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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세요-60화 (60/70)

60화

“엄마아아!”

공동 현관으로 나온 은우는 이미 신이 나 방방 뛰었다. 이라가 활짝 웃으며 앉아서 두 팔을 뻗자, 그 품으로 쏜살같이 달려온 은우가 안겼다.

“은우, 잘 있었어?”

“응! 응, 엄마! 엄마!”

“그래, 우리 은우.”

오랜만에 품에 안은 은우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몇 주만이더라. 유독 이번에는 더 길었다. 품에 안긴 은우가 조금 자란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은우 엄마 보고 싶었어?”

“응, 엄마도 은우 보고 싶었지?”

“그러엄.”

해맑게 웃는 은우가 이라의 얼굴을 보며 한참을 미소 짓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힐끗 아이를 보던 이라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은우는 제가 찾던 무언가가 없는지 시무룩해졌다.

“엄마아.”

“응?”

“……형아는? 형아는 오늘 안 와?”

통화에서도 제이든만 찾던 은우였다. 안 그래도 이라의 얼굴이 잔뜩 팔린 지금 지강은 물론이고 미란과 이건까지 이라의 상황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법적으로 아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기에 그들이 모자의 만남을 막을 순 없었다.

끝내 제이든이 없는 걸 확인한 은우가 애절한 얼굴로 이라를 올려다봤다. 이라는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며 완전히 끝났다면 지금 얼마나 아찔한 상황일까.

“은우 오늘 어디 가고 싶댔지?”

“키즈카페…….”

“우리 아들 왜 이렇게 시무룩해? 엄마랑 키즈카페 가서 놀 건데 안 좋아? 계속 키즈카페 노래를 불렀으면서.”

괜히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은우를 바라보자,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름 씩씩한 표정까지 지었다.

“아니. 엄마랑 놀아서 너무너무 좋아!”

“그치?”

배시시 웃고는 은우 손을 꼭 잡고 밖으로 나갔다. 똘망똘망하게 올려다보는 은우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해 헤실헤실 웃은 이라는 바로 앞에 정차된 차 앞에서 멈췄다.

“은우, 이거 탈까?”

“응?”

아이의 시선이 차로 향했다.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은우의 눈이 순간 크게 확장됐다.

“어어어!”

그때 운전석 문이 달칵 열리며 짙은 선팅으로 보이지 않았던 그가 웃으며 나왔다.

“안녕, 은우.”

“우와아아아! 형아!”

와다다다!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가서 그대로 제이든 품에 안기는 은우였다. 그런 은우를 한 손으로 쉽게 들어 올린 그가 피식 웃었다.

“어쩜 엄마 볼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라가 툴툴거리며 다가가자, 이미 은우의 눈에는 제이든만 가득 찼다.

“형아! 형아다! 우와!”

“은우 잘 있었어?”

“네에! 형아도 오늘 같이 놀러 가요?!”

“응. 은우가 가고 싶었던 곳 오늘 다 갈 거야.”

“우와아!”

그의 품 안에서 두 다리를 휙휙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에 이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어려도 남자아이라 무게가 나갈 텐데 그는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은우를 뒷좌석에 태우고 문을 닫았다. 이라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차에 타기 전 그를 붙잡았다.

“……진짜로 갈 거예요?”

“대체 어제부터 몇 번을 묻는 거야. 이라.”

“그래도! 다른 곳도 아니고 그런 개방된 곳에 갔다가 또 사진이라도 찍히면……. 하아, 알아요. 걱정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힐끗 차를 바라본 이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 촬영 얼마 안 남은 거 알죠. 이거 진짜 무모한데.”

“이미 세상 사람들 다 알아. 내가 당신한테 푹 빠진 거.”

“…….”

대체 저런 말을 얼굴 하나 안 바뀌고 할 수가 있는 거지. 얼빠진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자, 피식 웃은 그가 이라를 데리고 조수석으로 향했다. 은우한테 해 준 것처럼 안전벨트까지 채워준 그가 뒷좌석에서 반짝반짝한 눈을 하고 보는 은우에게 씨익 웃었다.

“그럼 놀아 볼까?”

***

“허어…….”

엄청 유명한 키즈카페 노래를 부르길래 왔다. 그래도 속으로는 키즈카페가 키즈카페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입구를 들어서 카운터까지 온 이라는 입을 떡 벌렸다. 대체 몇 평이야?

“엄마! 엄마!”

“어어.”

서둘러 입장권을 끊은 이라는 휙 뒤를 돌아봤다. 대충 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라가 차에서 씌운 모자는 벗지 않은 채였다. 어차피 키랑 몸매만으로도 눈에 튀는 남자였다. 덤으로 이라도 모자를 푹 눌러쓴 채였다.

“가자.”

입장권과 음료를 받은 걸 확인한 제이든과 은우가 먼저 휙 들어가 버렸다. 뒤에서 두 사람을 보던 이라는 황당함에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일지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은 키즈카페는 그만큼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주말이니까 일을 쉬는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와 놀기 딱 좋았다.

구석에 테이블 하나를 잡은 이라는 눈으로 은우와 제이든을 찾았다. 앉기도 전에 이미 은우에게 끌려간 그는 저기 멀리서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못 말려.”

대부분 아이에게 맞춰 있는 터라 그가 쓰기에는 한참이나 작았다. 부모랑 함께할 수 있는 놀이 시설도 꽤 있어서 그런가 은우가 잔뜩 신이 났다.

게임기에, 농구공에, 전자 풍선 맞추기 등 한참을 놀던 제이든은 모자를 눌러쓴 채 이라가 앉은 테이블로 왔다.

“수고했어요.”

“수고는.”

그가 피식 웃으며 얼음이 녹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의 취향대로 트리플샷을 넣은 커피를 반쯤 마신 그는 지치지도 않는지 고개를 돌려 다시 눈으로 은우를 찾았다.

“나는 찾지도 않네요.”

“기차를 탄다던데? 아이밖에 못 타서 나는 왔어.”

“당신은 저 입구에도 안 들어갈 거예요.”

작은 놀이기구도 있었다. 어느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기구를 타는 은우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이라와 제이든 역시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다음에는 디즈니랜드를 데려가 주기로 했어.”

“네? 뭔 랜드요?”

내가 아는 거기? 한국에 없는? 황당해서 바라보자, 제이든은 모자 캡으로 그늘진 녹색 눈동자를 반쯤 가리며 웃었다.

“은우한테 점수 좀 땄지.”

“진짜로 기대하면 어쩌려고요. 이번에도 저번에 당신이 또 만나자고 해서 얼마나 졸랐는지 몰라요.”

“내가 농담한 거로 보여?”

그의 말에 이라는 더욱 황당했다.

“그러니까 그게 농담이 아니면 더 안 되죠.”

“뭐, 그건 진짜 지킬…….”

이라와 대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은우에게 시선을 돌리던 그가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저 멀리서 놀이기구 탑승을 끝낸 은우가 다시 제이든을 부르고 있었다.

“미안, 바쁜 몸이라 오늘은 당신과 놀아줄 시간이 없네.”

“허……. 모자 잘 쓰고 있어요.”

“당신이야말로.”

씩 웃으며 가 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이라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그가 없었다면 오늘 여기는 오기 힘들었을 거였다. 차도 없는 데다 은우까지 챙기려면 여러모로 벅찼겠지. 왔다고 하더라도 체력적으로 그처럼 놀아주기도 힘들고.

테이블에 턱을 괸 채 두 남자를 보던 이라가 재밌게 노는 모습에 가끔 웃음을 터트렸다. 휴대폰을 들어 사진도 몇 장 찍는데, 대뜸 카페라 렌즈가 가려졌다. 의아해서 시선을 올렸다.

“맞네, 은우 엄마."

“……해찬이 어머니.”

그때 유치원 앞에서 얼굴 붉힌 뒤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여자는 앉은 이라 앞에 선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놀러 왔나 보네요.”

“네, 은우랑……. 해찬이도 여기 왔나 보네요.”

“그렇죠. 아는 엄마들이랑 해서 왔는데, 같이 앉을래요? 저번에는 서로 좀 흥분도 했잖아요.”

“아.”

이라가 힐끗 은우와 제이든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깊숙하게 들어간 건지 바로 보이진 않았다. 괜찮다고 거절하려던 찰나에 이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제가 일 전화 때문에요.”

고개를 꾸벅 숙인 이라는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안 봐도 뻔했다. 대뜸 유명해졌으니 자기들끼리 신나게 안주 삼아 씹어댔겠지.

“하아. 여보세요.”

조용한 곳으로 온 이라가 전화를 받았다. 윤진이었다.

-은우랑 있는데 미안.

“아니에요. 왜요?”

-저번에 인터뷰 관련 장소 섭외 있잖아, 자료 누가…….

급히 해결할 문제로 윤진과 짧게 통화를 마친 이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든이 이쪽에 협조를 꽤 잘해줘서 사실 신경 쓸 문제가 많진 않았다. 웬만하면 전부 오케이라.

“고마운 일만 한가득이네.”

저녁은 좀 맛있고 비싼 걸로 사줘야겠다. 어차피 계산 못 하게 막을 건 안 봐도 비디오니까, 중간에 화장실 간다고 하고 계산까지 해 버려야지.

오늘 저녁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인터뷰 좀 끝나고 한가해지면 정말 함께 놀러라도 갈까. 내년에 은우 학교 가니까, 그전에 디즈니랜드도 나쁘진 않겠지. 합의금도 돌려받았으니 그 돈으로…….

“응?”

안으로 들어오는데 아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테이블을 바라보니 그가 먹던 커피가 엎어져 덩그러니 있을 뿐 제이든도 은우도 없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 곳으로 좀 더 다가간 이라는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너 지금 해찬이 밀쳤어?!”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사람들을 파고 들어간 이라는 그제야 은우가 보였다. 같은 유치원 아이들과 엄마들이 한데 모여 있었고 그사이에선 해찬이 넘어져 울고 있었다.

“으어어엉! 으아아앙! 엄마아! 정은우가 나 밀었어!”

“네가 먼저 나 때렸잖아.”

은우 역시 씩씩대며 해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못 배워 먹은 게 진짜! 지금 누구 아들을!”

여자의 손이 올라가고, 이라가 놀라 뛰어가려던 찰나에 허공에서 여자의 손이 큰 손에 강하게 잡혔다. 바로 은우 뒤에 있던 제이든이 굳은 얼굴로 여자의 손을 꽉 잡았다.

“으아아악! 우리 엄마 놔! 정은우 너 이씨! 아빠도 없는 게!”

“아니야!”

그때 은우가 빽 소리쳤다. 힘을 준 아이의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제이든이 여자에게 뭐라 하기도 전에, 은우가 제이든의 단단한 다리를 꽉 잡았다.

“내 아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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