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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세요-44화 (44/70)
  • 44화

    “무, 무슨 소리예요?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무것도 몰랐지만,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뛰었다. 이라는 당황해 일어나서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짧은 순간 아득해짐을 느꼈다.

    -사진 뜨고 기사까지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그걸 몰라? 제이든 리 에반스가 내한해서 여자랑 여러 번 사진 찍혔던 건 알고 있었는데, 그 모자이크 속의 여자가 너일 줄이야.

    “사진이요?”

    -몇 시간 전에 올라온 사진은 너 모자이크도 안 돼 있어. 몇 개는 다시 모자이크한 것 같지만, 이미 얼굴 다 팔리고 나서라고. 대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진짜 너 맞아? 너 제이든 리 에반스를 어떻게 알아?

    “자, 자, 잠깐만요.”

    너무 당황해 말까지 더듬었다. 지금 그럼 이미 사진이 다 퍼졌다는 건가?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까지 떨리던 이라가 다급하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선배, 내가 다시 전화할게요!”

    -뭐? 야, 한이……!

    뚝.

    벌컥, 문을 연 이라는 제이든 방으로 뛰어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확 들어가자, 마침 에이미가 나오려는 듯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그를 보는데, 책상에 앉은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노트북과 태블릿PC까지 틀어져 있는데, 그의 휴대폰도 불타는 중이었다. 미친 듯이 울려대는 모습을 보고선 이라가 그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이미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에이미는 침착하게 제이든을 보며 말했다.

    [제니퍼는 삼십 분 안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제이든은 대답이 없었다. 에이미는 잠시 그런 그와 이라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방을 나갔다. 탁,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이라가 천천히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가 앉은 책상 앞까지 온 이라는 손안에서 징징 울리는 휴대폰을 꽉 쥐었다.

    “어떡해요……?”

    누군가가 보내준 건지 화면이 큰 그의 태블릿PC는 기사 하나를 띄운 채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는 오늘 아침 쇼핑하던 그와 이라의 사진과 한국에서 은우와 함께 찍힌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잠깐, 뭐?

    “이게……!”

    이라가 손을 뻗어 태블릿PC를 거칠게 들어 봤다. 기사는 온통 영어로 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찍힌 사진은 선명히 보였다. 잠든 은우를 업고 있는 그와 쇼핑백을 든 이라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은우는 고개를 파묻어 얼굴이 아예 보이지 않았고, 이라는 모자이크가 돼 있었다.

    은우까지 찍혀버렸다니. 이라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저땐 그가 유명인인지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 다, 다른 사진. 혹시라도 은우가 나왔으면 어떡하지. 이 기사는…….

    “대체 뭐라고 적힌 기사예요? 네? 은우 얘기도 있어요?”

    “진정해, 이라. 당장 우리 사진보다 은우가 나온 게 있는지 확인하라고 해뒀어. 물론 당신 얼굴도 전부 모자이크하라고 했지만, 이미 몇 개가 그냥 올라갔나 봐. 일반인들이 찍은 사진도 있고.”

    “…….”

    넋이 나간 듯 바라보자, 제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로 온 그가 소파에 그녀를 앉히며 진정시켰다.

    “미안해, 내 실수야.”

    “은우, 은우는 안 돼요.”

    “응. 내 회사가 지금 빠르게 사진들 삭제 중이야. 아이 사진 더 없나 찾고 있고, 아직은 더 없는 것 같아. 관련된 글도 삭제 중이고, 당신 모자이크 안 하고 올린 사진의 출처도 찾고 있어.”

    대답 없는 그녀를 보던 그가 나직한 한숨과 함께 덧붙였다.

    “미안해.”

    그가 훅 멀어진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은 안 해도 우려했던 상황은 맞았다. 잠시 진정하려 애쓰던 이라는 제 앞에서 고개를 숙인 그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안해요.”

    그녀의 사과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사과를 왜 해. 잘못은 내가 했는데.”

    “당신이 사진 찍어 올린 것도 아닌데 왜 당신이 잘못해요. 그리고 이런 사진 올라가면 타격은 당연히 당신이 더 받으니까.”

    “이라.”

    “회사라면 소속사 같은 건가요? 해명은 언제 올리기로 했어요? 그냥, 그냥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죠? 아, 내가 아직 기사를 못 봤어요. 우선 먼저 기사부터…….”

    “이라, 나 좀 봐.”

    그가 그녀의 눈높이에서 똑바로 바라봤다. 흔들림 없는 녹색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당신이랑 은우한테 절대 피해 안 가게 할 거야. 내 모든 걸 걸고 약속할게.”

    “……당신이 더 곤란한 상황이잖아요.”

    “그렇지 않아. 스캔들은 금방 식어.”

    간간이 그와 그녀의 기사 속에서 로레인의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정말로 끝난 건지, 로레인은 뭘 하는 건지, 대체 무슨 사이인 건지 추측성 기사가 아직도 쏟아지고 있었다. 다 막기는 불가능했지만, 지금 무슨 방법이든 총동원 중이었다.

    “당신은 일반인이잖아. 출처를 찾으면 당연히 고소할 거야.”

    “고소요……?”

    “그래. 우리 법무팀에 맡겨 둬. 혹시 한국 쪽에서 당신에게 곤란한 일이 있다면 그것도 말해 줘. 내가 해결할게.”

    차분한 그를 보니 빠르게 뛰었던 심장이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그제야 다시 징징 울려대는 휴대폰을 의식했다. 그 역시 알고 있는 듯 이라의 손을 힐끗 내려다봤다.

    “곤란한 전화야?”

    “아, 아뇨. 선배예요. 학교랑 직장 선배.”

    “며칠은 좀 시끄러울 거야. 젠장, 허가도 없이 막 올릴 줄이야.”

    그가 이를 바득 갈았다. 대놓고 인상을 험악하게 구긴 모습은 처음인 것 같았다. 놀라 그를 보는데, 그가 몸을 일으켰다. 계속 울리는 제 휴대폰을 확인한 그가 책상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나야. 그래, 찾았어? 최대한 빨리 처리해. 제니퍼는 오고 있대. 그래, 그럼 아이 사진은 더 없는 거지? SNS까지 샅샅이 뒤져.]

    그가 통화하며 한 손으로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잠시 통화가 길어지는 것 같아 이라는 소파에서 일어나 조심히 방을 나왔다.

    제 방으로 돌아간 이라는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그가 발 빠르게 대처 중이었다. 은우 사진은 예상하지 못한 터라 잠시 크게 당황했지만, 그가 저렇게 나서주니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됐다.

    이라는 한숨을 쉬며 울리는 발신인을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달칵,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대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한이라 너 진짜!

    “선배.”

    이라는 윤진을 불러놓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어떡하지.

    -너 전화 끊지 마라? 어?

    “알겠어요.”

    -이씨. 너 근데 괜찮은 거 맞지? 꽤 관심 뜨겁던데, 혹시 파파라치나 팬들이 찾아와서 해코지하고 그런 건 아니지?

    소리는 질러도 이라의 안위가 걱정은 됐던 건지 윤진이 심각하게 물어왔다. 이라는 힘없이 웃으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몰라요. 조용하기만 하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이곳 저택은 저 멀리 입구부터 신분 검사를 하는 곳이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너 왜 이렇게 침착해?

    “나 아직 기사 한 줄도 못 본 상태거든요. 아까 잠깐 기사 사진은 봤는데, 영어라 글은 못 읽었어요.”

    -……너 그럼 진짜 제이든 리 에반스랑 있는 거야?

    “선배, 제이든 원래 알고 있었어요?”

    이라의 물음에 1초도 안 돼 윤진의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놓고 비웃는 투였다.

    -너 지금 나 놀리냐? 제이든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여기요…….

    “……아하.”

    -어쨌거나, 진짜냐고. 너 진짜로 같이 있는 거야? 사귀는 거 맞아?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려요. 같이는 있는데 사귀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왜 제이든 리 에반스가 은우를 업고 있던 건데? 사진 속 아이 은우 맞잖아.

    윤진의 말에 이라가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저래 해결 중이에요.”

    -무슨 사이길래?

    “그냥…….”

    서로 좋아하는 사이요. 끝내 입속에서 맴도는 말을 말할 순 없겠지. 안 그래도 흔들려서 미칠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일이 터져버리다니.

    “그냥 예전에 알던 사이에요. 최근에는, 그러니까 나 카페 알바 한다고 했었잖아요. 거기 사장님이 그 사람 어머니라 개인적인 부탁으로 미국에 같이 오게 된 거고요. 금방 돌아갈 거예요.”

    -어머니도 알아? 그럼 친한 거네?

    “……그렇죠?”

    안 친하다고 부정할 정도는 아니니까. 윤진의 목소리 톤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의아한 얼굴로 휴대폰을 고쳐잡자, 아까보다 더 올라간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렸다.

    -기회다.

    단호할 정도였지만 이미 윤진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점철됐다.

    -인터뷰! 이라야, 인터뷰라고! 당장 제이든 리 에반스 섭외해서 방송 따자!

    “……네? 뭐라고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물었지만, 윤진의 흥분 상태는 더 높아질 뿐이었다.

    -너도 알 거 아니야. 전 세계가 제이든 리 에반스에 열광 중인 거! 제일 큰 화제야. 에릭 나이틀리랑 로레인 왓슨 주연이자, 제이든 리 에반스 시리즈작 영화가 이번에 개봉하고, 그 시리즈 다음 권도 곧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런칭되잖아!

    그를 알게 된 후 찾아봐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이라의 대답이 없자, 윤진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몇억 부가 팔린 초 베스트 셀러라는 그 제이든이 인터뷰는 물론이고 5년간 공식 행사 포함 그 어떤 언론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잖아! 단독이야. 이거 따내면 개별 편성은 물론이고, 한이라 너!

    입술이 의지와 상관없이 천천히 벌어졌다.

    -복직할 수 있어.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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