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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세요-62화 (62/70)
  • 62화

    “……제이든.”

    “그러니까 울지 마.”

    그의 손이 이라의 뺨에 닿았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던 건지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는 손길에 이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난…….”

    “울지 말라니까.”

    그가 옅은 미소로 이라를 품 안에 넣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확신이 섰으니까.

    ***

    지쳐버린 탓에 우선 호텔로 돌아왔다. 차에서 잠든 은우를 침실에 눕히고 나온 제이든은 거실 소파에 웅크려 앉은 이라에게 다가갔다.

    은우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그리고 아까 그의 대답까지도. 어쩌고 싶은 걸까. 이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라.”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라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내가 좋아하는 눈. 이 눈이 흔들림 없이 나만 바라봐주고 있었다.

    제이든은……. 은우는……. 나는…….

    ‘남의 아이를 그에게 키우라고 할 거예요?’

    ‘아들까지 있는 이혼녀인데도 그가 아이까지 키우겠다고 할 정도로 빠져 있다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떠드네. 진짜야?’

    ‘은우는 나한테도 소중해. 그러니까 불편해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당신이 하고자 한다면 난 언제든 당신 편이니까.’

    ‘내 아빠야!’

    ‘흐으으윽, 그냥 형아가 은우 아빠 하면 안 돼요? 엄마아, 응? 안 돼? 자꾸 유치원에서 해찬이가 그래. 정민이랑 연수랑 또, 또, 혜림이도 수혁이도. 흐윽, 아빠는 맨날 못 봐. 아빠 아니야, 엄마, 나 아빠 싫어. 형아가 아빠 했으면 좋겠어. 응?’

    ‘그래. 은우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머리가 복잡했다. 아빠라 부르던 은우의 모습, 그 말을 듣고 난 그의 반응.

    “제이든.”

    “응.”

    그는 착실하게 대답했다.

    “우리 은우가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

    “나 때문에 듣지 않아도 될 말까지 듣고. 아마 은우도 알고 있을 거예요. 요즘 어려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연으로라도 한 번은 내 사진이라도 봤을 거예요. 유치원에서도 많이 듣겠죠. 친구들한테도, 은우가 말했던 것처럼.”

    고개를 돌린 이라는 시선을 떨궜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사실 며칠 전에 로레인 만났어요. 방송국에서 따로.”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생각도 못 했다는 듯한 반응에 이라는 힘없이 웃었다.

    “그렇게 당신만 보고 있던데 모를 수가 있어요?”

    “왜 말 안 했어.”

    “뭘 말해야 할지 몰라서요.”

    이라가 초점이 안 맞는 눈으로 앞을 멍하니 보며 말했다.

    “사실 뺨이라도 때리려나 했어요. 근데 울더라고요. 강한 척이란 척은 다 할 줄 알았는데, 내 앞에서 울면서 애원했어요. 당신이랑 헤어져 달라고.”

    고개를 돌리지 않아 그의 표정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반성 많이 했다고. 보는 사람이 다 아플 정도로 그렇게 울더라고요. 그렇게 울면서…… 말했어요. 남의 아이를 당신한테 키우게 할 거냐고.”

    “이라.”

    대답 없던 그가 그녀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라고 한 말이겠지만, 이라는 꿋꿋하게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그뿐만 아니에요. 당신이랑 사진 찍혀 기사가 난 날부터 지금까지 쭉. 죄다 그 말뿐이에요. 난 이혼녀 맞고, 애도 있으니까. 그런 나 만나니까 그 애는 당신이 키우는 거냐고.”

    “나 좀 봐.”

    “당신이랑 은우가 사이 좋은 건 나도 좋아요. 당신이 은우 예뻐해 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은우 친아빠보다도 더 잘 대해주니까. 모를 수가 없더라고요.”

    피식. 힘 빠진 미소를 짓던 이라의 얼굴에서 천천히 그 미소가 가셨다. 그리고는 그가 바라던 대로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 봤다.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에요. 당신이랑 은우가 함께 있는 모습이 퍽 예뻐서, 혹시나 하면서 상상도 해 봤어요. 근데 그게 다예요. 당신 돈 많고, 은우 책임질 만큼 나 좋아해 주는 것도 아는데요. 그게 다라고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난 당신을 만나든 만나지 않든 언젠가 복귀해서 당당해지면 은우 데려올 거였어요. 아이한테 이렇게 상처를 줄 생각 없었어요. 이렇게 혼란스럽게 할 생각, 없었는데.”

    “…….”

    “난 지켜야 하잖아요. 내 아이니까, 내가 낳은 내 새끼니까. 당신이 아무리 좋아도, 은우 상처 주면 안 되잖아요. 그냥,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래요. 은우가 당신한테 아빠라고 한 것도, 그래서 당신이 대답한 것도 난 다 모르겠어요. 이게 맞는 건지, 당신한테도 못 할 짓 하는 건 아닌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날 낳은 날도 모르는 엄마가, 버린 자식 생일에 자기 새끼 아프다면서 왔는데……. 그때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은우 생각났어요. 죽어도, 죽어도 저런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했다고요.”

    “…….”

    “처음부터 이래서 안 된다고 했던 거예요. 이럴까 봐. 결국, 서로 상처받을까 봐……. 내 아이지만 당신 아이가 아니잖아요. 아무리 우리가 좋다고 한들 그게 언제까지일지, 그리고 당신도 은우도 서로에게 어느 정도일지.”

    참던 감정이 쏟아져 나와 호흡이 가빠졌다.

    “이렇게 은우한테 당신을 다 보여주고 아이를 잔뜩 흔들어 놨는데, 결국 우리의 끝이 그렇지 않으면 어떡해요? 난 아직 아무런 확신도 없는데, 불안정하게 흔들릴 미래에 은우를 데려다 놓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

    “그런 미래가 왔을 땐, 아이는 벌써 버림받은 후예요. 그리고 난 그런 불안정한 미래를 내 아들한테 줄 수 없어요. 그저, 그냥. 미안해요. 당신 탓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고개를 돌렸던 이라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너무 잘났고 좋은 사람인 거 알아요. 그래서 더 주저했고, 밀어낸 것도 맞아요. 근데 끝내 너무 좋아서…….”

    좋았다. 계속 밀어내면서도 괴로웠다. 그가 너무 좋아서.

    “당신은 잘난 사람이니까, 그런 당신 옆에 있으면 우리 은우는 늘 오늘 같은 소리를 들으며 살겠죠. 난 그걸 견딜 준비가 안 됐어요. 아니, 은우에게 견디게 할 생각이 없어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 봤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 아이가 결점이 되는 관계는 필요 없어요. 나는 엄마예요.”

    이라의 두 눈에는 확고함이 가득 들어찼다. 단 한 번도 주저해 본 적 없다는 듯, 그녀의 눈은 너무나 견고해 제이든의 입술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런 성격이 그를 반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한치의 거짓됨 없는 그 마음이 그를 흔들었다.

    아이를 두 번이나 허망하게 잃은 그에게는 이토록 아름답고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가슴 한가운데가 무언가로 꽉 들어찬 듯 뜨거웠다. 그건 만족감이었다.

    “아이를 사랑해……?”

    그의 질문에 이라가 잠시 멈칫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 질문을 내뱉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기 때문에. 곧 울기라도 할 듯한 그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기에 이라의 대답이 느렸다.

    “당연해요.”

    하지만 대답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 대답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다. 여전히 그녀의 두 눈에서 빛나는 확고함은 그의 짙은 눈동자를 울렁이게 하기 충분했다.

    언제나 평온할 것 같은 그의 녹색 눈동자에는 어느새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에 보고 있는 이라도, 그 자신도 무척이나 놀랐다.

    하지만 지금 차오르는 눈물도, 이 감정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잃은 아이가 생각이 나서, 세상의 밝은 빛 한 번 보지 못한 내 아이의 생각 때문에.

    그는 손을 올려 자신의 입매를 가리며 꽉 힘을 줘 잡았다. 큰 그의 손등이 그의 얼굴 절반을 가렸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왜, 왜 울어요? 지금 우는 거예요?”

    당황한 이라의 목소리에 제이든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자꾸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은 눈시울뿐만 아니라 콧잔등까지 자극했다.

    시선을 피해버린 제이든 때문에 당황스러운 이라는 그에게 더 다가갔다. 이미 그보다 한참이나 작아서 그의 얼굴은 또렷하게 보이지만, 그 또렷한 시야 속 일렁이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지금 저 산만한 남자가 우는 거야? 왜?

    혼란스러운 감정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줄도 모르는 채 이라는 큰 눈만 깜빡였다. 그런 그녀를 다시 바라보던 그의 입가가 바르르 떨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참 이상한 남자였다. 눈은 슬프게도 우는데, 입은 또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내 아이의 엄마가 당신이었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어서.”

    중간에 한 번 울음을 삼킨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더 낮고 짙었다. 그의 말에 이라의 두 눈이 커졌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며 더는 이라가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했다.

    “은우가 무슨 죄가 있겠어. 당신에게도, 아이에게도 결점 같은 건 없어.”

    어느새 눈물을 닦아낸 그가 다시 이라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조금 충혈돼 촉촉이 젖어 있었다.

    “어느새 사랑하게 됐어. 당신도, 은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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