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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월국애사 (73)화 (73/96)
  • 73. 반란

    놀라 벌떡 일어난 두화와 맹지가 익위사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어찌 그러는가?”

    “…반란이 일어났사옵니다. 당장 피하셔야 하옵니다.”

    “반란!”

    두화가 눈이 동그래져 되물었다.

    “예. 설변도가 병조판서와 손을 잡고 지금 궁을 급습했습니다. 하니, 서두르셔야 궁을 빠져나갈 수 있사옵니다.”

    두화는 순간 중궁전을 떠올렸다.

    저하가 곁에 없는 지금까지 거리낌 없이 제게 잘 대해주신 분, 마치 어머니처럼, 언니처럼 세자빈의 횡포와 위험 속에서 저를 지켜주신 분이다.

    “중궁전은 어떠한가?”

    “반란군들은 아마도 전하와 중전마마를 먼저 제거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아마도 마마를….”

    두화는 입술을 짓씹고는 이내 침소로 다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마마, 그리 뛰시면 아니 되옵니다. 아기씨, 놀라십니다.”

    맹지가 다급하게 부르며 뛰어갔다. 맹지가 침소 문을 열려는 순간 문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 제 앞엔 활을 메고, 검을 든 두화가 나오려 하고 있었다.

    “마, 마마! 지금 설마….”

    “맞아. 중궁전으로 갈 거야.”

    바로 바닥으로 주저앉은 맹지가 두화의 발을 잡아 읍소하였다.

    “아니 되옵니다. 어찌하여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려 하시옵니까? 반란을 일으켰다면 그 수만 해도 상당할진대… 일단 마마와 아기씨라도 무탈하셔야 하옵니다.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알아. 무모하다는 거 아는데, 그런데 그럴 수 없어. 저하께서 안 계신 지금까지 날 지켜주신 분이 중전마마야. 금수가 아닌 이상 이리 큰 은혜를 어찌 저버려.”

    “하오나 마마! 아니 되십니다. 차라리 이년이 검을 들고 갈 터이니 제발 피하시옵소서.”

    두화는 맹지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괜찮아. 맹지가 몰라서 그러나 본데 나, 싸움 엄청나게 잘해.”

    “지금 그거하고 이거하고 같사옵니까? 어찌 이럴 때도 고집을 부리시나이까?”

    감히 웃전에 대고 소리치며 엉엉 운다.

    하나, 모두 절 위해 하는 소리니, 두화는 그런 맹지가 괘씸하기보다는 고맙고 미안했다.

    “너라도 무사히 피해. 그리고 후에 만약 저하께서 돌아오시면 전해줄래. 저하의 여인으로 왕실을 위해 조금이라도 애썼다고, 노력했다고 말이야.”

    목소리 끝이 조금은 떨린 두화가 제 배를 감쌌다.

    아이를 위해서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해야겠지. 하나, 은혜를 저버릴 수는 없다. 부친도 늘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은혜는 몇 배로 갚아도 부족한 것이라고 말이다.

    결심을 굳힌 듯 두화는 맹지의 팔을 떼어내고 아래로 내려갔다.

    익위사도 이건 아니라며 두화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그대들은 따르지 않아도 좋네. 난 중궁전으로 갈 것이니 맹지와 함께 피하게.”

    “승휘 마마, 이는 승산이 없사옵니다.”

    “저하가 안 계신 지금까지 중전마마가 안 계셨다면, 난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르네. 그런 날 중전께서 살갑게 보살펴 주셨어. 행여 끝이 보인다고 하여도 난 갈 것이네. 이젠 내가 지켜드릴 차례야.”

    익위사는 난감하였다.

    그의 뒤로 랑과, 성무 역시 걱정이 먼저 앞섰으나, 그동안 지내며 보아온 그녀라면 만류한다고 하여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성무가 익위사를 통솔하는 대장 앞에서 예를 취했다.

    “대장, 익위사의 일원으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뭐야? 너까지 왜 이래, 이 자식아!”

    “지금부터 전 승휘 마마를 모시겠습니다. 하니, 대장은 나가십시오.”

    “이 새끼야! 지금 다 같이 죽자는 거야?”

    그가 성무의 멱살을 잡아 호통쳤다.

    “아니요! 살자고 이러는 것입니다. 마마가 사셔야 우리도 사는걸요. 하니, 제가 마마를 모시고 버틸 테니, 대장은 중전마마의 사가에라도 도움을 청하십시오.”

    “…!”

    듣던 두화 역시 작은 희망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네, 중전마마께서 위험하다 하시면 그쪽에서 도와주시지 않겠나?”

    대장은 혼란스럽긴 하였으나, 이내 결심을 굳혔다. 바로 몸이 날랜 두 명을 중전의 사가로 보냈다.

    “하면 소인 좌익위 해솔, 마마와 함께 갈 것이옵니다. 저를 빼놓고는 동백궁을 나가실 수 없으시옵니다.”

    대장의 말에 모두 작게 웃었다.

    모두 대장과 같은 뜻인지 다들 결의에 찬 눈빛이다.

    이내 두화가 당차고, 씩씩하게 소리쳤다.

    “그럼 모두 무탈하게 다시 동백궁으로 올 수 있도록….”

    “예, 알겠사옵니다!”

    막 동백궁을 나서려 하는데 맹지도 부지깽이를 들고 뒤쫓아온다.

    “맹지야, 넌 토굴에 숨어있어.”

    “아니옵니다. 죽어도 살아도 마마 곁에 있을 것이옵니다.”

    입술을 앙다문 맹지가 다부지게 부지깽이를 꼭 틀어쥐고는 허해 달라 눈빛으로 호소하였다.

    “내가 인복이 있는 건가? 좋아, 대신 절대 내 옆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예, 마마.”

    이내 두화와 열 명의 세자익위사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중궁전으로 향하였다. 이미 반란군에 의해 곳곳이 초토화된 모습에 두화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중전마마, 무사하셔야 하옵니다.’

    드디어 중궁전으로 들어선 두화와 일행은 반란군 일부와 맞닥뜨렸다.

    “난 중전마마를 찾아야겠으니, 좌익위는 여길 맡아주게.”

    “예,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두화는 칼부림 속을 뚫고 중궁전 침소 안으로 향하였다.

    회랑을 지나치며 곳곳에 흩뿌려진 핏물과 죽은 궁인을 보고 두화는 발길을 서둘렀다. 그리고 드디어 중전이 있는 침소 앞에서 두화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반란군 하나가, 막아서는 궁인을 막 베어내고 중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연 상궁이 중전을 한껏 끌어안고 막아서고 있으나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이었다.

    두화는 재빨리 활을 꺼내 반란군의 등을 조준하였다. 팽하니 날아간 화살에 갑작스레 맞은 반란군은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달려가 중전의 안위부터 살폈다. 사색이 된 중전의 모습에, 두화는 궁 예법의 어투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걱정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중전마마, 괜찮으셔요? 어디 상한 곳은 없으셔요?”

    사색이 된 중전이 두화의 팔에 매달렸다.

    많이 놀랐는지 두화의 팔을 잡은 손이 바르르 떨린다. 그런데도 중전은 오히려 두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피었다.

    “그러는 승휘는 괜찮으냐? 어찌 피하지 않고 여길 와?”

    “중전마마를 두고 어찌 혼자 살겠다고 피해요, 제가? 이래 봬도 저, 싸움 잘하거든요. 방금도 보셨잖아요?”

    눈물을 글썽이는 중전을 안심시키기 위해 두화는 부러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승휘….”

    “지금부터는 제가 모실게요, 마마. 일어설 수 있으세요?”

    “…고맙다, 승휘.”

    “아니요, 제가 감사해요. 이리 무사하셔서.”

    “…!”

    두화의 마음 씀씀이에 중전은 크게 감복했다. 본인 살고자 몸을 피해도 달리 할 말이 없거늘, 회임한 몸으로 저를 구하겠다고 달려왔다. 눈물을 떨군 중전은 연 상궁의 부축을 받아 두화의 뒤를 따랐다.

    밖으로 나오니 꽤 많던 반란군은 죽거나 익위사들에 잡혀 꿇려 앉아있었다.

    아름답던 중궁전의 앞뜰은 피 칠갑 되어 끔찍했다. 더러 시체의 끔찍한 모습에 한 발 내딛던 중전이 휘청거렸다.

    “괜찮으세요?”

    두화가 냉큼 그 팔을 잡아 부축했다.

    “…괜찮으니라. 나는 괜찮은데 승휘는 회임한 몸으로 저런 끔찍한 것들을 보면 아니 되는데….”

    시체를 보고 벌벌 떠는 몸으로도 회임한 두화를 걱정하며 힘겹게 말을 한다.

    “아이는… 분명 저하를 닮아 용맹하고 씩씩할 거예요.”

    부러 씩 웃어주었다.

    아무렇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분명 놀랬거나 몸에 부담이 갔다면 진즉 아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화가 중전을 부축하고 앞으로 나오자, 대장이 곁으로 다가왔다.

    “일단 이곳에 있던 자들은 저희가 상대하긴 하였으나, 반란군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릅니다. 어서 자리를 피하셔야 하옵니다.”

    대장의 말이 맞는다.

    두화가 서두르려 중전을 이끌려 하자, 중전의 눈이 커다래지며 중궁전 입구를 바라봤다.

    “전하… 전하를 찾아야 한다.”

    “피하시지 않으셨을까요?”

    고개를 가로저은 중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니, 그분은 절대 피하실 분이 아니야. 전하께서는 분명 대전에 계실 게야.”

    중전의 말에 두화와 대장의 눈이 마주쳤다.

    해솔은 난처했다.

    정말 운 좋게 산 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반란군은 훈련이 제대로 된 자들이었다.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하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리다. 하여 중궁전을 치던 반란군도 겨우 막아냈다.

    두화도 지금으로서는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긴 매한가지였다. 하나, 이미 목숨을 각오로 중궁전까지 찾아온 저다.

    “그럼, 연 상궁과 익위사 두 분이 중전마마를 밖으로 모시게.”

    두화의 말에 모두 경악하며 바라봤다.

    특히 중전이 놀라 두화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 승휘. 궁 밖으로 피신하려면 네가 해야지. 전하는 내가 찾으마. 하니, 너부터 피신하거라.”

    “…!”

    “왕실의 후손을 잘 지켜다오. 해서 세자와 무사히 만나 훗날을 기약하거라.”

    중전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두화는 숨을 터뜨리며, 애써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면 모두 같이해요.”

    “승휘!”

    “전, 궁에 들어와 마마를 어머니 같다고 느꼈어요. 제가 받은 이 커다란 은혜를 저버리고 왕실의 후사를 지킨다는 핑계로 저 혼자만 살 수는 없어요, 마마.”

    “…!”

    “우리 아버지가 은혜는 몇 곱절로 갚아도 끝이 없다고 하셨어요. 마마, 그간 정말… 정말 감사하고 마마와 함께한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어요, 정말로.”

    두화는 중전의 앞에서 큰 절로 제 마음을 대신했다.

    그제야 중전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함께 하자. 그 끝이 어떨지 몰라도 내, 마지막까지 우리 승휘 곁에 있어 주마.”

    환하게 웃은 두화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는 몸을 돌렸다.

    “좌익위는 듣게. 우리는 지금부터 대전으로 갈 것이네. 그대들도 그동안 날 지켜주고 여러모로 도와줘서 고마웠네.”

    마치 마지막 인사처럼 익위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더러는 눈물을 글썽이는 익위사가 있는가 하면, 랑과 성무는 주먹을 꼭 쥔 채 눈물을 참느라 애썼다.

    결심을 굳힌 듯 좌익위인 해솔이 중전과 두화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검을 들어 올렸다.

    “저희 세자익위사들은 지금부터 두 분 마마를 목숨으로 지킬 것이옵니다.”

    “고맙네.”

    두화는 대장 앞에서 고개를 숙여 예로서 대우했다.

    해솔의 선두 아래 중전과 두화를 에워싸듯 남은 익위사가 그리 경호하며 대전으로 향하였다.

    대전에 가까워질수록 함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외벽의 높은 석담[石墻]을 넘어 들렸다.

    “잠시만! 너희 둘은 앞서 염탐하고 와.”

    “예, 대장.”

    랑과 성무가 담을 타고 금세 높은 지붕 위로 올라갔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사이, 기왓장에 납작 엎드려 대전의 앞뜰을 주시했다.

    잠시 후 돌아온 두 사람이 대장에게 속삭였다.

    해솔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어찌 그러는가?”

    “승휘 마마, 그것이… 전하께서 아직 대전 안에 계신 듯싶사옵니다.”

    해솔의 말에 중전이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데 대전을 둘러싼 반란군의 수가 너무 많사옵니다. 저희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아!”

    중전이 비틀댔다.

    두화는 생각을 짜내려 손톱을 자근자근 씹어댔다.

    “아!”

    뭔가 생각난 듯 두화의 눈에 총기가 서렸다.

    “이리하면 어떨까 싶네.”

    “좋은 강구책이라도 있으시옵니까?”

    “성동격서!”

    “그 말씀은… 적을 유인하는 척하며, 반대쪽을 치자는 말씀이 옵니까?”

    “비슷하네. 우린 적을 치기보다는 전하로 위장하여 뒤쫓는 반란군을 되도록 예서 멀리 유인하고, 그 틈에 전하만 모셔와 궁을 나가는 것이지.”

    두화의 말에 모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전하로 위장하는 자는 홀로 그 짐을 다 짊어져야 하네.”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해 두화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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