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월국애사 (27)화 (27/96)
  • 27. 두 사내의 신경전

    히죽 웃으며 뒤돌아 냇가로 향하는 세자 때문에, 도헌은 속이 부글부글하였다.

    좀처럼 감정에 기복이 없는 저이건만, 근자에 들어 화가 났다가 혼자 웃었다가 지금처럼 상대 때문에, 울화가 터져 버릴 것 같아 환장하겠다.

    전쟁터에서는 그저 적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며 살기를 드러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자신인데 어쩌다 이리되었을까?

    슬쩍 고개를 돌리니, 풀 같은 것을 뜯어서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세자만 바라보는 두화의 모습에 가슴이 뜨끔뜨끔한다.

    ‘그래, 내가 이리 변한 것이 너 때문이라는 것을 잠시 저하 때문에 잊었구나. 날 이리 변하게 하고는 넌 어찌하여 내가 아닌 저하만 보는 것이냐?’

    이대로 세자에게 두화의 시선을 빼앗길 수 없다.

    도헌도 서둘러 도포와 갓을 벗어 던지고는 근처에서 긴 나뭇가지를 훅 꺾어서는 끝을 날카롭게 다시 한번 꺾어 버렸다. 이내 막대기를 들고 성큼성큼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작 세자는 큰소리치며 물에 들어가더니 겨우 물 위를 휘적휘적하며 태평스럽게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물고기를 잡으신다더니 어찌 물만 휘적거리십니까?”

    감히 세자를 조롱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터무니없는 허세는 좀 눌러줘야겠다. 제가 가지고 온 막대기를 은근히 세자 앞으로 휙 돌려 물고기를 찾는 척했다.

    “설마 지금 그것으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가?”

    “저하, 물고기는 통발이나 작살로 잡아야 하옵니다, 설마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르셨습니까?”

    더 망신당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나가시라고 도헌은 눈빛으로 전했다. 한데 세자는 그런 저를 비웃듯 히죽 웃는다.

    “그럼, 자네는 저 아래쪽에 가서 잡아 오게.”

    ‘무슨 자신감으로 허세를 이리도 부리실까?’

    도헌은 작게 웃음 짓고는 아래쪽으로 가 작은 바위를 들추고 연신 물속을 찔러댔다.

    그런 그를 쓱 바라본 자한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절레거렸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라 하였지.’

    두화가 가르쳐 준 여뀌라는 풀즙을 물속에 흩트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것들이 주위에 둥둥 떠오르기 시작하자 자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옳거니!’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며 큰 물고기가 떠오르자 냉큼 가 주웠다. 욕심내지 않고 사람 수대로 큰 것으로만 5마리를 잡아 물에서 나왔다.

    “그만 나오게. 그러다 감모 걸리겠네.”

    물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나오라고 하는지 싶어, 허리를 들던 도헌은 물고기를 한가득 안고 있는 세자의 모습에 당황했다.

    ‘뭘 어떻게 했길래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은 것이지?’

    그 사이 두화가 불을 피워 자한은 불 근처에 앉아 젖은 의복을 말렸다.

    “감모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 물에 막 들어가셔요?”

    “어째 걱정을 하려면 걱정만 하지, 화는 왜 내느냐?”

    “…누가 걱정을 했다고 그러세요? 그리고 화낸 거 아니거든요.”

    뽀로통하니 대꾸하는 두화 때문에 자한은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너 먹이려고 그랬다.”

    작게 말해 저만 들렸다.

    괜히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작게 대꾸하며 툴툴댔다.

    “제가 언제 물고기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까?”

    “자고로 사내는 제 여인 굶기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아까 그 천둥소리를 듣고 어찌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겠더냐?”

    분명 제게만 들리게 작게 말하는데도, 두화는 다른 이가 들었을까 당황하여 톡 쏘아댔다.

    “허, 무슨… 누가 누구의 여인이라고!”

    “알았다, 알았어. 거기 나뭇가지나 줘 보거라.”

    두화는 미리 꺾어놓은 나뭇가지를 세자에게 건넸다.

    건네는 와중 살짝 닿은 제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저, 저하. 놓으셔요? 주지 스님도 계시고, 저기… 장군님이 이리 오잖아요.”

    “하면 답을 줄 테냐?”

    “예?”

    “내가 널 연… 읍!”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도헌 때문에, 두화는 당황하여 다른 손으로 감히 자한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왔던 도헌이 놀라 당황하며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자, 장군님.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요.”

    슬쩍 두화의 손을 치운 자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신 해명해 주었다.

    “내 입술에 벌레가 붙어 두화가 잡아주던 참이네. 그렇지 않으냐, 두화야?”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미소까지 짓는 그의 여유로움에, 두화는 심장이 널을 뛰듯 제멋대로 뛰어댔다.

    “예? 아… 예. 맞아요, 벌레가 붙어서… 떼려다가…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 저하.”

    “되었다. 내가 허락하였으니 내 존체에 손을 댄 것이지, 감히 허락하지도 않았건만 내 존체에 손을 댔다면 엄벌을 내렸겠지, 아니 그러하냐 두화야?”

    이건 뭐 완전히 약주고 병을 주는 격이다.

    해명해 주는 것까진 참 감사하고 좋았는데, 감히 존체에 손을 댔으니 이 또한 나중에 두고 보자는 소리로 들렸다.

    고개를 숙인 두화를 바라보며 자한은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기에 애써 참아냈다.

    “뭐 하는 건가? 감모 걸리기 전에 앉아 불이라도 쬐게.”

    도헌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분위기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해명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느냐 감히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으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스님도 오시지요. 주먹밥만으로는 부족할 듯싶어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부러 누구 들으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말한 자한은 도헌과 두화를 번갈아 바라봤다. 불가로 다가온 주지 스님과 무영도 자리에 앉았다.

    “귀해 보이시는데 어찌 물고기를 이리 잘 잡습니까?”

    주지 스님의 물음에 자한은 두화를 보며 웃으며 답하였다.

    “누가 가르쳐 주더군요. 해서 저도 오늘 처음 잡아봤습니다.”

    두화만 빼고 모두 놀란 눈치다.

    도헌이 슬쩍 물었다.

    “흠, 어찌 작살 하나 없이 물고기에 상처도 내지 않고 잡으셨는지요?”

    “알고 싶은가?”

    “…!”

    “싫네. 비밀일세.”

    도헌은 순간 웃으며 말하는 세자의 말속에서 조롱당하는 느낌이다. 기가 막혀서 도헌이 대꾸도 못 하고 있는데, 두화가 한숨을 내쉬며 꼬치를 끼운 물고기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전 먹지 못합니다, 보살님. 보살님이 대신 드십시오.”

    인자한 미소를 짓고 합장하는 주지 스님께 두화는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해요. 스님.”

    어느 정도 젖은 의복이 말라갈 때, 물고기도 다 익었는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도헌은 처음으로 패배한 기분을 느꼈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전쟁터에서도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저이건만, 겨우 물고기 잡는 것에 이런 모욕감을 느낄 줄은 몰랐다.

    잡는 것은 못 하였으나, 잘 구워진 물고기의 탄 부분을 털어내어 두화에게 건넸다. 하나, 거의 동시에 맞은편의 세자도 두화에게 물고기를 건네었다.

    ‘죄송하지만, 이번만큼은 양보 못 합니다, 저하.’

    ‘어허, 새까맣게 탄 물고기를 어디 두화에게 주려고 그러나. 이리 완벽하게 구운 것을 먹여야지.’

    두 사람의 말 없는 신경 싸움이 시작되려는 찰나, 자신들의 꼬치를 누군가 한꺼번에 거두어 간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꼬치가 두화 앞에 건네졌다.

    도헌과 자한이 동시에 그 꼬치의 주인을 빤히 바라봤다.

    “불편하고 거슬리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오라비가 구운 거 먹거라.”

    “고마워, 오라버니.”

    환하게 웃은 두화가 무영이 건넨 물고기를 받아들자, 자한과 도헌은 허탈함에 탄식하듯 앓는 소릴 내뱉었다.

    ‘불편하고 거슬리는 것이라. 백 장군과 감히 날 가리키는 말일 테지? 거슬려….’

    ‘오라비치고 닮은 구석도 없는 것 같은데… 신경 쓰이는 작자군.’

    삐뚜름하게 올라간 자한의 눈썹만큼, 무영에게 당장이라도 결투를 하자고 덤벼들 것처럼 차갑게 노려보는 도헌의 눈빛 때문에, 그걸 눈치 보던 두화는 먹다가 체할 판이다.

    “어이구, 칠칠치 못하게.”

    무영이 두화의 곁으로 가 앉더니 스스럼없이 그녀의 입가를 손으로 쓱 문질러 준다.

    “어허, 어디 남녀칠세부동석이거늘. 그리 딱 붙어 뭣 하는 것인가?”

    버럭 호통치듯 소리치는 자한의 말에도 무영은 그저 무덤덤하니, 두화의 입가를 마저 다 닦아주었다. 그리고서야 슬쩍 고개를 돌려 자한을 응시했다.

    “누이입니다. 누이에게도 빌어먹을 남녀칠세부동석을 엄히 강조해 지켜야 하는지 몰랐군요.”

    ‘젠장!’

    무영은 저도 모르게 욱해서 두화를 누이라 말했다.

    실상, 두화를 향한 제 마음도 저들 못지않건만, 이렇게 비겁하게 숨기고 만다.

    “비, 빌어먹을?”

    투박하다 못해 거친 무영의 입담에 눈썹을 꿈틀거린 자한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무영은 자한이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을 느꼈기에, 부러 두화에게 생선 살을 발려 입에 넣어줬다.

    “모자라?”

    “난 됐어, 오라버니 먹어. 이러다 옆으로 커지겠어.”

    “넌 더 먹어도 돼. 그리고 체구가 좀 불면 어때? 그래도 우리 두화인데.”

    “뭐야, 입속에 나 몰래 당과라도 물고 있어? 왜 이렇게 달곰한 말만 해?”

    “하여간 좋게 말해도 툴툴거리지. 싫으면 관둬. 내가 다 먹지 뭐.”

    무영은 부러 자한과 도헌을 자극했다.

    그들이 저를 어떻게 보거나 말거나, 그들이 구운 물고기를 야무지게 다 뜯어먹고는 가시만 남겨, 일부러 그들 앞쪽의 불 속으로 던져 버렸다.

    “보살님들, 배를 채우셨으면 조금 서두르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예. 서둘러 출발해요, 스님.”

    두화의 말에 무영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자한과 도헌 앞에서, 대나무 통에 담아온 물을, 꺼져 가는 모닥불에 부어버렸다.

    물이 닿는 순간 불길이 꺼지며 희뿌연 연기와 재가 허공에 날렸다.

    “아직 사람이 앉아있는데, 거참! 사람하고는.”

    연신 기침을 한 자한이 허공을 휘휘 손으로 저으며 툴툴거리자, 무영이 투박하게 대꾸하였다.

    “스님께서 서둘자 하시는데 어찌 그리 엉덩이가 무겁습니까? 대체 물고기를 몇 마리나 드셨길래.”

    뒷부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으나, 다 들렸다.

    “뭐, 뭐라? 내 물고기는 자네가 가져가지 않았나!”

    “아, 그랬습니까?”

    “그랬습니까? 그게 단가 지금?”

    “예. 더 할 말 없으면 출발하지요. 스님 기다리시는데.”

    제 할 말만 하고 횅하니 몸을 돌려 가는 무영 때문에 자한은 약이 올랐다.

    세자가 무영에게 꼼짝하지 못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자, 도헌은 뭔가 대신 희열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살짝 웃은 것이 티가 났나 보다.

    순식간에 차가운 냉기가 곁에서 느껴졌다.

    “우스운가?”

    “아닙니다, 저하. 서두르라 하니 소신 먼저 가겠습니다. 거, 같이 갑시다!”

    대충 도포와 갓을 챙긴 도헌은 부러 앞서가는 무영에게 말을 하듯 소리치며 뛰어갔다.

    감히 제게 이런 모욕감을 주다니.

    한데도 역정이 나기보다는 웃음이 난다.

    생동감 있는 자들 곁에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보다.

    살아있음에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오늘 자신이 그러하다. 이들 옆에서 티격태격해도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나도 같이 가세. 좀 기다려 보게!”

    두 시진은 족히 걸었다.

    체력 하나는 튼튼하다 자부했던 두화지만 쉬지 않고 걸어와 그런지, 조금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작은 언덕 끝까지 오른 주지 스님의 얼굴에 시원한 미소가 걸렸다.

    “다 왔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두화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스님에게로 뛰어갔다.

    그 모습에 자한과 도헌이 동시에 일어서서 외쳤다.

    “그러다 넘어질라!”

    “다치겠구나, 두화야!”

    두 사내의 외침은 들었지만, 두화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로 따라 올라온 무영이 두 사내를 힐끗대고는 두화에게 소곤거렸다.

    “혹시 저 두 사람 너한테 뭐 빚졌냐?”

    “응? 아니… 빚이면 오히려 내가….”

    저도 모르게 중얼대며 다 실토할뻔하였다. 자칫 부친의 귀에 들어갈 뻔한 순간이다.

    “네가 뭐?”

    “아, 아니야 오라버니. 그냥 할 일 없는 귀족 나리들이 즐기는 새로운 놀이인가 보지. 난 놀잇감이고.”

    들고 있던 대나무를 살짝 들어 올린 무영이 가늘게 눈을 부라리며 속삭였다.

    “널 놀잇감으로 여긴다고?”

    “그렇다고 하면 설마 그 검으로 죽이기라도 하게?”

    “그럼! 내 누이를 한낱 놀잇감으로 여긴다는데 그걸 가만둬?”

    “어휴. 아서. 누가 누굴 죽인다고….”

    한 사람은 전쟁광 살인귀라 불리는 사내요, 또 다른 사내는 이 나라 세자이거늘 그들에게 검을 들이댄들 저들이 퍽 놀라기나 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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