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01.
텐위 GV 프로덕션은 남자가 등장하는 게이 포르노를 찍는 회사이다. 사장 이름은 제프. 본명은 따로 있지만 아저씨 주제에 멋들어진 별칭을 쓰고 있다. 회사의 대표 감독이기도 한 제프는 먼 미국에서 날아온 공문을 보다가 물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사장님.”
제프의 조수인 레이가 사장실로 들어왔다. 레이는 제프가 들고 있던 공문을 눈으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보셨습니까? ‘인터널칵스’에서 소속 배우를 보낸다는….”
“아아. 마침 보던 참이었어.”
제프가 책상 위로 서류를 올려놨다. 종이 위에는 무뚝뚝한 표정을 한 동양 남자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쌍꺼풀과 눈썹이 짙어, 이목구비는 뚜렷하지만 전체적으로 여린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다.
“인터널칵스도 한창 잘나가던 회사였는데 말이야.”
“사장이 약에 미쳐서 사들이다가 도산했다죠.”
그 찝찝한 회사에서 텐위로 배우가 한 명 전입해온다. 그것도 한국계. 하지만 국적은 미국인, 생판 외국인이었다. 제프와 레이는 함께 서류를 들여다보며 이번에 새로 온다는 한국인 배우의 얼굴을 보았다. 얌전해 보이는 증명사진 뒷장에는 바로 성교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어진다. 포르노 배우의 포트폴리오에 부착되는 촬영 샷들이었다. 백인 남자에게 팔을 붙잡혀 삽입 당하고 있는 적나라한 사진도 있었다. 달아오른 얼굴을 한 바텀 배우를 보며 제프가 말했다.
“이름이 조셉 카버…. 본명은, 흠. 한국 이름이잖아? 김유진이라고 읽는 거 맞나? 나이가 스물다섯이면 너무 많은데.”
“그래도 얼굴은 좋은데요.”
사진 속 얼굴은 남성적이면서도 그늘진 눈매가 요염한 인상을 줬다. 텐위에 소속된 현역들 중에 이만한 얼굴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포르노 배우를 하기에는 아까운 A급 외모였다. 당장 연예기획사로 들어가 배우를 해도 되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서구권보다는 아시아에서 더 먹힐 만한 외모지 않습니까? 특히 여기 사람들이 좋아할 페이스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놓치기에는 아까운 것 같습니다.”
레이는 김유진에게 꽤 좋은 인상을 받은 모양인지 긍정적인 말을 했다. 포르노 소비자들은 누구보다 비주얼적인 요소에 환장하는 이들이었다. 현역 배우들 중에 이만한 얼굴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언제나 괜찮은 얼굴의 배우가 나타나길 고대하는 고객들에게 김유진은 꽤 괜찮은 상품일지도 몰랐다. 제프는 조금 고민을 했다. 월별 실적을 떠올리던 그는 곧 결심한 듯이 말했다.
“좋아, 미팅 한번 잡아보자고.”
“예, 일정 체크할게요.”
“레이, 물론 너도 오는 거다.”
“당연하죠.”
“아참, 그리고 촬영감독 중에도 한국인 하나 있잖아?”
손가락을 접어가던 제프가 말을 꺼냈다. 레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텐위 프로덕션에 소속돼 있는 유일한 한국인 감독. 배우들의 추파를 많이 받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그의 재수 없는 잘난 얼굴을 떠올리며 레이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 그분이요….”
“말 통하는 사람은 있어야 할 거 아냐. 이 사람 분명 한국계고, 곤, 그 녀석이랑 말 통할 것 같은데? 당장 전화해서 미팅 통역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레이는 겉으론 웃어 보이며 사장실을 빠져나왔다. 벽에 등을 기댄 레이가 이마에 핏줄을 세운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곤 씨? 나 레이인데.”
*
유진이 아시아에 온 건 처음이었다. 처음 밟아보는 낯선 땅에서 무려 포르노 회사 건물 앞에 서 있다는 게 그는 믿기지 않았다.
‘정말 미안하게 됐어, 조셉.’
무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유진은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그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인터널칵스의 본사에서 유진은 사장과 독대 중이었다.
‘네가 받아야 할 돈이 더 많은 건 알고 있어.’
사장이 돈을 건넸다. 액수는 3천 달러였다. 월급이 밀리는 동안 몸 굴렸던 보수에는 다소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유진은 미련 없이 스티브에게 그 돈을 받았다. 멋모르던 갓 성인 때 유진을 거둬 자위 영상부터 찍게 했던 중년 남자. 그래도 포르노 업계 사람치곤 꽤 인간적으로 유진을 대했다.
‘회사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건 너도 알지?’
지금은 마약에 찌들어 다 죽어가고 있었지만. 유진은 곰팡이가 돋은 스티브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가 어렵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스티브는 마약에 손을 대다가 기껏 키운 회사까지 날려 먹었다. 회사래 봤자 남자들 벗겨다 섹스하는 걸 찍는 그렇고 그런 포르노 기획사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이름을 날린 적도 있었다.
유진은 꽤 오랫동안 인터널칵스에 몸을 담았다. 그는 포르노 배우였다. 그런데 회사가 망했다. 돈을 벌려면 섹스 비디오를 찍어줄 프로덕션을 찾아야 했다. 다른 배우들은 일찍이 다른 기획사를 물색했다. 하지만 유진은.
‘나도 꽤 고민을 했어. 넌 인터널칵스가 아니면 안 팔리니까.’
동양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매니아용 컨셉 비디오가 아니면 잘 안 팔렸다. 그리고 인터널칵스는 그 장르를 취급하던 유일한 포르노 제작사였다.
‘아시안 배우에 관심을 가지는 회사가 한 군데쯤은 있겠죠.’
‘여기 말고 다른 나라는 어때?’
‘다른 나라요?’
예상치도 못한 화두에 유진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농담이 아니었나 본지 스티브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포르노 산업이 제일 발달한 곳은 동아시아지. 게이 포르노 쪽은 좀 그렇지만… 어쨌든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있는 곳이거든.’
유진은 생전 가 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야동 배우를 하라는 게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스티브는 꽤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가며 유진을 설득했다.
‘네가 그냥 아시아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너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꽤 잘생겼지. 몸도 좋은 데다 화면발도 잘 받아. 영상에선 그 프리티 페이스가 더 돋보이거든. 하지만 그만한 인기는 없어. 왜일까? 나는 네가 먹히는 시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
‘…….’
‘그곳에 있는 내 친구에게 네 사진을 보내줬어. 당장 이리로 오라고 하더군. 딱 그네들 취향이라고 말이야.’
유진은 한 달 한 달 살 뜯기듯 나가는 집세를 떠올렸다. 그리고 갖고 싶지만 포기해야 했던 유명 브랜드의 스니커즈 시리즈들도. 유진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쪽에서 숙소도 제공해주겠다고 했어. 협상만 잘 해 본다면 계약금도 괜찮게 받을지도 몰라. 여기서 다시 굴러봤자 나이 든 아시안 게이밖에 더 되겠어? 차라리 뉴페이스로 시작하는 게 낫지.’
유진은 스티브의 말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사실을 직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 벌어둔 돈마저도 빚을 다 갚고 나니 수중에 남는 게 없었다. 한탕 챙기고 떠나는 판. 이 나이까지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외국으로 떠나. 네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사장에게 소개서를 써 주겠어.’
그렇게 유진은 머나먼 동아시아로 떠났다. 유진은 지금 저가 이곳에 와 있는 게 잘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스티브는 중개료로 중간에 받아먹은 게 있을 거다. 그래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여기에 보내려고 수를 썼겠지. 일단 미팅만. 미팅만 한번 해 보는 거다. 그리고 정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가고.
“어서 오세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인사를 받으며 유진은 긴장한 채 미팅룸에 들어갔다. 손님을 맞이하며 제프와 레이는 새로 온 신입 배우를 눈으로 훑었다.
‘이야, 몸 좋네.’
달라붙는 검은 반팔에 청바지. 일자로 떨어지는 어깨 밑으로 벌어진 가슴에 당장 시선이 갔다. 기본 중의 기본인 이 룩으로 태를 내는 사람을 본 게 얼마 만인지. 유진의 실물을 확인한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다. 유진은 머뭇거리다가 ‘앉아도 될까요?’ 하고 물었다. 레이가 얼른 유진을 의자로 안내했다.
텐위 프로덕션의 두 사람과 유진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마주 보고만 있었다. 서로의 나라말로 통하지도 않는 인사를 주고받은 게 몇 분 전이었다. 그 뒤로 말을 이어가야 하는데.
“웨이트, 웨이트 플리즈.”
통역을 담당하기로 한 사람이 안 온다. 제프는 난처한 얼굴로 유진에게 양해를 구했다. 유진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일단 기다려야 하는 듯 보여 잠자코 있을 뿐이다. 제프는 고개를 돌려 레이를 향해 폭발 직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이는 억울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진작 와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공기가 점점 무거워질 즈음, 미팅룸의 문이 벌컥 열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약속에 늦은 사람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선 제프 사장의 옆에 떡하니 앉았다. 그리곤 뻔뻔하게 테이블 위에 준비해놨던 차까지 들이켰다. 제프는 일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레이는 따지고 싶은 걸 참고 유진에게 남자를 소개했다.
“히 이즈 코리안.”
유진은 눈앞의 남자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으로 마주했다. 한국인이라고 소개받은 남자가 찻잔을 내리며 유진을 똑바로 쳐다봤다. 유진은 솜털이 삐죽 서는 게 느껴졌다. 남자다운 눈썹 밑으로 누구든 개의치 않고 오만하게 쳐다보는 눈빛. 체격이 좋아서 더 야성미가 넘쳤다. 그러니까 유진이 이렇게 구구절절 감상을 늘어놓는 이유는.
‘잘생겼다.’
완벽한 그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별 소개도 없이 들이닥친 남자는 가타부타 않고 유진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부모님의 언어에 유진이 떠듬떠듬 대답했다.
“예? 예.”
“다 좋은데 키가 웬만한 탑 배우들보다 클 것 같네. 한국인이라 그런가? 아니면 미국에서 자라서일지도 모르겠고. 이 바닥에선 얼마나 일했습니까?”
“예?”
[포르노 배우 한 지는 얼마나 됐냐고요.]
남자는 영어로 질문을 바꿔 물었다. 유진도 반사적으로 영어로 대답했다.
[성인 되고부터 했습니다.]
[찍은 건 그 전부터겠네.]
[…….]
멋대로 단정 짓는 말에 화를 내야 했지만 유진은 그냥 말없이 있었다. 옆에 있던 제프가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해하며 물었다.
“곤. 무슨 얘길 한 거야? 우리한테도 설명 좀 해줘.”
“사장님. 얘 팔릴 것 같아요?”
“응? 무슨 소리야. 당연히 먹히지. 저 얼굴이 옷 벗고 깔려주는데 여자 고객부터 혹하지 않겠어?”
곤은 들고 왔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의 노트북으로 향했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포르노 사이트가 나왔다. 유진도 익숙하게 아는 웹사이트 홈에서 곤은 영상을 하나 틀었다.
“나이도 많고, 이미 깔 것도 다 깠고.”
“이봐, 곤. 당사자 앞에서는 좀….”
곤이 재생시키고 있는 건 무려 유진의 영상이었다. 유진은 화면 첫머리에서 나오는 익숙한 자신의 누드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곤 옆에 있던 프로덕션 사장이 유진의 눈치를 보고 헛기침을 했다. 배우 앞에서 출연작을 대놓고 재생시키는 기행에 유진은 눈만 어리벙벙하게 떴다.
“뭘 셀링 포인트로 잡고 재데뷔시키냐, 이 말이죠. 심지어 말도 못 하는 외국인 데리고.”
영상 속에서 유진은 다 벗은 채 엉덩이를 스팽킹 당하고 있었다. 무력하게 엎드린 하얀 몸을 탑들이 돌아가며 거칠게 때렸다. 끈으로 조여 올라붙은 엉덩이가 흔들리다가 금방 빨갛게 변했다. 영상 초반부터 후반까지 하드한 플레이 컨셉을 잡은 SM 포르노물이었다. 영상 후반에서 유진은 무릎을 꿇은 채 푸쉬 기능이 있는 딜도로 강제로 삽입 당하며 탑의 자지를 오랄했다.
“그만큼 더 좋은 거지. 아는 만큼 우리 측에서 요구하기도 편하니까. 자기도 제 주제를 알지 않겠어?”
“전 약간 미심쩍어서요.”
유진을 앞에 두고 곤과 제프가 자기들만 아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유진은 눈을 굴리며 텐위의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선을 느낀 제프가 먼저 곤의 노트북을 덮었다. 만면에 미소를 그린 제프가 유진과 의사소통하려고 애썼다.
“돈 마인, 돈 마인. 위 저스트 와치 유어 비데오.”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먹을 텐데.”
“하하, 이 자식.”
제프는 얄미운 소속 직원의 목을 팔로 꽉 조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네 말도 이해했어. 계약서 쓸 때 고려할게.”
“예.”
제프가 곤을 놔주고 본격적으로 일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제프가 말을 하면 곤이 듣고 이를 유진에게 한국어로 전달하는 식이었다. 가끔 제대로 전달이 안 되면 영어를 섞어 쓰기도 했다. 곤이 중간에 초를 칠 뻔해서 그렇지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잘 흘러갔다. 계약에 대한 이야기나 업계 사정, 주의사항들을 경청하며 유진은 던져지는 질문들에 대답했다.
유진은 서양과 동양의 포르노 촬영이 어떻게 다른지 대충 알고 왔다. 그는 이곳 업계가 흔히 요구하는 비위 상하는 컨셉물들을 전부 찍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 점을 제프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갱뱅물 같은 걸 찍을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까?”
“전 건강만 해치지 않으면 됩니다.”
유진도 자위를 하기 때문에 야동 사이트에서 아시아 쪽 영상물을 본 적도 있었다. 어차피 초짜도 아닌 이상 유진은 자기가 뭘 찍게 될지 알았다. 하드코어 포르노 배우가 몸 건강을 운운하는 점이 웃기긴 했지만.
“왜 여기까지 와서 포르노를 찍으려고 하는 겁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곤은 제프의 질문을 전달하면서 유진을 예리하게 쳐다봤다. 연고지도 아닌 나라에서 포르노를 촬영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궁금했다. 의도를 떠보는 회사 사람들에게 유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거기서 잘 안 팔렸거든요.”
유진이 떠난 사무실에 제프와 곤만이 남았다. 프로필용 사진과 영상 촬영 스케줄만 잡고 1차 미팅이 끝이 났다. 인터널칵스 쪽 대리인이 내방할 때까지는 당분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배우를 데리고 씨름을 해야 할 것이다. 제프도 중고배우의 재데뷔가 얼마나 성과를 내겠나 싶었지만 유진의 얼굴을 놓치기 싫었고, 곤은 통역을 떠맡은 탓에 거드름 정도는 피우고 싶었다.
곤은 턱을 괴고 앉아 방금 전의 남자를 가만히 되새겼다. 깔끔한 목소리로 얌전하게 대답하는 미남. 포르노 배우로서는 직업의식이 잘 박혀 있는 사람이다. 외국인이라고 문제 일으킬 여지는 없어 보였다. 영상 속에서 신음을 내지르던 유진을 떠올리자 곤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까 그 얌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야한 얼굴로 유진은 화면 안에서 섹스하고 있었다. 포르노 찍던 경력으로 곤은 유진의 소재를 꿰뚫었다. 그 남자는 말하자면 타고났다.
‘왜 안 먹혔을까?’
입으론 까탈스럽게 평가질해놓고 곤은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텐위 건물을 나서면서 유진은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낯선 이들과 잘 얘기를 마친 듯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곤 때문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친절하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걸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유진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던 남자. 생각해 보니 그는 한국인이었다. 곤이 있어 유진은 무리 없이 프로덕션 사람들과 의사소통했다. 유진이 이 나라 말을 할 줄 몰랐으므로 곤과 보게 될 날이 많을지도 몰랐다.
‘그 사람은 배우가 아닌가?’
사장 옆에서 업무 얘기를 할 정도면 배우일 리는 없었건만 유진은 괜스레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참고하려고 봤던 아시안 게이 포르노 어디에도 그처럼 생긴 남자는 없었다. 배우보다 잘생긴 직원이라니. 유진은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타지에 도착한 유진은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었다. 돌아와 핸드폰을 켜보니 스티브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거기도 잔뼈가 굵은 곳이야. 이상한 생각 말고 여기서 했던 것처럼 해>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자신이 소개한 일이니 트러블 일으키지 말라는 스티브의 속뜻을 이해하고 유진은 피곤에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이제 스티브는 유진의 소속사 사장이 아니었다. 그도 인터널칵스의 배우가 아니었고. 텐위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되면 언어도 배워야 할 거고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계약이 성사된다면 말이다. 내일 하는 촬영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유진의 운명이 달라진다. 텐위 쪽에서 괜찮다고 판단하면 유진은 스티브에게 귀띔 받은 정도의 계약금을 받고 계약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돈이면 미국에서 살았던 집 월세를 1년 넘게 낼 수 있고 남은 돈으로 원하는 것도 맘껏 살 수 있었다. 유진은 조금 긴장이 됐다. 이 업계에 발을 들였던 그때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뉴페이스로 돌아간다.
유진도 상당히 각오를 하고 왔다. 그도 낯선 환경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게 편한 건 아니었다. 유진처럼 미국에서 포르노 배우 활동을 하다가 이곳에 온 아시아계 배우가 있다고 들었다. 유진은 모레 그와 만나기로 했다. 그래도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만날 수 있어 안심이 됐다.
그리고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와 어떻게 해보겠단 생각은 없다. 그래도 취향을 저격하는 이상형을 만난다는 건.
‘…음.’
멍하니 생각하며 유진은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곤은… 게이일까? 뻣뻣한 청바지가 움직이기 불편해 그는 곧 하의를 완전히 탈의해버렸다. 매끈한 다리를 뻗어 한 손은 이마에 얹은 채 유진은 아랫도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유진은 포르노 배우였지만 동영상을 보면서 자위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성욕을 배출할 때 동종업계 현장을 보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진은 누군가의 벗은 몸을 상상했다. 상대는 남자였다. 게이 포르노 배우들 중에는 남자가 취향이 아니어도 돈을 벌려고 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진성 게이였다. 그는 자위를 할 때 남자를 생각했다. 유진은 성기를 흔들면서 성감을 끌어냈다. 자신의 취향인 시크하고 냉한 미남을 상상하며.
“읏.”
빳빳이 선 걸 위아래로 흔들다가 유진은 고환 아래 회음부를 손가락으로 비벼댔다. 그러면서 그는 곤을 떠올렸다. 어차피 혼자 손장난하는 건데 죄책감 느낄 필요도 없었다. 유진의 상상 속에서 곤은 맨몸이었다. 쪼개진 근육 위에는 탄탄한 상박근이 자리 잡혀 있었다. 실제 그의 벗은 몸을 본 건 아니었지만 일단 유진의 취향대로 머릿속에서 그리는 중이었다. 곤은 유진의 시선 위에서 허리를 움직였다. 그의 사타구니는 유진의 하반신과 맞닿아 있었다.
“하아.”
유진은 회음부를 비비던 손가락을 더 밑으로 내려 애널 주름을 눌렀다. 물기를 머금은 구멍이 ‘꿀쩍’ 하고 벌어졌다. 유진은 뒤를 쑤시고 싶었지만 내일 촬영을 위해 참기로 했다. 어떤 촬영을 하게 될지 몰랐으니 가능하면 흔적을 내지 않는 게 좋았다. 곤을 반찬 삼아 한 발 빼고 유진은 고르게 숨을 쉬었다. 자위를 하고 나니 노곤하게 밀려오는 수마에 눈꺼풀이 내려왔다. 내일 있을 촬영을 위해 그는 한숨 푹 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목욕재계를 하고 유진은 텐위로 향했다. 안내받은 촬영실로 들어가니 이미 사람들이 와 있었다. 사장인 제프와 또 다른 사진기사, 그리고 어제 봤던 곤 씨였다.
“안녕하세요.”
유진이 인사를 하자 제프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맞아주었다. 그는 익숙하게 실내를 세팅하고 있었다. 촬영을 담당하게 될 사람은 어쨌든 그럴듯한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곤은… 그냥 앉아있었다.
“오늘 찍은 건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가고 다른 배우들처럼 프로필로 뜰 거예요. 어차피 다 아시죠? 별거 아니니까 긴장 풀고 릴랙스 하세요.”
촬영기사가 외국어로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유진은 거기서 긴장하지 말라는 뉘앙스를 알아들었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워하고 왔다는 유진에게 제프가 새 브리프를 건넸다.
“유진 씨, 속옷만 남기고 전부 다 벗어주세요.”
포르노 배우 프로필이란 게 으레 다 그렇듯이 홀딱 벗은 누드 사진이다. 시청자들에게 초이스 당하기 위한 에로 사진과 영상들을 찍는 거였다. 곤이 유진에게 통역을 전했다. 그리고 유진은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쯤에야 유진은 촬영현장에 곤도 함께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현장 스태프라는 걸 알고 유진은 조금 당황했다. 아주 의외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곤과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알고 나자 얼굴이 홧홧해졌다. 유진은 동봉된 삼각팬티를 받아들고 탈의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걸 본 곤이 말했다.
“여기서 갈아입어요.”
“여기서요?”
보통 같으면 촬영 전에 샤워를 하면서 갈아입을 텐데. 오늘은 간단한 프로필 촬영인지라 유진이 먼저 단장을 하고 와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곧 다 보여질 거 빨리 끝내자. 그리 생각하며 유진은 얇은 티셔츠를 벗었다. 불편하게 실내에서 탈의하는 유진을 보고 제프가 곤에게 물었다.
“샤워실 옆에 있잖아? 왜 안 알려줘?”
“빨리빨리 해야죠.”
곤은 시큰둥하니 대답했다. 곤은 의자에 앉아 유진이 하나하나 알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통역 역할이었기에 할 일이 딱히 없었다. 유진은 곤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말 그대로 에로 사진을 촬영하기 직전에 원시적인 모습이 되어가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거였다.
위아래를 다 벗은 유진은 마지막으로 속옷을 벗을 차례가 됐을 때 등을 돌렸다. 성기가 보이지 않게끔 등을 돌린 유진이 팬티 고무줄에 손을 걸고 속옷을 벗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곤은 그 나체를 아까부터 눈에 담고 있었다. 달라붙은 속옷이 한 꺼풀 밑으로 내려가자 유진의 볼록한 엉덩이가 드러났다. 유진이 다리를 세우고 팬티를 벗는 동안 허벅지 사이가 살짝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성기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 은밀한 골짜기가 이어진다.
어차피 곤에게는 유진의 출연작을 검토하는 동안 다 본 몸이었다. 사실 유진이 예의 차린다고 등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빤빤한 새 속옷으로 갈아입자 팬티가 엉덩이에 달라붙으며 통통한 곡선을 그렸다. 의상을 갖춘 유진이 촬영실 한가운데에 있는 소파로 다가갔다. 곧바로 새로운 배우들이 하는 기본 촬영이 시작되었다.
“여기 보고. 좋아요. 다음엔 포즈를 바꿔서.”
촬영기사가 추임새를 넣으며 사진을 찍었다. 유진은 눈치껏 잘 알아듣고 이리저리 포즈를 바꿨다. 넓적다리를 벌렸다가 한쪽 무릎을 세웠다가, 엎드린 뒤에는 또 허리를 세워 유사성행위하는 자세를 취하는 등,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했다.
“자연스러운데. 아주 좋아! 어색한 느낌도 없고. 과연 굴러먹다 온 중고란 게 티가 난다, 그치?”
제프가 유진을 보면서 곤에게 그의 칭찬을 했다. 곤은 거리낌 없는 배우를 보며 그의 섹스 비디오들을 떠올렸다. 전입 배우를 탐색하기 위해 몇 개인가 출연작들을 본 게 있다. 유진의 영상은 최신으로 갈수록 짧은 러닝타임으로 모든 걸 끝내는 하드코어물이 주를 이루었다. 그게 서구식 포르노 스타일인 건 알지만 이쪽은 조금 달랐다. 대상화되는 배우를 천천히 씹고 뜯어주는 게 이곳 GV의 방식이었다. 은밀하게 까발려지는 걸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과연 저 중고 배우에게 관심을 가질지 확신이 안 섰다.
“그쪽에 있을 때 실적은 그냥저냥이었다고 하는데.”
“응? 이봐, 이봐. 딱 봤을 때 잘생겼잖아. 그런 미적 감각은 없는 거냐?”
유진은 카메라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촬영기사가 손짓했다. 유진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 곤이 한마디 거들었다.
“더 벌려 봐요.”
유진의 시선이 곤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러다가 다시 시선을 거두고 소파 위에 올려둔 다리를 세워 양쪽으로 벌렸다.
“앉아있는데 뱃살도 안 접히잖아? 부럽네. 좋겠어, 젊은것들이란.”
몇 겹으로 접히는 뱃살을 매만지며 중년의 제프가 중얼거렸다. 다리를 벌리기 위해 상체를 숙인 유진의 배가 군살 없이 굴곡졌다. 유진은 무릎 아래에 손을 넣고 최대한 다리를 벌렸다. 탄탄한 허벅지 사이로 하얀 천에 감싸인 사타구니가 존재감 있게 드러났다. M자로 다리를 들어 잡고 이제 막 데뷔하는 중고배우는 회원들에게 보여줄 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촬영기사가 그런 유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유진은 옮겨가는 카메라를 따라 적당히 고개를 돌렸다. 고전적인 굵은 눈망울과 유일하게 핏기가 도는 예쁜 입술을 가진 포르노 배우의 얼굴이 렌즈에 담겼다. 촬영기사는 유진의 사타구니를 찍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대놓고 유진의 다리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활짝 벌려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타구니 사이에 렌즈가 내밀어졌다. 그리고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며 사진이 찍혔다. 새 팬티가 성기를 꽉 조이고 있는 음란한 장면도 카메라에 담긴다.
“읏.”
유진은 고간 사이로 들어온 렌즈가 마치 비부를 응시하는 시선처럼 느껴져 몸이 달아올랐다. 멀리서도 찍을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가깝게 찍을 필요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촬영기사의 사심인지 유진은 분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촬영기사의 뒤에 있는 사람이 괜히 의식되었다. 저 곤 앞에서 이렇게.
한순간 유진의 시선이 곤에게로 향했다. 곤은 그 시선을 눈치챘다. 촬영기사가 물러나자 유진의 사타구니가 뒤의 두 사람에게도 드러났다. 배우가 입은 흰 팬티가 아까와 달리 힘을 받은 윤곽을 그렸다.
“섰나.”
“이걸로? 이야, 촬영하면서 잘도 세우는군. 촬영할 때마다 즐겁겠어.”
제프가 음험하게 중얼거리며 다음 촬영을 지시했다. 이번엔 영상 촬영이었다. 촬영기사가 녹화를 하는 동안 제프 사장이 젤 통을 꺼냈다. 엎드린 유진의 곁으로 제프가 다가갔다. 화면에는 나오지 않도록 거리를 조절하며 제프는 위에서 젤을 짜냈다. 통에서부터 길게 흘러나온 젤이 정확히 유진의 엉덩이 위로 툭 털어졌다.
“흐.”
차가운 젤이 엉덩이에 떨어지는 느낌에 유진은 몸을 떨었다. 점점이 떨어지는 젤이 흰 팬티를 적시자 그 밑으로 살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젤이 피부 위를 간질간질하게 기었다. 유진은 지시를 받고 자세를 바꿨다. 아까처럼 허벅지를 잡고 끌어안듯이 다리를 벌린다. 툭 튀어나온 사타구니에도 마찬가지로 젤이 떨어졌다.
“흐아.”
허벅지를 안은 유진의 표정이 안타깝게 변했다. 제프는 중간 중간 신음을 흘려주는 이 배우가 맘에 들었다. 고작 젤을 떨어트린 걸로 반응하는 걸 보면 예민한 타입인 듯했다. 유진은 고간 위에 젤이 떨어질 때마다 몸을 움칠 떨었다. 간질간질하게 달라붙는 점성에 손을 대고 싶었지만 이건 프로필 촬영이었다. 유진은 무릎 아래로 넣은 팔을 더 가슴 쪽으로 바짝 당겼다.
“후우.”
유진의 군살 없는 몸이 움찔거리자 그의 가슴도 따라서 울렁였다. 유진의 가슴은 몸에 비해 큰 편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했을 때도 강점으로 통했던 신체 부위였다. 배에도 묻은 투명한 젤 때문에 유진의 몸이 번들거렸다. 유진은 다리를 벌렸던 손을 내려 떨어진 젤을 몸에 펴 발랐다. 갈비 쪽을 쓰다듬다가 한 손을 들어 가슴을 은근슬쩍 문질렀다. 그걸 보고 제프 사장은 다음에 찍을 만한 영상을 생각해 냈다. 유진이 가슴 근육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기까지 하고서야 촬영기사가 그만하라는 사인을 주었다.
“스탠드.”
두 사람의 지시에 따라 유진은 무릎을 세워 소파에 올랐다. 두 손으로 벽을 짚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선명한 등줄기 아래로 팬티에 가려진 유진의 엉덩이가 보였다. 작은 팬티는 아슬아슬하게 유진의 골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그 야한 선을 카메라가 변태 같은 동선으로 훑다가 다시 유진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유진은 풀린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유진은 자연스럽게 엉덩이에 걸친 팬티에 손가락에 걸고 내렸다. 천천히 팬티를 내리자 감춰져 있던 배우의 엉덩이가 툭하니 드러났다.
‘어차피 다를 것도 없네.’
내내 말없이 촬영을 보고 있던 곤이 유진을 보고 생각했다. 아까 등을 보이고 옷을 탈의했던 것과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똑같았다. 이럴 거면 아까 왜 내숭을 떨었나 싶어 곤은 헛웃음을 지었다.
렌즈를 향해 유진이 그럴듯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촬영은 마무리됐다. 속옷을 엉덩이 아래로 걸친 배우가 뒤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화면에 담겼다.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마치고 유진은 수건을 건네받았다. 젤로 찝찝해진 몸을 씻어야 했다. 앉아있던 곤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일어나더니 나갈 준비를 했다. 씻으러 가기도 전에 가버릴 것만 같은 곤을 보고 유진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고, 곤 씨.”
“네?”
“…….”
처음으로 직접 그를 불러보는 거였다. 유진은 적당한 말을 찾다가 아까 받았던 인사를 곤에게 해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
곤은 말없이 유진을 바라보다가 ‘네’ 한마디만 하고 촬영실을 나갔다. 싸가지 없는 성질머리였지만 유진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제프 사장이 유진에게 샤워실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샤워실로 들어간 유진은 생각보다 괜찮은 시설에 ‘와’ 하고 감탄했다. 몸을 씻다가 왜 아까는 샤워실이 있단 걸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유진은 단순한 궁금증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
유진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모르는 나라다 보니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별세계였다. 이리저리 애를 먹다 무사히 도착한 약속장소는 시가지에 위치한 한국 음식점이었다.
“여기야!”
식당 안에서 상대가 단번에 유진을 알아보고 불렀다. 곱슬머리를 한 남자에게 유진이 다가갔다. 상대에게 악수를 청한 뒤 유진이 기억해두었던 이름을 꺼냈다.
“당신이… 조쉬?”
“맞아, 맞아. 편하게 조쉬라고 불러. 처음 뵙겠습니다, 유진 씨.”
“처음 뵙겠습니다….”
악수 뒤에 존댓말로 인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조쉬는 익숙하게 종업원을 불렀다.
“내가 자기 것까지 골라도 되지? 여기 단골이거든.”
“네, 감사히.”
조쉬는 자연스럽게 유진을 ‘자기’라고 불렀다. 유진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귀여운 얼굴을 한 남자였다. 조쉬는 쾌활하게 이것저것 음식을 시켰다. 나이에 비해 발랄한 느낌이었다.
“이런 질문 실례인 거 알지만… 조쉬는 게이인가요?”
“하하하, 난 백 퍼센트 게이야. 하긴 이쪽 사람들 중에 게이 아닌 사람도 많으니까.”
동종업계라 해도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가 더 말이 잘 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물었더니 조쉬는 너그럽게 유진을 이해해주었다. 음식은 빨리 나왔다. 제일 인기라는 메뉴를 한입 넣고 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진의 반응에 조쉬가 뿌듯하게 말했다.
“한식당이지만 여긴 현지인들한테도 유명해. 같은 고향 사람이 온다면 꼭 한 번 맛보게 하고 싶었어.”
“정말요. 진짜 맛있어요.”
검은 머리를 한 미국 사람이 똑같이 검은 눈을 가진 유진과 함께 타향살이를 논했다.
“자기도 외국에 와서 적응하려니까 힘들지? 유진도 나처럼 이 나라랑 연은 없으니까. 이렇게 만난 동향인이 같은 한국계라서 난 너무 반가워.”
정말이었다. 알고 보니 조쉬 역시 유진과 같은 한국계였다. 유진은 반가운 한국어를 섞어가며 조쉬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다를 떨었다. 조쉬는 유진이 언어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한 곳을 추천해줬다. 유진은 이렇게 자신과 모든 상황이 일치하는 데다,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조쉬는 유진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이 ‘그럼, 그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처음 올 때는 무지 애를 먹었지.”
상념에 젖은 조쉬를 보며 유진은 본격적으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조쉬는 왜 미국에서 이곳으로 온 건가요?”
“유진과는 좀 다른 이유랄까. 그쪽 정서가 나한텐 잘 안 맞았어. 텐위 프로덕션이라고 했지? 거기 좀 어때?”
유진은 이제 막 프로필 촬영을 했을 뿐이라 달리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쉬는 웃으며 이해한다고 했다. 조쉬는 킨키나인틴이라는 큰 포르노 회사의 GV 레이블에 소속돼 있었다. 유진보다 늦게, 그리고 더 짧게 ‘인터널칵스’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넘어왔다.
“나 사실 인터널칵스에 있을 때 유진의 팬이었어.”
“뭐라고요? 전 팬이 있을 만한 포르노 스타가 아니었어요.”
“무슨 소리야. 자기는 은근 매니아들이 있었는걸.”
조쉬는 인터널칵스의 터줏대감과 같은 동양인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막 성인부터 섹스 비디오를 찍은 별종들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런 것치고 그 업계에서 얼마 없는 정상적인 인간이라 유진은 동료 배우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다. 조쉬 역시 오며 가며 유진을 보았다. 저런 남자랑 사귀게 되면 근사할 것 같다고 종종 생각했다. 섹스 포지션이 같다는 게 문제였지만.
유진은 분명 잘생겼고 몸도 잘 빠졌다. 그런데 주 고객들한테 그만큼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조쉬는 유진의 갱뱅물 촬영에서 정액 싸 주는 남자들 중 하나로 출연했다가 그 이유를 대충 알게 되었다. 억지로 흥을 돋우기 위해 약 빨고 소리 지르는 광란의 공간 속에서 유진은 정말 맨정신으로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다. 바텀 역은 딱 한 명이었고 배우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그에게 삽입했다. 이리저리 굴러가며 피스톤질 당하는 동안 유진은 탑 배우들처럼 정신을 놓는 게 아니라 다 풀어진 얼굴로 어떻게든 느끼려고 끙끙대고 있었다.
조쉬에게 그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조쉬는 그때 엑스트라에 불과했지만 유진의 물기 젖은 얼굴이 인터널칵스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에서 첫 포르노를 촬영한 감상은 어때?”
조쉬는 질문을 던진 뒤에 눈앞의 남자에 대한 걸 속으로 생각했다. 아깝다고 생각했던 포르노 스타였다. 유진이 텐위 프로덕션으로 온 건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분명 미국보다는 여기서 더 환장할 것 같은 얼굴이긴 했다. 그렇다고 미국보다 소프트하단 얘기는 아니었다. 이쪽이 더하면 더했지.
“음, 그냥… 아직까진 미국이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소감을 묻는 조쉬에게 유진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 얘길 듣고 조쉬가 눈을 접고 웃었다.
“자기 아직 많이 알아야겠네.”
*
지난번 촬영했던 유진의 프로필은 텐위의 메인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갔다. 유진의 프로필이 업로드된 시점부터 시시각각 치솟는 방문자 수를 보고 레이가 사장실로 달려갔다. 제프는 사장실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벽면에 걸린 TV로 그가 야동을 보던 중에 레이가 사장실을 습격했다. 제프는 TV를 끄고 문 쪽을 돌아봤다. 레이는 한 손엔 태블릿 PC를 들고 있었다.
“반응이 좋아요, 사장님.”
“뭐가 반응이 좋다는 건지 주어를 말해야 내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레이 군?”
“유진 씨요. 프로필 올리고 나서 회원들 관심이 뜨거워요. 방문자 수도 이번 주 최고를 찍었어요.”
레이가 태블릿 PC를 건넸다. 제프는 건네받은 태블릿 화면을 손으로 넘겼다. 그리고 레이가 말한 그 증거들을 직접 확인했다. 유진의 프로필 페이지 방문 횟수와 영상 조회수, 그리고 포르노 포럼에 올라온 글들까지.
“이미 아는 사람도 있던데요? ‘조셉 카버’가 ‘첸 준’이 되어 나타났다고요. 여기서도 매니아들이 은근 있었나 봐요.”
‘준’이란 유진이 나라를 바꿔 새롭게 쓸 포르노 네임이었다. 미국에서 썼던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첸 준이라고 지었다. 물론 모든 포르노 배우들의 가명이 그렇듯이 별 뜻은 없었다.
제프는 눈을 뜨고 뚫어져라 태블릿을 쳐다봤다. 회원들이 잘생긴 신입 배우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첸 준’이 프로필 영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를 기다린다는 코멘트가 남겨져 있었다. 제프는 자신의 예감이 맞았음에 기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그, 그렇죠?”
“미국에서 묻혀있던 스타를 우리가 발굴해낸 거지! 다른 회사로 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
마침 사장실 문을 열고 곤이 나타났다. 그는 촬영을 마치고 오는 중이었는지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레이와 쇼를 하던 제프가 곤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곤, 너도 준의 얘기 들었어?”
“준이 누군데요.”
“너는 준이 누군지도 몰라?”
귀찮은 얼굴로 한숨을 한 번 쉬고 곤은 다른 회사에 소속된 ‘준’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스튜디오 헬의 준? 킨키나인틴의 준? 그도 아니면 핫맨가이즈의 준인가.”
“아니 아니, 우리 회사의 준 말이야!”
제프가 태블릿 PC를 곤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곤은 얇은 태블릿을 건네받았다. 첸 준의 이름을 단 유진의 프로필이 텐위 사이트에 업데이트돼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높은 조회수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이 열려 있던 포럼의 페이지까지 보고 곤은 태블릿을 돌려주었다.
“어때? 다른 신인들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 이거 꽤 괜찮을 거 같지?”
“계약하실 겁니까?”
“일단 가벼운 거 하나 촬영하고. 성적 본 뒤에 생각할 거야.”
말로는 유진에게 다 해 줄 것처럼 굴면서 제프는 꽤나 신중하게 간을 보고 있었다. 그런 제프의 태도를 보고 곤은 피식 웃었다.
“다음 촬영 땐 전 안 나갑니다.”
곤은 자신이 사장을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그가 말하는 촬영이란 유진의 촬영을 뜻했다. 유진의 통역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생각이었던 곤이 빠지겠단 소릴 하자 제프가 펄쩍 뛰었다.
“아니 왜! 말도 안 통하는데 이것저것 좀 알려주고 도와주면 좋잖아.”
“보니까 저 없어도 되겠던데요. 어차피 배우도 눈치껏 분위기 익혀야 할 거고 저도 바빠서 일정 소화해야 하거든요.”
전부 맞는 말이긴 했다. 반박의 여지가 없어 제프는 팔짱을 끼고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제프는 한발 물러서주기로 하고 곤에게 유하게 부탁했다.
“그래. 하지만 필요할 땐 꼭 도와줘야 하는 거다, 알았지?”
“네.”
원하는 걸 허락받고 곤은 사장실을 나갔다. 좁은 문틈을 키가 큰 남자가 어깨를 구부린 채 지나갔다. 사장 앞에서도 당당하게 구는 곤을 보고 레이가 중얼거렸다.
“볼 때마다 용케 해고 안 당하고 산다 싶어요.”
“해고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제프는 담배를 입에 물고 다시 모니터링을 이어갔다. 태블릿 화면에는 아직 유진의 프로필 페이지가 띄워져 있었다. 분 단위로 사이트의 방문자 수를 새로 고침하며 제프가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는 대단한 남자야. 여기 있는 게 아까울 만큼, 정말.”
*
식사를 마치고 유진과 조쉬는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로 들어왔다. 은밀한 이야기를 해도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적당히 부산스러운 카페였다. 조쉬는 커피를 마시며 유진에게 텐위 프로덕션에 대해 물었다.
“텐위에 잘생긴 감독 하나 있는 거 알아? 이름이 곤이랬나.”
“곤을 아세요?”
“왜 몰라? 유명한 사람인데. 업계 입문할 때 곤 때문에 텐위 계약하려는 애들도 있어.”
조쉬의 이야기를 듣고 유진은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조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카메라 들고 섹스씬 찍는 동안 배우들이 서로를 안 보고 감독만 본다는 거야.”
“허….”
“안 그래도 기분 잡치는 일이 많은 바닥에 잘생긴 감독이랑 일하면 찌든 정신에 유익하다는 거지.”
“네….”
“게다가 그 사람 한국인이야. 난 조금 친근감이 느껴지던데.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GV를 찍는다는 게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그래서, 그 사람 봤어? 어때? 잘생겼어? 나 사실 한 번도 본 적 없어.”
“글쎄요….”
유진이 생각하기에 곤은 잘생겼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유진은 그가 감독이란 것도 조쉬의 말을 듣고 알았다. 유진도 처음 보자마자 곤이 마음에 들었다. 딱 자기 취향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인기가 많은 남자일 줄이야. 조쉬 말대로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복잡 미묘했다.
‘다른 사람도 잘생겼다고 생각하는구나.’
유진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조쉬는 유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조쉬는 혀를 끌끌 차며 순진한 어린 게이에게 조언했다.
“근데 자기. 그 사람한테 마음 주지 마.”
“왜요?”
유진이 바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조쉬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 사람 완전 스트레잇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