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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부부-47화 (47/63)

47 화

주거 니 받거니 술 타임은 계속 되었다.

예준이 먼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제주도 갔을 때

말이야.”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예준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때 괜찮은 자리에 매물이 하나 나온 걸 봤거든.”

“아,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수빈은 별생각이 없었다.

“장모님이랑 장인어른만 마음에 드시면 거기에 가게 하나 마련해드릴까 하는데.”

무심히 흘러나온 예준의 말에 케이크로 향하던 수빈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천천히 시선이 올라왔다.

“물론 집도 같이 해드릴 생각이고.”

수빈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줄도 모르고 예준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1층은 가게로 쓰고 2, 3층은 자택으로 쓰시기 괜찮을 거야. 세를 줘도 좋고. 바닷가 바로 앞이라 한적하긴 한데, 시내랑 가까워서 편의도 좋아.

무심한 그의 표정과는 달리 어마어마한 소식이었다.

“……진심이야?”

떨림이 선연한 그녀의 목소리에 예준도 그제야 시선을 돌려 수빈을 바라보았다.

“왜. 별로야?”

“아니. 별로일 리가 없잖아. 그냥 좀 놀라서…….”

놀랄수밖에.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였다.

뭐랄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지만 물밀듯이 밀려오는 벅찬 감격이 가장 컸다.

제주도에 부모님을 위한 가게 하나.

그건 수빈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고, 그걸 예준이 잎지 않고 그의 손으로 직접 이루어주게 되었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놀라웠으니까.

“장인어른이랑 장모님 모시고 겸사겸사 제주도 한 번 다녀오자.”

“같이?”

두근두근.

가슴을 졸이며 되물은 말에 예준은 수빈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대답했다.

“당연히 같이.”

당연히…… 같이.

그가 뱉은 말이 몇 번이나 귓가에 메아리쳤다.

“싫어?”

예준이 묻자 수빈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 좋아, 완전 좋아!”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에 민망해진 예준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수빈은 고마운 일인 건 확실한데 어쩐지 이 타이밍에서 힘껏 고맙다고 외치기가 좀 그랬다.

너무 좋아하기가 어쩐지 좀 속물 같기도 하고, 뭔가 이 날만 기다려온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서였다.

그러니까, 행여나 보상만을 원했던 사람처럼 비춰지면 예준의 마음이 씁쓸해질까 보卜

쓸데없는 걱정일지 몰라도 수빈은 그렇게 느꼈다.

그녀는 결국 고맙다는 말을 대신해 와인 한 잔을 더 권했다.

“자, 마셔.”

“왜 이렇게 먹여? 먹여서 뭔 짓 하려고?”

“나쁜 짓 하려고. 히히”

“가차 없이 신고할 거니까 생각 잘 해.”

예준의 반응에 크게 웃던 수빈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잖아.”

적당한 취기 나쁘지 않은 분위기

예준이 제 속내를 털어놓은 만큼 이제는 제 마음도 꺼낼 필요가 있는 타이밍이었다.

“나는 사실 너랑 날 세우고 사는 거보다 잘 지내는 게 더 편해. 너는 네가 나한테 살갑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거든.”

한 번 입을 열기가 무서웠지, 본심은 터지기가 무섭게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네가 싫지 않다는 얘기야. 너만 괜찮다면 딱히 불편할 일도 없고……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애틋함이 깊어지기도한다.

그의 아픔을 잘 알고 있어서기도 했고, 우리가 가까워진 게 너무 갑작스럽지도 않아서였을까

비록 앙숙으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꽤 긴 시간 그를 봐왔다.

“오래 봐야 좋고, 자세히 봐야 더 예쁘다는 말도 있잖아.”

“나는 대충 봐도 예뻐.”

간지러운 말은 도통 적응이 되질 않았는지, 예준이 시큰둥하게 말을 잘랐다.

하지만 이미 너그러워진 수빈은 그의 잘난 척에도 기분 좋게 화답해주었다.

“나도 알아.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거.” 하지만 예준의 미간은 역시나 구겨진다.

“어쨌든 좋다는 얘긴데, 내가 좀 살갑게 굴면 네가 또 정색하고 타박할까 봐 좋다는 말 한 번

참하기 힘들다.”

“내가 성격파탄자냐?”

“달콤함의 위대함을 빌려 친한 척 좀 해보려고 그러지.”

수빈이 배시시 웃었다.

예준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대화가 길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한편으로는 왠지 그러면 안 될 것같은 아이러니.

겪어보지 못한 안락함은 오히려 위화감이 되기도 했다.

결국 예준은 먼저 자리를 피해버렸다.

“늦었다. 그만 자자.”

“벌써자게? 나아직 안졸린데.”

“나는 졸려.”

그런데 그때 식탁 위에 올려둔 수빈의 전화기가 울렸다.

정남의 전화였다.

“엄마!”

한껏 기분이 좋아진 수빈은 어느 때보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엄마가 너무 바빠서 이제야

전화했어. 미역국 먹었니기

에?

“무슨 미역국?”

[얘 좀 보卜? 너 오늘 생일이잖아.]

당황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한껏 낮아진 정남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설마 그냥지나갔어?]

정 남의 말에 수빈이 얼굴을 굳혔고, 놀란 예준도 자리에 멈춰 섰다.

수빈이 뒤늦게 분위기를 무마하며 말을 이었다.

“어 그게…… 다, 당연히 먹었지 ! 시댁 식구들이 엄청 맛있는 거 사주시고 나 돈도

주시고, 예준 씨가 케이크랑 와인 사와서 한 잔 하는 중이었어!”

[어머, 정말? 내가 괜히 좋은 시간 방해한 거 아닌가모르겠네! 알았어! 엄마끊는다!]

정남이 서둘러 전화를 끊기도 했지만, 수빈도 그냥 통화가 끊어지도록 내버 려두었匚匕

제주도 얘기 빨리 해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방으로 돌아가려던 예준이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일인 거 왜 말 안했어?”

“나도 몰랐어.”

“나쁜 사위 만들래? 너 일부러 그랬지.”

“아니야! 그리고 나 거짓말한 거 없거든?

진짜 아버지가 용돈 주셨어. 어머니도

주셨고!”

손사래를 치던 수빈이 급히 화제를 돌리며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넌 생일이 언제야?”

“뭐야, 쌩뚱 맞게.”

“빨리 말해. 언제냐고.”

“알아서 뭐하게.”

“뭐하긴? 당연히 챙겨주려고 그러지.” 그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 발 저린 사람처럼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언제부터 우리 사이에 챙겨주는 게 당연한 게 됐냐고 따질 생각하지 마. 내가 그런 사이라고 느끼면 그냥 그런 사이인 거야.”

그러니 행여나 쏘아붙일 생각 말라고.

그녀가 팔짱을 단단히 끼며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앞으로 네가 날 어떻게 구박해도 난 절대 주눅 들지 않을 거야. 더 뻔뻔하게 친한 척할 거니까, 각오 해.”

……뭘 각오까지 해.

예준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웃기는 애다.

“됐으니까, 너나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거 하나 말해봐.”

“정말?,,

예준의 말에 수빈이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표정으로 환히 웃었다.

“음. 그러면……

신중하게 고민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후회가 밀려들려던 찰나.

“갖고 싶은 건 됐고.”

“부탁이 하나 있어.”

그녀가 눈을 빛냈다.

뭔가불안했지만,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물었다.

“뭔데,,

옳지! 걸렸구나!

“오늘 나랑 밤새 술 마셔줘.”

묻기가 무섭게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가 당당히 요구한 생일 선물⑺에

예준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장난하냐? 무슨 밤을 새? 내일 일 안 나가?”

“왜? 아까는 너만아니면 된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만큼이나 마셔놓고 무슨 술을 또 마시겠다고…….”

“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야?”

“되도 않는 소리할래?”

“한 시까지만!”

예준이 오만상을 쓰자 수빈이 검지를 꼿꼿하게 치켜들고 외쳤다.

“딱 한 시까지만 마셔, 그럼. 응?”

눈을 반짝이는 수빈의 모습에 예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싫다고 했다가는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휴.

낮은 한숨을 쉬 던 그가 못이 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까지 만이야.”

“오예!”

신이 난 수빈이 쾌재를 외쳤다.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되었다.

주거니 받거니 2차전이 시작되다보니, 어느덧 와인은 동난 지가 오래고 캔 맥주 하나씩이 사이좋게 놓여있었다.

……와인과 맥주의 조합이라.

이따 거하게 빈대떡 한 장 부치는 거 아닐까 심히 염려스러웠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잘도 마신다.

“술고래.”

타박을 건네 봐도

“칭찬고마워.” 웃어넘겨버리니.

“……후우.”

이길 방도가 없다.

“식탁에서 쓰러져 자도 침대로 안 옮겨줄 거야.”

“괜찮아. 여기 편해!”

“입 돌아가도 책임 안 져.”

,,겨울도 아닌데 뭐.”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예준의 얼굴에 세상만사 다 포기한 듯한 표정이 떠오르자수빈이 히죽 웃었다.

그녀는 반쯤 비운 맥주캔을 눈앞에 둔 채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바로 예훈과 예나의 이야기였다.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예준은 자기도 모르게 작은 실소를 뱉어 냈다.

“하여간 오지랖은 우주 최강이야.”

“친화력이라고 해줄래?”

딸꾹거리던 수빈이 가재미눈을 뜨고 예준을 노려보다가 곧 배시시 웃어버린다.

예준의 입꼬리도 그녀를 따라 올라섰다.

어디서나 그녀는 햇살 같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음지에서 다 죽어가던 것들도

그녀를 만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햇살론이야? 음침한 시댁 식구들 다 시들어가던 거 살려서 꽃이라도 피게 하려고?”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던 수빈이 눈이 반쯤 풀린 채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꽃피워.”

잔뜩 꼬인 발음으로.

“내가 봤을 땐 네가 제일 예쁜 꽃이야.” 헤실헤실 자꾸만 웃으며.

충격이 제법 강했다.

장난처럼 던진 그 낯간지러운 한마디에 가슴 한쪽이 욱신거린다.

마치 준비도 못하고 있다가 불시에 얻어맞은 한방처럼.

파급력도 어마어마했다.

상냥함이 나 따듯함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 얼굴이 굳어져버렸지만.

'그러니까 너도꽃피워. 내가봤을 땐 네가

제일 예쁜 꽃이야.’

그녀의 말처럼 말 한마디에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예준이 말이 없어지자, 조심히 그의 눈치를 살피던 수빈이 입을 열었다.

“지예준.”

“왜.’,

이게 왜 또 무슨 공격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싶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해봐라.

내가 눈 하나 꿈쩍…….

“한번 안아봐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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