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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부부-7화 (7/63)
  • 7 화

    '이게 진짜……!’

    작정한 게 분명했다.

    “결혼하네 마네 했었잖아. 소문엔 걔 대기업 손녀랑 바람나서 너 뻥 차버렸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맞구나?” 하고 밉상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가 곧 크게 웃었다.

    “콧대 높던 신수빈도 별 거 아니네. 파하하!” 방정맞게 떠들어대던 그의 얼굴을 예준이 고개를 들어 가만히 응시했다.

    “하긴 배경에 비해 콧대가 너무 높긴 했지. 그 정도면 거의 피노키오 수준 아니냐?”

    아무것도 모르고 진상은 계속 입을 놀렸다.

    “대학 다닐 때도 너 그 새끼 자취방 막 들락날락한 거 아는 애들은 다 아는데, 어떡하냐 우리 수빈이. 여자인 너한테 너무 치명적인 소문 아니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수빈이 눈을 치켜떠 진상을 노려봤다.

    동기들 사이에서도 수빈의 전 남친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던 터라, 분위기는 살벌하기가 그지없었다.

    소란 아닌 소란에 여기저기서 눈살을 찌푸렸지 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솔직히 그 정도면 반품한거나 다름없는데, 너 어떻게 시집갈래? 누가 데려가기나 하겠어? 과거 세탁 싹 하고 엄한 놈꼬시고 그러지 마라, 양심 없게. 어?”

    도를 넘은 그의 막말에 수빈이 포크를 쥔 손을 막 치켜들려 했을 때였다.

    수빈의 손등을 커다란 예준의 손이 지그시 잡아 진정시키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흥분하지 마.”

    그에 모두의 시선이 예준에게로 향했다.

    “개 짖는 소리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잖아. 피곤하게.”

    나긋하게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에 진상의 얼굴이 뒤늦게 일그러졌다. 예준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이 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개 짖는 소리?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그 불퉁한 말투에 예준의 시선이 느리게 그에게 가 박혔다.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돼?”

    낮게 되묻는 말투가 진상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한 대 맞으면 두 대는 패줘야 직성이 풀리는 그에게 초면에 반말 따위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경우엔 더욱더.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에 말문이 막힌 진상에게서 떨어진 예준의 시선이 다시 수빈을

    향했다.

    “신경 쓰지 마.”

    손등에 얹어진 예준의 손이 떨리는 수빈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그 생경한 느낌에 수빈의 속눈썹이 희미하게 떨렸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진상의 표정이 못마땅했다.

    “야, 너 벌써 과거 세탁했냐? 남자친구야?” 수빈을 보고 아무렇게나 지껄이던 진상이 다시 예준을 향해 말했다.

    “당신 속고 있는 거야. 내가 한 얘기 다

    진짜……

    “내가 괜찮다는데 뭔 말이 많아.”

    예준의 깔끔한 한마디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던 예준이 마치 연인이라도 된 듯한 표정으로 수빈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등을 엄지로 다정하게 쓸었다.

    “기분 잡쳤다. 그치?”

    살살. 그리고 만지작만지작.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예고 없던 스킨십에 수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짜고짜 나타나 망나니같이 굴던 최진상보다, 예준의 이런 모습이 더더욱 감당이 안됐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하지만 어찌할 틈도 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하나둘씩 진상을 책망하는 듯한 수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이것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달려드는 진상의 얼굴을 향해 예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잔을 들어 물을 끼얹었고,

    졸지에 물 따귀를 맞은 그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만 들이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전을 받은 웨딩홀 직원들이 달려와 진상의 양쪽 팔을 붙들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나가시죠.” 굳어있던 진상이 마구 발버둥을 치며 진상을 피워댔다.

    “이 씨발! 뭘 이러시면 안도H! 물 뿌린 건 저 새낀데 왜 나를 끌어 내냐고! 안 놔? !”

    끌려 나가는 순간까지 허공에 발차기를 하던 진상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제야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도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본부장님 괜찮으십니까?”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물었고, 수빈의 동기들도 놀란 얼굴로 수빈을 다독였다.

    “저 인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보卜! 괜찮아, 수빈아?”

    “어.괜찮아.”

    애써 웃어 보이는 그녀의 입매가 희미하게 떨려왔다.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수빈의 동기들은 조금 달라진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입꼬리엔 흐뭇한 미소가 한 가득이다.

    “둘이과거에 썸 타던 사이……r

    “아니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빈이 버럭 소리치며 부인했다.

    썸은 무슨! 쌈질 못해 안달인 사이였다고! 어떻게 하면 기습이라도 해서 고꾸라트릴까 고민하던 사이였단 말이야!

    하지만 예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본부장님은 아닌 거 같은데, 수빈아?”

    친구 하나가 짓궂게 놀려대듯 하는 말에 뒤늦게 예준의 얼굴을 확인한 수빈이 똥 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야, 너 뭐야……

    뭔데 그런 개떡 같은 표정을 짓는 건데! 당장 안 풀어?

    아무래도 예준은 이 기회에 물밑 작업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원래 목표물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주변부터 야금야금 공략해나가는 법이니까

    “사실은……

    그의 입술이 벌어지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수빈이 미처 그의 입을 틀어막기도 전이었다.

    “제가 일방적으로 수빈이 쫓아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적절한 분위기에 제대로 터트린 그의 폭탄 발언은 어 마어 마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어머! 웬일이야!”

    “이 계집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근데 입 싹 닦고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최진상 그렇게 조져놓으신 거구나!

    어우! 내 속이 다 시원했어 !”

    억울해진 수빈이 마구 손을 내저었다.

    “아니라니까? 얘 뻥치는 거야! 믿지 마!

    아니라고!”

    격하게 변명해보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무슨 뻥을 쳐. 엊그저께도 너

    착아갔었잖아.”

    “야, 너……!"

    “결혼하자고.”

    사실이었지만 충분히 오해를 살 법한 발언에 수빈이 경악했다.

    때를 놓치지 않은 예준의 연타가 이어졌다.

    “내가잘 할게.”

    “이제 방황 그만하고 나한테 정착해.” 그리고 주변에 있던 이들은 더욱 경악했다. 어머, 어머! 웬일이니! 웬일이야! 대박! 몇몇 여인들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행이 아니었던 사람들마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너…… 너…… 너……

    말문이 막혀 더듬거리기만 하던 수빈이 예준에게 삿대질이라도 할 요량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그 손은 보기 좋게 예준에게 잡혀버렸다.

    수빈의 손가락을 가볍게 그러쥔 예준은 그녀를 망설임 없이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나가자.”

    부드러운 듯 박력 있는 태도는 기본. 유려한 미소는 옵션이었다.

    손을 잡은 채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뒤로 환호성과 휘파람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훈훈했던 분위기도 잠시.

    예식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예준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손을 공중에 아무렇게나 휙 떨구어버렸다.

    그 무지막지한 반동에 한 바퀴를 뱅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수빈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꽥 소리 쳤다.

    “야!!! 너 미쳤어기!!”

    공중에 내쳐진 주먹이 무기로 돌변해 예준의 머 리통을 향해 날아갔지 만, 그는 가뿐히 그녀의 손찌검을 피했다.

    목적지를 지나친 무지막지한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어어어!”

    넘어지기 직전.

    예준은 한 손을 슈트 주머 니에 대충 꽂아 넣은 채 반대쪽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가볍게 받쳐 냈다.

    반쯤 몸이 기운 상태로 수빈이 예준을 쏘아보자, 그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손버릇 하고는.”

    “하!”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니까.”

    “이게 진짜!”

    누운 상태로 다시 한 번 손을 뻗어봤지만 기린 같은 녀석의 얼굴에 닿기엔 턱 없이도 짧았다.

    “도와줘도 난리야, 너는.”

    예준이 달려드는 그녀의 이마를 손가락 하나로 제압한 뒤 가볍게 툭 밀어냈다. 오뚝이처럼 밀려났다가 돌아온 수빈이 꽥 소리쳤다.

    “누가 도와 달랬어?!”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뭐?’,

    “너는 내가 도와 달래서 도와줬었어?”

    수빈은 뒤늦게 그가 어릴 적 얘기를 꺼낸 거라는 걸 깨달았다. 하여간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데는 뭐 있다.

    말로는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별로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을 또 한 번 보인 것 같은 마음에 수빈은 괜히 트집을 잡았다.

    “너 나 도와준 거 아니잖아.”

    “뭐?’,

    “그놈의 독신 프로젝튼가 위장 결혼인가 하는 거 들이대려고 밑밥 깔아놓은 거 아냐, 내

    동기들한테!”

    이게 다 네놈의 빅 픽쳐라는 걸 누가 모를 줄 알아?

    화가 나서 볼이 잔뜩 부푼 채 씩씩대는 수빈을 빤히 내려다보던 예준이 보일 듯 말 듯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많이 똑똑해졌다?”

    “뭐?’,

    “알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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