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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부부-17화 (17/63)

17화

아니나 다를까 눈치 빠른 예준이 그녀의 속내를 꿰뚫었다.

“방금 흔들렸지?”

“끌렸잖아, 너도.”

이 정도 조건에 안 끌리는 게 이상한 거지. 그가 확신에 찬 듯 중얼거렸다.

그에 수빈은 나쁜 짓이라도 하다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뜨끔했다.

표정이 나 눈빛으로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상대방과 기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완벽한 수빈의 패배였다.

승기를 잡은 예준은 그대로 수빈을 밀어붙였다.

“네가 망설이는 걸 본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널 흔들 거야.”

그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수빈은 이성의 뿌리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이 그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차를 세운 그가 고개를 돌려 조금 더 간격을 좁히며 물었다.

“그러니까 싫으면 지금 말해. 이 기회가 마지막인 건 너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싫다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은 눈빛으로 예준은 수빈을 꼼꼼하고 촘촘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그의 첨예한 눈빛이 그녀에게 최면이라도 거는 것처럼 속삭이고 있었다.

어서 대답해.

“셋까지 셀게.”

그의 말마따나 아니라고 외칠 타이밍은 지금이 마지막인데.

“아주 느리게 셀 거니까, 결심이 확고하다면 대답할 시간 충분할 거고.”

여유롭게 흘러나온 말처럼 그는 아주 천천히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이미 결과를 아는 사람처럼.

“ U 99

그가 느른하게 둘을 외쳤다.

충분한 여운이 흘렀지 만, 수빈은 어떤 대답도 꺼내놓지 못했다.

승리를 확신한 예준의 입술에 묘한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

“셋.”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결국, 수빈은 마지막으로 거절할 수 있었던 기회를 보기 좋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굳어버린 그녀를 향해 예준이 서서히 손을 뻗었다. 느리게 다가온 그의 손가락이 스르륵 내려가더니, 버클에 닿았다.

달칵.

“그럼 조심히 들어가.”

안전벨트가 풀리는 소리에 집 나간 이성이 빠르게 돌아왔다.

수빈이 재빨리 외쳤다.

“잠깐만!”

정신을 다잡은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예준을 응시했다.

“그 전에 너한테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어.”

“뭔데?”

“대답은 필요 없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게 있으니까, 내일 퇴근하고 다시 만나자.”

그 말을 끝으로 차에서 내린 수빈은 잊은 게 생각났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참.”

“저녁 먹지 말고 오上 같이 저녁이나 먹게.” 그녀가 거듭 강조했다.

“엄청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꼭 빈속으로 와야 돼. 아침부터 공복이면 더 좋고.”

우리 사이는 그 후에 완전히 정의 내려지겠지만, 대답이 내일을 넘기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라는 말을 끝으로 수빈이 작게 웃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태도였지만, 예준은 기꺼이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겠다는 듯 화답했다.

“저녁이야 얼마든지 먹어줄수 있지. 대신 약속 꼭 지켜. 내가 인내하는 것도 내일이 마지막이니까.”

이 번에야말로 번복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그가 단단히 못을 박았다.

“그럼 내일 보자. 오늘 고마웠고, 조심히 들어가.”

마지막 인사와 함께 수빈이 차의 루프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들기며 숙였던 상체를 일으켰다.

제 할 일은 모두 마쳤다는 듯, 예준 역시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골목에 선 채 이미 사라진 차의 뒤꽁무니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수빈도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계단을 오르려는데 예준에게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 너 끝나는 시간에 내가 호텔로 데리러

갈게 내일봐

방금 전 구두로 마친 선약에 관해 굳이 증거를 남겨두는 게 참 지예준답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실소가 흘렀다.

텍스트만 봐도 그의 목소리 가 자동으로 음성 지원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까맣게 기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수빈이 혼잣말했다.

드디어 막 나가기로 한 거냐고?

아니, 전혀.

이제야 현실을 바로 보기 시작한 것뿐이다. 남은 건 그에게 언급했듯, 그에 관한 한

가지를 직접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다음날.

일을 마친 수빈은 비장한 각오로 탈의실을 나섰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는 예준의 연락에 로비로 걸음을 서두르던 그때였다.

“오오! 부지배인님!”

후배 직원 하나가 다가와 수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두시 방향, 두시 방향! 존잘남 발견 !”

전방을 주시하며 은밀하게 속삭이던 그녀가 가리킨 곳엔 미친 비율과 더 미친 슈트빨을 자랑하는 한 남자가 서있었으니 .

그랬다.

그녀가 말한 전방의 두시 방향 존잘남의 정체는 예준이 었다.

뒤따라 탈의실을 빠져나온 다른 직원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질 않았다.

익숙한 반응이 라 수빈은 속으로 실소를 삼켰다.

“두시 방향존잘남 확인 어떻게, 이 언니가 작업 한번 걸어봐?”

수빈이 자신만만하게 선언한 말에 후배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불끈 쥔 두 주먹을 마구 흔들어댔다.

“작업 성공하면 평생 존경할게요, 부지배인님. 저 분이랑 잘 되면 새끼 좀 쳐주세요.”

설마가 사람 잡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가득 품은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수빈을 응원했다.

“흣.잘봐라.”

시크하게 윙크를 날린 수빈이 당당하게 걸어가 예준의 앞에 섰다.

후배들은 멀찌감치 서서,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헐! 부지배인님, 대브七 진짜 번호 따는 거야?”

“애인 있고도 남을 거 같은데, 통할까?”

“야! 내기하자, 내기 !”

저들끼리 난리가 났다.

“뭐라고 하는 거야?”

“몰라. 너무 멀어서 잘 안 들려. 웃는 거 같은데?”

비향 직원들은 물론 타 매장 여직원들까지 그녀들의 대화에 흥미로운 듯 귀를 기울이며 발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잠시 후.

설마가 진짜 사람 잡는 장면을 모두가 목격해버리고 말았다.

'작업 성공. 나 간다.'

예준과 팔짱을 낀 채 로비를 빠져나가던 수빈이 살짝 고개를 돌려 후배들에게 벙긋대며 손끝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대브七”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녀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녀들은 한동안 자리에 못 박힌 채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 켜보았다.

로비를 빠져나온 수빈은 예준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귀여운 것들.”

두 사람의 관계를 알 리 없는 후배들이 감쪽같이 속아 전부 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눈에 선연했다.

“재밌냐?”

깔깔대고 웃던 그녀를 예준이 작게 타박했지 만, 수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웃어재꼈다.

잠시 후, 손바닥으로 고인 눈물을 쿡 찍어낸 수빈이 예준에게 물었다.

“저녁 안 먹고 왔지?”

“안 먹었어,,

그의 공복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 이는 그를 보고는 신이 나서 외쳤다.

“오늘은 누나가 쏜다! 가자! 포장마차로! 내가 닭발 기똥차게 하는데 알거든!”

파하하하하!

쾌남처럼 웃어젖히던 그녀가 창문에 손을 내밀고는 마구 흔들어대며 외쳤다.

……먹자는 게 그거였냐.

예준이 딱히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사주려나 했던 궁금증은 한순간에 우스워져버렸다.

하지만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는 수빈을 받아주는 식 당도 없을 것 같아, 못이긴 척 그녀를 따랐다.

수빈과 예준은 주황색 천 막으로 만들어 진 간이 포장마차를 찾았다.

“이모 저희 닭발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동그란 테이블에 앉은 수빈이 명랑하게 외치고는, 야무지게 젓가락을 뜯어 예준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엔 새빨갛게 양념 옷을 입은 닭발 한 접시와 차가운 소주 한 병이 놓였다.

“닭발 먹을 줄 알아?”

수빈이 비닐장갑을 끼며 묻는 말에 예준은 헛웃음이 나왔다.

……참일찍도 물어본다.

“못 먹어,,

“그래? 잘 됐네, 그럼. 이참에 한번 먹어봐.” 수빈이 야무지게 뼈를 발라낸 닭발 하나를 예준의 앞 접시에 놓아주었다.

경 멸하는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예준이 낮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안주 필요 없으니까 너나 먹어.”

“공복에 술 괜찮겠어?”

“내가 알아서 해.”

“그러든지, 그럼.”

물 흐르듯 흐르는 분위기에 수빈이 조용히 승자의 미소를 그렸다. 일부러 그가 먹지 않을 것 같은 안주를 공략한 건데, 이게 또 제대로 들어맞은 거다.

저녁 약속까지 잡아놓고 빈속에 술부터 들이붓게 만든 게 한편으로는 미안했지만, 독한 놈들은 쓸데없이 멘탈이 강해서 술도 안 취한다고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났다.

놈의 주량을 모르니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승부를 볼수밖에

그런 수빈의 계략을 알 리 없는 예준은 닭발 따위로 승강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기 시작했다.

“어쨌든 마지막 관문인지 뭔지, 그거 빨리 좀 해결할래? 날 잡으려면 지금도 빠듯한데.”

결혼을 무슨 밀린 보고서 처 리하듯 하는 예준을 가만히 바라보던 수빈이 물었다.

“있잖아.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물어,,

“진짜 나 아니면 안 되겠니? 내가 그렇게 적임자야?”

어쩐지 콧대가 하늘로 솟은 수빈을 예준이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뭐, 어느 타이밍에서 우쭐해진 건데?’라고 따져버릴까 하다가 대충 대답을 꺼 내놓았다.

“어.너아니면 안되겠더라.”

“이유를 백 가지만 말해봐.”

이게 미쳤나.

심기를 건드렸다가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것 같아 참는다.

“그냥 안 도1 다른 사람 필요 없고, 관심 없고, 네가 딱이야.”

설득력이고 나발이고 이거보다 확실한 이유가 어디 있어. 지구상에 너 하나만

존재하는 걸로 치자는데.

수빈이 가만히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가만히 보면 너도 인생 참 편하게 사는 거 같아 단순하고.”

“나의 뭘 보고 편하다고 생각한 건데?”

조금은 불퉁해진 그의 말투에 수빈이 픽 하고 웃었다.

“아니 뭐 이래저래 그냥.”

자연스럽게 술잔을 부딪친 수빈이 은근슬쩍 마지 막 관문의 포문을 열 었다.

“맨 정신으로 원나잇이 쉬운 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간 것도 그렇고.”

다시 튀어나온 원나잇이란 단어에 예준의 눈썹이 꿈틀댔다.

“내가 그때 경황이 없어서, 네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냥 내뺐거든?”

수빈은 예준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만난김에 들어나 보자.”

“그때 왜 그랬어?”

순식간에 분위기는 취조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나 쓰러질 때까지만 해도 넌 멀쩡했잖아. 어떻게든 돌려보냈어야지, 안 되면 그냥 호텔에 버리고라도 가든가. 뭔 생각으로 같이 있었어?”

절대 흥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하다보니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던 예준은 뒤늦게 입술 끝을 희미하게 올렸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게 그거였어?” 역시 눈치 하나는 백 단이었다.

“내가 술 취해 쓰러진 여자나 덮치는 쓰레기인지, 아닌지.”

한마디로 우리가 진짜 잤는지, 안 잤는지.”

글자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힘을 실어 내뱉던 예준이 불시에 정곡을 찔렀다.

“그게 궁금했다는 거잖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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