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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부부-18화 (18/63)

18화

순식간에 속마음을 간파당한 수빈이 움찔했다.

어쩜 저렇게 표정이 솔직한지.

속까지 투명해 제 장기를 모두 보여주는 한 마리의 해파리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예준이 피식 웃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잘못 짚었어.”

그의 말에 수빈이 한껏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어이가 없는 것도 사실.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넌 내가 술 취한 여자 덮치고 책임이나 전가하는 쓰레기로 보이냐?”

“그걸 어떻게 믿어? 네 말대로 나는 기억도 없는데.”

“네가 기억 못하는 걸 왜 나한테 난리야. 기억에 없으면 장담도 말아야지.”

외려 차분하기 만 한 그의 태도에 수빈은 괜히 더 부아가 치밀었다.

“코피는 왜 터졌는데. 내가 괴롭혔다며! 잤냐고 물었다니 보시다시피 라며 !”

그녀는 내내 찝찝했던 그의 말을 다시 끄집어내 따지기 시작했고, 예준은 여전히 침착하고 느린 말투로 그날의 일을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럼 잔걸 잤다고 하지, 안 잤다고 해? 네가 그 짱돌 같은 이마로 들이받는 바람에 코피까지 쏟고, 니가 토한 옷 다 빨래하고. 인사불성 된 너, 호적 파일까 싶어 호텔까지 모셔오느라 아주 피곤해져서 잘 잤어.”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고, 수빈은 저 혼자 기어가 소파에 누웠던 게 마지막이란다.

일어나 보니 웬 애벌레 한 마리가 옆에서 눈 말똥말똥 뜨고 쳐 다보고 있었고, 그 속이 반나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수빈은 들으면 들을수록 온몸의 피가 얼굴로 쏠리는 것만 같았다.

“야! 그럼 그 상황에서 잤냐고 하지, 우리가 섹스라도 했냐고 물어볼까? 왜 사람 오해하게 말을 해?”

수빈의 언성이 더 높아졌다.

“오해는 네가 멋대로 한 거고 술 진탕 먹고 기절해버린 애랑 내가 오H? 은팔찌 찰 일 있어?”

“그럼 바로 해명을 했어야지 !”

“병원 다녀와서 울고불고하는 애를 붙들고 무슨 해명.”

시큰둥하게 대꾸하던 예준이 웃음기를 모두 지우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나한테 여자 아니야;

고저 없는 목소리만큼이 나 메마른 눈동자가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술김이고 실수라고 해도 한 톨의 호감도 없는 여자랑 잘 만큼 굶주리지 않았어, 나.”

사랑까지는 너무 거창하지만, 그래도 호감은 있어야 몸도 동하는 게 아니겠냐는 그의 말에 수빈도 곧 콧방귀를 꼈다.

“하!”

어이가 없어서!

나는 뭐 눈이 발바닥에 달린 줄 아냐?

“누가 너한테 여자로 보이고 싶대기 너도 나한테 남자 아니거든?”

주거니 받거니 강렬한 스파크를 튀기던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히 맞섰다.

그리고 또 한 번 상기했다. 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어쨌든 수빈은 예준의 해명 아닌 해명을 듣고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뒤늦게 안도감과 함께 민망함이 밀려왔匚匕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그냥 술 먹다 뻗고는 잘 자고 일어나서, 혼자 난리 브루스를 친 상황이라는 거다.

단순한 거 같은데 뭐가 이리 복잡한지. 게다가 한 톨 남은 이 찝찝함은 대체 뭐냐고.

“이모!”

수빈이 결심한 듯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여기 소주한 병 더 주세요!”

“너 그러고도 술이 또 먹고 싶냐?”

질 렸다는 듯한 예준의 핍 박에도 수빈은 꿋꿋하게 나란히 놓인 소주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럼 궁금했던 건 다 풀린 거지?”

“。n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준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기세를 몰아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결혼하는 거다?”

어쩌다 이렇게 애걸복걸하는 처지가

돼버 렸는지는 모르겠지 만,

……후우.

그래 일단 대답만 해보卜라. 다신 너한테 매달릴 일 따위 없을 테니까

주먹을 꽉 쥐며 다짐한 예준이 오매불망 그녀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수빈의 입술이 열렸다.

“그래. 해, 결혼.”

기다리고 기다리던 계약이 구두로나마 성사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진짜지?”

눈을 가늘게 뜬 예준이 재차 확인했다.

“그깟 결혼 같지도 않은 결혼 뭐, 대수라고.” 뭐 ? 그깟 결혼 같지도 않은 결혼?

본인이 말하는 대로 그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얼마나 질질 끌었는지 알고나 하는 얘긴가?

선천적으로 양심이 없이 태어났나?

뻔뻔한 그녀의 반응에 예준이 기가 차다는 듯 실소할 뿐이 었다.

그런 예준을 관망하던 수빈이 또 한 번 친히 제 의사를 밝혀주었다.

“속고만 살았어? 해. 하자고.”

전과는 달리 싱거울 만큼 빠른 대답이 돌아오니 어딘가 찝찝하기까지 한 예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기념으로술이나 같이 마셔줘.”

조건이 붙는다.

자신의 앞에 꽉 채운 소주잔을 턱 하니 놓아둔 수빈을 바라보는 예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뭐?’,

“나 혼자 필름 끊겨서 창피당한 거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안 되겠으니까, 너도 오늘은 빼지 말고 마셔달라고.”

그녀의 말에 예준이 마지못해 술잔을 들었다.

빠르게 빈병이 늘어나는 만큼, 취기도 같이 오르기 시작했다.

수빈이 눈을 부릅뜨며 속으로 외쳤다.

'오늘은 절대 취해선 안 도!!! 놈보다 먼저 쓰러지면 안 된다고 정신 차려, 신수빈!'

예준의 대답만으로 해갈하지 못한 한 톨의 찝찝함은 반드시 해결하고 싶었다.

그의 주사를 확인하는 것,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준의 민낯을 제 눈으로 확인하는 게 오늘 그를 만난 목적이었으니까.

각오와는 다르게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하지만 예준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고지가 코앞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응원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걸 본 예준은 불길한 예감에 급히 손을 뻗었다.

“그만 마셔.”

잔을 낚아채기 무섭게 그녀의 상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예준은 초조했匚上 술이나 먹고 뻗은 거 데려다주자고 온 게 아닌데.

“상견례 일정은 언제가 좋겠어. 나는 빠를수록 좋은데.”

언뜻 들으면 결혼해달라고 떼쓰는 연인의 귀여운 앙탈로 보였을 것이다.

예준의 재촉에 수빈은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정신 안 차려? 쓰러질 거면 대답부터 하고 쓰러져.”

재차 이어진 그의 채근에 수빈이 갑자기 집게손가락을 쭉 뻗었다.

코앞까지 당도한 그녀의 두 번째 손가락을 응시하는 예준을 향해 수빈이 말했다.

“너.”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하는 거 봐서 정할래.”

쿵.

그 한마디를 남긴 채 수빈은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야..r

미처 붙잡을 새도 없이 나자빠진 수빈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예준이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짚었다.

하아

“이건 뭐 마셨다 하면 쓰러져?”

* * *

“야.”

“신수빈.’,

예준이 그녀를 삐딱하게 내려다보다 테이블 위를 톡톡 두드렸지 만, 수빈은 미동도 없었다.

곧았던 예준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인내하듯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가 낮은 한숨을 뱉어냈다.

재킷을 챙겨 든 예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그랬지? 차라리 버리고 가지

그랬냐고.”

곱게 뻗은 수빈의 어깨 위로.

“나중에 술 깨고 나서 나 원망 마라.”

예준의 마지막 말이 떨어졌고, 그는 미련 없이 테이블을 벗어났다

“쟤 입 돌아가기 전에만 좀 깨워서

보내주세요.”

술값을 계산하던 예준이 포장마차 주인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건넸다. 그 말투며 태도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애인 아니야? 저러고 두고 가면 어째?”

“애인 아닙니다. 저랑 상관없는 여자예요.”

적어도 아직은 그랬다. 피곤해지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으니까.

술 취한 여자 뒤치다꺼리하는 건 한 번으로 족했다.

수빈이 엎드려있는 테이블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친 예준은 그대로 천막을 걷고 포장마차를 빠져 나왔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대리를 부르고 근처에 서있는데, 동네가 떠나가라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 사장! 한잔 더 해! 내가 살게!”

“아이고 천 사장님, 나야 땡큐지 그럼 !”

“3차는 네가 쏘는 거야. 아가씨도 불러서.

응?”

“예끼 이 사람아. 포차 쏘고 아가씨 불러달라는 건 무슨 도둑놈 심보야?”

이미 거나하게 취한 두 중년 남성이 이마에 넥타이를 맨 채, 비틀비틀 가로등 아래를 걸었다.

길을 막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제 몸 하나 가누기가 어려웠는지, 일행 중 한 명이 예준의 어깨를 스치곤 휘 청댔다.

코끝에 밀려든 술 냄새에 예준이 싸늘하게 인상을 굳혔다.

“아이고오. 죄송합니다.”

혀가 잔뜩 꼬부라진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한 남자가 다시 천천히 멀어져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수빈이 있는

포장마차였다.

멀어지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예준의 시선이 느리게 좇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나저나 대리기사는 왜 이렇게 안와.

부산에서 오나.”

예준은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고개를 빼고 대리기사가 언제 오나만 기다리고 있는데, 신경은 온통 포장마차로 쏠려있었다.

결국 그는 두리번거리는척하며 간간히 포장마차로 시선을 던졌다.

“아이从I.찝찝하게, 진짜.”

수빈이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이성은 상관 말라며 그를 뜯어 말리는데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대리 부르셨죠?”

먼발치서 대리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벼락에 기대어있던 예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걸음을 뗐다.

“네.,,

“차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장님?”

“저쪽이요.”

“가시죠.”

딜이고 나발이고 관계를 떠나서 술에 취한 여자를 버려두고 왔다는 게 못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지만, 어차피 개고생 해봤자 돌아오는 건 타박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달을 내고서도 또 술을 마셨으니 대책 없는 건 수빈 사정이라 여기며.

“됐다. 그만두자.”

묵직한 한숨을 쏟아낸 그가 대리기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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