유진은 팔다리가 묶인 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이대로 10분간 있을게요.”

    “네, 에….”

    유진이 힘겹게 말했다. 그는 지금 둥그렇게 몸을 휜 자세로 천장에 매달린 상태였다. 팔꿈치는 뒤로 붙들려 있고 발목에 고정한 밧줄이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러면 엉덩이가 약간 올라간다. 공중을 활주하는 고양이처럼 뻗은 몸은 시청자들의 좋은 눈요깃거리가 될 테지만 지금 유진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의 뒤에서 밧줄이 제대로 지탱역할을 하는지 살피는 남자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무려 공중 결박 자세를 대놓고 취하고 있으려니 창피함으로 손에 땀이 났다. 그가 뒤에 있어서 다행이다. 마주 보고 있었다면 수치사로 죽을지도 몰랐다.

    “회전합니다.”

    “예!?”

    곤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장에 매달려 있던 기계가 빙글 돌며 유진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교실 뒤쪽을 바라보고 있던 유진의 얼굴이 그대로 칠판 쪽으로 향했다. 발전한 기계는 훌륭하게 회전 기능을 갖추어 시간도 걸리지 않고 유진의 눈앞에 곤을 대령했다.

    “저, 저, 감독님.”

    “이 상태로 또 10분입니다.”

    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유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유진이 도리어 새빨개져 버렸다. 유진은 꼴사납게 공중에 묶인 채로 곤과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다. 고개가 푹 숙여졌다.

    포르노 경력 6년차에 옷도 다 입고 있는 건전한(?) 상황에서 유진은 바로 무너졌다. 화르르륵.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옴짝달싹할 수 없는 부끄러운 자세를 하고 저런 무미건조한 얼굴과 맞닥뜨린다면 누구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어질 것이다. 매달려 있는 팔다리에 감각이 점점 사라졌다. 유진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곤에게 그걸 발견당했다.

    “…….”

    유진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이 내려왔다. 1시간 같은 10분이 지나고 유진은 드디어 땅에 내려올 수 있었다. 그는 온몸이 뻐근하다고 생각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몸은 괜찮으십니까?”

    유진이 힘없이 대답하는 걸 보고 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몸이 후들거려서 유진은 일단 교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곤이 그에게 다가와 몸을 묶고 있던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팔과 발목에 연한 자국이 남았다.

    “밧줄 튼튼하네요.”

    유진은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장치는 안전해 보였지만 유진의 체면이 괜찮지 않았다. 곤은 유진을 일으켜주었다. 곤에게 부축을 받다가 유진은 그만 비틀거리고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잠시 앉아 계세요.”

    곤이 유진을 책상 의자에 앉혔다. 세트장은 조립 세트가 아니라 한 공간 안에 학교를 재현해 놓은 건물이었다. 그래서 사방이 막혀 있었다. 유진은 얌전히 앉아서 책상을 바라봤다. 정수리로 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유진은 속으로 ‘왜 쳐다보지?’ 하고 땀을 삐질 흘렸다.

    그대로 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아직 촬영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남은 인원들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곤은 무슨 생각인지 유진에게 다음 루틴 전의 지시사항을 꺼내지 않았다. 유진은 별 상관없는 잡생각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곤이 아침 일찍 그를 데리러 온 일, 컨셉이랍시고 마련된 선생님 복장을 받은 일, 오늘 구멍으로 자지를 받게 될, 아까 만난 남자배우들을 떠올리는 것 등. 그 상태로 어색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이어지려나 싶었는데 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유진 씨는.”

    “예?”

    유진이 고개를 돌려 곤을 쳐다봤다. 곤이 평소와 다를 거 없는 표정으로 유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땀이 조금 맺혀있는 이마 아래로 그늘진 눈매가 유진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하는 일이 좋으십니까?”

    “네에?”

    뜬금없는 질문에 유진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거 참. 어색한 시간을 메꾸기 위한 화두로는 당황스러운 질문인데. 유진은 곤이 어떤 의도로 묻는 건지 추리하기 위해 그를 자세히 바라봤다. 곤은 아까 그 표정 그대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하지. 만족한다고? 나름 괜찮다고? 그냥 먹고사는 일이니까? 유진이 헤매고 있는 사이 곤이 먼저 대화를 종료해 버렸다.

    “아닙니다.”

    그대로 그는 얼굴을 창밖으로 돌렸다. 유진은 그런 곤을 바라본다. 그러다 책상 위로 눈을 돌렸다.

    ‘뭐야?’

    머릿속에 병정 인형들 같은 게 튀어나와서 유진을 나무망치로 두들기며 꾸짖는다. 왜 바로 대답하지 않았어, 멍청아? 뜸을 들인 탓에 그와의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유진은 후회막심이다. 웬일로 던져진 사적인 질문이었는데. 유진은 고개를 들어 다시 말을 걸려다가 말았다.

    ‘왜 그런 걸 물으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으냐고? 사실 이 질문은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몇 번인가 받아본 적이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직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다. 그럴 때마다 유진은 그건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이건 유진의 생계였다. 포르노를 찍는 것 외에 유진은 자신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 불행히도.

    본래 질문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 던지는 거다. 유진은 곤이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까지 거쳤을 사고의 과정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무의식중에 꺼낸 말이었을 수도 있고, 유진을 떠보려 한 말일지도 모른다. 평소대로 대답할까 하다가 유진은 왠지 그게 곤의 속마음과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아 대답을 망설였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유진이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잠겼던 상념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

    유진은 단정한 와이셔츠 위에 조끼를 걸치고, 발목이 드러나는 팬츠 밑으로 흰 양말을 신고 있다. 그는 지금 남교사가 되었다. 안경까지 쓴 유진이 교탁 앞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본다.

    “차렷, 경례.”

    교실 안에 있는 몇 명의 남학생들이 준 선생님을 바라봤다. 롤업된 바지 밑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굵지 않은 발목, 풀린 와이셔츠 제일 위 단추 너머로 보이는 살갗이 적당하게 도톰하고 건강한 살색을 띠고 있다. 웃음기 없이 까만 눈동자로 학생들을 훑는 얼굴은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게 고고하다. 그들은 전부 참한 남선생님을 농락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유진을 보며 남학생들은 서로 짓궂은 눈길을 교환했다.

    남교사가 된 준은 혼자 교실로 향했다. 교실까지 이어지는 복도는 썰렁하다. 마치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있다. 물론 이건 다 연출이다. 시청자들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역할이 부여되고 연기가 가미된 포르노 스토리다. 선생을 불러 놓고 혼자가 된 그를 학생들이 노린다는 설정.

    “으읍!”

    교실로 들어온 유진을 누군가 뒤에서 연극적으로 덮쳤다. 카메라 레코딩이 시작되고 있다. 사각 진 교실의 네 모서리에 설치된 카메라가 교실 중앙으로 들어온 배우들을 찍었다. 유진의 입을 막은 남자가 그대로 그를 책상 위에 엎어트렸다. 그는 학생처럼 교복을 입고 있었고, 헨리란 이름을 가진 배우였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 혼자 오다니. 너무 방심한 거 아니야?”

    헨리는 순진한 선생을 덮치는 학생 역을 충실히 이행한다. 교복 와이셔츠를 불량하게 헤쳐 입은 그가 유진의 몸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그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손 아래 갇힌 몸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처박은 교사의 뒤통수가 부들거리며 떨린다. 미려한 얼굴로 학생들의 정복욕을 끓게 하던 선생. 늦은 시간 학생을 위로해주러 온 그를 강제로 유린하기 위해 남학생들은 이날만을 기다렸다.

    “들어와!”

    대장격인 헨리의 대사 뒤로 선생을 노리고 있던 무리들이 앞뒷문으로 들어왔다.

    “읏!”

    헨리는 유진의 몸을 강제로 뒤집었다. 유진이 외마디 신음을 내질렀다. 시야가 위로 향하자 유진은 그를 향해 달려드는 여러 명의 남학생들과 마주해야 했다. 학생 역을 맡은 젊은 배우들이 유진을 책상 위로 밀어 눕혀 강제적으로 옷을 열기 시작했다. 몇 개를 겹쳐 붙인 책상이 다수의 무게를 받느라 덜컹거렸고, 그 소리가 격렬한 정욕의 현장을 연출했다.

    “그만, 앗!”

    딱딱한 책상에 등을 부딪친 유진이 외마디 소리를 냈다. 부드러운 매트가 아닌 목재를 받침대로 사용하니 몸의 자유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그대로 완전히 책상에 눕혀진 유진은 불편한 사지를 움직이며 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깊은 우물 안에 빠진 개구리처럼 유진은 위에서 저를 구경하는 눈들과 마주한다. 학생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유진의 셔츠를 붙잡고, 양옆으로 찢을 듯이 잡아당겼다.

    “허억!”

    투두, 둑. 싸구려 셔츠가 금방 단추를 떨어트려 발가벗긴 가슴을 드러낸다. 여밈 사이로 가슴이 불룩하게 나타났다.

    “옷 밖으로도 커다랗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까 엄청난걸.”

    “으으….”

    짓궂은 손들이 유진의 가슴을 장난스럽게 잡아왔다. 그 말이 연기인지 아니면 진짜 속내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흉부를 이루고 있는 살집을 밑에서부터 밀어 올리자 봉긋한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둔덕이 만들어졌다. 살뿌리를 살살 흔들어주면 커다란 가슴이 푸딩 같은 말랑한 궤적을 그렸다. 연한 젖꼭지는 그 위에 토핑된 과일처럼 남자들의 군침을 돌게 한다.

    “읏?!”

    가슴을 희롱당하느라 바르작거리고 있던 유진의 다리를 학생들이 한쪽씩 잡았다. 그리고 팬츠를 내려, 드러낸 피부에 혀를 내민다. 선생의 입에서 숨소리가 섞인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두 개의 혀가 뼈가 솟아있는 발목의 뒷부분을 각각 핥아 내리고 있었다.

    아킬레스건 위에 물기 어린 살덩어리가 자국을 냈다. 흰 양말에 걸쳐져 있는 복사뼈를 학생들의 손가락이 은근하게 문지르면 찌릿하고 그 주변의 솜털이 곤두서고, 간질간질한 감각이 유진의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유진은 콧등의 주름이 잡히도록 인상을 썼다. 학생들은 유진의 얼굴에서 불편할 만한 안경을 벗겨주었다. 얼굴에 모난 빗금을 그었던 스테인리스 선이 치워지자, 다음을 고대하고 있는 홍조 돋은 얼굴이 여실히 드러났다. 강제로 능욕당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달아오른 표정이다.

    “사실은 이렇게 되길 쭉 바라왔던 거 아냐?”

    “아윽!”

    가슴 위로 매운 손바닥이 찰싹 달라붙었다. 정숙하지 못한 선생을 학생들이 응징한다. 남자의 부끄러운 고환 두 쪽처럼 유진의 가슴 양짝이 덜렁덜렁 위아래로 흔들렸다. 마름모꼴로 헤쳐진 셔츠 안에서 가해지는 따끔한 체벌을 유진은 광대를 불룩이며 참아냈다.

    학생들은 셔츠를 완전히 벗기지 않은 상태로 유진의 바지버클부터 풀어냈다.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음탕한 선생의 고간은 위로 솟아서 열을 품고 있는 채였다. 부푼 흰색 드로즈를 보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선생을 능멸했다.

    “순진한 얼굴에 우리가 속았군.”

    “이딴 음란한 수캐였으면 진작에 따먹는 건데 말이야.”

    “아니야…!”

    선생은 필사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소용은 없었다. 회색 바지를 벗기고 속옷을 내리자 부끄럽게 발기한 성기가 퉁 튀어나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으핫!”

    학생들이 꼿꼿이 솟은 성기를 향해 손찌검을 했다. 부정할 수 없는 흥분의 증거가 유진의 다리 사이에서 흔들렸다. 민감한 부위에 찰싹찰싹 내리치는 매운 손길에 유진의 고간이 바들거렸다. 때려도 다시 솟는 펀칭머신을 다루는 것처럼, 그들은 선생의 자지를 얼마나 노련하게 체벌할 수 있는지를 돌아가면서 시범하고 있었다. 가차 없는 매질은 유진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조신하지 못한 엉덩이는 성기가 때려질 때마다 책상 위를 쿵쿵거렸다. 그러고도 벌겋게 부푼 자지에서 찔끔 선액이 나오자 학생들이 선생을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구멍이 애가 닳아서 가만히 있질 못하겠나 보지.”

    균일한 모양으로 고르게 솟아있는 살굿빛의 기둥. 미끈해 보이는 성기에 실제로 요도구에서 흘러나온 투명한 액체가 반질반질 묻어있었다. 맞아서 붉어지기까지 해놓고 수그러들지 않은 페니스로 학생이 손을 가져갔다.

    “끄악!”

    손이 내려간 곳은 기둥보다 더 아래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유진의 음낭이었다. 예쁜 구슬 같은 모양을 한 덩어리는 그의 가슴처럼 봉긋한 모양을 하고 있다. 살덩이를 손에 넣은 남학생이 유진의 고환을 꽉 쥐었다. 급소가 죄이자 유진의 입에서 섹시하지 못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학생은 그것을 손 안에서 갖고 놀듯이 굴렸다. 익은 복숭아 빛이던 것이 말아 쥔 손으로 쭈욱쭈욱 눌러대자 탐스러운 자줏빛이 되어 터질 듯이 붉어졌다.

    “아, 아파….”

    “아파?”

    유진이 어눌하게 속삭이자 악마 같은 학생들이 키들거렸다. 그들은 저항하지 못하는 유진을 맘 편히 갖고 놀았다. 가슴과 성기, 부끄러운 부위는 전부 노출되었지만 아직도 유진의 몸엔 옷이 걸린 상태였다. 학생들은 허벅지에 걸쳐져 있던 바지를 마저 벗겼다. 긴장한 종아리에 판판하게 걸쳐져 있던 속옷마저 빼내니 유진의 고간이 전부 드러났다. 하반신을 가리고 있던 옷가지들이 전부 제거되자 유진은 맨다리를 책상 위로 널브러뜨렸다.

    “헤에. 선생이 이렇게 팬티를 적셔서 되겠어?”

    속옷을 손에 넣은 학생이 두 손가락으로 유진의 팬티를 집어 들며 주절댔다. 흰색 속옷의 성기가 닿은 부분이 프리컴으로 젖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학생들이 킬킬거렸다.

    “변태 남교사.”

    “학생 좆 받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변기.”

    그대로 학생은 선생님의 속옷에 얼굴을 묻고 노골적으로 킁킁거리며 체취를 맡았다. 공기를 채우는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유진이 치욕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촬영용으로 준비된 흰 속옷을 유진이 입은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그의 흔적이 묻어나기엔 충분했다. 유진의 자지가 닿았을 재봉선을 따라 학생이 짓궂게 숨을 들이킨다. 약간의 땀 냄새와 분비된 애액의 축축함, 그 비릿한 향들이 모두 고스란히 남아있는 부끄러운 속옷을 손 안으로 구겨 쥐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제자들의 자지를 꽂아줘야지.”

    불량학생들의 우두머리인 헨리가 유진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유진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아랫도리의 구멍은 이미 발정이 나 게걸스러운 형태로 개폐하고 있었다.

    “뭐야. 이미 풀려 있잖아.”

    “하읏…!”

    헨리의 자지가 예고 없이 선생의 물 많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유진은 비칠비칠 허리를 떨며 비집고 들어오는 물건의 열기를 느꼈다. 바깥 온도만큼 뜨거운 자지가 애널 속을 거침없이 채워나간다.

    “히이익…!”

    “하아.”

    헨리가 유진의 매끄러운 다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토했다. 유진은 뒷머리를 책상에 바짝 붙이고 끄윽거렸다. 천천히 허리를 전진시키는 만큼 기다란 자지가 유진의 안으로 자취를 감춘다. 언제까지 들어오기만 하나 싶어질 때쯤, 헨리의 축축한 불알이 유진의 회음부를 꾸욱 눌렀다. 움찔, 하고 귀두의 빤질한 촉감이 내벽을 두드렸다. 어찌나 깊게 박았는지 콘돔으로 미처 감싸지 못한 자지 뿌리가 애널 주름에 닿고 있었다. 헨리가 유진의 발목을 잡고 추삽질을 시작했다.

    “아흐읏! 아응, 흐읏!”

    “흐억, 헉.”

    학생답지 않은 기술적인 테크닉으로 헨리는 유진의 안을 공략했다. 유진 역시 목멘 교성을 터뜨렸다. 힘이 들어간 허리로 상대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치며 헨리는 유진의 다리를 혀로 핥았다. 양말만 신은 발목이 허공에서 꿈틀거렸다. 느글거리는 혓바닥은 다리에 선연한 감각을 남긴다.

    “아아앙…!”

    결합이 깊어지자 유진의 입에서 농익은 콧소리가 나왔다. 단정했던 선생님이 제자에게 꿰뚫리는 모습만으로 학생들의 자지가 빳빳하게 섰다. 박히고 있는 유진의 곁으로 남자아이들이 다가온다. 그들은 서둘러 발기한 자지를 꺼냈다. 얼굴 양옆으로 핏줄 솟은 자지들이 존재감을 뽐내자 유진은 두 팔을 뻗어 그들의 페니스를 잡고 흔들어주었다. 남교사는 학생들의 성욕을 풀어주기 위해 의무를 다한다.

    “선생이 좋아하는 자지 대령이다.”

    유진은 고개를 돌려 학생들의 성기를 빨았다. 얼굴로부터 다소 거리감이 있어 입술만 귀두에 쪽 닿았다 떨어지는 수준이었지만. 유진은 학생의 불그죽죽한 자지를 빨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내밀어 입을 모았다. 그러는 동안 교미가 벌어지고 있는 아랫도리는 격렬한 소음을 냈다. 올라가 있는 책상이 덜컹거리며 바닥을 긁었다. 유진이 입술 전체를 붙여 귀두를 머금자 입에 고여 있던 타액이 교실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하앗, 앗, 흐응.”

    사정이 임박한 헨리가 유진의 허리를 잡고 사타구니에 처박듯이 내리눌렀다. 삐걱삐걱, 유진의 몸이 책상 위에서 흔들렸다. 회음부는 이미 마찰로 벌겋게 물든 상태다. 양손에 자지를 쥐고 있던 유진이 격한 움직임 탓에 허공으로 신음을 터뜨렸다. 남자들의 자지를 입에 넣어주지 못하자 유진은 그것들을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으로 고루 문질러주기에 이르렀다. 헨리가 광폭한 쇳소리를 입새로 흘렸다. 남교사는 제자들이 훌륭하게 클 수 있도록 그들의 자지 성장을 촉진시킨다. 유진에게 성기를 잡힌 남학생들에게서도 흥분한 숨소리가 들릴 즈음에.

    “씨 받아라앗!”

    푸슉-!

    학생들의 저질스러운 대사가 터지고, 막혀 있는 콘돔 안, 얼굴, 유진의 배 위로 동시다발적으로 정액이 와륵 쏟아졌다.

    “흐아아아…!”

    얼굴로 향하고 있던 학생들의 자지가 동시에 사정하면서 유진의 투명한 입술 위로 백탁액이 툭, 툭 떨어졌다. 붉게 물든 유진의 자지도 사정액을 터뜨렸다.

    애널을 차지하고 있던 헨리가 자지를 바깥으로 빼내곤 흐물흐물한 콘돔을 까뒤집었다. 쓸모를 다한 콘돔이 정액을 가득 머금고 늘어져 있다. 헨리는 그걸 유진 쪽으로 던졌다. 정액을 담은 콘돔이 유진의 가슴 위로 툭 떨어졌다. 그 모멸적인 손짓에 유진이 눈썹을 찡그렸다.

    “다음 차례 누구야?”

    고무 안에 담긴 정열의 흔적이 주르륵 유진의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참 뚫려있던 뒷구멍이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부들거리는 선생님의 뒷구멍은 학생들의 장난감이 되어 이리저리 들쑤셔졌다.

    첫 번째 씬을 끝내고 쉬는 시간이 생겼다. 두 번째 씬은 유진이 일찍이 테스트했던 리프트로 공중에 매달린 상태에서 성교 장면을 촬영할 것이다. 가운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유진에게 물이 전달되었다. 유진은 물을 마셨다. 페트병 안에 든 500ml의 물이 유진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수분을 보충하고, 유진은 피곤에 지친 몸을 잠시 등받이에 기댔다.

    촬영하는 동안 유진은 남자의 씨물과 다 쓴 콘돔들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에게 떨어지는 치욕스러운 행위들과 모멸 어린 손짓들. 대사는 유진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좀 나았지만 그 내용 역시 대충 어떨지 짐작이 가는 바였다. 그렇다 해도 으레 그렇듯이 포르노 배우는 받아들여야 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탑 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바텀들을 거칠게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 영상 컨셉이 능욕물이라는 걸 차치하고서도. 포르노를 찍는 일은 주인공 격인 배우를 제외하면 페이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부족한 페이를 상대배우를 실컷 능욕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그들에겐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편이 좋다. 그래야 더 리얼하니까. 말이 주인공이지 포르노의 메인 배우는 영상 안에서 가장 험하게 다루어지는 육체 덩어리일 뿐이다.

    “피곤하십니까.”

    곤이 눈꺼풀을 깜박이는 유진의 옆에 앉았다. 곤이 다가온 걸 보고 유진이 파닥거리며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촬영 중에 자기도 모르게 졸린 눈치를 보인 게 유진은 당황스럽다. 그러나 곤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것처럼 유진에게 물을 건넸다.

    “많이 마셔두는 게 좋습니다.”

    또 물인가. 유진이 건네진 페트병을 보면서 맹하게 생각했다. 이미 한 번 마셨지만 감독인 그가 ‘많이 마셔두는 게 좋습니다’라고 말해서 유진은 두 번째 생수병을 받아들었다. 그도 어쩐지 물이 고팠다. 유진이 꼴깍꼴깍 물을 들이키는 모습을 곤은 똑바로 바라봤다.

    “감독님은 안 피곤하세요?”

    유진이 입가를 훔치며 물었다. 곤 역시 유진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스튜디오에 와 있던 사람이다. 아마 더 분주하게 움직인 건 곤 쪽이지 않을까. 일은 피곤하지 않은지, 몸은 괜찮은지, 일 관계인 두 사람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정도다. 그래도 유진은 곤과 얘기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졸음에 가물거리던 정신을 붙잡고 남몰래 눈꺼풀을 바짝 떴다.

    “제가 피곤할 게 있나요. 유진 씨가 제일 힘드시겠죠.”

    “뭐….”

    곤은 가벼운 투로 대답했다. 확실히 나른해져 있는 유진을 보며 곤이 말했다.

    “아직 장면 하나 남아있습니다.”

    “알아요. 힘내서 찍어야죠.”

    유진은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그리고 기회를 노려 못했던 대화의 물꼬를 텄다.

    “저, 오늘 낮에 하신 얘기 말입니다.”

    곤이 유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유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구분할 수 없는 평온하고 잔잔한 눈빛이다. 그 얼굴로부터 괜히 시선을 돌리며 유진이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돌이켜봤는데, 좋은지 싫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런 건 선택지가 있는 사람한테 주어지는 게 아닐까. 꿈도, 선택지도 없던 망가진 이민자 가정의 자녀였던 유진은 특별히 하는 일의 호오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이다.

    “갑자기 그런 소릴 하시는군요.”

    하지만 유진의 의도는 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곤은 유진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는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촬영 재개를 알리는 음성 사이로 유진에게 스태프들이 다가왔다. 드디어 밧줄에 몸을 묶고 공중에 떠올라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들은 장치를 조정해 유진의 팔과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유진은 얌전히 촬영진들의 손에 몸을 맡겼다. 한쪽에 구속구를 채운 뒤에 리프트를 움직이고, 조금 불안하다 싶으면 다시 내려서 구속구의 위치를 바꿨다. 장치를 준비하느라 짧은 시간 여러 사람들이 유진의 주위로 오고 갔다. 배우가 안전하게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진은 다른 사람들이 수고해주는 시간 동안 멍하니 대기했다. 그동안 누가 그의 뒤로 와 있는지도 몰랐다.

    천천히 밧줄에 묶여 올라가는 몸을 뒤에서 누군가 잡아주었다.

    “준 씨는 피부가 깨끗하네요.”

    뒤에서 들린 소리였다. 유진은 얼굴을 돌렸다. 그를 잡아주고 있는 남자가 유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천장 밧줄에 몸이 묶여 있는 상태로는 상대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허락 없이 그를 만지는 손길을 피하지 못한 것도 당연지사였다.

    남자의 것이 분명한 손이 의도를 품고 유진의 다리를 만졌다. 뜨거운 손바닥의 열기가 종아리의 넓은 면적에 닿았다. 유진은 힐끔 곤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곤은 카메라를 확인하느라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벗겨진 유진의 발목을 잡은 누군가가 엄지발가락을 입안에 넣었다. 민감한 곳이 축 젖어서 빨리자 유진은 묶인 채로 들썩였다. 도착적으로 빨아대는 축축한 혀는 그것이 꼭 젖꼭지라도 되는 것처럼 쪽쪽 힘을 주어 빤다. 유진은 자신의 발을 희롱하는 남자가 헨리란 걸 알아차렸다.

    “읏.”

    유진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죽였다.

    “헨리 씨….”

    유진은 당황을 담은 목소리를 작게 내뱉었다. 촬영도 아닌 쉬는 시간에 이런 성적인 스킨십이라니. 혹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촬영이 시작되기라도 한 것인가? 그러나 촬영이 시작된다는 말은 곧장 다른 쪽에서 들렸다. 유진의 발가락을 빨고 있던 입술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발가락을 질척인 침자국은 아직 남은 채였다. 유진이 공중에 묶인 채로 두 번째 씬 촬영이 시작되었다.

    “선생, 남자가 이렇게까지 찌찌가 커도 되는 거야?”

    아래로 향해있는 유진의 가슴을 주무르며 한 학생이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듣고 나머지 학생들이 와하하 웃어댔다. 금욕적으로 꽁꽁 싸매고 있던 옷을 벗겨내자 나타난 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야하고 탐스러운 가슴이었다.

    “젖이라도 나올 것 같은걸.”

    손톱만 한 유두가 연한 빛깔의 유륜에 둘러싸여 있었다. 비열한 표정의 남학생이 엄지와 검지 사이에 통통한 살점을 끼웠다. 순간 그가 비명이 나올 정도로 유륜을 꽉 조이는 바람에 유진이 날카로운 소리를 흘렸다.

    “히윽…!”

    세게 조였던 손은 금방 유진의 가슴에서 떨어진다. 학생은 유진의 유륜을 빠르게 꼬집어대면서 찌릿한 감각이 유진의 가슴에 잔류하게끔 조절했다. 솜씨 좋은 스킬에 유진의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었다. 그는 정말로 젖소로부터 우유를 짜내는 것처럼 왼쪽과 오른쪽 유두를 번갈아 가며 유진의 가슴을 주물렀다.

    “앗, 하윽.”

    강한 전류가 돈 젖꼭지가 땅땅하게 커졌다. 유진의 단단한 심지를 건드리며 남자는 작은 알갱이를 이루고 있는 쪼글쪼글한 주름을 꼼꼼히 매만졌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개구리 같은 꼴사나운 자세로 능욕당하고 있는 교사. 발에 매달린 밧줄을 조정하자 유진의 다리가 더 휘어지며 위로 올라간다. 불편한 자세는 유진을 신음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남자들이 구멍을 찾아 페니스를 삽입하기에는 딱 좋은 위치였다.

    “에어 삽입이다!”

    유진의 몸 안으로 또 다른 학생의 자지가 들어온다. 공중에 떠 있어 바짝 힘이 들어간 유진의 몸이 남자의 성기를 힘 있게 조여 온다. 기분 좋게 목을 울리며 학생이 내벽에 방아질을 찧었다. 흔들거리는 진동에 맞춰 더 다이나믹하게 자지가 안을 들쑤시자 유진은 히끅거리며 괴롭게 목을 울렸다. 섹스에 길들여진 몸은 불편한 자세에서도 쉽게 느끼고 만다.

    자지가 장벽을 채울 때마다 몸 안의 장기가 짜부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여린 직장이 확장되고 전립선이 내리눌려진다. 유진의 발기한 성기에서도 방울방울 탁한 점액질들이 떨어졌다. 마룻바닥을 적시는 선액을 보며 유진은 하반신에서부터 이상한 감각을 느낀다. 사정의 쾌감만이 아닌, 성기의 뿌리를 간질간질 괴롭히는 발사의 감각.

    “칠칠치 못한 구멍을 막아줘야겠는걸.”

    “허윽!”

    그런 유진의 눈앞으로 기다란 막대기가 등장했다. 앞부분은 뾰족하고 뒤에는 지우개가 달려있는, 그것은 유진에게도 익숙한 연필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중간 기둥이 울룩불룩하게 돋아있다. 학교라는 테마에 맞춰 준비한 연필 모양의 플러그였다.

    “아, 자, 잠깐.”

    익숙한 모양의 플러그를 보고 유진이 공중에서 몸을 뒤튼다. 저만한 작은 막대가 노릴 구멍은 단 하나뿐이다. 찌릿하고 참을 수 없는 감각에 벌컥 솟아있는 자지. 더러운 애액을 질질 흘리는 귀두 틈의 홈. 뒤에서는 여전히 유진의 스팟을 쳐가며 요도에서 흥분의 액체를 쏟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 유진의 요도 구멍으로 플러그가 서서히 다가간다.

    “끄아….”

    연필 모양의 요도 막대가 유진의 선단을 지분거렸다. 연필심을 표방한 뾰족한 선단이 구멍을 짓누르다가, 다시 떨어진다. 유진의 자지 구멍에서는 쿠퍼액으로 홍수가 나 있었다. 얇은 선단으로 요도를 쑤실 때마다 요도 막대의 끝에 프리컴이 지익지익 늘어났다.

    “허, 허억….”

    유진은 형형한 눈으로 발기한 성기를 괴롭히는 그것을 바라본다. 얕게 들쑤신 것만으로 이미 요도의 입구가 발갛게 물든 상태다. 학생은 삽입보다는 간지럽히는 게 목적인 것처럼 간을 보며 유진의 요도를 괴롭혔다. 그사이에 언제 침입할지 몰라 긴장한 유진이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아아악…!”

    플러그가 마침내 요도 안으로 삽입된다. 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에 유진이 비명을 질렀다. 공중에 묶인 몸이 덜컹거리는 걸 남자들이 잡아 붙들었다. 무언가 들어갈 곳이 아닌 작은 요도 구멍을 뾰족한 플러그의 선단이 억지로 파고들었다.

    “커, 하윽….”

    한번 입구를 튼 요도 플러그는 그대로 좁은 통로 안으로 자취를 감춘다. 굴곡이 있는 플러그가 긴 관을 지나갈 때마다 각기 다른 굵기로 동굴을 벌렸다. 유진은 입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플러그가 요도를 쑤시자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배뇨감이 치밀어 올랐다.

    ‘안 돼.’

    다급한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플러그가 요도 끝을 건드리자 간질거리는 쾌감이 솟구쳤다. 이상하게 참을 수 없는 요의가 밀려들고 있었다.

    ‘이, 런 건 처음인데.’

    유진은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곤을 쳐다봤다. 구원의 눈길을 보내보지만 그는 유진에게 시선을 주고 있지 않았다. 허벅지를 부끄럽게 조이는 메인 배우의 상황을 알아차린 건 주위에 있는 남자들이었다.

    “오줌 마려우면 그냥 싸 버리라고.”

    “아, 으읏.”

    유진은 뒤에서 남자들이 외국말로 무어라 떠드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진작부터 유진의 유아 퇴행적인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는데도. 유진 혼자만 새하얀 얼굴로 실수를 해 버릴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신체는 이미 방광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오줌을 내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진의 머릿속으로 그가 들이켰던 많은 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직전에 본 소변이 맑은 색깔일 정도로 끝도 없이 마셔댔던 물.

    “어서 싸버리란 말이야!”

    요의를 참느라 어쩔 줄 모르는 몸을 뒤에서 남자가 자비 없이 자지로 꿰뚫어 꽂았다. 별안간의 충격과 자극당한 전립선 위로 물이 꽉 찬 물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동시에 요도에 꽂아두었던 플러그가 제거된다.

    “안 돼…!”

    일말의 절망 어린 비명을 끝으로 막아놨던 신체의 둑이 터진다. 쪼르륵.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익숙한 만족감. 한계를 넘어 참지 못한 요도의 끝으로 평상시의 오줌보다는 맑은 액체가 발사된다.

    뚝, 뚝. 부끄러운 방뇨의 흔적은 바닥으로 쏟아졌다. 밧줄에 매달린 몸은 도망칠 수도, 수습할 수도 없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소변을 바닥에 싼다. 유진은 촬영 중에 실수를 해 버리는 모습을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여러 번 배출을 거친 신선한 소변. 그래도 맨바닥에 지려버리면 물에 희석되지 않은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공간을 메우는 냄새의 출처가 저라고 생각하자 유진은 성인으로서의 인격이 전부 휘발되어 버린 것 같았다.

    마룻바닥에 부끄러운 자국을 남긴 걸 수치스러워할 틈조차 주지 않고 남자들은 유진을 마구잡이로 몰아붙였다. 유진은 정신 줄을 붙잡을 틈도 없이 흐아앙거리며 속수무책으로 굴려지다가 촬영을 마쳤다. 촉촉한 수건으로 몸을 감싼 유진이 의자에 앉아 풀이 죽어있는 걸 스태프들이 달랬다. 하지만 유진이 지금 제일 원망스러운 건 스태프도 아니고 상대 배우들도 아닌, 모든 걸 지시했을 곤이었다.

    돌아가려는 곤을 향해 옷을 다 꿰입은 유진이 곧장 달려가 부들거렸다.

    “어, 어째서….”

    일단 곤 앞에서 정지한 유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수치심과 굴욕, 모욕감 등 각종 부끄러운 감정을 모두 단 얼굴로 와락와락 붉어져 있는 유진을 보고 곤이 태연스레 물었다.

    “부끄러우셨나요?”

    “당연하죠!”

    유진은 한 번 소리치고 주위를 살폈다. 혹시 누군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기라도 할까 봐서였다.

    “오, 오줌 구멍에 플러그를 끼운다고 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어떻게 저한테 상의도 없이…!”

    그렇다. 요도 플러그까지는 상의가 돼 있었다. 그러나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그것은 알려준 바가 없었다. 정돈되지 않은 말을 와르르 쏟아내는 유진을 보며 곤은 의외라는 듯이 묻는다.

    “왜 이런 걸로 화를 내십니까?”

    유진의 눈이 사선으로 올라갔다.

    “유진 씨는 애가 아니잖아요.”

    사선으로 올라갔던 눈이 다시 팔 자로 내려간다.

    “두 번째 작품에 시청자를 흥분시킬 만한 더 자극적인 장면을 넣는 건 이상한 게 아니죠.”

    곤이 너무나 태연스럽게 대꾸해서 유진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말투는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것처럼, 오히려 유진이 당연히 해야 할 소명이라는 듯이 말했다. 유진은 입을 꾹 다물어 턱을 호두 모양처럼 만들었다.

    “미안해요. 일이라서.”

    “허!”

    “다들 별생각 안 할 겁니다. 데뷔한 신인들한테 일종의 관례 같은 코스거든요.”

    어차피 할 거였다는 말을 듣고 유진은 기가 찼다. 진작 알려줬으면 어디가 덧나나? 그런데 이 사람, 유진에게 면목 없는 척할 기미도 없어 보였다. ‘좋게 생각하세요’ 하며 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는 곤을 보고 유진은 시무룩해졌다. 스테디한 학교 컨셉이니 뭐니 하며 가볍게 넘어가줄 거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그래도 자신을 생각하는 줄 알았더니… 위해주는 척은 다 해 놓고. 유진은 아주 조금 배신감을 느껴 버렸다.

    사실 어쩌면 그는 지금 과민반응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중고 포르노 배우. 거칠 거 다 거치고 이제 와 ‘데뷔’ 타이틀을 받으려는 건 어찌 보면 뻔뻔하다. 그런데 이것저것 따져가며 칭얼댄다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우스울지도. 유진은 곤에게 따져 물은 뒤에 감내해야 할 피로를 예감하고 입을 다물었다. 배신감을 느끼는 스스로도 피곤했다. 결국 유진은 조금 주눅이 들어 어깨를 내렸다.

    *

    유진의 데뷔작은 대성공이었다. 비디오는 발매 첫날 판매 사이트에서 1위에 등극했다. 단숨에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탄 포르노가 주간 랭크까지 입성해서 온 회사가 호조라며 들떠 있었다. 유진은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 틈을 타 몰려드는 스케줄에 정신이 없었다.

    “이번 주 중으로 두 번째 DVD가 발매될 거고요. 다음 주엔 팬 사인회가 있어요.”

    “팬 사인회?”

    다음 주까지 꽉꽉 차 있는 일정들을 달력에 표기하는 레이에게 유진이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레이가 언제나처럼 미소를 짓고 아주 간략하게 설명한다.

    “시디 구매자한테 사인해주는 거예요.”

    “아, 예.”

    뭔가 수상쩍었지만 유진은 그냥 넘어갔다. 레이는 혼자서 유진에게 일정 브리핑을 했다. 그러고 보니 곤이 안 보인다. 분명 얼마 전까지 유진의 옆에 있어 주겠다고 한 남자가 그새 본분을 까먹고 태만이다. 그렇게 유진이 생각하는 순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문이 벌컥 열렸다.

    “유진 씨.”

    곤이 유진을 부르며 레이의 집무실로 무단침입했다. 그는 회사 내에서 유일하게 유진을 본명으로 부르는 사람이었다. 분명 방 안에 레이도 있었는데 그는 본 체도 안 하고 유진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데뷔작 세일즈 보셨습니까?”

    “네.”

    유진이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일전의 일로 약간 삐져 있던 유진은 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곤은 유진의 무뚝뚝한 대답에 아랑곳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아뇨….”

    순순한 기색으로 축하를 건네는 곤 때문에 유진은 괜히 머쓱해져 버렸다. 두 사람의 대화에 레이가 끼어들었다.

    “기념으로 한잔하죠!”

    “예?”

    자리에서 튀어 오른 레이가 손짓으로 손목을 꺾었다. 그걸 또 기막히게 알아듣고 유진이 되묻는다.

    “성적도 좋고, 기념적인 날이니까 우리끼리 한잔, 어때요?”

    “우리끼리?”

    “네네, 소소하게.”

    “우리끼리요….”

    레이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에 유진은 곤을 엿봤다. 곤은 제안을 꺼낸 레이를 멀뚱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말에 확신이 없는 유진을 보며 레이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장님 때문에 그러는 거죠? 걱정 마세요. 그 인간은 노노.”

    “아하….”

    “준 씨도 좋다고 하는데 어때요?”

    승낙한 적도 없는데 레이는 어느새 유진을 모임에 끼워 놨다. 곤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는 레이를 보며 유진은 그를 말리려다가 두 사람이 일사천리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바람에 끼어들게 되었다.

    “좋네.”

    “어어?”

    “둘 다 동의한 거죠? 곤 씨, 앞장섭시다.”

    곤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딘가의 술집 이름을 입에 올렸다. 레이는 당장에 문을 나서고 있었다. 말려들었다. 말려버린 거야. 이래서야 당분간 음주는 자제하기로 했던 게 다 수포가 되었다. 나란히 앞서 가는 두 사람을 보고 유진은 생각했다.

    ‘저 둘은 많이 친한가?’

    레이가 질색하듯이 제프를 향한 거부를 표할 때 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 중에서 사장과 업무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건 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의외였다. 곤은 유일하게 레이에게만 말을 놓고 있었고, 두 사람은 이따금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그런 것 역시 둘 사이가 편한 관계라는 걸 뒷받침해주는 것 같았다. 레이가 뒤풀이를 권할 때 곤이 스스럼없이 받아주던 게 유진은 부러웠다.

    신나게 자리를 이끌어놓고 잠깐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운 레이가 몇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자리마다 칸막이가 쳐진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있는 건 유진과 곤 두 사람뿐이었다.

    ‘어… 이거 기회인가?’

    짝사랑 상대를 눈앞에 두고 유진은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곤의 얼굴은 어두운 바의 조명 때문에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유진 씨는.”

    화장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사람은 놔두고 곤은 우선 유진과 대화를 나눈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그는 유진에게 말을 걸고 나서 뜸을 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오늘도 그 뜸을 잔잔히 기다리며 유진이 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 어리시죠.”

    나온 말이 굉장히 뜬금없긴 했지만서도. 때마침 안주가 서빙되어 나왔다. 푸릇한 양상추와 토마토, 콘과 소시지가 곁들어진 싱싱한 샐러드였다.

    “은퇴 후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은퇴 후요?”

    유진은 왜 그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칵테일을 한잔 들이키고 푸릇한 채소를 한입 먹는다. 그러고 보니 가게 안을 메우는 노래가 기억 속에 익숙한 느린 블루스였다. 장소를 정한 게 곤이었으니 이제는 그의 취향이 이런 올드뮤직 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삼십 대 이후에도 계속 포르노를 찍는 배우들이 있지만 대개는 일찍 그만두려고 하니까요.”

    “저도 언젠간 그만두겠죠.”

    곤은 현실적인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 뭐 꼭 생각해야 하나? 유진은 포크로 소시지를 꽂아 입안으로 넣으며 대수롭지 않은 정신머리로 생각했다. 그 대답이 정답이 아니었나 본지 곤이 말의 빈틈을 비집어 또 질문을 던졌다.

    “계속 하실 생각이신가요?”

    “뭐 할 수 있는 데까진….”

    와삭와삭. 입안에 들어온 양상추가 아주 싱싱하다.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

    입으로 직행하던 포크가 도중에 멈췄다. 곤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유진에게 조언을 하고 있었다.

    “계속 버텨내기엔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감독님이 그런 말을 하세요?”

    “저는 이 일을 한 지 5년이 넘었습니다. 짧은 경력이 아니죠. 쉽게 발을 떼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저랑 별로 다르지 않은데요.”

    유진도 포르노 배우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었으니 피차 마찬가지였다.

    “유진 씨는 아직 스물다섯입니다. 새 시작을 하기에 충분하죠. 제가 그 나이였으면 뭐든 도전해봤을 겁니다.”

    ‘그러는 자기는 얼마나 나이 먹었다고.’

    유진은 이 레퍼토리를 언젠가 시청했던 한국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었다. 곤은 자기가 하는 일에 큰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다. 반대로 연차가 쌓여 누적된 아집이나 프라이드는 똘똘 뭉쳐있어서 그 불신의 방향을 남에게 돌려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곤에게 유진이 해 줄 말은 다음과 같았다.

    “감독님… 꼰대세요?”

    툭. 유진의 말에 곤이 들고 있던 포크의 소시지가 접시 위로 훌러덩 떨어졌다.

    *

    “하읏, 하아.”

    남성기가 구멍으로 들어왔다. 유진은 다리를 벌려 더 깊숙이 남자를 받아들인다. 그가 섹스를 행하고 있는 곳은 침대 위가 아니었다. 호텔이나 어느 숙소가 아닌 사건물, 무려 그의 소속사 빌딩 계단참에서.

    “준 씨. 다리를 좀 더 벌려봐.”

    “하으응.”

    섹스를 하고 있는 유진은 상대의 요구에 따라 다리를 뻗어 차가운 벽에 기댄다. 콘크리트 건물 벽에 닿아있는 얼굴과 가슴에 시린 기운이 퍼져온다. 그게 더 흥분을 끓게 하는 소재라 유진은 부끄러움도 잊고 비상문 바로 옆에서 은밀한 야외 섹스를 즐겼다. 유진에게 속삭이는 남자는 지난번 그와 같이 촬영을 했던 헨리다.

    “여기가 너무 뜨거워서 녹을 것 같아.”

    헨리는 다정하다. 그는 구강적인 페티시즘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이지 않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진득하게 빠는 걸 즐겼다. 따라서 유진은 그와 처음 잠자리를 가졌을 때 꽤 만족감을 느꼈다. 스쳐 지나가고 말 섹스 파트너라도 일에 파묻혀 근래 얼굴 한 번 못 본 남자보다는 훨씬 피부로 와 닿는 것이다.

    유진의 안쪽 살을 뜨겁다고 말해준 헨리가 두 사람의 열기로 녹기라도 한 것처럼 흘러내리는 애액을 생자지에 질컹 묻히고는 유진의 배 속에도 비벼 넣어주었다. 유진이 기꺼이 뻗어준 다리를 그는 또 도착적으로 빨아댔다. 무릎 뒤쪽에서 종아리로, 그리고 예민한 줄 몰랐던 아킬레스건을 손에 받쳐두고 주물렀다. 처음엔 어색했던 부위도 계속 애무를 받으니 성감대가 되었다.

    가릴 것 없이 비비적대는 두 하체가 폐쇄공간 안에서 적나라한 소음을 만들었다. 밖에서 하는 게 그다지 취향은 아니었지만, 유진도 유혹에 넘어가 본인이 먼저 즐기고 말았다. 그렇게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스릴을 맛보는 중에 유진은 정말로 알 수 없는 시선을 느꼈다.

    ‘뭐지?’

    기분 탓인가? 섬뜩한 생각이 드는 찰나 헨리가 밑에서 꾸역꾸역 자지를 박아 왔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뭉근한 돌진이 꼬리뼈 부근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하악!”

    “준 씨… 큭!”

    쾌감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유진은 잠시 생각을 멈췄다. 보다 자극적인 감각이 사고를 지배했다. 그러나 파도에 모래가 쓸려갔다 다시 밀려오는 것처럼, 열락에 잠긴 신체 한쪽이 자꾸만 싸했다. 정신이 점차 맨정신으로 돌아올 즈음에 위층 계단에서 다시 인기척이 느껴졌다.

    ‘기분 탓이 아니야.’

    유진은 몸에 번개가 치달은 속도로 고개를 홱 돌렸다. 계단의 위쪽에서, 이쪽을 몰래 훔쳐보고 있던 두 눈알과 시선이 마주친다. 훔쳐보기를 들킨 상대방은 빠르게 계단 위로 달아났다. 계단을 허겁지겁 올라가는 발소리가 들린 건 순식간이었다. 그제야 인기척을 알아챈 헨리도 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멈췄다.

    “주, 준 씨.”

    헨리가 유진의 눈치를 봤다. 유진은 차게 식은 얼굴로 위쪽을 형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 층 위에 누군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의 은밀한 섹스를 더욱 은밀하게 훔쳐보고 있었다.

    유진은 방금 전 눈이 마주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는 켄이었다.

    ‘젠자앙….’

    유진의 기분은 검은 돌덩이가 수직 낙하해 산산조각이 나듯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헨리는 유진의 표정을 보고 삐질거렸다. 애널을 채우고 있던 성기가 빠져나갔다. 두 사람 다 성기가 시무룩 죽었다.

    유진은 냉정한 눈으로 아랫도리를 쳐다보았다. 한참 좋을 때를 가고 있던 섹스가 포물선에서 주욱 미끄러지듯이 정점 근처엔 가지도 못하고 끝이 났다. 초장에 종친 구멍은 시리도록 허전했다. 헨리는 이것으로 유진과의 섹파 관계가 끝날 거라는 걸 직감했다.

    *

    조심성 없이 꼬임에 넘어가 아슬아슬한 야외섹스를 즐기다가 진짜로 들켜버린 유진은 기분이 무척 별로였다. 하필 들킨 상대가 켄인 게 문제였다. 상대가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이만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켄은 곳곳에 그에 관해 나쁜 소문을 흘리고 다닐 것만 같은 것이다. 현장 검거가 아니고서야 그에게 가서 직접 따지지도 못할 노릇이라 유진은 한동안 혼자 분을 삭였다.

    조심해야겠다. 그렇다고 인생의 기본 일과나 다름없던 잠자리를 잠정 중지할 만큼 유진은 금욕적인 인간이 아니었고, 그는 다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데에서 찾아봐야겠어.’

    회사 사람들과는 이제 잠자리에까지 가지 않는다. 남자가 필요할 때는 만남 어플을 이용해도 되는 거고. 하지만 그건 지난번처럼 또 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과 만날 가능성도 있으니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고 그는 게이클럽으로 향하기로 했다. 조쉬는 유진에게 몇 군데의 게이 플레이스를 가르쳐주었고 유진은 오늘 그가 추천해준 클럽 하나를 방문하려고 했다.

    게이 스트리트의 초입에서부터 서로 알만한 공기를 내포하는 흥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럴듯한 클럽 입구를 들어서니 휘황찬란한 스테이지가 있고, 뒤쪽으로는 비교적 얌전한 테이블이 보였다. 유진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괜찮은 파트너를 구할 생각이었다. 점잖으면서도 세련됐고, 매너에 대한 이해가 잘 통할 거 같은 괜찮은 남자.

    그런 곳에서 아는 사람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유진은 놀란 눈을 하고 류를 쳐다봤다.

    “류 씨?”

    “준?”

    바 앞의 복도에서 유진은 류와 마주쳤다. 류도 적잖이 놀란 얼굴로 유진을 쳐다봤다. 류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물론 유진은 좋았다. 혼자 있는 것보다야 나았으니까. 환한 얼굴로 인사하려는 유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류가 잽싸게 그를 데리고 구석으로 끌고 갔다. 한쪽 벽에 팔을 댄 류의 표정은 어쩐지 유진을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라뇨. 그냥 온 건데?”

    류가 캐묻는 것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유진은 그냥 사실 그대로의 답을 했다. 회사에서 야외섹스 하다가 직장 동료한테 들켜서 이젠 얌전하게 밖에서 사람 만나기로 했다는 세세한 뒷얘기는 줄였다.

    유진은 자기보다 키가 작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일부러 펌을 한 신경 쓴 머리. 멋을 낸 듯 앞머리가 세팅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시끄러운 머리의 주인은 유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류의 머리통이 자신의 가슴께에서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는 걸 보고 유진이 별생각 없이 물었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오셨나요?”

    “헉!”

    류는 들켜선 안 될 사실을 들키기라도 한 사람처럼 숨을 들이켰다. 유진은 제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류가 숨기고 싶어 했던 사람이 등장했다.

    “이거 준이 아닌가!”

    이번에는 유진도 류처럼 숨을 들이켰다. 저쪽 복도에서 걸어온 남자가 유진을 알은체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프 사장이었다. 아니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제프가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으로 남자들 사이를 헤쳐오고 있다. 그 나이 먹고 잘도 이런 클럽에 온다 싶은 비주얼이었다. 그만큼 혼자 아저씨였다. 원래도 낯짝 두꺼운 철면피 인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준 군을 이런 데서 보다니!”

    “아, 예….”

    나도 당신을 이런 데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라는 걸 유진도 말해주고 싶었다.

    “마침 잘됐어. 류도 있고, 우리 같이 한잔하지.”

    제프가 류를 툭 건드린다. 바짝 붙어있던 류의 몸이 유진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류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다. 마치 제 뜻대로 하지 못해 심통 난 어린이 같았다.

    “나랑 류 자리는 저기야.”

    그제야 유진은 ‘혹시’ 하는 생각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어쩐지 제프가 유진만 알은척을 하더라니. 두 사람이 같이 클럽에 온 거였군. 제프가 류에게 어깨동무를 하자 류가 안절부절못하는 눈치로 유진을 쳐다봤다.

    아하. 그걸로 유진의 심증은 더 짙어졌다. 유진이 류의 옆에 설 때 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유진을 불렀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파묻혀 처음에 유진은 그게 자신한테 하는 말인 줄 몰랐다.

    “나 여기 온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

    그런 뒤에 언제 불편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 류는 제프 사장의 팔에 답삭 안겼다. 사내 비밀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고 유진은 기가 찼다. 정확히 말하면 ‘제프 사장과’ 온 걸 숨기고 싶다는 의미겠지. 물론 유진이 류와 제프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할 일은 요원했다. 그러고 보면 류는 곤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그 진심은 모두 얄팍한 수준에 불과했던 걸까?

    “마침 위스키를 뜯은 참이었어.”

    역시 돈 많은 회사 사장답게 제프는 테이블 위에서 비싼 양주를 꺼냈다. 그의 어린 애인인 류를 끌어안은 채였다. 유진은 두 사람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우선 모른 척했다. 어차피 제프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 떨어지는 소속사 사장과 주말 직전 클럽에서 얼굴을 맞댄다고 한다면 누구나 고개를 흔들 게 분명했다. 다만 류와 함께인 데다 시끌벅적한 클럽에서 홀로 다닐 명분도 없어 적당히 한잔하다 자리를 비킬 셈이었다.

    “한 잔 주세요.”

    빨리 자리를 끝낼 생각으로 유진은 위스키를 들이켜는 두 사람과 잔을 부딪쳤다. 그런 뒤에 한 모금 들이켰다.

    “한 주 간의 피로를 푸는 데에 남자와 보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지.”

    제프가 히피한 흉내를 내며 농을 지껄였다. 목으로 위스키를 넘기는 유진을 쳐다본다. 옆에는 류를 낀 주제에 그의 눈은 아주 기름이 져 있다.

    클럽 안의 요란한 음악 소리는 아주 시끄러웠다. 유진은 위스키를 마시고 확 오른 취기를 식히기 위해 잠시 바 위로 어깨를 내렸다. 제프의 헛소리도 흘려들을 겸. 어쩐지 유진은 어깨 위로 노곤한 수증기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시끄럽던 노랫소리가 웅웅거리며 수면 바깥의 소리마냥 귓가를 맴돌았다. 유진은 그게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깐 눈을 감았다. 불행하게도 유진은 그 뒤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근육이 조금이라도 붙은 남자는 옮기기 무겁다니까. 류는 말라서 가벼운데 말이야.”

    제프가 늘어진 유진을 옮기면서 투덜거렸다. 순진한 희생양은 이번에도 제프의 덫에 걸려 그의 손에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낄낄대는 제프를 보고 류는 고개를 돌렸다. 제프의 자택 방 안에는 가지각색의 카메라들이 달려 있었다. 류도 일전에 와 본 적이 있다. 볼 때마다 기분 나쁜 공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술을 마시고 맛이 가 버린 유진을 제프가 침대 위로 내동댕이쳤다. 유진에게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린다. 유진의 티셔츠를 벗기다가 제프는 류에게 도움을 구했다.

    “너도 벗기는 것 좀 도와.”

    “몸만 커다래선….”

    류는 투덜투덜 의식 없는 유진의 바지를 벗겼다. 허리가 고무 밴드로 된 팬츠는 금방 류의 손에서 다리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바지를 벗기자 나타난 삼각팬티를 보고 제프가 웃어댔다.

    “오늘 완전 할 생각 만만이었구만, 이 자식.”

    “그러게요.”

    흰색 팬티 위로 불룩 올라온 윤곽을 보고 류는 조금 구미가 당겼다. 그런 류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아챈 제프가 입꼬리를 올렸다. 삼각팬티를 내리면 터럭 없는 사타구니가 나타난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꼴’을 보고 류도 신기한 듯이 중얼거렸다.

    “진짜 털이 하나도 없잖아.”

    “하여튼 밝히는 건 알아줘야 돼.”

    유진의 사타구니는 정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인지 솜털이 보송보송했고 불긋했다. 류는 묵묵부답으로 제프가 유진을 더듬는 걸 쳐다봤다. 류는 정신 잃은 유진을 제프의 집으로 데려왔을 때부터 영 시큰둥했다. 제프가 그런 류를 끌어당겨 엉덩이를 주물렀다.

    “준이랑만 놀아서 심심한 거야?”

    “난 안 끌어들이기로 했잖아요!”

    류가 제프의 손에서 팩 몸을 빼냈다. 제프와 합세해 유진을 덮치긴 했지만 류는 그의 소름 돋는 범죄 현장에 함께 인형 취급을 받고 싶진 않았다. 제프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뭐? 그래, 그럼.”

    제프는 입을 비뚜름하니 기울이고 물러섰다. 대신 그의 방에 수납돼 있는, 류가 흥미를 가질 만한 약 봉투를 가져와 손바닥에 털어놨다.

    “이거 준한테 줄까 하는데.”

    “뭐? 자는 사람한테 그런 걸….”

    류는 자신이 저걸 먹었을 때를 떠올리고 으스스한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제프는 유진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를 쳐다봤다. 뜨거운 밤을 보낼 생각이었던 만큼 깨끗이 정리한 애널이 제프에게 수줍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 밤을 제프와 보내게 되어 문제였지만.

    제프는 유진의 구멍을 벌려 그 안으로 약을 밀어 넣었다. 류는 저 악마 같은 약이 유진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걸 닭살이 돋은 채로 바라봤다. 알약은 곧 유진의 장벽 온도에 녹아 그의 몸 구석구석 스며든다. 순간, 구멍 안에 들어가 있던 제프의 손가락을 둘러싼 주름이 바짝 조였다.

    “봤어?”

    “어어….”

    류는 꿀꺽 침을 삼키며 유진의 항문을 쳐다봤다. 자고 있는 몸에서 애널이 꾸물거리며 들어온 것을 맛있게 먹었다. 제프가 손을 움직여 슬쩍 내벽을 벌리자 석류빛 도는 음부가 눈앞에 드러났다. 그걸 보려니 류의 눈가도 붉어진다.

    “크크. 류, 너도 좀 흥분한 거 같은데?”

    “아니야.”

    “아니긴.”

    새침하게 입을 다무는 류를 보고 제프가 낄낄댔다. 제프는 류의 앞에서 대놓고 자지를 꺼냈다. 류가 제프의 확장 자지를 본 건 여러 번이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프는 그 꼴을 류에게 단단히 보여줄 심산으로 벗은 유진의 몸을 붙잡고 구멍을 벌렸다. 두꺼운 허벅지에 가려 류는 그 결합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류는 그게 좀 아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마 변태같이 보여 달라고 말할 낯짝은 없었고.

    “으흣!”

    제프가 자지를 꽂는 동시에 유진의 입에서 달콤한 교성이 터졌다. 자고 있는 유진이 신음 소리를 내자 류가 화들짝 놀랐다. 그걸 보고 제프가 킬킬 웃었다.

    “약을 먹여서 감도가 한참 올라갔군.”

    “그런 거야? 깨면 어떡해?”

    “절대 안 깬다니까.”

    그러고선 제프는 유진의 몸에 자지를 박아댔다. 의식 없는 유진은 평소처럼 절제하는 기색도 없이 색스러운 교성을 막힘없이 뽑아냈다.

    “아항, 흥, 하아앗…!”

    “저번에는 이렇게까진 아니었는데… 후우, 완전 깨어있는 몸을 쑤시는 느낌인데.”

    적나라한 성교를 눈앞에 두고 류도 몸이 잔지진을 받아낸 것처럼 잘게 떨렸다. 구멍이 발씬거리고 엉덩이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다. 풀려있는 류의 눈을 보며 제프가 씨익 웃었다. 제프가 유진의 몸을 한 움큼 쥐고 허리를 털었다. 가느다랗고 듣기 좋은 교성이 유진의 입에서 터진다. 성감이 개방된 몸은 의식이 없는 중에 부드러운 새싹이 움트듯 요동쳤다.

    “흐응, 흥.”

    “류. 이리 와서 봐.”

    제프가 흔들흔들 유진의 몸속에 자지를 파묻고 뒤척이면서 류를 부른다. 류는 조용히 겁간당하는 유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프가 흐흐 웃는다. 깊은 수마에 파묻혀 있는 유진은 자지가 몸속을 뚫는 대로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었다. 류는 새삼 이런 짓을 저지르는 제프가 징그럽게 느껴졌다. 자고 있는 사람한테 삽입하다니. 더구나 약까지 받은 얼굴이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꼭 깨어있는 사람 같았다.

    “얼른.”

    제프가 다시 한번 재촉한다. 류는 엉금엉금 침대를 기어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제프의 두꺼운 허벅지 위에 얹힌 남자의 다리. 옹골진 근육으로 들어찬 유진의 탄력 있는 다리가 류의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이런 키 큰 남자한테 자지를 세울 생각이 든다는 게 류는 이상했다.

    “이런 게 좋아?”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몸이라고.”

    으음. 정말? 류의 시선은 유진의 다리 사이로 가 있었다. 달아오른 몸의 성기가 바짝 서 있었다. 훌쩍 커다란 몸에 잘 어울리는 크기의 페니스였다. 유진에게 달려있기엔 아까운 남근. 류에겐 구멍보다 그쪽이 더 흥미로웠다.

    유진의 성기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제프를 뒤로하고 류는 주섬주섬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제프가 피식 웃음을 던진다. 류는 유진의 허리에 걸터앉아, 발기한 유진의 자지를 손에 쥐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싸개들보다 큰데.”

    “본인이 구멍을 파줬으면 좋겠다잖아, 크.”

    탑을 맡은 배우들을 멸칭으로 부르는 류를 보고 제프가 키득거렸다. 류는 그대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제프에게 등을 보인 채 자리를 잡았다. 일어서 있는 유진의 자지를 한손에 쥔 류가 자신의 엉덩이 사이를 벌렸다. 그리고 그는 곧장 자고 있는 사람의 성기를 제 애널 속으로 파묻었다.

    “하응!”

    콧소리와 함께 작은 동물 같은 신음이 류의 입에서 터진다. 류는 조심스럽게 위아래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찹쌀떡 같은 것이 유진의 허리 위에서 쿵쿵 방아를 찧는다. 앞뒤로 공략당하는 유진의 신경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대로 유진은 잠든 몸에 치명적인 쾌락을 주입당했다.

    류가 유진의 위에 앉아 그를 따먹는 동안 제프는 유진의 뒷구멍을 따먹었다. 묵직하게 구멍을 채우는 느낌에 류는 다리를 꾸물거렸다. 이 사람, 나쁘지 않은데.

    “아앗, 응.”

    류는 그대로 유진의 상체를 지탱한 채 엉덩이를 위아래로 내렸다. 찰기 있는 애널로 직접 자지를 조여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제프는 뒤에서 그 뒤태를 음미한다. 밑으론 쫄깃한 구멍을 따먹고 눈앞엔 날씬한 몸이 방아를 찧는 모습을 감상한다. 몹시도 끝내주는 광경이었다.

    “뭘 혼자 즐겨, 이 음탕한 걸레가.”

    “하으읏…!”

    제프가 눈앞의 류의 엉덩이를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류가 미끄덩하고 유진의 위로 철퍽 내려앉았다. 자지가 통째로 구멍 안을 파고들면서 척추를 타고 오르는 감각에 류가 유연한 신음을 내질렀다.

    제프가 유진을 쳐올리면 류도 따라 허리를 움직였다. 육중한 제프의 반동이 유진의 몸을 덜컥이게 했으므로 류의 몸 안에 들어간 성기도 따라 내벽을 두드린다. 류는 제 아래에 있는 남자를 완전히 정복하는 수작에 동참하는 행위가 못내 즐거웠다. 앞뒤가 모두 극상의 쾌감으로 들러붙자 유진의 입에서는 타액이 턱 밑으로 흘렀다.

    “하앗, 으응….”

    “허억, 허억, 헉헉.”

    제프는 유진의 두 다리를 잡고 말을 모는 것처럼 그 몸을 몰아붙였다. 유진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터진다. 한 마리의 가축을 다루듯이 그의 우람한 자지로 제프가 유진을 몰았고, 가속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안장 위에서 류는 거꾸러졌다. 세 개의 자지가 귀두 끝에 열을 모아 물관을 발사시키는 순간 제프는 골에 다다른 경주마처럼 포효를 터뜨렸다. 류는 유진의 가슴을 지지대 삼아 엎드렸다.

    “흐아아아아앙!”

    “하아…!”

    “쿠오오오옷!”

    짐승처럼 얽힌 나체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액을 내쏟았다. 유진의 페니스는 류의 안에서, 류는 유진의 배 위로, 제프는 유진의 장벽을 충분히 채우는 농도 짙은 질량을 내뿜었다. 은밀한 유희의 성곽과 같은 제프의 자택 안에서 흥분의 소리는 거리낄 게 없다. 의식이 없는 유진의 입에서만이 가장 불분명한 소리가 나왔다.

    “허억, 허억….”

    제프는 열쇠 구멍에 꽂아두었던 키를 꺼내는 것처럼 사출을 끝낸 자지를 뽑아냈다. 그러자 유진의 구멍이 정액을 꿈질 흘리며 다시 오므라들었다. 그의 엉덩이에서 희끄무레한 좆물이 따라 나와 이불보를 적셨다. 회음부가 뽀얗고 맨들한 것이 꼭 어린애 피부 같았다. 음란한 주름이다. 다른 곳은 페로몬이 철철 넘치는 남자의 신체인 주제에. 자지 큰 서양인들이랑 굴렀으면 헐거워졌을 만도 한데 유진의 애널은 보기엔 아주 탄력이 있고 불긋한 것이 새것처럼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너도 넣어보는 게 어때.”

    유진의 다리를 붙잡고 제프가 류를 끌어들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류의 자지를 턱하고 잡아왔다.

    “박는 건 취미가 아니야.”

    “뒤에서 내가 박아줄 테니까, 응?”

    제프가 류의 성기를 은근히 주물러주며 꼬드기자 류는 못 이긴 척 유진의 다리 사이에 앉았다. 류가 성기를 세워 유진의 구멍 주름을 비볐다. 제프는 배부른 떡두꺼비 같은 포식자의 얼굴로 그 행위를 지켜본다. 귀여운 펫들끼리의 교미라니. 둘 다를 먹어치우고 싶은 탐욕이 제프의 안에서 들끓었다. 위험한 능욕을 당했던 유진은 약간 따끈해졌을 뿐 다시 평온하게 잠든 상태로 돌아왔다. 그 풀어진 애널로 류의 말랑한 성기가 삽입해 들어갔다.

    “으음.”

    유진의 뒷조임을 맛본 류가 낮게 신음했다. 그 뒤를 제프가 차지한다. 천천히 유진에게로 삽입하는 류의 엉덩이를 벌려 제프는 자그만 애널을 찾아냈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 구멍에 삽입하는 류가 그릉그릉 목을 울리는 동안 제프는 류의 구멍을 풀어주는 척하면서 그의 항문 안으로 약을 밀어 넣었다. 알약은 남자가 눈치채지 못할 만한 알량한 질량으로 속살에 파고들어가 체온에 사르륵 녹는다. 아주 비밀스러운 움직임으로, 제프는 그런 내벽 안에 성기를 삽입해 허리를 밀었다.

    “아아!”

    “준의 구멍은 어떤 거 같아? 자지랑 비교하자면.”

    제프가 류의 등에 제 몸을 포갠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뒤로 오는 감각에 류가 얼굴을 찡그린다. 세 사람은 샌드위치가 되어 문란한 성교를 하기 시작했다. 류는 유진의 성기를 구멍에 받아내기도 했지만 유진의 애널 역시 촉촉하고 감촉이 좋았다. 뒤로 약을 흡수한 류의 몸에 드글거리는 성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류가 눈이 풀려서 제프에게 작게 항의했다.

    “잠깐, 설마….”

    “허억, 헉, 헉.”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기도 전에 약에 익숙해진 몸이 곧바로 약발에 먹혔다.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낸 류의 몸을 제프가 들쑤셨다. 앞뒤로 낀 작은 남자는 낑낑거렸다. 약에 취한 류는 제프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는 애완동물이다. 흉기 같은 대물에 최상의 감각을 주기 위해 류가 스스로 엉덩이를 조였다.

    제프는 손쉽게 회사의 간판스타를 길들이고, 그의 또 다른 사냥감을 주무르는 일종의 파티에 취해 있었다. 그는 어리석은 남자들이 우스웠다. 이를테면 몸 판 값을 받고 싶어 포르노 배우를 지망해 제 발로 그의 덫에 굴러 들어오는 창놈들 말이다. 왜냐하면 텐위라는 GV 프로덕션은 제프의 성찬들이 진수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

    유진은 뒤집혀서 허리를 들고 있다. 얼굴은 침대에 짓눌려 있고 무릎으로 들고 있는 엉덩이 아래론 실 끊긴 인형처럼 팔이 힘없이 늘어져 있다. 그는 수면 중이었으므로 당연히 의식이 없었고 자세는 제프가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 옆으로 류 역시 나란히 엉덩이를 내민 채 누워있었다. 전시된 걸레들의 오밀조밀한 애널 중에 제프는 류를 골라 그에게 삽입한다. 류는 허리를 든 채로 바르르 떨었다. 류에게 기둥을 꽂는 동안 제프는 다른 손을 뻗어 옆에 세워진 유진의 엉덩이를 만졌다. 튼실한 살집이 은근하게 떡 같은 촉감이 있는 것이 갖고 놀기에 썩 괜찮았다. 제프는 유진의 둔부를 네 손가락으로 누른 뒤에 엉덩이 골을 열어 열린 애널 안으로 엄지손가락을 쑤욱 집어넣었다. 유진의 내벽을 엄지로 넓혀 비비며 그는 허리 아래로는 류의 구멍을 탐닉했다.

    “아항, 핫, 하앙!”

    “어느 놈이 더 구멍을 야들야들하게 잘 조이는지를 봐야지.”

    한참 류의 장벽을 찌르고 있던 자지를 남자가 잡아 뺐다. 그리고 단숨에 오른쪽에 엎드려 있는 유진의 엉덩이 안으로 자지를 들이밀었다. 넣자마자 유진의 몸에서도 애달픈 신호가 올라왔다. 한편 구멍이 허전해진 류는 긴 울음을 흘리며 침대 위로 애달프게 팔을 비볐다.

    “아아앙….”

    “헉, 헉, 헉.”

    중년남자는 두 구멍을 번갈아 따먹었다. 힘차게 자지를 쏙쏙 뽑아내며 다른 구멍으로 바꿔 넣었다. 자지로 귀여워해 주지 못하는 다른 쪽 구멍은 굵은 손가락을 세 개가량 끼워 넣고 내벽을 비벼주었다. 그러면 두 명 모두 자지러지며 제프의 아래서 신음을 흘렸다.

    “하아, 읏.”

    제프는 류의 애널에 처벅처벅 자지를 쑤시면서 한 손으론 유진의 구멍을 달래주고 있었다. 세 개의 손가락이 들어있던 구멍에 성급하게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으려고 하자 유진이 자고 있는 얼굴로 울먹이는 목소리를 냈다. 구멍이 머금고 있는 부피가 점점 커진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교성을 황홀하게 들으며 제프가 처박고 있던 허리짓을 빨리했다. 거칠어진 마찰에 류가 앙앙거렸다.

    곧 사정에 임박한 자지가 불뚝 부피를 키웠다. 어느 쪽에 정액을 싸줄까 고민하던 남자는 사정 직전에 류의 구멍에서 자지를 꺼냈다. 류가 긴 교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풀어져있던 유진의 구멍 안에 단숨에 자지를 짓찧었다.

    “크학-!”

    파들거리는 유진의 목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제프가 한껏 발기돼있던 자지로 그의 구멍 안을 가득 적셨다.

    “흐아아!”

    내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뜨거운 정액을 받아낸 유진이 한숨 섞인 신음을 토한다. 개발당한 몸이 정액을 내벽에 싸준 걸로 사정한다. 이미 유진의 다리 사이는 무거운 점액질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류는 옆에서 엎드린 상태로 자신의 성기를 흔들었다. 침대에 얼굴을 누르고 사정당하는 유진의 얼굴이 꽤나 류의 취향이었다.

    “뭘 얼빠져 있어.”

    제프가 축축 늘어진 자지를 유진의 항문에서 꺼냈다. 과격하게 쑤셔 넣느라 벌어진 구멍에서 물 같은 정액이 주르륵 떨어졌다. 좆물을 받지 못한 류의 구멍은 발씬거렸고, 유진 쪽은 주름이 오동통하게 부어있다. 제프는 두 엉덩이 사이에 서서 각각의 애널을 품평했다.

    “류 네 항문은 거뭇거뭇한 게 걸레 같고.”

    찰싹.

    “하앙!”

    “준 군은 새것 같지만 실제론 쓴 적이 많다는 게 흠이군.”

    류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프가 유진의 엉덩이 사이도 철썩 손바닥질을 했다. 한껏 부은 주름에 와 닿는 매질에 유진의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 구멍을 조였다. 결론은 유진의 애널이 더 먹음직스럽다는 얘기가 아닌가. 류가 씨근거리며 제프에게 항의했다.

    “너무하잖아!”

    숱한 포르노 촬영과 직접적인 삽입에 의해 벌려진 류의 구멍은 유진에 비해 조금 거뭇한 색깔을 가지고 있긴 했다.

    “내, 내가 더 잘 조일걸.”

    “어디 한번 볼까.”

    “으으응.”

    제프가 양팔을 뻗어 두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어느 쪽 조임이 더 좋다느니 하며 입으로 오물 같은 농을 뱉고는, 제프는 손을 빼낸 뒤 유진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 곁에서 약을 먹은 류는 애가 닳아서 제프의 자지를 빨기 시작했다.

    “매번 의식 없는 채로 따먹는 것도 아쉽고 말이야….”

    능욕한다는 사실이 그 누구보다 만족감을 주는 몸. 건장한 몸에 달린 커다란 가슴을 주무르며 제프는 후희를 즐겼다. 다만 벌써 수면의식을 치른 것도 두 번째이고, 그는 슬슬 리얼한 반응을 받지 못하는 능욕에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다. 더 자극적인 상황을 위해 세속에 찌든 늙은 뇌가 햄스터가 굴리는 쳇바퀴처럼 가열차게 돌아갔다.

    “좋은 생각이 났어.”

    “으응, 후웅?”

    밑에서 류가 모르겠단 눈으로 제프를 올려봤다. 제프는 품 안에 잠든 유진을 안고 음산한 생각을 했다. 어딜 만져도 반응하는 유진을 유린하며 그는 망상에 접어든다.

    *

    “여기 보십시오.”

    곤이 유진을 보면서 화면을 가리켰다. 유진의 시선은 곤의 손가락을 따라간다. 촬영 중에 카메라 앵글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 화면 속 유진의 얼굴을 가리키며 곤이 말했다.

    “카메라가 많으니 헷갈리실 수 있다는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근접 촬영자가 가까이 오면 그거 우선으로 봐주셔야 합니다.”

    “네.”

    “그리고 이 부분도.”

    곤이 몇 장면을 더 넘겨 유진에게 피드백을 해 준다. 같은 포르노여도 동양의 상업 포르노는 미국과 좀 다른 면이 있었다. 유진은 얌전히 곤의 코칭을 듣다가 몰래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피곤해요?”

    약간 느슨해진 눈으로 곤이 물었다. 허리를 몰래 마사지하던 것을 들킨 유진이 멋쩍어 웃었다.

    “요새 자꾸 몸이 뻐근하네요.”

    “건강 챙기세요.”

    곤은 유진을 진심으로 측은한 듯이 쳐다봤다. 그 정도는 아닌데…. 유진은 졸지에 허약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지난번에 이거 물어보셨죠.”

    곤이 인터넷 창을 하나 켰다. 살색이 난무하는 부끄러운 포르노 사이트가 컴퓨터 화면을 채운다. 유진에게는 매일 먹는 도시락마냥 아무 감흥 없는 비주얼이었다. 필시 곤에게도 그럴 것이고. 그런 곤도 아무렇지 않은 눈치로 사이트에서 유진의 이름을 검색한다.

    “유진 씨 영상 올라가 있는 거 보이시죠.”

    “네.”

    “웹 버전용 영상은 조금 다릅니다.”

    “아, 그건 몰랐습니다.”

    일전에 유진이 이것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비디오로 발매된 게 또 인터넷에 유출돼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곤은 유진을 불러 그가 쌓아놨던 지식들을 알려주었다.

    “수익 나오는 건 동일합니다.”

    “그렇군요.”

    곤은 앉아있던 자세를 틀어 의자를 반 바퀴 돌렸다. 편집실 안에서 곤은 유진과 마주 보았다.

    “요즘 세상에 비디오만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리 없겠죠.”

    “그럼 실물 상품을 내는 이유가 없지 않나요?”

    “매니아들은 사니까요. 포르노 배우에게도 팬이란 게 있거든요.”

    흥미롭다. 미국에 있었을 적 포르노 스타란 단순히 그의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라이더가 그랬고, 로메오가 그랬다. 어린 시절 봤던 아마추어 캠 사이트에서 특정 채널에 미친 듯이 사이버 코인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교하자면 그런 사람들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보너스 영상이나 특전을 얻기 위해 일부러 비디오까지 사는 이들은 유진은 잘 알 수가 없었다.

    유진은 레이와 얘기했던 일정 중 하나를 생각했다. ‘팬 사인회’란 것에 대해서다. 그리 한다니 따르는 거지만 유진은 아직까지도 제 이름을 걸고 사인회를 진행한다는 게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런 곳에 오는 사람이 진짜 있단 말인가. 야한 비디오를 사서, 영상 속에서 옷을 벗고 섹스하는 나체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기 위해 달려오는 사람이.

    “물론 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곤 볼 수 없겠죠.”

    곤도 유진과 비슷한 생각을 하긴 하는지 비슷한 가닥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쩌면 곤이 그런 유형의 사람들과 가장 거리가 먼 인간일지도 몰랐다. 자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 거죠, 뭐’ 하고.

    편집실 안에 있는 낡은 벽시계가 초침 소리를 냈다. 까딱까딱. 그리고 유진은 기다렸다. 곤이 자기를 부른 진짜 이유를 말이다. 바쁜 사람이 자신을 망태기 포장하듯 데려와 놓고 잔잔한 애피타이저 같은 얘기만 늘어놓길래 유진은 본심이 뭔가 하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대충 하려는 말은 예상이 갔다.

    “유진 씨.”

    귓가로 낮은 음성이 꽂혀 들어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물론 곤이다.

    “그때 한 말 말입니다.”

    유진은 다소 편안한 자세로 곤을 바라봤다. 그때. 모른 척하려고 해도 둘 사이에 있던 일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유진은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참으려고 해도 유진의 입술이 물결을 치고 말았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곤은 눈썹산을 만들어 혼자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어를 만들기 전에 이를 무는 입술로부터 고뇌가 느껴졌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제게… 꼰대라고 하신 거요.”

    유진은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꾸역꾸역 참았다. 그 팩트 폭력은 역시나 이 남자에게 적잖이 충격이었을 게 분명하다. ‘꼰대’라는 단어를 말하기 전에 곤의 입매로 느껴지는 잔떨림을 유진은 분명히 보았다. 곤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끄응 하고 침음을 삼켰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곤은 기어코 내내 신경 쓰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단호한 눈빛으로 유진을 쳐다봤다. 힘을 주는 말투는 평소와 같았으나 유진에게 큰 신뢰를 심어주진 못했다. 유진은 여상하게 대답했다.

    “네, 압니다.”

    “알아요?”

    “네.”

    “…….”

    곤은 눈을 빛내 자신의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를 서둘렀다. 그러나 유진은 ‘그럼….’으로 시작되는 상대의 어두를 딱 자르며 껴들었다.

    “그래도 그 말은 취소하지 않을래요.”

    “왜요?”

    단호한 기색을 지우려던 남자가 순간 얼빠진 사냥개처럼 물었다. 그리고 곧 눈썹의 기울기를 바꿔 단호하게 말한다.

    “저는 유진 씨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또 봐, 또. 저게 그거라니까.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유진은 마음에 스크래치를 입었고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도 않았다. 유진은 우선 곤이 가지고 있는 착각부터 정정해 주었다.

    “저는 이 일에 별다른 사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걸 들은 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는 마치 어린 학생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진은 결국 조금 웃고 말았다. 곤은 유진이 웃어버리자 더는 나아가지 않는 대화를 이어나가길 포기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이 일에 사명감 같은 걸 가질 필요는 없다. 유진은 곤의 생각을 잘 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명분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지. 떳떳하지 못한 일을 일답게 다루려는 고집 같은 것 말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쳇바퀴를 구르기 위한 동력을 애써 만들면, 그게 무너지고 난 뒤엔 어떻게 또 쳇바퀴를 굴러나갈 수 있겠는가 이 말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걸 생각해야지. 유진은 아직 그걸 깨닫지 못한 곤이 아주 어리게 느껴졌다.

    “누구지?”

    볼일을 끝내고 나가려니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유진이 문밖을 훔쳐보며 중얼거렸다. 편집실 앞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와, 젊은 남자 여럿. 시끄럽게 떠들며 존재감을 비치는 걸 보니 회사 내에 서식하는 기운 없는 직원들은 아닐 테고. 곤이 유진의 뒤로 와서 잠자코 그들을 쳐다봤다. 유진이 물었다.

    “누군지 아세요?”

    “아뇨.”

    바로 대답이 나온다. 곤의 눈이 한순간 좁아졌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상태로 돌아왔다. 유진은 사람들 무리와 마주치기 싫어서 문 뒤에서 가만히 타이밍을 기다렸다.

    *

    호성적이 폭발적인 입소문의 힘을 입으면 대박이 된다. 유진이 그런 케이스였다. 유진의 얼굴이 아시아에서 먹힐 거라는 전 소속사 사장의 판단은 아주 정확히 들어맞았다. 미남들을 소개하는 여성 소셜에 우연히 유진이 한 번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유진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저 남자는 누구길래 저런 얼굴로 포르노를 찍냐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얼른 유진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진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포르노 스타였으며, 바다를 건너와 새로운 네임으로 데뷔해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유진의 얼굴은 그 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딱 알맞은 상이었다. 취향을 저격하다 못해 과녁 정중앙을 냅다 꽂아 관통하는 수준이었다. 기본적으로 얼굴이 훌륭했다. 눈매가 깊고 인상이 부드러웠는데 군살 없이 키까지 컸다. 그런 그가 무려 게이 장르에서 하드코어 포르노를 찍고 있었으니 수면 아래에 있던 잠재적 소비자들의 판타지를 깨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미남의 능욕씬을 음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곤의 말이 맞았다. 유진을 열성적으로 좇는 여성 팬들이 늘어났다. 매니아들은 유진의 비디오를 기꺼이 샀으며 발매 전인 두 번째 DVD도 몇 장씩 예약구매를 걸었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유진이 조셉 카버였을 시절의 동영상을 서로 교환했다. 연도와 컨셉별로 카테고리를 정리해 유진의 포르노 필모그래피를 감상하는 이상한 족속들이었다. 고객들은 유진의 출시작이 하나밖에 없는 데에 아쉬워하며 상상력을 전개해 그를 수면 위에서 음란하게 핥고 주물렀다. 어서 다음 작품을 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게이 포르노 배우가 잘생겼다는 이유로 화제가 되고 있자 그에게 욕을 던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이야기였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 유진은 이 일을 한 지 너무 오래됐다. 설령 귀에 들어간다 한들 유진의 심성도 원체 무던했다. 일찍이 조셉 카버를 알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만이 혼자 알고 있던 음지의 배우를 이제는 모두가 알게 돼서 슬프다는 한탄을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일부의 이야기이다.

    원래도 기존 소비자들이 있던 첸 준에게 새로운 소비자층까지 생기자 유진의 업계 내 위치는 매우 달라졌다. 그는 하루아침에 이 나라의 유명한 포르노 스타가 되었다. 텐위는 물 들어올 때 빨리 노를 저었다. 유진은 소속사와의 계약을 수정했고 작품 편수를 추가해 다시 계약했다. 이런 이슈는 보통 단기적인 현상에 불과했으니 배우도 짧은 기간 내에 다작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회사가 본격적으로 프로모트하면서 유진의 일정이 갑자기 늘어났다. 팬 사인회부터 화보 촬영과 인터뷰까지, 유진은 생전 겪어본 적 없는 이벤트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는 이제 확고한 텐위의 간판 스타였다. 그렇다는 건 유진이 더 이상 곤의 아래에만 있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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