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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세요-41화 (41/70)

41화

“으애애애앵!”

크게 터트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경직됐던 몸에 힘이 탁 풀렸다. 정신없는 수연의 초점이 흐려질 무렵,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다가왔다.

“멋진 아드님이세요. 엄마가 한 번 안아보세요.”

품으로 들어온 아이는 여전히 양수에 젖어 쪼글쪼글했지만, 풍성한 고동색 머리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는 건강해요. 손가락 발가락 열 개씩 확인 다 했고, 발육도 좋은 편이에요. 엄마 체중이 많이 늘지 않아 걱정했는데, 아이는 괜찮아요.”

간호사가 다시 아이를 데려가고, 그 이후에 수연은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아이와 함께 미혼모 센터를 전전하다가 아이가 세 살 무렵 전과 같은 30만 원 월세를 얻었다. 원룸에 위치도 외져서 좋진 않았지만, 그 이상 돈을 쓰긴 무리였다.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도 아이를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를 업고 식당에서 일했고, 밤에는 재우고 부업을 했다. 전처럼 좋은 가게에서 일할 수도 없었다. 아이를 맡길 부모님도 없었고, 돈도 늘 부족했으니까.

처음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수연은 깜짝 놀랐다. 설마 설마 했지만, 눈이 그와 닮은 녹색일 줄은 몰랐다. 머리색이야 섞여서 그렇다 쳐도 눈까지 똑 닮을 줄이야. 신생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가 혼혈인 걸 물어볼 정도로 티가 났다.

“……아가야.”

출생신고는 했지만, 이름을 부르기 낯설어서 처음엔 그렇게만 불렀다. 아가야, 아가야. 그러고 나서 아이가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을 때야 제대로 이름을 불러줬다.

“제이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따듯한, 작은 불. 그의 이름의 뜻이었다. 처음에는 한국 이름으로 지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때 짧은 작은 추억에 생긴 아이라 더 추억하고 싶었다. 끝은 비록 괴로웠지만, 수연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리 고운 선물도 받았고.

그래서 이젠 행복할 일만 남을 줄 알았다. 천천히 걸음마를 떼고, 어눌하게 옹알이하는 아이를 보며 수연은 더 열심히 살았다. 스물두 살에 낳아 데리고 나가면 안 좋은 시선만 가득해도 참고 살았다. 그게 아이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하루는 제이든이 새벽에 고열로 빽빽 울었다. 놀란 수연은 응급실에 갔고, 아이는 꽤 오래 열을 내리지 못했다. 혹여나 잘못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데 날이 밝자 일하는 곳에서는 빨리 오라며 전화가 왔고, 새벽 내내 있던 응급실 비용은 그녀의 손을 떨리게 했다.

제이든은 꼬박 일주일을 앓았다. 어쩔 수 없이 입원까지 시키고 나서야 퇴원할 무렵에 호전됐다. 그렇게 수연이 모았던 돈을 거의 털어냈다.

“엄마, 엄마…….”

“……제이든. 엄마 봐 봐.”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수연은 잘 챙긴 가방을 작은 어깨에 단단히 고정했다. 시뻘게진 두 눈으로 아이를 보던 수연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리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우리 아들. 미안해. 흐으으윽. 흐으읍.”

“……엄마아.”

작은 손으로 수연의 등을 토닥였다. 아이의 고운 마음에 수연은 더 괴롭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안은 손을 풀며 일어나 뒤를 돌았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달려 나갔다. 그렇게 아이를 버렸다. 제이든을 버렸다.

***

일주일. 고작 일주일이었다. 하루도 못 버티고 보육원 근처를 서성였다. 혹여나 마주칠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멀리서만 그러길 며칠. 미친 여자처럼 온종일 울고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그나마 먹으면 토하고 집에서 혼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뒤늦게 깨는 것도 몇 번이었다.

수연은 결국 다시 제이든을 데리고 왔다. 펑펑 울며. 죽을 것처럼 울음을 쏟아내며 고작 일주일 만에.

일주일 만에 다시 데리고 온 제이든은 어딘가 고장 난 애처럼 미소를 잃었다. 옹알이처럼 꿍얼대는 말도, 엄마, 하며 정확하게 불렀던 것도 아이에게선 없어졌다. 드문드문 보이는 멍 자국에 수연이 이를 악물며 자책했다.

“제이든, 이거 먹어 볼래? 엄마가 국수 삶았어.”

작은 단칸방에서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을 펴고 바닥에 앉았다. 어린 아들은 그 흔한 TV 하나 없이 주워온 신문지의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수연의 노력을 알아주는지, 그녀가 웃으면 어렴풋이 따라 웃곤 했다.

아이 몫의 국수를 덜고, 흘리지 않게 챙겨주며 수연은 제 아침과 점심은 걸러도 제이든에게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탕 하나 더 사주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가 더 열심히 일해서 우리 아들 학교 갈 땐 멋진 운동화랑 가방도 사줄게. 꼭.”

“우응.”

고개를 끄덕이며 양 볼을 크게 부풀려 국수를 우물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수연은 미소를 짓다가 물이 생각나 일어났다.

“엄마가 물 갖다줄게. 천천히 먹어.”

“네에.”

아이용 식기 하나 제대로 없어서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 아이에게 전해주려고 몸을 돌리는데, 그때 작은 문으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수연은 놀라 그대로 멈췄다. 한 번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 적이 없었다. 그 흔한 배달 한번 해 본 적 없으니 당연했다. 지인조차 없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제이든을 한 번 돌아본 뒤 문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누, 누구세요?”

겁을 잔뜩 먹은 수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힘없는 여자와 그보다도 더 약한 아이뿐인 집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냥 없는 척할걸. 대답한 걸 뒤늦게 후회했다.

똑똑.

다시 정갈하게 노크가 울렸다. 손에 땀이 진득하게 날 즈음이었다.

“나야. 수연.”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이 들었다. 실제로 그랬다. 정말 얼얼할 정도로 순간 앞이 안 보였다. 절로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끼이익, 하며 쇳덩이가 열렸다. 수연은 천천히 제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깔끔하고 고급진 슈트. 흐트러짐 없는 넥타이. 그 위로 반듯한 턱선과 더불어 익숙한 녹색 눈동자.

“……로버트.”

“하아.”

수연의 입에서 가늘게 그의 이름이 나오자, 그는 고개를 돌린 채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수연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다 알아보고 왔지만, 막상 보니까 눈물부터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찾았는데.”

“……뭐, 뭐.”

너무 당황해서 말도 안 나왔다. 그냥 바보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로버트는 인상을 쓰며 한 걸음 다가왔다.

“이렇게 꼭꼭 숨어버리면 어떡해. 그렇게 날 버리면 어떡해. 내가 당신을 찾기 위해 얼마나, 얼마나……. 젠장. 미안, 당신한테 화내려던 게 아니었어.”

제가 알던 그가 맞나. 한국인이라 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능숙한 발음이었다. 얼빠진 수연을 보던 그는 한눈에 보이는 원룸 구조에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동네로 들어오며 우려했던 일이었다. 중간에 차도 못 들어가 결국 내려 걸어서 왔어야 했다.

“대체 왜 그렇게 사라졌어. 당신한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수연, 나를 좀 봐. 내가 당신을 얼마나…….”

오직 수연만 보던 그의 눈이 순간 다른 곳을 향했다. 형광등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는데, 그녀의 뒤로 작은 무언가가 꼼지락거렸다.

“아.”

수연이 놀라 뒤를 돌았다. 제이든. 어느새 이쪽으로 기어 온 건지 둘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물, 물.”

수연이 들고 있는 종이컵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여린 수연의 종아리를 지지대 삼아 일어난 제이든이 물을 달라고 여전히 그녀를 바라봤다. 놀란 수연이 시선을 로버트에게 돌렸다.

그는 이미 딱딱히 얼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결혼했느냐고 물을 뻔하다가, 가까이 온 아이의 머리와 눈동자 색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림짐작해 아이의 나이를 추려봤다. 수연이 없어져 헤어져 버린 그때 생겼다면…….

“왜, 왜, 왜 왔어요. 안 돼, 제이든 나오면…….”

“내 아이지.”

“가요, 빨리. 할 얘기 없어요.”

“내 아이잖아. 수연, 당신과 내…… 내 아들이잖아.”

로버트가 수연의 손을 붙잡았다. 몰랐는데 그는 무척이나 떨고 있었다. 산처럼 큰 그가 위태롭게 떨고 있었다. 성인 남성이 살아도 위험해 보이는 이곳에서 수연과 아이가 있었다. 조금만 힘주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문짝 하나 달고서.

“그래서요?”

그때 수연이 날카롭게 쏘아 봤다. 제이든을 뒤로 감추면서.

“내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라고요. 당신과는 관계없어요. 어서 돌아가요.”

“대체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연락하지 않았어? 당신은 번호를 바꿨지만, 내 번호는 가지고 있었을 거 아니야.”

그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지만 떨리는 목소리까지 감추진 못했다. 수연이 인상을 찡그렸다.

“당신은 결혼할 여자가 있잖아요. 아니, 이젠 결혼한 거 아니었어요? 왜 찾아와요? 대체 왜?”

“결혼?”

로버트가 엉망으로 얼굴을 구겼다. 그래, 단 한 순간도 그 오해를 잊은 적이 없다. 너를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해명할지 수천 번 생각했다.

“내 의지로 한 약혼 아니었어. 사업하는 집안이라 어릴 때부터 맺어졌고, 딱히 좋아하는 여자도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뒀던 거야.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 반해버려서 집안에 통보했어. 언제 어떻게 맞춘 건지 모를 반지 한 번 낀 적도 없는 약혼이었어. 당신이 그렇게 가버리고 난 후 5분도 채 되지 않아 완전히 끊어냈다고.”

“……무슨, 말도 안 돼요.”

“젠장. 당신을 찾으려고 5년간 내가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로버트는 이를 악물며 수연의 뒤에 있는 자그마한 아이를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가 엉망으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쫓아가서 잡는 거였는데.”

여자부터 돌려보낸 후 수연과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그사이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줄도 모르고서.

“매일 당신만 생각하며 죽어라 일했어. 당신 하나 찾으려고 모든 걸 바쳤다고!”

“……로버트.”

“이젠 찾았으니 됐어.”

그가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긴 시간 동안 하지 못한 말을 뱉어냈다.

“나와 결혼해줘.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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