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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부부-32화 (32/63)

32 화

다음 날.

수빈은 또 다시 부랴부랴 본가로 향했다.

예준은 오늘 쉬는 날이었던지 라, 아직도 침대에서 못 나온듯했지만, 일부러 깨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내버려두었다.

“어머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그래.”

소정은 오늘도 머리에 화려한 큐빅이 박힌 핀 하나를 얹고 열심히 멸치를 손질하고 있었다.

수빈은 집에서 가져온 불고기소스와 혹시 몰라 가져온 집된장을 꺼 내놓았다.

“저희 엄마표 소스랑 된장인데, 국 끓일 때 시판 된장이랑 조금 섞어 끓여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집된장? 엄마가장도 담그시니?”

“네.,,

“손 많이 갈 텐데 부지런하시구나.”

그녀가 수빈이 싸온 된장을 흘깃거리 며 말했다.

다행이다. 혹시나 기분이 상하면 어쩌나 했었다.

그렇게 소정과 의기투합해 배추된장국과 불고기를 했고, 하나둘 모습을 나타낸 식구들이 식탁 앞에 둘러앉기 시작했다.

“아. 할아버지. 근데 진짜 인간적으로 토요일은 좀 빼주시 면 안 돼요?”

파자마 차림으로 나타난 예나가 죽상을 쓰며 졸려 죽겠다고 투덜댔지만, 계춘은 들은 척은커녕 통박만 쳐 댔다.

“다 큰 처녀가 게을러 터져가지고! 옷차림이 그게 뭐야! 일찍 일찍 안 일어나기”

“……아.”

그녀가 짜증나 죽겠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가족들 간의 최소한의 친목 도모와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는 건 잘 안다.

취지는 좋았지만 식사 자리는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억지로 앉아있는 게 역력해보이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이 불편하고 무거운 공기 마저 익숙한듯 보였다.

“오늘은 우리 손자며느리 솜씨인가?” 애자가 물었고, 수빈이 웃으며 답했다.

“아니요. 어머님이 거의 다하셨어요. 저는 그냥 보조만 좀 했고요.”

맛은 장담 못하지 만, 제가 했노라 나설 수도 없어 수빈은 적당히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고,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소정이 슬쩍 말을 보탰다.

“고기 무조건 피하는 것도 안 좋다고 해서, 일단 조금만 드려봤어요. 어머님 고기

좋아하시 잖아요.”

“그래. 잘 먹으마.”

애자가 기분 좋게 웃었다.

병원에서는 거의 음식도 못 먹을 지경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집으로 돌아온 애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상태가 호전되는 듯 보였다.

많이는 못 먹어도 한창 치료 때문에 안 좋았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빠듯하게 도착한 예준이 마지 막으로 착석했다.

“자. 먹자.”

계춘이 숟가락을 들자 모두가 식사를 시작했다. 수빈과 소정은 떨리는 마음으로 식구들의 식사를 관찰했다.

“된장새로 샀니?”

“아니요. 사돈이 보내주신 집된장 살짝 섞어 끓여봤어요.”

애자의 물음에 소정이 대답했다.

“그래? 솜씨가 좋으시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애자가 국 한 숟가락을 더 뜨는 사이, 계춘은 국그릇을 반이나 비운 상태였다.

결과는.

“。 n

百...

두근두근.

“좋다. 아주 좋아.”

예스! 성공적이었다.

수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슬쩍 바라본 소정도 한시름 놓는 듯한 표정이었다.

불고기보다 배추된장국이 인기가 좋았다는 게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모두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하는 건 아니었어도 밥그릇은 모두 비우는 장관을 연출해주었다.

입 짧은 예나가 공기를 반이나 비웠으니 정 말로 말 다한 거였다.

“국 더 줄까요?”

수빈은 제일 먼저 국그릇을 비운 예준에게 물었다.

묵묵히 밥만 먹던 그가 시선을 들어 수빈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수빈이 생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준의 국그릇을 가져가 국을 더 떠온 수빈이 그의 앞에 국을 놓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밥도 많이 있으니까 더 필요하면 말해요.” 그러고는!

“당신 잘 먹으니까, 너무 좋다.”

죽어라 연습했던 호칭을 시댁 식구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흘려주며, 그의 손등을 살짝 터치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좋아. 이 정도 타이밍이라면 아주 나이스다!

아침 미션도 해결하고, 시댁 식구들에게 다정한 부부 코스프레까지 선보였으니 일타이피인 셈이었다.

그녀의 신들린 연기에 예준도 살짝 헛기침을 하긴 했지만, 곧 표정 관리를 하며 화답을 들려주었다.

“고마워, 여보.”

짧고 간결한 미션 석세스

스치듯 걸친 미소를 곧 지운 채 예준은 식사에 전념했다.

으. 닭살.”

아니나 다를까, 예나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계춘은 보기 좋다며 껄껄 웃어댔다.

“좋을 때지. 암! 안 그래도 왜 서로 호칭이 없나 궁금했던 찰난데, 여보, 당신 하면서 잘 지내는 걸 보니 내가 괜한 걱정했구나!” 호탕하게 웃던 계춘에 이어 애자도 그저

귀 엽 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수빈이 뺨을 붉히며 예준의 등 뒤로 슬쩍 숨듯이 몸을 틀었다.

물론 둘만 있을 때 하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그저 낯간지 러움에 몸부림을 쳤던 거였지만, 속내를 알 리 없는 다른 식구들 눈에는 그저 수줍은 새색시처럼 보일 뿐이었다.

새 식구가 들어온 지 닷새 째.

시베리아 칼바람만 불어오던 지 씨네 식탁에 처음으로 불어온 훈풍이 었다.

* * *

예준은 수빈을 태우고 역으로 향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나 얼른 내려주고 가서 쉬어.”

“안그래도그럴 건데?”

“아, 그래? 난, 또 쉬는 날이라고 혹시나 호텔까지 태워 다주려고 할까 봐 그랬지 .”

그에 예준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훈훈하게 대꾸했다.

“하하.꿈 깨. 내가 왜.”

망할 자식. 침대 끄트머리에 발가락이나

찧어라.

종전의 달콤함은 모두 사라진 살벌한 얼굴로 지아비를 노려보던 수빈이 문짝이 부서져라 닫고는 발을 쾅쾅 구르며 역으로 사라졌다.

예준은 수빈의 뒷모습을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국 더 줄까요?’

'당신 잘 먹으니까 너무 좋다.,

잊을만하면 터트려주는 그녀의 낯선 다정함이 문득 머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몸 사리더니, 숨겨진 재능을 그냥

썩힐 뻔했네. 아주.”

피식

실소하던 예준이 서서히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 * *

예준은 간만에 수영장을 찾아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혼자 살 때도 냉장고를 풍성하게 채워 넣고 살던 스타일은 아니었다. 둘이 사는 지금도 냉장고는 본가에서 할 아침거리를 손질해 보관하는 용도 말고는 영 써먹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식 챙겨 먹는 습관 같은 건 없었던 자신과 달리, 수빈은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꼭 주전부리를 착았다. 혼술도 자주 했고.

“주정뱅이 같으니.”

불퉁한 말과는 달리 걸음은 어느새 안주 코너를 맴돌고 있는 그였다.

예준은 진열장에 놓인 주전부리들을 노려보다가 곧 치즈와 육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그걸 다시 내려놓았다가, 집어 드는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래

맘에도 없는 내조의 여왕 흉내를 내느라 식구들 앞에서 당신 발언까지 선보인 아내 아닌가.

잘 달리게 하려면 가끔 당근도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말한테 주는 당근 같은 거라고.”

중얼거리던 그가 적선하듯 치즈와 육포를 장바구니 안에 넣었다.

예준은 혼자 산지가 꽤 된 탓에 간단한 요리는 어느 정도 하는 편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노트북으로 회사 업무를 좀 보다가 저녁을 차려먹기 위해 장 본 것을 뒤졌다.

그러던 그의 시선이 문득 시계를 향했다.

수빈이 끝날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준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빈의 얼굴을 애써 지우며 요리하기 시작했다.

메뉴는 간단하게 계란볶음밥.

식탁에 앉은 예준이 므t 밥 한 숟갈을 뜨려고 할 때였다.

부르르. 부르르.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밥 먹었어기

수빈이었다.

밥 먹었냐고 묻는 별거 아닌 말에 예준은 어째서인지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 먹고 있어, 라는 그 한마디가 왜 안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왜.”

예준은 그냥 왜냐고 되물어버렸다.

[아니, 그냥. 밥때 돼서 물어본 거야』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묻지도 않던 걸 물으며 괜히 말을 돌린다는 건, 분명 용건이 있다는거다.

“용건을 말해. 돌리지 말고.”

그에 수빈은 흠칫했다. 역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있잖아, 그게…… 나오늘 회식인데』

아…….입이 안 떨어진다.

수빈은 꾸역꾸역 말을 이었다.

[회사 사람들이 자꾸 너 보여 달라고 난리야. 소개도 시켜줄 겸 한 번 오라는데…….]

그녀 역시 마지못해 전화한 참이었다.

회사후배들이며 여직원들이 어쩜 아직까지 신랑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질 않는 거냐고 성화였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고 미뤄봤지만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근데, 아니나 다를까

“하.”

노골적인 실소가 돌아왔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그 선명한 비웃음을 똑똑히 들은 수빈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오 이 재수탱이를 그냥!

하지만 회사 사람들 앞에서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녀는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대꾸를 했다.

[역시 안되겠지?]

“자꾸 사람 귀찮게 할래? 절대 갈 일 없으니까 다신 이딴 일로 전화하지……

그때 였다.

[수빈아.]

뭐? ……수빈아?

[얼른 끊고 와, 빨리.]

수화기를 뚫고 들려온 목소리에 예준의 눈가가 슬쩍 찌푸려졌다.

그건 명백한 남자목소.리'였다.

어쩐지 짜증이 확 밀려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얼핏 들려온 그 목소리가 묘하게 예준의 신경을 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기 앉아. 내가자리 데워놨어.]

……뭘, 데워놔?

하지만 그보다 더 맘에 안 드는 건 수빈의 반응이었다.

[오올. 박성호!]

그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솟았지만, 예준은 지그시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어쩐지 기분 나쁜 걸 티내면 안 될 것만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남의 마누라 이름을 저렇게 느끼하게 불러 재끼는가.

왜 함부로 남의 아내 엉덩이에 제 온기를 나눠주려 하냐고.

유부녀한테 저 따위 저급한 멘트를 날려댄다는 건 남편인 나를 우습게 보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받아주는 너는 뭔데!

[그래.그럼 이만 끊을…….]

침묵하던 예준이 수빈의 말을 뚝 자르며 물었다.

“어딘데.”

전화를 막 끊으려던 수빈은 자기가 뭘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어기

“어디냐고, 지금.”

[올 거야기

“묻는 말이나 대답해. 되묻지 말고 확 안 가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씹어뱉는 듯한 대꾸에 어딘가 분노가 느껴져 수빈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안 오면 그만인 걸, 얘는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난 걸까?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곧 못 이긴 척 장소를 알려주는 그녀였다.

예준은 끊는다는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고는 그대로 식탁을 벗어났다.

그가 떠난 자리엔 손도 대지 않은 볶음밥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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