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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월국애사 (91)화 (91/96)
  • 91.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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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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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발 가까이 다가온 도헌이 느릿하게 예를 갖추고 웃는다.

    “예, 그리하지요. 마마, 날이 차니 그만 들어가십시오.”

    “백 장군! 여태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겐가? 이 사람은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느니!”

    진심으로 제게 역정 내는 두화의 모습에 도헌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지 말아라, 두화야.’

    서로 상대를 빤히 바라보던 중 두화는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치마를 잡고 몸을 홱 돌이켰다.

    그 모습에 도헌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절대 보내줄 생각 따위 없었다, 두화야.’

    성큼 걸어 내려서려는 그녀의 허리를 바짝 들어 안았다.

    “앗! 놓거라, 이거 놓지 못해!”

    허리를 잡은 손을 막무가내로 때려도 소용없다.

    도헌은 두화를 안아 든 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요 위로 조심히 내려놨다.

    그 순간!

    쫙!

    뺨에 닿은 제법 매운 감각에 도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씩씩대며 거칠게 내뱉는 호흡과 달리 뺨을 친 작은 손이 바들바들 떤다.

    도헌은 그 손을 잡았다.

    “…!”

    내빼려 하는 것을 억지로 잡아 손바닥 깊숙이 입술을 내렸다.

    그런 도헌의 행동에 두화는 경악했다.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불길한 그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장군님이 대체 왜….’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오해할 여지를 주면 안 된다.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나는 저하의 여인이오, 백 장군!”

    불안한 제 모습과는 달리 천천히 입술을 뗀 도헌은 옅은 미소까지 지을 정도로 여유로워 보였다.

    “압니다. 하나, 소신이 먼저였습니다.”

    “…그게 무슨! 아니, 이러는 것은 옳지 않소.”

    “연모의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따졌다면 글쎄요, 세상 누가 연모하며 살 수 있겠나이까? 아니 그렇습니까?”

    “…!”

    “소신의 마음을 눈치채신 듯하니, 소신 또한 이제까지와는 달리 더는 마마 앞에서 마음을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옵고, 이젠 제집, 제 곁에 있으니 더는 마마라 칭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상을 찌푸린 두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 인상 쓰지 말아라. 두화야.”

    “이해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왜 전데요? 왜 저하의 용종까지 품은 저냔 말입니다.”

    “너니까. 처음부터 내 눈에 들었으니까.”

    “아니요. 그저 천한 것이 천방지축으로 구니 호기심에 그러셨던 거죠. 귀족 집 아가씨 많지 않습니까? 부디 좋은 분과 짝지어… 앗!”

    잡고 있던 손을 홱 낚아채어 바로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온 도헌의 눈빛이 이글댔다.

    “내가 원하는 이는 너다. 그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널 그리 낮추지 말아라.”

    “앗, 아… 아파요.”

    손이 아파 인상을 찌푸리며 빼려 들자, 그제야 도헌이 슬그머니 놔 주었다.

    “내 빠른 시일 안에 우리 둘이 함께 지낼만한 경치 좋은 곳을 알아볼 터이니, 당분간 이곳에 있거라.”

    “아니요, 싫어요. 대체 제게 왜 이러세요?”

    두화는 소리를 바락 질렀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지금은 받아들일 수 없겠지. 하나, 시간이 지나면 너도 마음을 열 것이다. 내, 세자보다도 더 잘해 줄 것이야.”

    그의 말에 두화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내 저었다.

    ‘아무래도 장군님이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 이런 짓을 벌이시진 못해.’

    “쉬고 있거라.”

    그대로 나가는 도헌의 뒤를 따라 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미 꼬챙이로 문고리를 막아 열수조차 없게 되었다.

    두화는 닫힌 문을 마구 두들겼다.

    “여세요, 당장.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보내주셔요, 네?”

    아무런 대꾸가 없다.

    “이러시면 정말 후에 큰일 나요, 장군님! 저하는 장군님이 아시는 것보다도 무서운 분이시라고요. 제발… 제발 보내주세요.”

    가만히 듣던 도헌이 조소를 지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니라. 내겐 가문도 뭣도 아닌 너 하나다, 두화야. 하여 실로 두려운 것이 없다.’

    ***

    인방과 개방의 도움을 받아 수색한 지 벌써 사흘째이지만, 작은 단서조차 쉬이 나오지 않고 있다. 보고를 받은 자한은 매번 낙담한다.

    ‘어디 있는 것이냐? 무사한 것이냐?’

    짙은 한숨이 찬 밤공기와 만나 허공으로 뿌옇게 사라진다.

    “땅으로 꺼지겠구나.”

    “아바마마.”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인 게로나.”

    “예. 인방과 개방 그리고 중전마마의 사가에서까지 나서주고 있으나,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나이다.”

    “음… 회임한 몸으로 이 날씨에 걱정이구나.”

    뒷짐을 진 왕은 조금 전까지도 아들이 바라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저 문 너머 한참 가다 보면 동백궁이 나오겠지.

    ‘세자궁과 좀 멀긴 하군.’

    “한데 이 시간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한 가지 알려주러 왔다.”

    반색하는 눈동자를 보니 아들이 얼마나 후궁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그 아인 사랑받을 만하다.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과인과 중전을 위했던 그 마음 까지 모조리 보상해 줄 것이야.’

    “무엇이옵니까?”

    “명에게 조사하라 일렀는데, 안타깝게도 단서 될만한 것이 없다 하더구나.”

    “…”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데 그날 인시가 되기 전, 궁 안팎을 서성이던 자들은 있다고 하더구나.”

    “예? 그 시각에 말이옵니까?”

    “그자들이 자객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목격했다면 좀 도움이 되지 않겠더냐?”

    “해서 누구이옵니까?”

    “자한아.”

    아주 오래간만에 불리는 이름이다.

    자한은 잠시 부왕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마음이 조급하다고 하여 서둘면 될 것도 되지 않는 법이란다. 과인 또한 양원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예.”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과인도 의외이긴 했어. 보고 조사해 보거라.”

    서찰 한 장을 넘겨주고 왕은 돌아갔다.

    자한은 서찰을 펴 보았다. 유독 눈에 띄는 이름에 눈이 가늘어진다.

    “백도헌?”

    세 사람의 이름과 직급을 확인한 자한은 랑과 성무에게 이들에 관한 것을 조사하라 명하였다.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랑이 먼저 두 사내의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둘 다 순찰조이고, 매일 바뀌는 통로를 채 외우지 못해 사건이 난 그곳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이라 하였습니다.”

    “음….”

    “해서 다른 병사들에게도 물었더니, 근자에 순찰하는 통로와 군호를 수시로 바꾸기에 실상 자신들도 무척 헷갈린다고 하옵니다.”

    “수고하였다.”

    생각이 많아진다.

    조그마한 희망을 걸었건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이 밤이 지나면 나흘로 접어든다. 걱정이 앞서, 두화가 사라진 이후 채 한두 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저하, 다녀왔나이다.”

    “그래, 백도헌은 어찌 된 것이라더냐?”

    “그것이 좀 이상하옵니다.”

    “무엇이 말이더냐?”

    성무는 숨을 갈무리하더니 말하기 시작하였다.

    “분명 사건이 일어난 날, 백 장군은 기방에 있었다고 하옵니다. 기녀들이 이르길 그날 무척이나 난폭하게 행동하고는 인시 전에 돌아갔다고 하옵니다.”

    “술을 마셨다? 사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뭐가 이상하다는 게냐?”

    “한데 그날 이후 입궐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책상에 앉아있던 자한이 벌떡 일어섰다.

    “뭐라?”

    “말로는 지독한 고뿔에 걸려서, 대장군에게 서신으로 알렸다고는 하는데,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말이냐?”

    “본디 제대로 수련하고 무예를 익힌 자라면, 고뿔 정도야 가볍게 넘기지 않사옵니까? 몇 번의 전쟁터에서도 살아 돌아왔던 장군이라는 사람이, 겨우 고뿔에 하루도 아니고 벌써 사흘째 입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소신은 영 수상쩍사옵니다.”

    이상하다고 여기면 그 시간에 뒷간 간 일도 의심을 하고 바라봐야 한다. 하나, 그렇다고 고뿔에 걸렸다는데 무작정 의심부터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뜩이나 도헌과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아서 보고 싶지 않다.

    “정말 고뿔에 걸린 것인지 그 집 주위를 조사해 보아라. 아, 인방이나 개방에서 다른 소식은 없더냐?”

    “아직인가 봅니다.”

    “둘 다 수고했다. 오늘은 이만 쉬어라.”

    “예, 저하.”

    두 사람이 나가자 자한은 창을 열었다.

    찬 바람이 훅 들어온다. 뒷짐을 지고 캄캄한 하늘을 바라봤다.

    “괜찮은 것이냐?”

    허공에 흐트러지는 하문에, 찬 바람만 대꾸하듯 뺨을 훑고 지나간다.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돼 죽겠구나. 요즘은 전쟁터에 있던 것보다도 더 힘든 걸 너는 아는지 모르겠구나, 두화야.”

    목소리가 점점 흔들리는 자한의 눈가가 붉어진다.

    ***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건만, 여전히 창가에 서 있던 자한은 한숨만 내쉬었다. 고고하게 빛을 흘리는 달빛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저 두화 생각뿐이다.

    근자에 들어 수면이 부족했던 자한은 뻑뻑해진 눈을 비볐다.

    “저하, 세자 저하!”

    사림의 목소리다.

    “들어오거라.”

    책상에 앉는 자한의 붉게 충혈된 눈을 본 사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저하께서 강건하셔야 양원 마마를 찾으셔도 찾으실 수 있는 것이옵니다.”

    “누가 뭐라더냐?”

    안일하게 쳐다보는 세자의 표정에 사림은 맥이 확 빠진다.

    “제 말은 제발 두 시진이라도 주무십시오. 매번 그리 꼴딱꼴딱 밤을 새우면 쓰러지십니다.”

    “거참, 웬 잔소리더냐? 그래, 무슨 일인데 이리 사설이 긴지 들어나 보자.”

    “아, 맞다.”

    가까이 다가온 사림은 고하기 시작하였다.

    “인방에서 찾은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소신이 따로 조사하였는데, 이게 뭔가 좀 냄새가 납니다.”

    “뜸 들이지 말고!”

    사림이 히죽 웃는다. 그가 의뭉스럽게 웃을 땐 뭔가 있는 것이다. 자한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백 장군 말이옵니다.”

    “백 장군?”

    “예. 사건이 일어난 날 새벽, 술에 취해 궁 근처를 서성였다고 하옵니다. 한데, 그가 궁 외곽으로 가더니 가만히 궁 쪽을 바라보더랍니다.”

    그 새벽에 궁을 보고 있으니 그걸 본 누군가에게는 오인 살 만하다. 자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림의 말에 집중했다.

    “한참을 그리 있으니 더 이상해서 자리를 쉽게 떠날 수가 없었더랍니다. 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계속 그리 있으니 다리도 저리고 해서 인제 그만 돌아가야지 하는데!”

    “하는데?”

    “궁 안에서 검은 형체 둘이 뭔가를 어깨에 둘러메고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그들을 백 장군이 쫓더랍니다.”

    찾았다!

    자한은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어디라더냐?”

    “도성의 외곽에 있는 산인데, 거기서부터는 쫓지 못하겠더랍니다.”

    “뭐라!”

    “두렵더랍니다. 상대가 복면하고 있으니 자객인지 모를 일이고, 또 하나는 살인귀라 불리는 장군이니 그럴 만도 했겠지요. 하여 딱 거기까지만 지켜보고 돌아갔답니다.”

    찾았다는 기대감에 마구 뛰던 심장은 어느새 잠잠해졌다.

    젠장!

    ‘도로 원점이구나.’

    뻑뻑하기만 한 눈이 더 쑤셨다.

    실망한 듯 차갑게 변한 세자의 얼굴에, 사림은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다시 입을 뗐다.

    “하온데 저하. 소신은 백 장군이 그들을 뒤쫓았다면, 그 실력에 분명 잡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여 관아에 넘겼겠지, 싶었는데!”

    “…”

    “한데 관아 어디에도 그날 넘겨받은 죄인은 없다고 하옵니다.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그렇구나. 죄인을 잡아서 넘겼다면 분명 기록이 남았을 터인데 말이다.”

    그제야 사림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니까요, 제 말이. 흠, 해서 전 백 장군에 좀 더 조사하며 감시했습니다.”

    “그래, 뭐라도 나왔더냐?”

    “크게 이상한 것은 없으나, 드나드는 하인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좀….”

    “…”

    “백 장군이 고뿔에 걸려 벌써 며칠째 입궐하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맥이 또 빠져버린다.

    “그것은 들어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게 좀 이상하옵니다. 무예를 단련한 자가 고작 고뿔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이나 방에서 두문불출한다는 것이 어딘지 좀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성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꺼림칙한 촉에 자한의 고개가 삐딱하니 돌아갔다.

    사림의 눈과 딱 맞닥뜨렸다. 그러자 사림이 개구쟁이처럼 입꼬리를 늘렸다.

    “뭔가 찾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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