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월국애사 (71)화 (71/96)
  • 71. 반란의 징조

    자한은 승리하였다고 바로 도성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세자의 명에 따라 죽은 아군의 시체와 적군을 나누어 추렸다. 아군의 시체는 수레에 담아 각각의 집으로 돌려보낼 작정이다.

    적군의 시체는 돌과 토지가 좋지 못해, 농사를 일굴 수 없는 땅을 찾아 한꺼번에 묻기로 하였다.

    세자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수없이 많은 시체를 처리하는데, 열흘이 걸렸다.

    그 밤, 고된 작업에 힘들었던 일랑도 침소로 돌아가려 움직였다.

    침소로 들어가기 전, 새소리가 숲에서 들려왔다.

    멈칫 발을 멈춘 일랑이 숲을 응시했다. 재차 들려오는 새소리에 일랑의 몸이 날쌔게 어둠 속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지?”

    “방주님, 아무래도 좌의정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

    “얼마 전 좌의정이 보낸 자객이 동백궁에 들었답니다.”

    “뭐야! 우리 두화는?”

    “무사합니다. 세자가 남긴 익위사와 두화가 함께 맞서 싸워서 일부 자객을 사로잡았답니다.”

    “하아, 설변도! 네가 감히!”

    “왕이 자객을 직접 심문하고 있으니, 곧 좌의정의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회임하였다고 하는데 놀라진 않았는지, 몸은 괜찮은지 걱정이 앞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예. 한데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습니다.”

    정보원의 심각한 표정에 일랑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무슨 일인데? 설마 성라국에서 다른 일을 준비하나?”

    “아닙니다. 그것이… 곧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라, 반란?”

    “확실한 것은 아니나, 좌의정의 움직임이 그렇습니다. 사병의 수가 급격하게 는데다가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근자에 좌의정을 계속 찾습니다. 더구나 얼마 전 피투성이 병사가 좌의정의 가택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피투성이 병사?”

    설마 이곳에 좌의정의 간자가 있었던 것인가?

    “정확한 증좌는 없는가?”

    “예. 그들의 움직임이 이상하여 보고하러 온 것입니다. 아직 반란을 일으킨다는 뚜렷한 증좌는 없습니다.”

    “알았네. 수고했어.”

    침소로 돌아온 일랑은 생각이 많아졌다.

    ‘왕이 자객을 심문하고, 배후가 밝혀졌다는 걸 설변도가 안다면!’

    ‘성라국의 대장군과 주고받던 서찰이 세자의 손에 있다는 것을 설변도가 안다면… 그래서 반정을 도모한다? 아니야, 어딘지 이상하잖아?’

    ‘설변도는 어찌 번거롭게 반란을 일으키려 할까? 살고자 한다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성라국으로 도피하지 않고?’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 설마, 누군가를 내세워 자신의 꼭두각시로 삼아 왕실을 쥐락펴락할 작정인가?’

    ‘그럼 누구를 앞세워서… 설마 능윤군을?’

    가능한 일이다.

    몸이 허약한 능윤군을 앞세워 반정에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그때부터는 설변도의 세상이 될 것이다.

    비단 제 생각이지만, 놈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즉시 겉옷을 걸치고 검을 챙긴 일랑은 세자의 침소로 향하였다.

    검을 들고 빠르게 다가오는 일랑의 모습에, 사림이 즉각 검을 앞세워 제지했다.

    “야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급한 일이오. 저하를 만나야 하오.”

    “이미 반 시진 전에 침수 드셨습니다.”

    “깨우면 안 되오?”

    사림은 제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어이가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었다.

    “감히 뉘를 마음대로 깨운단 말입니까? 아무리 개방 방주라 하여도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게 말하고 물러가시오.”

    “하아, 아주 듬직한 호위로군.”

    심각할 수도 있는 사태에 앞길을 막으니, 일랑은 자신도 모르게 약간은 비꼬아 말을 해 버렸다.

    “뭐요?”

    “됐고! 이건 뭐 나라 안팎으로 지랄을 하니 살 수가 있나.”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동안 지내며 천한 거지치고, 꽤 품위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걸쭉한 입담에 사림은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어딘가 익숙한 것 같은 이 이상한 느낌, 뭐지?’

    “거, 말이 좀 심하십니다, 방주!”

    “지금은 더 심한 욕지거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오. 대관절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 모양인지 원.”

    “점점 도가 지나치십니다.”

    이쯤 되니 사림도 굳은 표정으로 여차하면 방주와 한바탕 붙을 심산으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조금 전 개방의 정보원이 다녀갔소.”

    “…?”

    “회임한 두화… 아니, 그 후궁 마마의 거처에 며칠 전 자객이 들었었다고 하오.”

    “예?”

    놀란 사림이 되물었다.

    “그것만이라면 내 이러지도 않겠소이다. 지금 좌의정이 무슨 생각인지 사병과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

    “설마….”

    “내 짐작하는 바도 같소. 자객을 보낸 자도 좌의정이거니와, 이번 전쟁의 원흉도 좌의정이니, 이제 곧 저하께서 도성으로 돌아가면 좌의정은 제 살길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소. 하니,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것이겠지.”

    얼굴이 굳어진 사림이 검을 틀어쥐었다.

    “성라국과 손을 잡았다면, 그리로 도피하면 될 것을 어찌 목숨을 걸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게요? 말이 안 되지 않소이까?”

    사림은 일랑의 말에 반문했다.

    “만약 저하께옵서 도성에 도착하기 전에, 능윤군을 앞세워 반란에 성공한다면 어찌 될 것 같소?”

    “…!”

    “몸이 약한 능윤군을 손바닥 위에 놓고 제 세상을 만들려는 개수작이지. 아, 모르겠소이다. 난 다 전했으니 먼저 도성에 가 봐야겠소.”

    몸을 돌리는 일랑의 옷깃을 다급하게 붙들었다.

    “이대로 가면 어찌합니까? 들어가서 자세한 사항을….”

    “감히 깨우지 말라고 할 땐 언제고? 아무튼 난 도성에 목숨보다 중한 사람이 있어서, 지금 출발해야 하오. 쉬지 않고 말을 채근해도 닷새는 걸릴 시간이니, 저하께 서둘러 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일랑은 서둘러 개방의 식구들에게 소식을 전해 바로 도성으로 출발하였다.

    ***

    한편 보름이 넘어가도록 자백하지 않던 자객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서야 드디어 그 배후를 자백하였다.

    자객의 입에서 좌의정이 언급되자, 왕의 눈빛이 형형하게 바뀌었다. 즉시 배후로 지목된 좌의정 설변도를 잡아들이라 명하였고, 동시에 편전 회의를 다급히 소집하였다.

    조반도 들지 않은 이른 시각에, 연통을 받은 대신들은 놀라 입궐하여 저마다 왜 긴급 소집하였는지에 논하였다.

    전시이니 적들에게 수환성을 빼앗겨 급히 피난이라도 가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혹은 세자가 죽었다는 파발이 온 것은 아닌지,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왕을 기다렸다.

    성난 발걸음으로 편전에 들어선 왕이, 옥좌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다 말고 뒤돌아 대신들을 향해 일갈했다.

    “감히 왕실의 후손을 해하려 하다니!”

    “…!”

    “…?”

    대신들은 갑작스러운 왕의 역정에도 놀랐거니와, 왕실의 후손을 해하려 하였다는 말에 더 놀라 서로 눈치만 바라봤다.

    “전하, 무슨 말씀이시온지 모르겠나이다. 심신을 가라앉히시고 말씀해 주시옵소서.”

    격분한 왕이 옥좌에 앉아 소리쳤다.

    “세자의 후궁인 승휘가 회임을 하였소. 이는 왕실의 경사요, 나라의 경사인 것을 역심을 품지 아니하고서야 감히 과인이 있는 궁 안에 자객을 보냈겠소?”

    세자의 후궁이 회임하였다는 소리에 놀란 대신들은, 궁 안에 자객이 들었다는 왕의 말에 두 번 놀라, 말까지 더듬거렸다.

    이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자칫 잘못 엮이면 멸문지화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 자객이라니요?”

    “맞습니다. 누가 감히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이옵니까?”

    조소를 흘린 왕이 한숨과 함께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좌의정!”

    “예? 아니겠지요. 어찌 좌의정이… 명확한 증좌가 있어야 하옵니다.”

    좌의정의 편에 선 대신들을 향해 왕은 일갈했다.

    “자객이 실토하였느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좌가 어디 있겠는가!”

    서슬 퍼런 왕의 일갈에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고 눈치만 살폈다.

    좌의정의 편에 선 대신들 중 몇몇은 불안함에 덜덜 떨었다. 평생 호의호식을 누리게 할 동아줄인 줄 알고 잡았더니, 까딱 잘못하면 자신들의 목숨까지 앗아갈 썩은 줄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어 왕의 분개한 목소리가 편전을 울렸다.

    “또한 좌의정이 이리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것은 세자빈의 부추김도 있었으니, 이는 결코 가벼이 넘어갈 수 없소. 여봐라! 당장 좌의정을 잡아 가두고, 세자빈궁의 궁인들과 세자빈 또한 옥에 가두거라. 내 친히 심문할 것이니라!”

    편전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대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태의 심각성을 논할 때, 호조판서와 병조판서의 눈이 마주쳤다. 이내 병조판서 김윤석이 한발 앞서 은밀히 궁을 빠져나갔다.

    남여도 타지 않은 병조판서가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좌의정의 가택을 향해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관군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좌의정이 무너진다면 나 또한 살아남기 힘들 것이야!’

    제가 살기 위해 김윤석은 좌의정 가택의 대문을 급하게 두들겼다.

    “아니 누군데 아침부터… 어이구, 병조판서 대감 아니십니까?”

    “비키게!”

    하인을 밀치고 들어간 병조판서 김윤석은 설변도의 침소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대감, 급한 일이니 들어가겠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하인이 재차 만류하며 소리쳤다.

    “어이구, 어찌 이러십니까? 아직 대감마님께옵서는….”

    소란스러움에 설변도가 문을 열고 나왔다.

    “병조판서가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못마땅함이 그득 배인 설변도의 음성에도 김윤석은 평소와 달리, 다급하고 절박한 모습으로 외쳤다.

    “대, 대감! 큰일 났습니다.”

    “…!”

    설마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소식이 벌써 궁에 당도한 것인가?

    당도하였다 하여도 이젠 되돌릴 수 없다. 이미 제가 이번 전쟁에 연루된 것을 세자가 알게 되었다고, 간자가 알려주지 않았던가.

    분명 편전에서 그를 추궁하려 들 것이다.

    하나, 세자가 증좌를 가지고 돌아오기 전까지 아니라고 딱 잡아떼며 아주 조금만 시간을 끈다면, 수일 내 제 뜻대로 세상이 돌아갈 것이다.

    하여 서둘러 능윤군을 설득하느라 요즘 몸도 마음도 바쁘다.

    명분을 세워야만 반란을 일으킨 역적도 공신이 될 수 있다. 전쟁을 빌미로 화월국을 위기에 빠뜨린 왕을 몰아내고, 능윤군을 새로이 왕에 추대하며 자신은 일등 공신이 될 작정이다. 그 후, 몸이 약한 능윤군 대신 조정을 장악하고, 화월국을 제 손아귀에 넣을 것이다.

    이처럼 제 머릿속엔 한 수가 아닌 몇 수 앞을 내다보며, 계획한 것이 착착 진행되어감에 퍽 만족스럽다.

    한데,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 소란을 피운 병조판서가 못마땅해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당장 피하십시오. 궁에서 관군이 올 것입니다.”

    “음.”

    뭐, 그 정도는 각오한 일이다.

    오늘 중으로 능윤군의 확답만 듣는다면, 아무리 자신을 가둬 두어도 단번에 판도는 뒤집힐 테니 말이다.

    “그리 한가로우실 때가 아닙니다. 어쩌자고 궁에 자객을 들이셨습니까?”

    “자객?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실패했다 하여도 스스로 죽을 놈들이니까.”

    여유로워 보이는 좌의정의 모습에 김윤석은 속이 터질 지경이다. 제 가슴을 퍽퍽 쳐대며 언성을 높였다.

    “그게 아닙니다. 자객이 벌써 실토하여 지금 편전에서 대감을 잡아들이라 전하께옵서 명하셨습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대감을 부추겨 회임한 승휘 마마를 해하려 했다 하여, 세자빈 마노라뿐 아니라 세자빈궁에 있는 궁인 모두를 옥에 가두라 하셨습니다.”

    “뭐라!”

    여식이 갇힌다고!

    감히 저를 잡으러 와?

    눈을 부릅뜬 설변도는 서둘러 의복을 갖춰 입고는 가택을 빠져나와, 은밀히 사병을 키우는 장소로 향하였다.

    ‘내 이럴 줄 알고 진즉부터 사병을 따로 키운 게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오랜 세월 다른 이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가택에도 사병이 있었지만, 따로 몇백에 이르는 사병을 키웠다.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들인 재물만 하더라도 상당했다. 그렇게 키운 사병을 이제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잠시 뒤, 한발 늦은 병사들은 설변도의 가택 구석구석 살폈지만, 이미 도주한 좌의정과 그 일당들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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