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월국애사 (60)화 (60/96)
  • 60. 세자빈의 흉계-2

    신에 발을 넣으려 고개를 내리던 두화는 그들이 왜 그렇게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신 속에 쏙 들어가 있는 쥐 사체를 보며, 유치한 장난에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어디 이런 애들 같은 장난질을!’

    순간 두화는 이것을 역이용하기로 하였다.

    “어머!”

    두화의 외침에 뒤편에 서 있던 련하는 비집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영양들은 고개를 앞으로 빼 궁금해했다.

    “아! 깜짝이야, 어떻게 해!”

    두화는 부러 소리치며 허리를 굽혔다.

    ‘움막에서 늘 같이 지낸 게 쥐인 것을… 이딴 것으로 날 놀라게 하려 했다니. 그럼, 이번엔 당신들 차례야.’

    허리를 굽혔던 두화는 꼬리를 잡아 재빨리 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세자빈의 가슴을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아악! 쥐, 쥐! 악!”

    쥐를 본 영양 하나가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자, 곁에 있던 영양들 또한 호들갑을 떨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하나, 자신의 가슴을 맞고 떨어진 것이 뭔가 하여 고개를 내려다본 련하는 순간 좌우로 휘릭 움직인 꼬리를 보고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아앙, 어머니! 쥐가 살았어! 징그러워, 어떡해?”

    누군가 소리치자 또다시 다들 발을 구르며 아우성쳤다.

    그제야 멀찍이 있던 초아가 뛰어 올라와 혼절한 련하를 부축했다.

    분명 죽은 쥐를 구하라 하였거늘, 채 죽지 못했는지 여전히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쥐를 보고 초아 역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자빈의 앞에 있는 쥐를 초아가 발로 톡톡 밀자, 세상에!

    마치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양새에 초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 멀찍이 밀어내려 발을 내미는데, 쥐가 벌떡 일어나 요리조리 움직였다.

    “아니, 이게 왜 살아있어?”

    살아 움직이는 쥐 때문에 영양들은 눈물 콧물 빼며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두화는 유유히 세자빈궁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뒤돌아선 두화가 제 배를 감쌌다.

    ‘놀라진 않았지만, 네게 몹쓸 것을 보여준 것 같구나, 아가.’

    천천히 동백궁으로 향하였다.

    한편 두화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궁인 하나가 재빨리 대비궁으로 향하는데….

    ***

    정신을 차린 련하는 벌떡 일어나 앉아 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없음에 안도했다.

    분명 제가 준비하라 시켰지만, 껌뻑거리는 쥐의 눈과 좌우로 휙휙 움직이던 꼬리를 본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꼬리가 움직였을 뿐인데, 그대로 제게 달려들 것만 같은 착각에 한심하게도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마노라, 괜찮으시옵니까?”

    “어찌 된 것이냐? 쥐가 왜…!”

    누가 들을까 싶어 금세 목소리가 작아진다.

    “사체가 아닌 살아있는 것을 구해오면 어쩌자는 것이냐? 나까지 놀라지 않았더냐!”

    “아니옵니다. 분명 승휘 마마 신에 넣을 때까지만 하여도 축 늘어진 것이 죽은 것인 줄만 알았사옵니다.”

    “하아, 이게 무슨 한심한 모양새란 말이냐? 참, 영양들은?”

    “다들 사색이 되어 울고불고하시고, 김 소저의 치마 속으로 들어간 쥐 때문에, 기어이 김 소저는 소피까지 싸시더니 그대로 혼절하시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나이다.”

    영양들이 저를 얼마나 한심하고 보잘것없이 볼 것이냔 말이다.

    밀려드는 두통에 머리를 손에 괴고 한숨을 내쉬던 련하가 갑자기 두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승휘는 어찌 되었느냐? 놀랐더냐? 천한 것의 씨는 떨어졌느냐?”

    “그것이….”

    말을 꺼리는 초아에게 련하는 어서 말해 보라고 채근하였다.

    “워낙 난리 북새통이라 놀랐는지는 모르오나, 마노라를 부축해 침소로 들어갈 때 보니 어느새 사라진 후였나이다.”

    “…하아, 그 징그러운 것을 보고 놀랐는데도 애가 안 떨어져?”

    “마노라, 방도를 바꾸심이….”

    “여기서 뭘 어떻게 더해야 해? 독과 달리 티 나지 않고, 유산시키려고 팥물하고 녹두를 먹이려 했건만, 요리조리 피해 먹지도 않아. 그래서 놀라게 하려 준비했던 것에 오히려 내가 놀라 기절하고… 우습구나, 내 꼴이 너무도 우습게 되었어!”

    점점 날카롭게 변해가는 세자빈을 보며 초아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럼, 마누라께옵서 잘하시는 것으로 확실히 놀래주는 것은 어떠할는지요?”

    련하의 치켜 올라간 눈썹이 어서 말하라 독촉한다.

    “만약 승휘 마마가 소문대로 천것 출신이라면, 값비싼 각궁을 만져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옵니다.”

    “각궁? 하나, 지금은 전시 중이잖느냐? 이런 시국에 사냥터에 간다면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내게 쏟아질 것이다.”

    “이곳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누가 알겠사옵니까? 뒤쪽 후원에 소인이 만들어 놓겠나이다.”

    초아의 말에 련하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임을 향한 마음이 철저히 무시당하면, 그 마음이 시기로 채워져 총기가 흐려지고 분별이 어려워진다. 지금 련하가 그러하였다.

    한창 계략을 꾸밀 그때, 밖에서 찾는 소리에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초아가 냉큼 일어나 나갔다.

    잠시 후 들어와 곤란한 표정으로 고한다.

    “마노라, 당장 대비궁으로 드시라는 전갈이옵니다.”

    “지금?”

    “예. 서두르시랍니다.”

    만약 중궁전에서 찾았다면 가볍게 넘어가도 되겠으나, 평소 절 아끼는 대비이니 못마땅해도 준비를 서둘렀다.

    ***

    “내, 우리 세자빈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요?”

    “예, 아옵니다. 한데 어찌 이리 늦은 시각에 찾으셨나이까?”

    고개를 든 련하는 정면을 바라보다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평소의 인자한 모습과는 다르게 주름진 미간을 좁힌 대비가 저를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늙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지. 해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하얗게 센 눈썹이 한쪽으로 치켜 올라간 대비가 장침을 내리쳤다.

    “어찌 조악한 짓으로 용종을 해하려 한 것입니까, 세자빈!”

    “그게 무슨….”

    “낮의 일을 내, 모를 줄 알았습니까!”

    이날 이때까지 자신을 알아주지 아니하는 세자 말고는 누구도 저를 향해 냉대하거나 꾸지람을 한 사람이 없었다.

    특히 대비는 그동안 저를 아끼고 잘해주셨던 분이셨거늘, 그런 분이 한낱 승휘 때문에 제게 언성을 높였다.

    처음 보는 대비의 역정과 꾸짖는 일갈에 련하는 그만 움찔거렸다.

    “하, 할마마마, 무슨 말씀이시온지….”

    “정녕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까, 세자빈?”

    “…예.”

    “낮에 세자빈궁에서 벌어진 추태에 대해, 이 사람이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영양들이 추태를 보이고 출궁한 것이 모두 세자빈이 승휘를 놀라게 하려고 벌인 일 때문 아닙니까?”

    찰나 놀라긴 했지만, 련하는 잡아떼었다. 제가 했어도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다. 가뜩이나 승휘를 유산시키지도 못 했거늘, 여기에 벌까지 받는다면 억울하여 잠도 못 잘 것이다.

    련하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울먹거렸다.

    “할마마마, 어찌 저를 그리 생각하시옵니까? 그저 왕실의 후손이 생기는 기쁜 일이기에 영양들을 초대해 떡과 차를 마셨을 뿐이옵니다. 물론 자리를 파하며 약간의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나긴 하였으나, 그것은 정말 우연하게도 벌어진 일이라… 너무도 억울하옵니다.”

    훌쩍이며 고하는 세자빈의 모습에 대비 또한 깜빡 속아 넘어갈 뻔하였다. 하나, 제 수족이 똑똑히 보고 와 고한 것이다.

    ‘허허, 그간 내 앞에서 한 모든 것들도 이리 연기한 것이냐, 세자빈? 아주 맹랑하구나.’

    깜찍하게도 연기까지 하며 절 속이고 있다.

    “알았으니 그만 일어나세요. 그저 이 할미는 세자빈이 걱정되어 한 소리입니다. 만에 하나 낮의 일로 승휘가 잘못되었다면, 이는 세자빈도 책임을 면하기 힘든 것입니다. 왕족의 후사가 얼마나 중한지는 잘 알지요?”

    세자빈과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정치적으로 손을 잡은 좌의정과도 끝이니, 그땐 좌의정이 저를 먼저 칠 것은 자명하다.

    그간 좌의정이 벌이는 일에 공조하였으나, 좌의정은 주상 앞에서도 빠져나가기를 여러 번이다. 그만큼 항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자 앞에서, 대비는 그와 맞서기엔 자잘하게 벌인 자신의 치부를 너무 잘 알기에, 이번 일도 크게 벌일 생각은 없다.

    왕실의 뒷배고 뭐고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기에, 지금 가진 이 권력을 손에 놓기가 싫어 애써 경고만으로 끝내고 만다.

    “예, 할마마마.”

    “할미는 하루빨리 우리 세자빈에게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후사가 귀한 왕실에 찾아온 첫 용종이다 보니 이 할미도 승휘를 마냥 내칠 수만은 없어요.”

    “…!”

    첫 용종…

    그 한 단어에 심장이 차갑게 굳는다.

    “하니 왕손이 태어날 때까지만, 조금만 참는 것이 좋을 듯하여 부른 것입니다. 이 사람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세자빈?”

    “…예.”

    련하는 마지못해 답하고 고개를 내렸다.

    ‘왕손? 하아, 왕손이라 하나 천것 몸에서 태어난 씨를 어디 감히 왕족으로 삼으려 하십니까? 내가 세자빈으로 있는 한, 그 어떤 계집의 배를 빌려 왕족의 씨가 태어나도록 두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배 속에서 태어난 용종만이 이 나라 세자이며, 국본으로 삼을 것입니다.’

    잘못하여 내린 고개가 아니었다.

    제 편인 줄 알았던 대비마저 승휘를 감싸고 도니, 화가 나고 억울해서 그 심경이 표정에 드러날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세자빈궁으로 돌아온 련하는 초아를 조용히 불렀다.

    “각궁을 준비하거라. 특히 화살촉은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준비하여라.”

    “예, 마노라.”

    초아가 물러가고 홀로 남은 침소엔 적막만이 내려앉았다. 마치 지금 제 마음과 같은 삭막한 적막감이 오히려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제 손을 내려다봤다.

    날벌레 하나 죽이지 못하는 제가 근자에 들어서, 승휘와 그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이리 변한 것은 제 탓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제 탓도 그 천한 승휘 탓도 아니옵니다. 모두 다! 저하 때문이옵니다. 조금이라도 제게 관심을 주셨더라면… 제가 이렇게 변하지도 않았겠지요.’

    그저 연모하는 세자와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산보를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입궁하였었다. 한데 그것이 그리도 큰 꿈이었고, 이루지 못할 것이었나보다.

    제가 간절히 원하던 세자의 미소는 다른 여인에게 향해 있고, 제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누리는 여인이 그저 죽도록 미울 뿐이다.

    이대로 허울뿐인 세자빈으로 살기엔 너무도 억울하다.

    “해서 이제라도 보여줄 참이옵니다, 저하. 기대하십시오.”

    ***

    수없이 많은 화살이 날아다니는 적지에서, 적과 칼부림을 하는 자한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다.

    비척대면서도 베고 또 베어내도 적들의 수는 쉽사리 줄지 않았다. 하여 기필코 오늘은 제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로 하여 적지로 뛰어들었다. 물론 박 장군과 백 장군은 생목숨 버리는 거라고 만류하였지만, 더는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없다.

    더구나 적과 싸우는 중에도 칼날을 거꾸로 잡곤 하는 도헌 때문에 벌써 몇 번이나 사림의 도움을 받았다. 드러내놓고 저를 죽이려 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는 없으나, 분명 제게 칼을 겨누었다.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해도 상관없으나, 적을 처리하는 능력 있는 장군을 지금 죽이기엔 이쪽에 손해가 막심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지만 적이든, 백도헌이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다.

    죽든 살든 오늘 결판을 내리라!

    “위치는?”

    지척에서 적과 싸우는 사림에게 소리쳤다. 사림도 적과 싸우느라 주위를 돌아볼 여유는 없을 터인데, 그런데도 자한은 믿을만한 자가 사림밖에 없었다.

    “북동쪽 방향, 말 위에 있습니다!”

    사림의 말에 자한은 북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군과 그 수하로 보이는 자 셋만이 말 위에서 전투를 지휘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제 앞을 막은 적을 베어낸 자한이 사림에게 소리쳤다.

    “시작할 것이다! 백 장군은 오른쪽을 맡아라!”

    “예!”

    치열한 전투 속, 세자의 등 뒤를 노리는 도헌의 눈빛이 선뜻하게 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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