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월국애사 (18)화 (18/96)
  • 18. 이로써 세 번째니라.

    물고기를 잡아먹겠다는 두화의 말에 자한은 못 믿겠다는 듯, 혹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하면 저하가 그냥 돌아가겠는데.’

    “하니 저하께서는 기다리기 지루하시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세요.”

    ‘제발 간다고 해, 간다… 간다!’

    “그래, 꼭 먹어야겠다니 잡거라.”

    “예, 잡아서 먹겠습니다. 하면 조심히 돌아가셔요.”

    뒤돌아선 두화의 입술 끝이 한껏 올라가려는데, 뒤를 따르는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고개만 홱 돌렸다.

    따라오는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어서 앞장서라는 듯 고갯짓을 한다.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돌린 두화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이왕 이리된 것, 정말 한 끼 해결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강가로 떠밀려와 둑 가장자리에 말라버린 나무를 주워 와 대충 쌓았다.

    나무를 비비어대며 익숙하게 불을 금세 피워냈다. 손을 털고는 강둑을 이리저리 올려다보며 뭔가를 찾았다.

    “뭘 그리 찾느냐? 왜? 물고기가 거기 있더냐?”

    피식 웃으며 비꼬는 세자의 말을 한 귀로 흘린 두화는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하고는 둑을 기어올라 풀을 뽑아 내려왔다.

    “잠시만 고개 좀 돌려주세요, 저하.”

    “어찌해서?”

    “치마 좀 벗게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두화 때문에, 오히려 자한의 얼굴이 붉어진다.

    “뭐, 뭐라? 뭘 벗어? 아니, 지금 예서 그거를 벗겠다는 것이냐?”

    당황하며 두 눈을 부라리는 그를 돌려세울 수 없으니, 두화는 근처 마른 덤불 뒤로 가 치마를 벗고 돌아왔다.

    치마 좀 벗으면 어때.

    속곳 말고도 속바지에 속치마까지 겹겹이 입었는데 뭘 그리 놀라는지 원.

    ‘아휴, 귀족들은 하루하루 참 피곤하게 산다. 옷 하나 입는 것도 뭘 이리 껴입어야 하는지… 이제야 좀 몸이 가볍네.’

    자한은 오늘 여러 번 민망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래도 아까 거의 훌렁 벗은 것보다는 낫다마는, 훤한 지금 거의 침의 수준으로 입고 있는 두화를 누가 볼까 싶어, 괜히 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게 된다.

    “정말 벗었느냐?”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이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세자인 제 앞에서 아니, 저도 사내이건만 어찌 제 앞에서 훌렁 벗고 나온단 말인가!

    “그럼 물에 들어가는데 비싼 의복 망가지면 어떡하라고요?”

    “망가지면 망가지는 것이지. 그러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여인이 되어서는!”

    “누가 좀 보면 어때요? 홀랑 벗은 것도 아닌데, 그냥 정신이 좀 나간 여인이 벗고 돌아다니나보다 하겠죠. 전 것보다 저하께서 주신 의복이 망가지는 것이 더 신경 쓰여요. 거, 불이나 꺼지지 않게 나무나 더 넣어주세요.”

    제 할 말만 하고는 아까 뽑아온 풀을 돌멩이로 쿵쿵 내리쳐 짓이기더니, 이내 한 움큼 들고 물에 들어간다.

    볼수록 어이가 없고 기막히지만, 제가 준 의복이 망가질까 봐 신경이 쓰인다는 두화의 말에 괜히 기분이 느른해진다.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보던 자한은 이제 궁금할 지경이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낚싯대를 만드는 줄 알았더니, 겨우 풀을 뽑아 물에 들어가더니 물 위를 사정없이 퍽퍽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자한은 그녀를 따라 물기슭까진 갔지만, 신이 젖는 것이 싫어서 조금 더 뭍 쪽으로 나와 소리쳤다.

    “거기… 물속에 누가 있는 것이냐? 그 정도 맞으면 죽겠구나.”

    바위 옆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반대쪽 산 아래 응달쪽도 사정없이 한참을 내리쳤다.

    ‘하이고, 내 팔자야!’

    그냥 쓱쓱 물 위를 훑고 즙만 흘려도 되는 것을, 근자에 들어 꼬인 제 인생을 탓하며 괜히 물에다 성질을 부려보았다.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자 작은 피라미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떠오르는 물고기 중 제법 실한 놈으로 주워 돌아왔다.

    자한은 두화의 손에 들린 물고기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어떻게 잡은 것이냐? 네가 한 일이라고는 물하고 원수진 것처럼 물을 때린 것밖엔 없던데?”

    “예. 그렇게 잡는 거예요.”

    “…?”

    “저기 저 여뀌라는 풀이 물고기 잡는 풀이거든요. 그러니까, 여뀌를 짓이겨 그 즙을 물에 풀면 잠깐이지만, 물고기들이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떠올라요. 그럼, 얼른 물고기를 그냥 쓱 훑어 오면 되는 거죠.”

    신기하고 이상한 것을 알려주고는 불가로 향하는 두화를 자한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봤다.

    등에 닿은 햇살과 앞에 활활 타오르는 불 덕분에 두화의 젖은 몸도 얼추 말라갔다.

    물고기를 꾄 나뭇가지의 방향을 돌려세우고는 덤불 뒤로 가 의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나왔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불가로 가 조심스레 앉았다. 자칫 불티라도 날아들어 구멍이라도 날까 싶어, 치마를 한껏 끌어당겼다.

    살랑 강바람이 불자 어느새 익은 물고기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물고기를 요리조리 살피던 두화의 표정이 환해진다.

    “자, 드셔보세요.”

    “…이걸 지금 나보고 먹으라고?”

    검게 그을리고 탄 물고기를 제 앞으로 쑥 내민 그녀를 보며, 자한의 미간이 사납게 좁혀들었다.

    “시장하지 않으셔요?”

    “뭐… 별로.”

    바로 홱 거둬가더니 이내 호호 불며 먹는다.

    “으음, 역시 물고긴 바로 구워 먹어야 제맛이지. 여기에 귀한 소금을 조금만 뿌려서 먹으면 더 꿀맛일 텐데 아쉽다.”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물고기의 머리와 꼬리를 잡고 잘도 뜯어 먹는다. 한데 먹는 모습을 보니, 자한은 저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꼴깍 삼켜진다.

    ‘참 내, 거절했다고 그렇게 또 단박에 가져갈 건 또 뭐냐? 자고로 뭘 권유할 땐 두세 번 정도 해야지, 인정머리 없게.’

    검게 탄 껍데기를 벗겨버리자 흰 속살이 뽀얀 김을 뿜어내며 드러냈다. 두화의 입속으로 조금씩 사라질 때마다 덩달아 자한의 입도 벌어진다.

    ‘저리 맛있나? 정말 맛있게도 먹는군.’

    금세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운 두화는 아까부터 제가 먹는 것만 빤히 바라보던 그의 시선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처음에 거절할 때는 그럼 그렇지, 세자가 겨우 이런 물고기를 먹을까 싶어 냉큼 가져와 제 배나 채우지 싶어 맛있게 먹었다. 솔직히 배도 고팠거니와 너무 잘 구워진 물고기라 유독 맛나기도 하였다.

    한데 저리 쳐다보고 있으니 괜히 안쓰러워 보인다. 가장 없어 보이는 것이 먹는 사람 빤히 쳐다보는 건데, 다 가진 세자가 저러니 안 줄 수가 있나.

    “진짜 시장하지 않으신 거 맞죠?”

    “…흐음. 괜찮다.”

    좀 전 제가 한 말 때문에, 그놈의 체면 때문에 또 거절하고 만다.

    “예. 하면 남은 두 마리도 다 제가 먹어요?”

    “…!”

    노릇노릇 구워진 물고기를 꾄 나뭇가지를 뽑아, 슬쩍 세자 앞으로 쓱 냄새만 풍기고 제 입으로 직행했다. 역시나 맛나다.

    “저하, 이건 제 평소 습관이 아닌데요. 천한 거지이긴 해도 밥만큼은 얌전하게 먹는데, 이 물고기는 도저히 소리를 안 내고 먹을 수가 없네요. 기가 막히게 맛나니 뜨거워도 어찌 멈출 수 있겠어요? 하니, 제가 쩝쩝거려 저하의 심기를 어지럽혀도 용서해 주셔요.”

    웃으며 마지막 물고기를 잡아 입가로 향하려 하자, 순간 자한이 소리쳤다.

    “멈춰라!”

    “예?”

    “그러니까… 으음, 그거….”

    가만히 뻗은 손바닥이 두화의 앞에서 까딱거린다. 어서 내놓으라고 이젠 손으로 명하신다.

    두화는 웃음도 나고, 슬쩍 장난기도 동했다.

    이른 아침부터 천것이라 부르며 귀족 여인과 차별하여, 제 마음에 아주 조금 상처를 낸 복수라고나 할까?

    그대로 물고기를 제 앞으로 당겨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습니다. 시장하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시장하지 않다. 하나, 네가 탈이 날까 염려가 되어 그러는 것이니 이리 내놓거라.”

    우습지도 않은 그의 말에 두화가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고는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하, 저는 아무거나 다 잘 먹고, 소화도 엄청나게 잘되는 터라 이정도로는 끄떡없어요. 두 마리 더 먹어도 아마 괜찮을걸요.”

    “아니! 분명 탈이 날 것이다. 내가 도와주마.”

    “괜찮은데….”

    “어허, 이리 내 보아라.”

    결국 두화는 못 이기는 척 물고기를 넘겼다.

    물고기를 받아든 자한은 거무튀튀하게 탄 부분을 벗기고, 흰 속살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조심스레 하얀 속살을 베어 물었다. 아무것도 간하지 않은 생선 살은 무척 담백했지만, 불 향이 덧입혀져 비린내가 나지 않아 입에 맞았다.

    “으음, 정말 맛나구나.”

    금세 앙상한 가시만 남기고 손가락에 붙은 생선 살까지 떼어먹는 그의 모습에 두화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왜 웃는 것이냐?”

    “시장하지 않다면서요?”

    “…시장하진 않으나, 내 너를 위해 먹은 것이다.”

    “예, 예. 한데 요기….”

    두화는 본인 입술 위에 손가락을 대면서 그의 입술 위에 묻은 검댕을 알려주었다.

    그런 두화를 보며 자한은 그녀의 입술 위로 검은 것이 묻어나는 것에 미간을 꿈틀 좁혔다.

    ‘부러 저리 묻히지 않고서야 어찌 계속 미련하게 찔러대는 것인지.’

    검댕이 묻은 것을 알려주려 하던 두화는 정작 자신의 입술 위가 검게 되는 것을 몰랐다.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그의 둔함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뻗었다. 입술 위 검댕을 엄지손가락으로 쓱 문질렀다.

    입술 위를 느리게 쓸어내는 손가락의 감촉에 자한은 당황하였다. 순간 너무 빨리 뛰어대는 심장과 반대로 정신은 넋이 나간 것처럼 멍했다.

    “검댕을 묻히고 돌아다니시면 누가 이 나라 세자인 줄 알겠습니까? 이리 닦아내고….”

    뭐라고 조잘거리는 그녀의 말소리가 윙윙대며 귓바퀴를 타고 들리는데,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만 보인다.

    그제야 넋이 나간 것처럼 멈춰 있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아직 제 입술 위에 머문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당황… 스럽구나.”

    “예?”

    ‘왜 이리 머릿속도 가슴도 요란한 건지 모르겠군.’

    평소 제 모습이 아니기에 자한은 심히 혼란스러웠다.

    제가 사준 의복을 입고, 하필 도헌과 함께 배에서 내릴 때도 또 호색한을 잡는다며 물속을 헤엄칠 때도 그리고 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옷을 벗어 여인에게 걸쳐 줄 때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한데 지금은 언짢고 화가 나서 마음이 심란한 것이 아니라서 더 당황스럽다.

    ‘그래, 오늘 못 볼 것을 여러 번 봐서 그런 것일 게야. 하긴 여인이 그리 벗고 설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놀란 마음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아 그런 게지. 암.’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가 두 눈을 깜박인다. 긴 속눈썹이 내려앉고 위로 떠질 때 그리고 콧방울을 찡긋대는 모습이 자꾸만 제 허락 없이 눈에 새겨진다.

    숨마저 가빠오니 안 되겠다.

    자한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나지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로써 세 번째니라.”

    “…뭐가요?”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댄 거 말이다.”

    “…!”

    그제야 정신이 든 두화의 두 눈이 놀라 커다래졌다. 아차 싶어 잡힌 손을 빼려고 들지만, 어찌 된 일인지 놔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두화는 다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용서해 주셔요, 저하.”

    “용서? 음… 감히 세자의 존체에 손을 댄 것을 말하느냐? 아니면 세자의 존체에 감히 검은 것을 묻혀 날 농락하려던 것을 말함이냐?”

    “예? 농락이라니요?”

    자한은 그녀의 입술 옆 검댕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두화의 눈앞에 들이댔다.

    “봐라, 네가 조금 전 직접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던 곳에 검은 것이 묻어 있다. 이리 묻힌 손가락으로 감히 내 얼굴에 무슨 짓을 하려 했던 것이냐?”

    “예?”

    두화는 다른 손으로 제 입술 주위를 쓱 문지르고는 손을 살펴봤다.

    ‘정말 검댕이 묻어나오잖아!’

    부끄럽고 창피함에 고개가 자연스럽게 숙여진다. 한데 제가 세자의 얼굴을 문지른 것은 엄지손가락이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아직 세자에게 잡힌 손가락을 펴 보았다.

    역시나!

    “하온데, 저하. 제가 저하의 얼굴에 손을 댄 것은 엄지손가락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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